3화
‹ ›일주일이 지났다. 서하은은 이제 거의 이틀에 한 번씩 보건실에 나타났다.
처음엔 체육복이었다.
"이거, 세탁 안 한 거 맞죠?"
"당연히 안 했지. 그게 값어치인데."
"삼만 원."
"오만 원."
"사만 원. 이게 제 최선이에요, 선생님."
나는 그날 사만 원을 받고 오태호의 체육복을 넘겼다. 오태호는 자기 체육복이 어디 갔는지도 모른 채 새 걸 사입었고, 나는 그 돈으로 편의점에서 삼각김밥 두 개와 캔커피를 샀다. 남는 장사였다. 그때는 분명히 그랬다.
다음엔 오태호의 손수건이었다. 이번엔 흥정이 좀 짧았다. 서하은이 처음부터 육만 원을 불렀고, 나는 굳이 깎지 않았다. 값이 오르는 건 수요가 늘었다는 뜻이고, 수요가 늘면 나는 좋았다. 그때까지는.
그다음엔 사물함 자물쇠 번호였는데, 그건 거절했다.
"그것까진 좀 아닌 것 같은데요."
"왜요, 번호 네 자리가 뭐 대수예요."
"그 안에 뭐가 들었는지 모르니까 그렇죠. 저는 겉에서 만질 수 있는 것까지만 팔아요."
"까다로우시네."
"장사 오래 하려면 이래야 해요."
그 정도는 넘어서는 선이라는 감이 왔으니까. 나는 나름대로 이 부업에 원칙이라는 걸 세워두고 있었다. 물건은 팔되 사람의 사생활 구조 자체를 넘기지는 않는다, 정도의 원칙. 지금 생각하면 우스운 얘기지만, 그때는 제법 지킬 만한 선이라고 믿었다.
"선생님, 저번 거 진짜 좋았어요."
"그런 말씀은 좀 그렇게 안 하셔도 될 것 같은데."
"왜요, 사실인데."
서하은은 매번 같은 자리, 침대 끝에 앉아 다리를 꼬았다. 교복 치마 밑으로 뻗은 다리가 침대 프레임에 아무렇지 않게 걸쳐지는 걸 보면서, 나는 매번 생각했다. 이 학생은 어디서도 눈치를 보지 않는구나. 그게 그냥 성격인 줄 알았다.
만날 때마다 요구 사항이 조금씩 대담해졌고, 나는 매번 계산을 다시 했다. 이 정도 위험 부담에 이 정도 대가면 남는 장사인가. 체육복은 위험도 1에 대가 4만 원, 손수건은 위험도 2에 대가 6만 원. 자물쇠 번호는 위험도가 갑자기 7로 뛰었으니 거절. 나는 이런 식으로 머릿속에 표를 그려가며 판단했다. 스스로 제법 합리적인 상인이라고 믿었다.
남는 장사라고 판단했던 게 문제였다.
*
그날은 요구가 좀 달랐다.
서하은이 보건실 문을 열고 들어올 때부터 뭔가 평소와 달랐다. 웃는 낯짝은 똑같았는데, 걸음이 평소보다 느렸다. 먹잇감을 앞에 두고 서두르지 않는 짐승 같았다고, 나중에야 그런 표현이 떠올랐다.
"오늘은 오태호 거 아니고요."
"그럼요?"
서하은이 침대에서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거리가 순식간에 가까워졌다. 향수인지 섬유유연제인지 모를 냄새가 코앞까지 훅 끼쳤고,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뒤로 물렸다.
"선생님 거요."
순간 뇌가 정지했다.
"···제 뭐요?"
"땀에 젖은 셔츠라든가, 뭐 그런 거요."
머릿속에서 계산기가 작동을 멈췄다. 표를 다시 그려야 하는데, 애초에 이 표에 넣을 항목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위험도를 매길 기준이 없었다.
나는 며칠 전까지 이 거래를 오태호 냄새 페티시 정도로 이해하고 있었다. 편하고 안전한 부업이라고, 심지어 어딘가 뿌듯해하기도 했다. 완전히 잘못된 계산이었다는 걸 이제 알았다.
"저는 오태호가 아니잖아요."
"알아요."
"그럼 대체···"
"제가 진짜 관심 있는 게 오태호가 아니라는 얘기죠."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렀다. 손끝이 시렸다. 처음부터 오태호는 위장이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뒤늦게 스쳤다. 아니, 확신에 가까웠다.
"청람여고 서열이 어떤 거냐고 물어보신 적 있죠, 오태호한테요."
"···내가요?"
기억을 더듬어봤다. 그랬다. 몇 주 전, 오태호가 보건실에 발목 삐끗해서 왔을 때 무심코 물었던 적이 있다. 요즘 청람여고 쪽 애들 분위기가 어떠냐고, 그냥 잡담 삼아. 그게 여기까지 흘러갈 줄은 몰랐다.
"아니, 제가 아는 애가 오태호 친구인데, 걔가 저한테 선생님 얘기 많이 하더라고요. 저는 처음부터 오태호 때문에 온 거 아니었어요."
정보의 경로가 순식간에 재구성됐다. 오태호 → 오태호 친구 → 서하은. 나는 그 경로의 맨 끝에서, 내가 미끄러져 들어온 것도 모르고 물건을 팔고 있었던 셈이다.
서하은은 청람여고 안에서도 손에 꼽히게 이름이 알려진 학생이었다는 사실을 그때 알게 됐다. 그 학교 선생들도 함부로 못 건드리는, 이른바 실세라는 소문. 겁 없는 게 아니라 겁낼 이유가 없는 쪽이었다.
"이거, 그러니까 처음부터 저를 노리고 접근하신 거예요?"
"눈치가 늦으시네요."
그녀는 웃으며 몸을 더 기울였다. 향수 냄새인지 뭔지 모를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체육복이랑 손수건은 그냥 밑밥이었어요. 선생님이 순순히 넘겨주시는지 보려고요."
"밑밥이라니. 그럼 그동안 낸 돈은···"
"진짜였어요, 그건. 저 돈 아까워서 그런 거 헛되게 안 써요."
뭔가 위로가 되는 말 같으면서도 전혀 위로가 안 됐다. 사만 원, 육만 원. 진짜 돈이 오갔으니 사기는 아니었다는 얘긴데, 그렇다고 이게 정상적인 거래였다는 뜻도 아니었다. 나는 처음부터 시험대에 올라 있었고, 통과한 시험의 대가로 다음 단계 시험을 받은 셈이었다.
"그러면 지금까지 저는 그냥, 뭐랄까, 예선을 통과한 거네요."
"비유 좋으시네요. 딱 그거예요."
"떨어졌으면 어떻게 되는 거였는데요?"
"몰라요. 안 궁금해요, 통과하셨으니까."
이 대화가 왜 이렇게 태연하게 흘러가는지, 나는 그게 더 무서웠다. 협박도 아니고 거래 제안도 아니고, 그냥 다음 안건을 처리하는 덤덤한 말투였다.
"저는 신체 부위든 침구류든, 사람 냄새가 배어 있는 거면 다 좋아해요. 근데 그중에서도 제일 좋아하는 게 있죠."
"그게 뭔데요."
"선생님 거요."
말투는 여전히 가벼웠는데, 눈빛만은 그날 처음 보건실 창문 아래서 나를 올려다보던 그 눈이었다. 유리창 너머로 나를 관찰하던 그 시선이, 지금은 유리창도 없이 정면에서 나를 훑고 있었다.
나는 이 상황이 저위험 부업에서 고위험 도박판으로 급격히 전환되고 있음을 느꼈다. 오만 원, 삼만 원 같은 소소한 흥정이 아니라 이제는 내 것을 걸어야 하는 거래였다. 판돈의 종류가 달라졌다. 물건이 아니라 나 자신이 상품이 되는 순간, 흥정이라는 말 자체가 무의미해진다는 걸 그제서야 깨달았다.
"거절하면요?"
목소리가 생각보다 침착하게 나왔다. 속으로는 이미 등이 흠뻑 젖어 있었다.
"거절은 안 받아요."
서하은이 처음으로 웃음기를 지우고 말했다. 표정이 사라지자 얼굴이 낯설게 느껴졌다. 지금까지 봤던 서하은이 전부 연기였던 건지, 이게 진짜 얼굴인 건지 구분이 안 됐다.
"선생님, 저 서열 1위인 거 아세요? 청람여고 애들, 저 한 마디면 백호남고 통학로 다 막을 수 있어요."
협박이었다. 이번엔 진짜였다.
머릿속에서 최악의 시나리오가 자동으로 재생됐다. 통학로가 막히면 학교 전체가 뒤집힌다. 원인을 캐다 보면 결국 오태호 이야기가 나올 거고, 오태호를 캐다 보면 보건실이 나올 거고, 보건실을 캐다 보면 나올 것들이 아주 많았다. 손수건, 체육복, 그 외 몇 가지. 다 합쳐봐야 이십만 원도 안 되는 부업이 이렇게까지 무거워질 줄은 몰랐다.
나는 계산기를 다시 두드렸다. 이건 손익을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생존을 따질 상황이었다. 위험도와 대가를 나란히 놓고 비교하던 표는 이제 아무 의미가 없었다. 표에 적을 숫자가 없었다. 그냥 하나, 버틸 수 있는가 없는가만 남았다.
"···생각해볼게요."
"생각은 오늘 밤까지만 허락할게요."
그녀가 일어나 문 앞에서 한 번 돌아봤다. 교복 치마 자락이 부드럽게 흔들렸고, 표정은 다시 원래의 여유로운 웃음으로 돌아와 있었다. 방금 전 그 무표정은 순간의 실수였는지, 아니면 그것마저 계산된 연기였는지 알 수 없었다.
"기대할게요, 선생님."
문이 닫히고 나서야 나는 숨을 크게 내쉬었다. 이건 부업이 아니라 함정이었다. 처음부터 오태호는 미끼였고, 나는 그 미끼를 덥석 물어 여기까지 끌려온 것이다.
책상 위에 놓인 진료 기록부를 멍하니 내려다봤다. 오태호, 체육복 분실, 손수건 분실. 아무렇지 않게 적혀 있는 그 이름들이 이제는 다르게 읽혔다. 애초에 이름을 적을 필요가 없었던 거래였다. 오태호는 처음부터 아무 상관이 없었으니까.
오늘 밤까지, 라고 했다. 몇 시간 남았는지 세어보려다가 그만둬버렸다. 세어봐야 답이 나오는 문제가 아니었다.
창밖으로 서하은이 운동장을 가로질러 걸어가는 게 보였다. 걸음걸이는 여전히 여유로웠다. 마치 이미 답을 알고 있다는 듯처럼.
나는 그 뒷모습을 보면서, 이번엔 정말로 계산이 서지 않는다는 걸 인정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