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숙소 앞마당에 모인 얼굴들을 보고 나는 잠깐 말을 잃었다.
오 년이라는 시간이 얼굴에 새겨져 있었다. 승우의 턱에는 흉터가 하나 늘었고, 유진의 머리는 어깨 아래까지 자라 있었다. 예전 기억 속 얼굴들과 지금 눈앞의 얼굴들을 하나씩 맞춰보는 동안, 가슴 한쪽이 이상하게 뻐근했다. 그리움이라고 하면 너무 담백한 말이었다.
"이야, 부지부장님."
승우가 먼저 웃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그 웃음은 변하지 않았다. 저 웃음 하나로 몇 년 치 어색함을 다 눌러버릴 수 있다는 걸, 나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책상물림 됐다더니 살아 있었네."
"살아 있으니까 이 꼴 보는 거지."
나는 그의 어깨를 툭 쳤다. 손끝에 닿는 감촉이 낯설면서도 익숙했다. 오 년 전, 이 손으로 그의 팔을 붙잡고 던전 밖으로 끌어냈던 기억이 잠깐 스쳤다.
유진이 팔짱을 낀 채 나를 훑었다. 위에서 아래로, 다시 아래에서 위로. 마치 내가 진짜인지 가늠하는 눈이었다.
"검은 여전히 못 들 것 같은데."
"들 필요 없어. 지휘만 하면 되니까."
"지휘라, 오 년 만에 갑자기?"
유진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녀는 언제나 그랬다. 상황을 정확하게 짚어내는 것. 예전에도 내가 얼렁뚱땅 넘기려는 순간마다 저 눈으로 정확히 허점을 찾아냈다.
"뭔가 이상하다는 거, 너도 알잖아."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말이 없었다. 이상하지 않다고 말하면 거짓말이고, 이상하다고 말하면 설명을 해야 하는데 설명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었다. 게임 속 지식을 어떻게 입 밖으로 꺼내야 할지, 오 년이 지나도록 나는 답을 찾지 못했다.
대신 지도를 펼쳤다. 낡은 종이가 바람에 살짝 들렸다가 다시 가라앉았다.
"은월촌. 목표는 생존자 확보와 원인 조사."
"원인 조사라니 웃긴다. 우린 그냥 구출조 아니었어?"
승우가 물었다.
"본부 지시가 바뀌었어. 상황이 심각하다는 뜻이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실은 본부보다 내가 더 잘 알고 있었다. 그 마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다만 그 지식의 출처를 설명할 방법이 없다는 게 문제였다.
일행은 여섯이었다. 승우와 유진 외에 셋은 처음 보는 얼굴들이었다.
신참 궁수 하나, 치료사 하나, 그리고 말수 없는 정찰병 하나. 궁수는 인사를 하면서도 계속 발끝을 툭툭 치는 습관이 있었고, 정찰병은 아예 고개만 까딱하고 끝이었다.
인사를 나누는 내내 나는 계속 지도의 한 지점을 눈으로 되짚었다.
은월촌. 게임에서 그곳이 어떤 곳이었는지, 아무도 몰랐다.
나만 알았다.
"부지부장님."
치료사가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제 이름은 다혜예요. 잘 부탁드려요."
"나도. 잘 부탁해요."
다혜의 손이 살짝 떨리는 게 보였다. 첫 필드 임무인 모양이었다. 손끝이 흔들리는데도 목소리는 애써 또렷하게 내려는 게 보였다. 그 어색한 균형이 낯익었다. 나도 처음엔 그랬으니까.
괜찮을 거라고 말해주고 싶었는데, 말이 나오지 않았다.
괜찮을 거라는 확신이 나한테도 없었으니까.
밤이 깊어지자 다들 자리를 잡고 눕기 시작했다. 모포를 뒤집어쓰고 눈을 감는 이들 사이로, 궁수가 코를 훌쩍이는 소리와 정찰병이 조용히 무기를 손질하는 소리가 섞여 들렸다. 나는 잠들지 못했다.
승우가 옆으로 다가와 앉았다. 그의 무게가 옆자리에 실리는 게 느껴졌다.
"오 년 전에 있었던 일, 아직도 신경 쓰여?"
"뭐가."
"석윤이 일."
그 이름이 나오는 순간 속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오 년이 지났는데도, 그 이름 세 글자는 여전히 목 안쪽을 조여왔다.
"신경 안 써."
거짓말이었다. 석윤은 우리 다섯 번째 동료였다. 던전 붕괴로 잃었다. 내가 지휘를 맡았던, 마지막 임무에서.
"난 신경 써."
승우가 나직하게 말했다. 불빛도 없는 어둠 속에서 그의 얼굴은 반쯤만 보였다.
"그래서 니가 다시 지휘 맡는다니까 걱정도 되고, 반갑기도 하고."
"둘 다야?"
"둘 다."
그는 웃으며 자리를 떠났다. 나는 그 뒷모습을 한참 바라봤다. 저 웃음 뒤에 걱정이 숨어 있다는 걸, 오 년 전에도 몰랐고 지금도 완전히는 모른다.
다음 날, 마을로 향하는 길에 우리는 이상한 이야기를 들었다.
마차꾼 노인이 은월촌 근처에도 안 가려고 했다. 마차 멈춰 세우고, 채찍을 쥔 손을 아예 무릎 위에 얹은 채였다.
"거기, 요즘 이상해요."
노인이 손사래를 쳤다.
"이상하다니, 뭐가요."
내가 물었다.
"밤마다 노랫소리가 들려요. 여자아이 목소리로."
"노랫소리가 왜 무섭습니까."
"노래가 끝나면, 마을에서 사람이 하나씩 사라지니까요."
일행들 사이에 정적이 흘렀다. 궁수가 침을 삼키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유진이 나를 쳐다봤다.
"이거 구출 임무가 아니라 퇴마 임무 같은데."
"뭐가 됐든 가야지."
노인이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그리고 그 아이, 사람들이 안 건들려고 해요."
"왜요."
"건드는 사람은 아무도 안 돌아왔거든요."
노인의 목소리가 거기서 뚝 끊겼다. 더는 말하고 싶지 않다는 뜻이었다.
나는 그 말을 곱씹었다. 게임 속 설정과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있었다. 저주받은 소녀. 접근하는 이를 해치는 존재.
다만 게임에서는 그게 '적'이 아니라 '피해자'였다.
피해자가 왜 사람을 해칠까.
"부지부장님, 표정이 왜 그래요."
다혜가 물었다.
"아니에요. 그냥, 생각이 많아서."
말은 그렇게 했지만, 머릿속은 이미 다른 곳을 헤매고 있었다. 게임 속에서 봤던 스틸컷 하나가 떠올랐다. 폐허가 된 마을, 하늘을 가르는 얼음 기둥, 그 가운데 웅크린 작은 소녀. 그 장면이 픽션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향하는 그 마을이라면.
마차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은월촌까지는 반나절 거리였다.
지도를 다시 펼치며, 나는 게임 스토리를 떠올렸다.
성녀 설하영. 원작 최강의 존재이자, 가장 비극적인 인물.
부모에게 배신당하고, 교회에게 저주받은 그녀는 십칠 세의 몸을 잃고 어린아이로 돌아갔다.
그 어린아이가, 은월촌에 있다.
그리고 그 저주가 완전히 각성했을 때, 그녀는 대륙 최강의 재앙이 된다.
게임에서 그 존재를 부르는 이름은 하나였다.
마녀.
그 이름을 속으로 되뇌는 것만으로도 손끝이 차가워지는 느낌이었다. 게임에서는 그저 텍스트였던 이름이, 지금은 실제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대상의 이름이었다.
마차 창밖으로 안개가 짙어지기 시작했다.
낮인데도 시야가 흐렸다.
"뭔가 이상한데."
정찰병이 낮게 중얼거렸다. 평소 말 한마디 안 하던 사람이 입을 열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심상치 않은 신호였다.
나는 창밖을 내다봤다.
안개 속에서, 나무들이 하나같이 새하얗게 서리로 덮여 있었다.
한여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