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마차 바퀴가 흙길을 긁는 소리가 먼저 들렸다. 그다음 말발굽 소리, 그다음 마차 문이 열리는 소리. 소리만으로도 이 집안의 방문객이 얼마나 격이 다른 존재인지 알 수 있었다. 하가의 마당에 들어온 것은 흔히 보는 짐수레가 아니었다.
마차에서 내린 사내는 체구가 컸다. 어깨가 넓고, 걸음마다 땅을 짓누르듯 무게가 실려 있었다. 옷자락에 수놓인 문양이 볕에 반짝였다. 좋은 비단, 좋은 염료. 돈이 흘러넘치는 집안의 표식이었다. 그러나 눈빛은 걸음의 무게에 어울리지 않게 가벼웠다. 얻고 싶은 것을 향한 눈이었다. 사람을 보는 눈이 아니라 물건을 값 매기는 눈.
"하빙 낭자." 강도현이 말했다. 목소리에 예의가 발려 있었으나, 그 밑에는 명령이 깔려 있었다. "오랜만이오."
하빙은 고개를 숙였다. "강 공자님, 어인 일로 이곳까지."
"아버님 병세가 궁금해서 들렀소. 겸사겸사, 낭자에게 전할 말도 있고."
그 말이 나오는 순간, 하원구가 마당으로 뛰쳐나왔다. 하빙의 양부였다. 얼굴에 반가움이 만연했다. 진짜 반가움인지, 이해관계에서 나온 반가움인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아이고, 도련님 오셨습니까.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하원구가 허리를 굽혔다. 그 허리에서 나는 이미 답을 읽었다. 지나치게 굽는 허리는, 지나치게 바라는 것이 있다는 뜻이다.
허리를 굽히는 각도까지도 계산된 것처럼 보였다. 필요 이상으로 낮은 허리, 필요 이상으로 밝은 목소리. 이 집의 가장은 이미 손님의 지갑을 셈하고 있었다.
나는 마당 한쪽에 서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강도현의 시선이 나에게 잠깐 머물렀다.
"이 사람은 누구요?" 그가 하빙에게 물었다.
"산길에서 저를 구해주신 은인이십니다." 하빙이 답했다. 목소리에 감사가 담겨 있었다.
강도현의 눈이 가늘어졌다. 나를 위아래로 재는 눈이었다. 옷차림이 낡았다는 것을, 그는 확인하고 있었다. 신분이 낮은 자라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그 판단이 얼마나 얕은지, 나는 굳이 알려줄 생각이 없었다. 얕게 보는 자는 다루기가 쉽다. 판을 짤 때는 오히려 이런 오해가 유용하다.
"고맙소." 그는 형식적으로 말했다. 그리고 다시 하빙을 향했다. "낭자, 잠시 얘기를 나눌 수 있겠소?"
하빙의 눈동자가 잠깐 흔들렸다. 대답 대신 방문 쪽으로 몸을 돌리는 걸음이, 대답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해주었다.
방 안으로 들어간 두 사람의 대화는 문밖까지 흘러나왔다. 나는 굳이 엿들으려 하지 않았으나, 목소리가 낮지 않았다.
"저희 서희가 낭자를 작은 아내로 맞이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소."
작은 아내. 그 말에 나는 눈썹을 좁혔다. 정실이 첩을 들이자고 나서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뭔가 다른 의도가 있다는 뜻이었다. 여자 하나를 얻는 데 오십 냥을 미리 풀고, 명의까지 끌어들일 이유가 무엇일까. 사람이 아니라 무언가를 위한 도구로 하빙을 필요로 하고 있는 듯했다.
"저는... 그럴 뜻이 없습니다." 하빙의 목소리가 떨렸다.
"낭자의 뜻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오." 강도현이 말했다. 목소리가 갑자기 낮아졌다. "아버님의 약값이 얼마인지, 낭자도 알지 않소."
협박이었다. 노골적이지 않았으나 명백한 협박이었다. 부드러운 말투로 감싼 칼날. 나는 방문 앞에서 조용히 진기를 끌어올렸다. 필요하면 개입할 준비였다. 손끝이 서늘해지는 감각, 몸이 먼저 반응하고 있었다.
"저희 집에서 도와드리겠소. 낭자만 응해준다면, 아버님은 명의를 붙여 치료해드리지."
하빙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 침묵이 곧 흔들림이었다.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나는 그 흔들림의 무게를 가늠했다. 아직은 완전히 무너지지 않았다. 그러나 오래 버틸 수 있는 무게도 아니었다.
강도현이 돌아간 후, 하원구는 만면에 웃음을 띠고 있었다. 손에는 강도현이 두고 간 전낭이 들려 있었다. 무게를 가늠하듯 몇 번이나 흔들어보는 손짓이었다.
"빙아, 이건 좋은 기회다. 강가는 부유하다. 네가 그 댁에 들어가면, 우리도 편해지지 않겠느냐."
"아버지." 하빙이 반박하려 했다.
그러나 주설아가 옆에서 말을 얹었다. 하빙의 양모였다. "내 딸도 아니면서 왜 이리 유별을 떠는지. 강 공자님이 그리 신경 써주시겠다는데, 감사할 줄 알아야지."
내 딸도 아니면서. 그 말이 하빙의 얼굴을 굳게 만들었다. 나는 그 표정을 놓치지 않았다. 순간 굳었다가 다시 풀리는, 애써 지어내는 무표정. 이 집에서 오랫동안 연습해온 얼굴이었다.
두 사람은 하빙을 압박했다. 나는 마당 그늘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며, 판을 다시 읽었다. 하원구와 주설아는 이미 강도현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물질적 이득이 그들의 저울을 움직였다. 이 집안에서 하빙을 진심으로 지지하는 사람은, 지금 이 순간 아무도 없었다.
두려움과 행동은 별개다. 하빙은 두려워하고 있으나, 아직 행동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그날 저녁, 하빙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마당 한편에서 약초를 다듬으며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손끝은 계속 움직였으나, 그 손이 다듬는 약초의 잎사귀는 이미 절반쯤 뭉개져 있었다. 마음이 다른 데 있다는 증거였다.
"괜찮으십니까." 내가 물었다.
"이연 님." 하빙이 급히 눈물을 닦았다. "괜찮습니다. 그저... 아버지 걱정에."
"작은 아내로 들어가고 싶지 않으신 겁니까."
하빙의 손이 멈췄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바람이 마당을 한 번 훑고 지나갔다. 저녁 공기가 서늘했다.
"제가 무슨 자격이 있겠습니까. 아버지 약값 때문에 팔려가는 것과 다를 게 없는데요."
자조적인 말이었다. 그러나 그 안에는 분명한 거부가 담겨 있었다. 나는 그것을 기록해뒀다. 이 여인은 아직 완전히 무너지지 않았다.
"방법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나는 말했다.
하빙이 나를 쳐다봤다. 놀라움과 기대가 섞인 눈이었다. "무슨 방법입니까?"
나는 아직 답하지 않았다. 판이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패를 보이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었다. 하빙의 눈에 담긴 기대가 부담스러울 정도로 무거웠다.
"조금만 더 지켜봐 주십시오." 나는 그렇게만 말했다.
하빙은 더 묻지 않았다. 다만 뭉개진 약초 잎을 조용히 옆으로 밀어두고, 새 잎을 집어 다시 다듬기 시작했다. 그 손짓에 아주 조금, 힘이 돌아와 있었다.
그날 밤, 나는 하원구와 주설아가 안방에서 나누는 대화를 들었다. 담벼락에 등을 붙인 채였다. 등 뒤로 벽의 냉기가 옷을 뚫고 스며들었다.
"강가에서 벌써 은자 오십 냥을 보내왔소." 하원구의 목소리에 흥이 실려 있었다.
"거기다 명의까지 붙여준다니, 이보다 좋은 혼처가 어디 있겠소." 주설아가 맞장구쳤다.
"빙이가 거부해도 어쩔 수 없지. 우리가 결정할 일이니."
그 말에 웃음소리까지 섞였다. 딸의 미래를 값으로 치환해놓고, 두 사람은 그 값에 흡족해하고 있었다.
나는 어둠 속에서 조용히 웃었다. 씁쓸한 웃음이었다. 이 사람들은 이미 하빙의 편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나는 다른 편을 만들어야 했다.
판을 짜기 시작해야 할 시간이었다. 그러나 그 전에, 확인해야 할 것이 하나 있었다. 강도현이라는 사내가 어디까지 손을 뻗을 수 있는지. 오십 냥과 명의를 미리 풀 수 있는 자라면, 이 혼사가 단순한 욕심에서 나온 것이 아닐 가능성이 컸다. 서희라는 이름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는 아직 알지 못했다. 알아내야 했다. 담벼락의 냉기가 등을 타고 올라오는 동안, 나는 다음 걸음을 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