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눈을 떴을 때, 나는 낯선 방 안에 누워 있었다. 벽은 흰빛으로 은은하게 발광했다. 창밖으로는 여전히 회백색 안개가 흘렀다.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나무도 아니고 돌도 아닌, 처음 보는 재질이었다. 손을 뻗어 만져보려 했으나 팔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깨어났군요."
목소리가 들렸다. 어제 본 그 백의의 사람이었다. 가까이서 보니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웠다. 스물쯤일 수도, 훨씬 더 많을 수도 있었다. 눈빛만은 분명했다. 깊고, 고요했다. 마치 오래된 우물 같았다. 바닥이 보이지 않는데도 흔들리지 않는 물.
"이곳은 어디입니까." 나는 물었다.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진짜로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렇게 보이는 게 나았다.
"허공검전." 그녀가 답했다. "이 땅 안에서 유일하게 안전한 곳입니다."
나는 몸을 일으켰다. 상처는 대부분 아물어 있었다. 그런데도 나는 신음을 흘렸다. 조금 과장된 신음이었다. 상대의 반응을 보고 싶었다.
그녀는 표정을 바꾸지 않았다. 동정도, 경계도 아니었다. 그저 관찰이었다. — 저쪽도 나를 재고 있다. 나는 그것을 알아챘다. 시선이 내 손끝에서 어깨로, 어깨에서 눈으로 천천히 옮겨갔다. 몸을 살피는 눈이 아니라 사람을 살피는 눈이었다.
"황자시군요." 그녀가 말했다. 나는 순간 몸이 굳었다. "손등의 인장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숨길 수 없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다른 것을 숨겨야 했다. 나는 목소리를 낮췄다. "버림받은 황자입니다. 이제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거짓은 아니었다. 그러나 완전한 진실도 아니었다. 나는 스스로를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어, 이 사람이 나를 경계하지 않게 만들고 싶었다. 겸손은 무기가 될 수 있다. 나는 그것을 그 순간 처음으로 배웠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내가 물었다.
"이름은 없습니다." 그녀는 무심하게 답했다. "이곳에서 오래 머물다 보면, 이름이란 게 부질없어지지요."
의미를 알 수 없는 대답이었다. 나는 더 묻지 않았다. 묻는 것보다 지켜보는 것이 나았다. 침묵 속에서 그녀가 방을 나섰고, 나는 그 뒷모습을 눈에 담았다. 걸음에 무게가 없었다. 마치 바닥을 딛는 게 아니라 바닥과 협의하는 것처럼.
그녀는 나를 허공검전이라는 곳으로 안내했다. 안개 속에 세워진, 실체가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운 전각이었다. 기둥은 하나도 같은 굵기가 아니었고, 지붕선은 이어지다가 문득 끊겼다. 안으로 들어서자 벽면 전체에 검로가 새겨져 있었다. 문양은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눈을 오래 두면 어지러웠다.
"여기서 검을 배우실 수 있습니다." 그녀가 말했다. "다만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이라면."
"이곳에서의 시간은, 바깥과 다르게 흐릅니다."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때는 알지 못했다. 다만 나는 고개를 숙였다. "가르쳐주신다면, 무엇이든 견디겠습니다."
겸손한 태도였다. 속으로는 다른 계산이 돌아갔다. 이곳에서 강해질 수 있다면, 바깥의 시간이 얼마나 흐르든 상관없었다. 형님이 늙어가는 동안, 나는 그를 넘어설 힘을 갖게 될 것이다. 오히려 시간이 더 흘러줄수록 좋았다. 형님의 경계가 풀릴 테니까. 죽은 황자는 두 번 죽이지 않는 법이다. 사람들은 이미 없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날부터 나는 검을 잡았다. 처음 백 년은 기초였다. 벽에 새겨진 검로를 그대로 따라 그리는 일이었다. 몸이 부서지고 다시 붙었다. 손끝의 감각이 사라졌다가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어느 날은 검을 쥔 채로 잠들었고, 눈을 뜨면 손가락이 검자루에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백의의 사람—나는 속으로 그녀를 '그녀'라 칭하기로 했다. 목소리와 걸음에서 그런 느낌이 났다—은 매번 지켜만 보았다. 손을 대지 않았다. 말을 걸지도 않았다. 가끔 내가 쓰러지면, 그저 그 자리에 서서 내가 다시 일어나는지를 확인했다. 도와주지 않는 것도 하나의 방식이라는 것을, 나는 나중에야 이해했다.
두 번째 백 년, 나는 검로의 의미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벽의 문양은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진기의 흐름을 형상화한 것이었다. 나는 그것을 몸에 새기듯 반복했다. 숨을 들이쉬는 지점, 내쉬는 지점, 멈추는 지점이 문양 속에 그대로 박혀 있었다. 나는 하루에도 수백 번 같은 동작을 반복했고, 그 반복이 지겨움이 아니라 안정으로 바뀌는 순간을 느꼈다.
세 번째 백 년, 처음으로 벽의 문양이 반응했다. 검을 휘두르면 문양의 빛이 검을 따라왔다. 그녀가 그때 처음으로 옅게 웃었다. 나는 그 웃음이 진짜인지 계산하려 했다. 계산은 실패했다. 그녀의 표정을 읽는 것은, 검로를 읽는 것보다 어려웠다. — 검은 규칙이 있다. 사람은 없다. 나는 그 사실을 그녀 앞에서 매번 새로 배웠다.
네 번째 백 년, 나는 형님의 얼굴을 잊어가고 있었다. 대신 그 자리를 검이 채웠다. 복수는 여전히 목표였으나, 검 자체가 목적이 되어가는 순간들이 있었다. 검을 휘두르는 그 자체로 충만해지는 밤이 있었다. 그것을 깨달을 때마다 나는 다시 형님을 떠올렸다. 잊지 않기 위해서. 형님의 웃는 얼굴, 그 뒤에 숨겨진 계산. 나를 버리기로 결정했던 그 짧은 순간의 눈빛. 그것을 되새기는 일이 나를 다시 검 앞에 세웠다.
다섯 번째 백 년이 끝날 무렵, 나는 검로 전체를 몸에 새겼다. 벽의 빛이 사그라들었다.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는 뜻이었다. 마지막 초식을 마치고 검을 내렸을 때, 손이 떨렸다. 오백 년 만에 처음으로 떨리는 손이었다.
"이제 나가실 시간입니다." 그녀가 말했다.
"바깥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십 년이 지났습니다."
나는 그 말을 세 번 되짚었다. 오백 년이 십 년이라니. 시간의 격차가 그토록 컸다. 그녀는 더 설명하지 않았다. 다만 문을 열어주었다. 문 밖으로 안개가 밀려들었다. 오백 년 전 처음 이곳에 왔을 때와 똑같은 안개였다.
"고맙습니다." 나는 고개를 숙였다. 진심이었다. 이번에는 계산이 아니었다.
"다시 볼 일이 있을지는 모르겠군요." 그녀가 말했다. 표정에 아쉬움이 스쳤다가 사라졌다. 나는 그 짧은 순간을 눈에 새겼다. 오백 년 동안 본 그녀의 표정 중 가장 사람 같은 표정이었다.
안개를 벗어나자 익숙한 산세가 눈에 들어왔다. 대운국의 국경이었다. 공기가 달랐다. 안개 속의 공기는 무게가 없었는데, 바깥의 공기는 폐부까지 가득 차는 느낌이었다. 나는 관도를 따라 걸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옷차림이 낯설게 느껴졌다. 유행이 바뀐 모양이었다. 십 년이면 그럴 수 있었다. 나는 걸으며 손바닥을 몇 번이고 쥐었다 펴보았다. 검을 쥔 손의 감촉이 아직도 낯설게 남아 있었다.
마을 어귀 주막에서 나는 처음으로 사람들의 대화를 엿들었다. 국밥 냄새가 코를 찔렀다. 오백 년 만에 맡는 사람 사는 냄새였다.
"오늘 즉위식이라지."
"드디어 폐하께서 물러나시고, 새 황제가 등극하시는구먼."
나는 걸음을 멈췄다. 등골이 서늘해졌다.
"새 황제라면." 나는 슬쩍 끼어들어 물었다. "누구십니까."
주막 주인이 나를 이상하게 쳐다봤다. "이헌 황자 전하 아니겠소. 이 나라 사람이 아니신가?"
형님이 황제가 되었다. 나는 웃음이 나왔다. 씁쓸한 웃음이었다. 오백 년을 갈아 넣은 검이, 이제 겨우 즉위식과 맞닿았다는 사실이 우스웠다. 십 년 전 나를 버렸던 그 손이, 이제는 옥새를 쥐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곧 웃음을 지웠다. 지금은 정체를 드러낼 때가 아니었다. 나는 죽은 사람이다. 그것이 나의 가장 큰 무기였다. 죽은 자는 의심받지 않는다. 죽은 자는 계획을 세울 시간을 번다.
산길을 따라 도성으로 향하던 그때였다. 앞쪽에서 여자의 비명이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