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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새벽 세 시가 넘도록 나는 침대에 누운 채로 휴대폰 화면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있었다. 그 게시물은 어느새 조회수가 폭발적으로 늘어 있었고, 댓글창은 밤사이 수백 개로 불어나 있었다. 스크롤을 내릴 때마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예전 사진 진짜 예뻤는데 지금은 왜 저럴까] [남자애 팬이었다며 진짜 소름] [관심병 콜라보네 둘 다] [근데 옆에 남자애는 누구야 사귀는 거 아니냐] 댓글 하나하나가 눈앞을 스칠 때마다 속이 울렁거렸다. 손끝이 저릴 정도로 차가워지는 이 감각이 낯설지 않았다. 오히려 지나치게 익숙했다. 몇 년 전, 처음으로 악플을 발견했던 그 밤에도 손끝은 똑같이 차가웠다. 그날 나는 밤새 화장실 바닥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문밖에서 엄마가 몇 번이나 문을 두드렸지만 나는 끝까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을 하면 목소리가 무너질 것 같았고, 그게 더 무서웠다. 지금도 다르지 않았다. 나는 결국 휴대폰을 이불 속으로 던져버리고 방문을 잠갔다. 스위치를 켜지 않은 방 안으로 창밖 가로등 불빛만이 희미하게 스며들어와 방바닥에 얇은 줄무늬를 그렸다. 그 빛이 이상하게 서늘해서, 나는 이불을 목까지 끌어올린 채 한참을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잠은 오지 않았다. 눈을 감으면 열두 살의 내가 카메라 앞에서 웃고 있는 장면이 떠올랐고, 눈을 뜨면 열일곱이 다 되어가는 지금의 내가 이불 속에서 떨고 있었다. 그 간극이 지나치게 커서, 어느 게 진짜 나인지조차 헷갈렸다. 다음 날 아침, 알람이 울리기 전부터 눈이 떠졌다. 학교에 가지 않을까 잠깐 고민했다. 결석 한 번쯤 아무 일도 아니라고,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여봤지만, 곧 다른 생각이 그 생각을 밀어냈다. 결석하면 그 게시물이 사실이었다는 확인처럼 보일 것이다. 그건 지금보다 더 견딜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억지로 몸을 일으켜 세면대 앞에 섰다. 거울 속 얼굴은 밤새 잠을 설친 탓에 푸르스름했다. 그 얼굴에 교복을 걸치고, 넥타이를 몇 번이나 다시 매다가 겨우 집을 나섰다. 교실에 들어서자 예상대로 시선이 몰렸다. 어제까지는 그나마 은근했던 시선이 오늘은 노골적으로 바뀌어 있었다. 몇몇은 휴대폰을 들여다보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황급히 화면을 내렸고, 몇몇은 아예 시선을 피하지도 않은 채 나를 훑어보았다. 나는 그 시선들을 하나하나 다 느끼면서도 아무 표정 없이 자리로 걸어가 앉았다. 표정을 관리하는 법은 어릴 때부터 몸에 익은 것이었다. 아무리 속이 뒤집혀도 얼굴은 태연하게, 그게 내가 살아남는 방식이었다. 옆자리에는 도윤이 이미 앉아 있었다. 책상 위에 팔을 괴고 창밖을 보고 있던 그 애가 내 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봤어?" 내가 먼저 물었다. 목소리가 예상보다 더 건조하게 나왔다. "봤어." "미안하네." "왜 네가 미안해." "너까지 이상한 소리 듣게 만들어서." 도윤은 대답하지 않고 잠시 나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이 부담스러워서 나는 고개를 돌려버렸다. 창밖으로 운동장을 가로지르는 애들이 보였다. 아무 걱정도 없어 보이는 뒷모습들이었다. "신경 쓰지 말라니까." "그게 말이 쉽지." "나는 진짜 상관없어." "난 상관있어." 내 목소리가 갑자기 커졌다. 몇몇 애들이 흠칫 돌아보는 게 느껴졌지만, 이번엔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뭔가가 안에서 터진 것처럼, 말이 계속 밀려 나왔다. "난 상관있어, 도윤아. 이런 게 익숙한 사람이라도, 익숙해진다고 안 아픈 게 아니야. 그리고 너까지 이렇게 엮이는 거, 나 진짜 원한 적 없어." 그 애는 조용히 내 말을 듣고 있었다. 표정에 별다른 변화가 없었지만, 눈빛만은 미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나는 숨을 고르며 다시 말을 이었다. "어릴 때 나 진짜 그랬어. 카메라 앞에서 웃는 게 제일 쉬운 일이었어. 근데 지금은 아무것도 아닌 걸로도 이렇게 무너져. 그러니까 너도 나한테 뭘 기대하지 마. 기대하는 만큼 실망할 거야. 나 아무것도 못 해." 말을 마치자 이상하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나는 얼른 고개를 숙여 그걸 숨겼다. 무슨 기대를 하지 말라는 거지. 나조차도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명확하지 않았다. 그저 이 애가 나 때문에 상처받는 걸 보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 광고, 다시 봤어." 도윤의 목소리가 갑자기 방향을 틀었다. 나는 무슨 소린가 싶어 고개를 들었다. "'첫사랑' 광고. 어제 밤새 다시 봤어. 마지막 장면, 카메라 정면으로 보면서 웃는 거." "그게 왜." "그 눈빛, 지금도 똑같아." "...뭐?" "연기였을 수도 있지. 근데 나는 그때도, 지금도 그 눈빛이 진짜라고 생각했어. 뭔가를 진심으로 바라보는 눈빛. 지금 너 눈에도 가끔 그게 보여. 아주 잠깐씩이지만." 순간 나는 말을 잃었다. 아무도 그런 말을 해준 적이 없었다. 다들 예전과 달라졌다고, 그때가 좋았다고, 지금은 별로라고 했지만, 지금도 뭔가가 남아 있다고 말해준 사람은 없었다. 그때가 좋았다는 말은 지금은 아니라는 뜻이었고, 나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지금의 나를 부정당하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이 애는 지금의 나에게서도 뭔가를 봤다고 했다. "그런 말 하지 마." 겨우 뱉은 말이었다. 목소리가 갈라져 있었다. "진짠데." "...그만해."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복도를 걷는 동안에도 몇몇 시선이 따라붙는 게 느껴졌지만, 이제는 그마저도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세면대에 물을 틀어놓고 한참을 서 있었다. 차가운 물이 손등을 타고 흘러내렸다. 거울 속의 내 얼굴이 낯설었다. 열두 살의 그 아이는 카메라 앞에서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고 믿었다. 웃는 것도, 우는 것도, 화내는 것도, 전부 연기라는 이름으로 포장할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 지금 이 얼굴은 아무것도 연기하지 못했다. 댓글 몇 줄에 무너지고, 친구의 말 몇 마디에 흔들렸다. 열두 살의 그 아이와, 지금의 이 얼굴이 정말 같은 사람인지, 스스로도 확신할 수 없었다. 물을 잠그고 거울을 오래 들여다보았다. 도윤이 말한 그 눈빛이라는 게 진짜 있기는 한 건지, 있다면 어디에 숨어 있는 건지, 나는 그것조차 찾을 수 없었다. 교실로 돌아오자 도윤은 여전히 같은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런데 그 애의 옆에 처음 보는 얼굴 하나가 서 있는 게 보였다. 우리 반이 아닌, 옆 반 남자애였다. 큰 키에 다소 험악한 표정을 하고 있는 그 애는 팔짱을 낀 채 도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강도윤, 잠깐 얘기 좀 하자." 그 목소리에 도윤의 표정이 순간 딱딱하게 굳는 걸 나는 멀리서도 알아챌 수 있었다. 평소라면 어떤 상황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던 애였는데, 지금은 눈에 띄게 긴장한 기색이 스쳤다. 무슨 일이지. 무슨 일인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지만, 그 낯선 애의 손에 들린 휴대폰 화면에, 익숙한 무언가가 떠 있는 게 보였다. 나는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걸 느끼며 걸음을 멈췄다. 그건 어젯밤 그 게시물이 아니었다. 전혀 다른, 내가 모르는 무언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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