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체육시간 사건 이후로 반 아이들의 시선이 조금 달라졌다. 예전엔 무관심이었다면 이제는 노골적인 관찰이었다. 복도에서 마주치면 인사도 없이 눈만 굴리며 나와 강도윤을 번갈아 살피는 애들, 급식실에서 줄을 서다가도 우리 쪽을 흘긋거리며 귀를 맞대고 속닥이는 애들. 그런 시선들이 하나둘 늘어날수록 나는 점점 등이 굽어졌다. 어깨를 움츠리고, 시선을 바닥에 두고, 되도록 조용히 지나가는 것. 그게 요즘의 내 유일한 생존 방식이었다.
"쟤네 진짜 뭐야."
"짝사랑이라도 하는 거 아니야?"
"근데 걔 원래 좀 유명했잖아. 예전에 인터넷에서 난리 났던."
세 번째 문장이 나올 때마다 나는 숨을 죽였다. 유명했다는 말도, 인터넷에서 난리 났다는 말도 결국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다들 알고 있었다. 알고 있으면서 모르는 척, 혹은 아는 걸 은근히 흘리며 즐기는 척을 했다. 그 수군거림이 귀에 들릴 때마다 나는 더 딱딱하게 표정을 굳혔다. 표정을 굳히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으니까.
도윤은 대체로 그런 시선들을 무시했다. 무시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했다. 누가 흘겨보든 신경도 안 쓰고 내 옆에 앉았고, 누가 수군거리든 목소리를 낮추지 않고 나에게 말을 걸었다. 그게 오히려 더 눈길을 끌었다는 걸, 그 애는 정말 몰랐던 걸까.
어느 날 점심시간, 한 무리의 여자애들이 대놓고 도윤을 붙잡고 물었다. 급식실 앞 복도,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자리에서였다.
"너 진짜 걔 왜 그렇게 챙겨? 예전에 진짜 팬이었어도 지금은 아니잖아. 걔 지금 좀... 상태 별로인데."
나는 그 자리에 없었다. 화장실에 갔다가 늦게 나오는 길이었고, 그 장면을 목격한 건 다른 반 애였다. 그 애가 나중에 나에게 그 말을 전해주면서 "너 괜찮아?" 하고 걱정스레 물었을 때, 나는 웃으면서 괜찮다고 대답했다. 정말 괜찮은 척을 했다.
상태 별로.
그 단어가 며칠 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밥을 먹을 때도, 수업을 들을 때도, 잠들기 전 이불 속에서도 그 세 글자가 불쑥 튀어나와 나를 찔렀다. 상태 별로. 상태 별로. 맞는 말이라서 더 아팠다. 나는 도윤이 그 말에 뭐라고 대답했는지가 더 궁금했다. 화를 냈을까. 아니면 그냥 웃어넘겼을까. 혹시 속으로는 그 여자애들 말에 동의하면서 겉으로만 아니라고 했던 건 아닐까.
그날 방과 후, 나는 처음으로 도윤에게 그걸 물었다. 교문을 나서서 버스 정류장으로 걷는 길, 해가 낮게 걸려 그늘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걔들이 뭐라고 하든?"
"뭐를."
"들었어. 나 상태 별로라고 했다며."
도윤의 표정이 순간 흐려졌다. 걸음이 살짝 느려졌다.
"그런 말 무시해."
"뭐라고 대답했는지 물었잖아."
그 애는 잠시 망설이다가, 평소와는 다르게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 조심스러움이 오히려 나를 더 긴장하게 만들었다.
"내가 중학교 때 농구부 매니저였다는 거 말한 적 있나."
"...아니."
갑작스러운 화제 전환에 나는 당황했지만, 그 애는 걷는 속도를 늦추며 이어 말했다.
"우리 팀에 진짜 잘하는 애가 있었어. 근데 부상 때문에 한 시즌을 통째로 쉬었어. 무릎 인대가 나가서, 재활만 반 년 걸렸을걸. 복귀했을 때 실력이 예전 같지 않으니까 다들 뒤에서 수군거렸지. 걔도 자기가 예전 같지 않다는 거 알아서 스스로 더 위축됐고."
"그래서."
"나는 그때 아무것도 못 했어. 그냥 매니저였으니까. 물 떠다 주고 수건 챙겨주는 게 다였어. 근데 그거라도 계속했어. 걔가 다시 코트에 설 때까지, 매 경기마다 옆에서 그냥 있어줬어. 벤치에 앉혀놓고 물병 건네주고, 그거밖에 못 했어."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결국 다시 잘했어. 예전만큼은 아니었지만, 걔만의 방식으로. 슛 성공률은 낮아졌는데 패스가 더 좋아졌더라. 그때 알았어. 응원하는 게, 옆에 있어주는 게 생각보다 힘이 세다는 거."
그 말을 들으며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무언가 마음 안쪽에서 조용히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발밑의 보도블록 틈으로 시선이 자꾸 떨어졌다. 그 애가 나를 육성하겠다고 했을 때 그저 팬심의 과장된 표현이라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그건 그 애가 이미 한 번 경험했던, 자기만의 신념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나한테도 그러는 거야?"
"응."
"난 부상당한 농구선수가 아니야."
"알아. 근데 위축된 건 똑같잖아."
그 정확한 지적에 나는 순간 숨이 막혔다. 맞는 말이었다. 나는 위축되어 있었다. 사춘기가 지나면서 변해버린 얼굴이 부끄러웠고, 사람들의 시선이 무서웠고, 다시 무언가를 시도했다가 실패할까 봐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는 삶을 선택했다. 실패가 무서워서 시도조차 하지 않았고, 상처받기 싫어서 아예 마음을 닫아버렸다.
"그럼 이용하는 거 아니야? 팬이었던 걸 핑계로."
"이용이라고 생각하고 싶으면 그래도 돼. 근데 나는 그냥 진심이야."
진심이라는 말이 이상하게 낡고도 무거웠다. 나는 그 말을 어떻게 받아야 할지 몰라서 그냥 시선을 피했다. 정류장에 버스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지만 둘 다 타지 않았다.
"...알겠어."
짧은 대답이었지만, 그 애는 그걸로 충분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입꼬리가 아주 살짝 올라간, 그 애 특유의 미소였다.
그날 이후로 나는 조금씩 도윤의 잔소리를 덜 밀어내기 시작했다. 지각을 완전히 그만두지는 못했지만, 알람을 한 번 더 맞춰두는 정도의 변화는 생겼다. 아침 여섯 시 반, 일곱 시, 일곱 시 십오 분. 세 개의 알람이 차례로 울렸고, 나는 그중 두 번째쯤에 겨우 눈을 떴다. 단추도 아예 새 셔츠로 바꿨다. 목까지 조이던 낡은 셔츠 대신, 도윤이 지나가듯 던진 말 한마디에 큰맘 먹고 산 셔츠였다. 작은 변화였지만, 그게 나에게는 오랜만의 시도였다. 오랜만에 뭔가를, 실패할 걸 알면서도 해보는 시도.
하지만 그 시도가 오래 평화롭게 이어지지는 못했다.
금요일 저녁, 집에 돌아와 씻고 나와 휴대폰을 켰을 때 나는 오랜만에 알림이 폭주하는 걸 봤다. 화면 상단이 숫자로 가득 차 있었다. 심장이 먼저 반응했다. 손끝이 차가워지고, 숨이 얕아졌다. 누군가 내 옛날 사진과 지금 사진을 다시 엮어 새로운 게시물을 올렸고, 그 아래 강도윤과 함께 찍힌 체육시간 사진까지 함께 붙어 있었다. 누가 언제 찍었는지도 모를, 우리가 나란히 웃고 있는 그 사진이.
제목은 간단했다.
[육성 실패 서은채, 또 남자 하나 물었다]
손이 떨렸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익숙한 공포였다. 스크롤을 내릴수록 댓글은 늘어나 있었고, 그 안에는 낯익은 문체들이 섞여 있었다. 예전에 나를 물어뜯던, 그 시절 그 계정들의 흔적이. 나는 화면을 끄지도 못하고 그대로 침대 위에 앉아 굳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