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다음 날 아침, 나는 어김없이 지각을 했다. 알람이 세 번 울렸고, 나는 세 번 다 꺼버렸다. 눈을 뜨고도 한참을 이불 속에서 천장만 바라보다가, 결국 학교에 가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이십 분이 더 걸렸다. 알람을 끄고 다시 자버리는 습관은 이제 거의 몸에 새겨진 반사작용 같은 것이었다. 어차피 기대할 것도 없는 하루의 시작을 서둘러 맞이할 이유가 없었다.
교복 셔츠는 다림질도 하지 않은 채로 걸쳐 입었고, 머리는 손으로 몇 번 대충 쓸어 넘긴 게 전부였다. 현관에서 신발을 신다가 문득 거울 속의 내 얼굴을 봤다. 어릴 때 브라운관 속에서 웃고 있던 그 얼굴과는 너무 다른, 초점 없는 얼굴이었다. 그런 걸 신경 쓸 여유는 없었다. 나는 그대로 문을 닫고 나왔다.
교실 문을 열자 이미 절반쯤 채워진 아이들의 시선이 잠깐 나에게 머물다가 흩어졌다. 익숙한 무관심이었다. 지각한 애가 들어왔다는 것 이상의 의미는 없는, 그런 시선들. 그런데 자리에 앉으려는 순간, 강도윤이 나를 빤히 보고 있는 게 느껴졌다. 그 시선은 다른 애들의 그것과 온도가 달랐다.
"또 늦었네."
"신경 꺼."
짧게 받아쳤다. 그 애는 어깨를 한 번 으쓱하더니 다시 앞을 보았다. 그걸로 끝인가 싶었는데, 쉬는 시간이 되자마자 다시 시작이었다. 종이 치자마자 자리를 옮겨온 그 애의 의자 끄는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다.
"어제도 그렇고, 매일 지각하는 거야?"
"응."
"왜?"
"그냥 늦잠 자."
"몇 시에 자는데."
"그건 왜 물어봐."
나는 짜증이 담긴 눈으로 그 애를 봤다. 그 애는 눈치도 없이 계속 물었다. 노트를 펼치지도 않고, 책을 꺼내지도 않고, 오로지 나만 보면서.
"머리는 언제 마지막으로 잘랐어."
"...뭐?"
"교복 셔츠 단추도 하나 풀렸는데."
손이 저절로 셔츠 목깃으로 올라갔다. 실제로 단추가 하나 빠져 있었다. 언제부터였는지도 몰랐다. 손끝에 닿는 빈자리가 이상하게 부끄러웠다. 나는 그 자리를 손바닥으로 가리듯 덮었다.
"너 뭔데 자꾸 이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그 애는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몸을 조금 더 내 쪽으로 기울였다.
"어제 말했잖아. 다시 육성할 거라고."
"장난치지 말라니까."
"장난 아닌데."
그 애의 눈빛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오히려 그게 더 거슬렸다. 어차피 기대해도 무너진다는 걸, 이 세상에서 나만큼 잘 아는 사람은 없었다. 어릴 때 나를 캐스팅했던 감독도, 나를 국민 여동생이라 불렀던 방송국 사람들도, 결국은 내가 조금 자라고 조금 변하자 미련 없이 돌아섰다. 처음엔 CM이 끊겼고, 그다음엔 드라마 오디션에서 서류조차 받아주지 않았다. 열두 살이 지나고 열세 살이 되자마자 오디션 콜은 뚝 끊겼고, 소속사는 계약을 자연스럽게 만료시켰다. 담당 매니저 언니는 마지막 통화에서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그냥 전화를 끊었다. 아무도 나를 지켜주지 않았다. 그런데 이 낯모르는 애가 갑자기 나타나서 나를 다시 만들어주겠다니, 웃기지도 않았다.
"넌 나 몰라. 진짜로."
내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몰라도 알아가면 되잖아."
"싫어. 알아갈 필요 없어. 그냥 신경 끄고 살아."
그 애는 잠시 말이 없었다. 나는 그 침묵이 후련하면서도 이상하게 마음이 시렸다. 익숙한 감정이었다. 기대를 걷어차고 나면 늘 이렇게 잠깐의 후련함과 오래가는 허전함이 동시에 왔다. 창밖으로 보이는 운동장에서 체육 수업을 하는 애들의 함성이 들렸다. 나와는 상관없는 소리였다.
점심시간이 되자 상황은 더 나빠졌다. 급식실로 가는 복도에서 몇몇 애들이 우리를 보며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저 전학생 걔 팬이었대. 육성 실패 걸."
"진짜? 왜 갑자기 붙어 다녀."
"불쌍해서 그런 거 아니야?"
"난 그냥 신기해서 그런 거 같은데. 옛날에 되게 유명했잖아, 저 애."
그 말이 유리 조각처럼 귓속에 박혔다. 나는 걸음을 멈추지 않고 그대로 지나쳤지만, 등 뒤로 웃음소리가 따라붙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발끝이 시멘트 바닥에 닿는 소리마저 크게 들릴 정도로, 복도가 조용해졌다가 다시 웅성거림으로 채워졌다. 강도윤이 뒤늦게 따라오며 뭐라고 하려는 걸 나는 손으로 막았다.
"됐어. 신경 안 써."
거짓말이었다. 신경이 안 쓰일 리가 없었다. 하지만 신경 쓰는 걸 들키면 더 재밌어할 뿐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예전에도 그랬다. 눈물을 보이면 그게 또 다른 화젯거리가 됐고, 웃어넘기면 그마저도 가식이라고 손가락질했다. 어느 쪽을 골라도 손해였다. 그러니 이제는 아예 반응하지 않는 게 최선이었다.
급식실 구석 자리에 혼자 앉으려는데, 그 애가 굳이 맞은편에 자리를 잡았다. 식판 부딪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혼자 먹어."
"싫어."
"왜 자꾸 이래."
"내가 좋아서."
그 즉답에 나는 순간 말을 잃었다. 좋아서, 라니. 그 단어가 이상하게 오래 귓가에 남았다. 숟가락을 쥔 손끝이 잠깐 멈췄다가 다시 움직였다.
"팬심으로 접근하는 거면 그만해."
내가 겨우 뱉은 말이었다. 그 애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 처음으로 보인 흔들림이었다. 눈꼬리가 아주 살짝 내려갔다가, 다시 평소의 표정으로 돌아왔다.
"팬심이 아니라고는 안 할게. 근데 그게 다는 아니야."
"뭐가 다른데."
그 애는 대답하지 않고 밥을 먹기 시작했다. 그 침묵이 어제의 확신에 찬 선언보다 더 불안하게 느껴졌다. 뭔가 감추고 있는 것 같았고, 그게 뭔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나는 숟가락을 든 채로 그 애의 옆얼굴을 잠시 바라보았다. 낮은 조명 아래에서도 이상하게 눈빛만은 또렷했다. 젓가락을 쥐는 손 모양도, 국을 뜨는 속도도 지나치게 정갈해서, 마치 누군가에게 배운 것처럼 보였다.
무슨 생각이지.
주변에서 계속 곁눈질이 날아왔다. 몇몇은 대놓고 휴대폰을 들어 우리 쪽을 찍는 듯한 시늉을 했다. 나는 그걸 못 본 척 국그릇에 시선을 고정했다. 예전이었다면 카메라가 나를 향할 때마다 자동으로 웃는 표정을 만들었을 텐데, 지금은 그저 렌즈가 나를 스치고 지나가길 바랄 뿐이었다.
그날 오후, 나는 다시 수업 시간에 졸았고, 선생님한테 지적을 받았고, 그 애는 그걸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칠판을 향해 걸어가시던 선생님이 내 이름을 부르는 순간, 잠에서 덜 깬 눈으로 대충 대답했고, 반 아이들 몇이 웃음을 참는 소리를 냈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다시 책상에 시선을 고정했다.
그 시선이 어제와는 다르게 느껴졌다. 실망의 눈빛이 아니라, 뭔가를 계산하는 듯한 눈빛. 그게 나를 더 불편하게 만들었다. 마치 내 지각 횟수와 흐트러진 교복과 졸음까지 전부, 어떤 목적을 위한 재료로 수집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종이 울리고 하교 준비를 하는 동안에도 그 시선은 떠나지 않았다. 나는 가방을 챙기며 일부러 그 애 쪽을 보지 않았다. 하지만 교실을 나서기 직전, 뒤에서 들려온 한마디가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내일부터는 늦지 마."
명령도 아니고 부탁도 아닌, 그저 확인처럼 담담한 말투였다. 나는 뒤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복도로 나왔다. 등 뒤로 그 애의 시선이 여전히 따라붙는 게, 마치 뭔가가 이미 시작되어버렸다는 신호처럼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