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선배 때문에, 자꾸 웃잖아요

4화

토요일 아침, 편의점 앞에는 이미 풍선 장식이 걸려 있었다. 알록달록한 풍선들이 문 앞에 매달려 바람에 흔들렸다. 입구에 '오픈 3주년 감사 행사'라는 배너가 걸렸다. 배너 글씨는 삐뚤빼뚤했다. 사장이 직접 썼다는 걸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스피커에서는 신나는 음악이 흘렀다. 트로트와 아이돌 노래가 섞여 나오는 이상한 플레이리스트였다. 도윤은 유니폼을 입은 채 카운터 뒤에 서 있었다. 모자를 눌러쓰고 시선을 아래로 고정했다. 카운터 위에 놓인 사탕 바구니를 자꾸 만졌다. 손이 심심할 때마다 하는 버릇이었다. "오늘 손님 많을 거야." 서아가 시식용 컵라면을 정리하며 말했다. 포장을 하나씩 뜯어 컵라면을 진열대에 늘어놓았다. "긴장하지 마." "안 긴장해요." "손 떨리는데." 도윤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또 떨리고 있었다.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심장이 벌써부터 조금씩 빨라지고 있었다. '괜찮아. 그냥 평소랑 똑같은 날이야.' 도윤은 속으로 되뇌었다. 하지만 몸은 그 말을 믿지 않는 듣했다. 목덜미에 식은땀이 배어 나왔다. 오전 열 시가 되자 손님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시식 코너 앞에 줄이 길게 늘어섰다. 아이들이 소리치며 뛰어다녔다. 스피커의 음악 소리와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뒤섞였다. 누군가는 시식용 컵라면을 세 개나 집어갔다. 서아가 그 모습을 보고 작게 웃었다. 도윤은 계산대에 서서 바코드를 찍었다. 한 명, 두 명, 열 명. 숫자가 늘어날수록 심장이 조여왔다. 너무 많은 시선이 한꺼번에 자신을 스쳐 지나가는 것 같았다. 손끝이 조금씩 저려왔다. "저기요, 이거 얼마예요?" 한 아주머니가 물었다. "이천 원이요." 도윤이 답했다. 목소리가 갈라졌다. "학생, 목소리가 왜 그래? 감기 걸렸어?" 아주머니가 물었다. "아, 아니요. 괜찮습니다." 도윤은 애써 웃어 보였다. 입꼬리가 어색하게 올라갔다. 그때였다. 갑자기 매장 스피커에서 사장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자, 3주년 이벤트! 지금부터 계산대 직원들이 손님과 가위바위보 대결을 합니다! 이기면 사탕 하나 드려요!" 도윤의 숨이 턱 막혔다.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서아도 몰랐던 눈치였다. 그녀가 컵라면 상자를 든 채 고개를 홱 돌렸다. 사장이 마이크를 들고 계산대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얼굴 가득 신난 표정이었다. 주변 사람들이 벌써부터 웅성거리며 모여들고 있었다. "자, 여기 우리 신입 알바생부터 시작합시다!" 사장이 도윤의 어깨를 잡고 사람들 앞으로 끌어냈다. 순식간에 시선이 도윤에게 쏟아졌다. 수십 개의 눈동자. 웃는 얼굴들. 스마트폰 카메라를 든 손들. 도윤의 다리가 굳었다. 숨이 가빠졌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비었다. 발밑이 흔들리는 느낌이었다. 서 있는 바닥이 낭떠러지처럼 느껴졌다. '도망쳐야 해.' 생각이 몸을 앞섰다. 도윤은 뒤로 한 발 물러섰다. 등이 진열대에 부딪혔다. 캔 하나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쨍그랑,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몇몇이 휴대폰을 들어 올렸다. 누군가는 웃으며 "쟤 왜 저래" 하고 소곤거렸다. 그 목소리가 도윤의 귀에 유난히 크게 박혔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관자놀이가 욱신거렸다.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그 순간, 서아가 도윤의 앞으로 성큼 나섰다. "자, 그럼 제가 먼저 할게요!" 서아가 밝은 목소리로 외쳤다. 손을 번쩍 들며 가위바위보 자세를 취했다. 사람들의 시선이 순식간에 서아에게로 옮겨갔다. "이 앞에 계신 손님분, 저랑 한판 어때요?" 서아가 한 남자아이를 가리켰다. 아이가 신나서 뛰어나왔다. "자, 하나 둘 셋에 낸다! 하나, 둘, 셋!" 서아가 가위를 냈다. 아이는 바위를 냈다. 서아가 크게 소리치며 넘어지는 시늉을 했다. 아이가 신나서 방방 뛰었다. 사람들의 웃음이 다시 터졌다. 관심의 방향이 완전히 바뀌었다. 카메라들이 이제 서아와 아이 쪽을 향해 있었다. 도윤은 그 틈에 조용히 창고 쪽으로 몸을 숨겼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등이 문에 닿자마자 다리에 힘이 풀렸다.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숨이 거칠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손끝이 차갑게 식어 있었다. 귀에서 이상한 이명이 울렸다. '또야.' 예전 그날처럼. 수십 개의 시선, 카메라, 웅성거림. 그날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운동장, 벤치, 등 뒤에서 들려오던 목소리들. "쟤 왜 저래", "얘 좀 이상해"라는 말들이 뒤섞여 귓가를 때렸다. 도윤은 무릎을 끌어안고 고개를 숙였다. 어깨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자꾸만 눈앞이 흐려지려 했다. '괜찮아. 여긴 그때가 아니야. 여긴 그때가 아니야.' 몇 번이나 속으로 되뇌었다. 하지만 심장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몇 분 후, 창고 문이 조심스레 열렸다. 서아였다. 숨이 살짝 가빠 있었다. 방금까지 아이들과 뛰어놀았던 흔적이 얼굴에 남아 있었다. "여기 있었네." 도윤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서아는 아무 말 없이 옆에 앉았다. 좁은 창고 안, 두 사람의 어깨가 거의 닿을 듯했다.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 밖에서는 여전히 음악과 웃음소리가 새어 들어왔다. "괜찮아." 서아가 나직하게 말했다. "아무도 이상하게 안 봐. 그냥 갑자기 캔이 떨어졌다고만 알아." 도윤은 여전히 대답하지 않았다. 무릎에 얼굴을 파묻은 채로 있었다. "나도 사람 많은 거 별로 안 좋아해. 근데 억지로 웃는 척하는 거, 그거 잘해. 그러니까 다음부턴 나한테 맡겨." 서아가 팔을 뻗어 도윤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따뜻한 손길이었다. 도윤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서아의 얼굴이 가까이 있었다. 환한 조명 아래, 서아의 이마에 옅게 땀이 배어 있었다. 조금 전까지 사람들 앞에서 웃던 얼굴이었다. 그 얼굴에 남은 웃음의 잔재가 어딘가 쓸쓸해 보였다. "왜……" 도윤이 겨우 입을 열었다. "왜 자꾸 도와줘요." 서아는 잠시 그를 바라보았다. 눈빛이 순간 묘하게 흔들렸다.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가 다시 뗐다. "그냥." 짧게 대답했다. "그냥 그러고 싶어서." 도윤은 그 대답에 뭐라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 가슴 한쪽이 이상하게 뻐근했다. 심장이 아까와는 다른 이유로 뛰기 시작했다. "밖에 아직 사람 많아요?" "이제 좀 빠졌어. 사장님이 대신 진행하고 있어." "……미안해요." "뭐가?" "그냥, 다." 서아가 피식 웃었다. "괜찮다니까. 캔 하나 값도 안 되는 소란이었어."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내밀었다. 도윤은 그 손을 잠시 바라보았다. 작지만 단단해 보이는 손이었다. 손등에 옅은 흉터가 보였다. 언제 생긴 상처인지 궁금했지만 묻지 못했다. 도윤은 그 손을 잡았다. 서아가 그를 일으켜 세웠다. 가벼운 힘이었는데도 도윤의 몸이 순식간에 일으켜졌다. "자, 이제 다시 나가자. 대신 이번엔 손님이랑 대결 안 시킬게. 내가 사장님한테 말해놓을 거야." 도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작게, 아주 작게. 창고 안 공기가 조금 가벼워진 듯했다. 도윤은 옷매무새를 정리하며 숨을 길게 내쉬었다. 아직 심장은 완전히 가라앉지 않았지만, 조금 전보다는 나았다. 창고 문을 나서기 직전, 서아가 잠깐 멈춰 섰다. 문고리를 잡은 손이 그대로 멈춰 있었다. "도윤아." "네." "너 혹시…… 예전에 축구 했어?" 도윤의 몸이 순간 얼어붙었다. 손끝이 차갑게 식었다. 방금까지 가라앉았던 심장이 다시 요란하게 뛰기 시작했다. "……왜요." 목소리가 떨렸다. 서아는 그 반응을 놓치지 않았다. 눈빛이 조금 더 짙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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