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선배 때문에, 자꾸 웃잖아요

2화

이틀 뒤, 오후 여섯 시. 편의점 앞 도로에는 퇴근 차량이 줄지어 서 있었다. 강도윤은 그 사이를 가로질러 뒷문 쪽으로 걸어갔다. 바람이 조금 차가웠다. 소매를 걷은 팔뚝에 소름이 돋았다. 뒷문을 열었다. 유니폼은 여전히 한 치수 컸다. 어깨선이 흘러내렸다. 소매를 두 번 접어 올렸다. 접은 자리가 벌써 구겨져 있었다. "어, 왔어?" 윤서아가 계산대 안쪽에서 손을 흔들었다. 도윤은 목례만 했다. 말은 하지 않았다. "오늘도 그거 할 거야? 인사 안 하기 챌린지?" "……안녕하세요." "어, 이제 됐다." 서아가 웃었다. 눈꼬리가 둥글게 접혔다. "근데 너 그거 알아? 인사 한 번 하는데 삼 초씩 걸려. 나 세봤어." "……" "셌다니까. 하나, 둘, 셋. 그러다 겨우 나와." 도윤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명찰을 만지며 시선을 피했다. 창고로 들어갔다. 형광등이 깜빡였다. 어제 배운 대로 재고를 확인했다. 손끝으로 상자를 짚으며 숫자를 셌다. 상자 하나가 손끝에서 미끄러졌다. 바닥에 쿵, 소리가 났다. 도윤은 숨을 멈췄다. 서아가 놀라서 뛰어올 것 같았다. 아무도 오지 않았다. 그는 상자를 조용히 제자리에 다시 세웠다. 실수하면 안 된다. 실수는 곧 관심이고, 관심은 곧 질문이다. 질문은 곧 과거로 이어진다. 그 흐름을 도윤은 이미 알고 있었다. "강도윤 씨." 사장이 계산대 앞에 서 있었다. 손에는 신분증 스캐너를 들고 있었다. "네." "오늘부터 담배 손님은 무조건 신분증 확인이야. 한 번도 예외 없어. 알겠지?" "네." "미성년자한테 팔면 벌금이 나와. 나만 나가는 게 아니라 너도 나가." 사장의 목소리가 낮고 단호했다. "그리고 하나 더." 사장이 스캐너를 카운터 위에 올려놓았다. "신분증 검사할 때, 손님이 화내도 절대 흔들리지 마. 여기 사장이 나야. 네가 아니라 나한테 화내는 거니까." 도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사장이 뒤돌아 사무실로 들어가자, 서아가 옆에서 작게 속삭였다. "사장님 저거 매일 하시는 얘기야. 나도 삼 년째 듣고 있어." "……그래요." "근데 진짜 중요한 거긴 해. 저번에 옆 지점에서 걸려서 벌금 백만 원 냈대. 알바생이랑 사장이랑 반반 나눴다더라." 도윤은 눈을 살짝 크게 떴다. 백만 원이라는 숫자가 머릿속에 박혔다. 실수 하나가 이렇게 큰 대가를 부를 수 있다는 사실이, 이상하게도 그의 심장을 조였다. "너무 무섭게 듣지 마. 그냥 신분증만 잘 보면 돼." 서아가 어깨를 툭 쳤다. 도윤은 살짝 몸을 뺐다. 서아는 그걸 보고 픽 웃었다. "넌 진짜 강아지 같아. 만지면 도망가." "……" "아니, 칭찬이야." "그게 칭찬이에요?" "어, 처음 반응했다. 대박." 밤 아홉 시가 지나자 손님이 몰렸다. 퇴근길 사람들이 줄지어 들어왔다. 삼각김밥, 컵라면, 캔커피가 계산대에 쌓였다. 도윤은 바코드를 찍는 손이 조금씩 빨라졌다. 교복을 입은 학생 하나가 과자 두 봉지를 올렸다. "저기요, 이거 봉지 하나 더 주실 수 있어요?" 도윤은 잠시 멈췄다가 비닐봉지를 하나 더 꺼내 건넸다. "감사합니다." 학생이 웃으며 나갔다. 도윤은 그 웃음을 잠깐 바라보았다. 별거 아닌 순간인데, 이상하게 마음에 걸렸다. 그때였다. 한 남자가 카운터에 담배를 올렸다. "이거 하나요." "신분증 좀 보여주시겠어요." 도윤이 말했다. 목소리가 살짝 갈라졌다. 남자의 눈썹이 찌푸려졌다. "아, 됐고 그냥 줘요. 나 서른 넘었어." "규정이라서요." "아니 이 어린애가 뭘 안다고." 남자의 목소리가 커졌다. 근처에 있던 다른 손님들이 힐끔 쳐다보았다. 도윤의 손끝이 하얗게 질렸다. 계산대 위에 놓인 바코드 스캐너를 꽉 쥐었다. 심장이 목까지 올라온 것 같았다. "손님." 서아가 옆에서 끼어들었다. 환하게 웃고 있었지만 눈빛은 단단했다. "저희 매장 규정이라서요. 신분증 없으시면 판매가 안 돼요. 죄송해요." "아니 진짜 얼굴 보면 알잖아요. 이게 뭔 융통성이 이렇게 없어." "저희도 그러다 걸리면 벌금이 백만 원이라서요. 융통성보다 백만 원이 더 무섭거든요." 서아가 여전히 웃으며 말했다. 말투는 상냥한데 물러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남자가 서아를 흘겨보았다. "됐어, 안 사." 담배를 두고 그대로 나가버렸다. 출입문 종이 딸랑 울렸다. 정적이 짧게 흘렀다. 매장 안 다른 손님 몇몇이 다시 계산대로 시선을 돌렸다. "괜찮아?" 서아가 물었다. "……네." "손 떨리는데." 도윤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정말로 떨리고 있었다. 서둘러 주먹을 쥐었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저런 사람들 종종 있어. 신경 쓰지 마." 서아가 카운터 위 물건을 정리하며 말했다. "너 잘했어. 규정대로 한 거야." "……" "내가 못 봤으면 너 혼자 계속 서 있었을 거잖아. 잘 버텼어." 도윤은 대답하지 않았다. 칭찬이라는 것에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 칭찬을 받으면 무언가를 되돌려줘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게 뭔지는 몰랐다. '그냥 다음에도 이렇게 하면 돼.' 속으로 되뇌었다. 감정을 느끼지 않으려 애썼다. 밤 열 시. 삼각김밥 폐기 시간이었다. 서아가 진열대 앞에 서서 유통기한 스티커를 하나씩 확인했다. "이건 오늘 자정까지고, 이건 벌써 지났고." "……저것도요." 도윤이 손가락으로 하나를 가리켰다. 서아가 놀란 눈으로 그를 보았다. "오, 잘 보네." "그냥……" "칭찬한 거야." 서아가 씩 웃었다. "근데 이거 맛있는데. 참치마요." 서아가 폐기용 봉투에 넣기 전에 하나를 들어 보였다. "먹을 거예요?" "어, 폐기는 먹어도 돼. 규칙이야. 너도 하나 먹어." "……괜찮아요." "먹어. 명령이야." 도윤은 마지못해 하나를 받았다. 포장을 뜯는 손이 조금 느렸다. 서아는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자기도 하나를 뜯었다. 둘이 나란히 서서 삼각김밥을 먹었다. 말이 없었지만 어색하지 않았다. 도윤은 시선을 피했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서였다. "근데 도윤아." "네." "학교는 안 다녀?" 순간 도윤의 어깨가 굳었다. 손에 쥔 폐기용 봉투가 바스락 소리를 냈다. 참치마요의 맛이 갑자기 느껴지지 않았다. "통신제요." 짧게 대답했다.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다는 신호였다. 서아는 잠시 그를 바라보았다. 더 묻지 않았다. "그래." 짧게 대답만 하고 폐기 작업을 마쳤다. 도윤은 안도했다. 동시에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더 물어봐도 될 텐데, 왜 안 물을까. 왜 이 사람은 늘 딱 거기까지만 다가올까. 다른 사람들은 늘 한 발 더 다가왔었는데. 그리고 그 한 발이 항상 문제였는데. 마감 시간이 되었다. 서아가 카운터 정리를 마치고 유니폼 조끼를 벗었다. 안에 입은 티셔츠가 살짝 구겨져 있었다. "먼저 갈게. 내일 봐." "……네." "내일도 인사 삼 초 걸릴 거야?" "……" "장난이야. 잘 자." 서아가 나가고 매장에는 도윤만 남았다. 출입문 종소리가 멀어졌다. CCTV 화면이 카운터 뒤쪽 모니터에 조용히 재생되고 있었다. 도윤은 무심코 그 화면을 바라보았다. 녹화된 화면 속, 아까 자신이 서아 옆에서 손을 떨던 장면이 그대로 지나가고 있었다. 화면 속 자신의 얼굴이 낯설게 보였다. 저렇게 긴장한 표정이었나, 싶었다. 뒤이어 다른 화면으로 넘어갔다. 서아가 진열대를 정리하며 계속 도윤 쪽을 힐끔거리는 모습이 잡혀 있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 같은 방향으로 시선이 향했다. 도윤은 그 화면을 오래 바라보았다. 서아의 시선이 유난히 오래 머무는 순간이 있었다. 그건 단순한 관심이 아니었다. 무언가를 확인하려는 눈빛이었다. 마치 아는 사람을 찾는 것처럼. 도윤은 화면을 정지시켰다. 서아의 얼굴이 화면 안에서 멈춰 있었다. 평소의 웃는 얼굴과는 조금 다른 표정이었다. 그는 그 표정을 한동안 지켜보았다. 왜 그런 눈으로 자신을 보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알고 싶은 건지도,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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