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왜 자꾸 진심처럼 굴어

3화

5교시 국어 시간, 청람고 1학년 3반 교실 안은 프린트 넘기는 소리와 선생님의 나른한 설명 소리로 가득 차 있었다. 아름은 책상 아래로 살짝 내려간 손을 느끼며, 옆자리에 앉은 소라의 손끝이 자신의 손등을 스치듯 지나가는 것을 알아차렸다. 처음엔 우연이겠거니 했는데, 그 손끝이 점점 대담하게 손가락 사이로 파고들어 깍지를 끼워왔을 때, 아름은 숨을 삼키며 애써 정면의 칠판을 바라보았다. '수업 중인데, 진짜 미쳤나.' 아름은 속으로 중얼거리면서도, 맞잡은 손을 뿌리치지 못하고 오히려 손가락에 힘을 살짝 주고 있었다. 소라의 손은 언제나처럼 따뜻했고, 그 온기가 손바닥을 타고 팔로, 다시 심장까지 번져가는 것을 느끼며, 아름은 애꿎은 필기 노트에 눈을 박고 글씨를 써 내려갔다. 그러다 짝꿍의 시선이 자신들 쪽으로 향하자, 아름은 재빨리 손을 빼내며 태연하게 필기를 하는 척했지만, 심장은 여전히 요란하게 뛰고 있었고, 손끝에는 아직도 소라의 온기가 남아 있는 것 같았다. 다행히 짝꿍은 별다른 의심 없이 다시 앞을 향해 고개를 돌렸고, 아름은 겨우 안도의 숨을 내쉬며 옆자리를 슬쩍 흘겨보았는데, 소라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태연하게 펜을 굴리고 있어서 그 뻔뻔함에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저 얼굴로 어떻게 저렇게 태연하지.' 아름은 그런 생각을 하며 다시 칠판으로 시선을 돌렸지만, 수업이 끝날 때까지 손등에 남은 그 온기의 감각이 사라지지 않았다. *** 같은 날, 점심시간이 끝난 청람고 3층 계단. 소라는 급식을 먹고 올라오는 길에 계단 모퉁이에서 아름을 붙잡고는, 주변을 한 번 살핀 뒤 재빠르게 아름의 뺨에 입을 맞췄다. "야!" 아름이 놀라서 목소리를 높였지만, 소라는 이미 몸을 돌려 웃으며 도망치듯 계단을 뛰어 올라가고 있었다. '저건 또 무슨 만화에서 배운 거야.' 아름은 뺨을 손으로 감싸며 소라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는데, 그 순간 심장이 이상하게 저릿한 느낌이 들었다. 계단을 뛰어 올라가던 소라가 잠시 멈춰 서서 뒤를 돌아보았고, 장난기 어린 웃음을 지으며 손가락으로 브이자를 만들어 보이더니 다시 사라졌는데, 그 모습을 보며 아름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미친, 진짜 애 같아.'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아름은 뺨에 남은 온기가 좀처럼 가시지 않아 손바닥으로 몇 번이나 눌러보았다. 비밀 연애를 시작한 지 일주일이 지나면서, 소라의 애정 표현은 점점 대담해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손끝이 스치는 정도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소라는 빈 교실이나 계단 구석, 인적이 드문 복도에서 순간적으로 스킨십을 시도했고, 그럴 때마다 아름은 심장이 목까지 차오르는 긴장감을 느껴야 했다. 한번은 화장실 앞 복도에서, 지나가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틈을 노려 소라가 아름의 손을 살짝 잡았다가 놓은 적이 있었는데, 그 손이 닿았던 자리가 하루 종일 뜨겁게 느껴져서 아름은 수업 시간 내내 딴생각에 빠져 있었다. 또 한번은 매점 앞에서 나란히 줄을 서 있다가, 소라가 아름의 귓가에 얼굴을 가까이 대고 무언가를 속삭이는 척하며 살짝 입술로 스치듯 지나간 적도 있어서, 아름은 놀란 나머지 사려던 빵을 놓칠 뻔했다. "이러다 진짜 들키면 어떡해." 아름이 걱정스레 말하면, 소라는 늘 같은 대답을 내놓았다. "들키지 않게 조심하는 게 더 짜릿하지 않아?" 소라가 눈을 반짝이며 말할 때마다, 아름은 그것이 소라에게는 그저 하나의 놀이처럼 느껴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떨치지 못했다. '나만 이렇게 조마조마한 거 아니야?' 아름은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가슴 한쪽이 답답해졌지만, 그렇다고 딱히 소라에게 따져 물을 용기도 나지 않아서 그냥 속으로만 삭이고 있었다. 소라의 웃는 얼굴을 볼 때마다, 저 웃음 뒤에 정말 어떤 마음이 있는 건지 궁금해졌고, 혹시 자신만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불안이 스멀스멀 올라오기도 했다. 그날 오후, 청소 당번으로 함께 남게 된 두 사람은 텅 빈 교실에서 창문을 닦고 있었다. 다른 반 친구들은 이미 다 하교하고 없어서, 교실 안에는 저물어가는 오후 햇살과 두 사람의 발소리, 그리고 유리창을 닦는 걸레 소리만 조용히 울리고 있었다. 아름은 창문 한쪽에서 묵묵히 걸레질을 하며, 유리 너머로 붉게 물들어가는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 색이 어딘가 소라의 뺨을 닮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어 스스로도 어이가 없어졌다. 소라가 등을 돌린 채 유리창을 문지르다가 불쑥 말을 꺼냈다. "아름아, 나 사실 중학교 때 진짜 많이 힘들었어." 소라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낮고 조용했다. 아름은 걸레질을 멈추고 소라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는데, 평소와 다른 그 목소리의 결에 자신도 모르게 숨을 죽이게 되었다. "이사 가고 나서, 아는 사람 하나도 없는 데서 처음 시작하는 거, 그게 얼마나 무서운지 알아?" 소라가 여전히 아름 쪽을 보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 "교실 들어가면 다들 이미 친한 애들끼리 뭉쳐 있고, 나는 어디 끼어야 할지도 모르겠고, 급식실에서도 혼자 앉아 먹은 날이 며칠이나 됐는지 몰라." 소라의 손끝이 유리창 위에서 잠시 멈췄다. "그때마다 네 생각을 정말 많이 했어. 만화책 보면서, 이런 관계였으면 좋겠다, 저런 사이였으면 좋겠다, 그런 상상만 하다가—" 소라가 문득 말을 멈추고 돌아섰는데, 그 눈에 물기가 살짝 어려 있는 것이 보여, 아름은 순간 걸레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교실 안의 붉은 햇살이 소라의 얼굴 반쪽을 물들이고 있었고, 그 빛 속에서 소라의 눈이 유난히 반짝이는 것을 보며, 아름은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그저 입술만 살짝 벌렸다가 다물었다. "그러다 다시 만났는데, 진짜 너무 좋아서, 이걸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서 자꾸 만화에서 본 것들을 따라 하게 되는 거야." 소라가 눈가를 슬쩍 닦으며 웃음을 지어 보였다. "손잡는 것도, 뺨에 뽀뽀하는 것도, 사실 나도 처음이라 이게 맞는 건지도 모르겠고, 그냥 좋아하면 이렇게 하는 거라고 생각했어." 소라가 어색하게 웃으며 덧붙였는데, 그 웃음이 평소의 장난스러운 웃음과는 다르게 조금 떨리고 있는 것을 아름은 놓치지 않았다. "장난치는 것처럼 보였다면, 미안해." 소라의 사과에 아름은 순간 말을 잃었다. '진심이었구나.' 그런 생각이 들자, 그동안 품고 있던 의심들이 조금씩 허물어지는 것을 아름은 느꼈다. 가슴속 어딘가 딱딱하게 굳어 있던 것이 스르르 풀리는 기분이 들면서, 아름은 걸레를 창틀에 내려놓고 조심스럽게 소라 쪽으로 한 걸음 다가섰다. "나도, 사실은 계속 궁금했어. 네가 진심인지, 아니면 그냥 재미로 그러는 건지." 아름이 겨우 목소리를 내어 말했다. "근데 지금 얘기 들으니까, 좀 알겠다." 아름이 그렇게 말하며 소라의 손을 살짝 잡았는데, 그 손이 평소와 달리 차갑게 식어 있어서 순간 마음이 저릿해졌다. 소라가 그 손을 마주 잡으며 다시 웃었고, 이번엔 아까와 다르게 편안한 웃음이었다. 두 사람의 어깨가 자연스레 가까워지면서, 창밖의 붉은 하늘빛이 두 얼굴 위로 나란히 내려앉고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 교실 문 손잡이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려왔고, 두 사람은 화들짝 놀라며 서로에게서 몸을 떨어뜨렸다. 문 쪽으로 시선을 돌린 아름의 심장이 순식간에 얼어붙었고, 손잡이는 이미 절반쯤 돌아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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