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심야방송, 정체 들켰다

1화

강의실 맨 뒷줄, 창가에서 두 번째 자리. 그 자리가 내 자리였다. 누가 정해준 것도 아니었는데 어느새 그렇게 굳어져 있었고, 나는 그 사실이 오히려 편했다. 교수님의 시선이 강의실을 훑을 때도 내 쪽에는 오래 머무르지 않았고, 조별 과제를 짤 때도 나는 늘 마지막에 남는 사람이었으며, 심지어 출석을 부를 때조차 내 이름 뒤에는 잠깐의 정적이 붙곤 했다. 그건 내가 존재감이 없어서가 아니라, 내가 존재감을 지우는 법을 아주 오랫동안 연습해왔기 때문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이 강의실 안에 아무도 없었다. 옆자리에 앉은 애가 필기를 슬쩍 보여달라고 했을 때도, 나는 웃으며 노트를 내밀었지만 그 웃음이 정확히 어떤 모양이었는지는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적당히, 딱 적당히 무해하게. 그 정도의 온도를 유지하는 게 낮의 내가 해야 할 유일한 일이었다. 너무 친절하면 눈에 띄고, 너무 무뚝뚝하면 또 눈에 띈다. 그 사이 어딘가에서 완벽하게 지워지는 법을, 나는 몇 년째 익히고 있었다. 수업이 끝나고 사람들이 우르르 강의실을 빠져나가는 그 짧은 순간, 나는 가방을 정리하며 창밖을 흘긋 보았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고, 그 붉은 빛이 창틀에 걸리는 걸 보는 순간 손끝이 조금씩 저릿해지는 걸 느꼈다. 저녁이 온다는 건 곧 밤이 온다는 뜻이었고, 밤이 온다는 건 내가 진짜로 살아나는 시간이 시작된다는 뜻이었다. 강의실을 나서는 걸음이 나도 모르게 조금씩 빨라졌다. 버스 정류장까지 가는 그 길, 사람들과 어깨를 부딪치지 않으려 몸을 슬쩍 틀면서도 머릿속으로는 이미 오늘 저녁 메뉴를 굴리고 있었다. 계란말이, 그리고 어제 남은 파채. 재료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심장 어딘가가 미리 데워지는 기분이었다. 자취방으로 돌아와 문을 잠그고, 커튼을 치고, 방 안의 조명을 은은한 노란빛으로 바꾸는 그 일련의 동작들은 이미 몸에 새겨진 습관이었다. 가방을 던져놓고 손을 씻는 것도, 냉장고를 열어 재료를 하나씩 꺼내며 순서를 가늠하는 것도, 전부 생각하지 않고도 몸이 먼저 움직였다. 도마 위에 재료를 올려놓고, 칼을 쥐는 순간부터 나는 이도현이 아니었다. 나는 '결'이었다. 방송용 카메라의 각도를 살짝 조정하고, 조명 스탠드를 손끝으로 톡톡 건드려 밝기를 맞추면서, 나는 화면에 비칠 앵글 안에 얼굴이 담기지 않도록 신경을 썼다. 목소리만, 손만, 도마 위의 재료만. 그게 결이 존재하는 방식이었다. 얼굴 없는 목소리, 그리고 손끝의 움직임. 그것만으로도 사람들은 나를 기다려주었다. 채팅창에 아이디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딸랑, 딸랑, 알림음이 연달아 울리며 접속자가 늘어나는 게 화면 구석에 숫자로 찍혔고, 나는 마이크를 켜기 전 목을 가볍게 가다듬으며 숨을 골랐다. 이 순간만큼은 심장이 이상하게 차분해졌다. 강의실에서는 누가 내 이름을 불러도 심장이 뛰지 않았는데, 여기서는 누구도 내 얼굴을 모르는데도 심장이 뛴다는 게 스스로도 이상했다. "오늘은 계란말이랑, 어제 남은 파채로 볶음면 하나 해볼게요." 목소리를 내는 순간 화면 너머에서 반응이 쏟아졌다. 왔다 결님, 오늘도 배고파서 왔어요, 어제 그 국물 레시피 대박이었어요— 그런 문장들이 빠르게 스크롤되며 지나갔고, 나는 그 글자들을 눈으로 좇으며 입꼬리가 슬쩍 올라가는 걸 억누르지 않았다. 여기서는 웃어도 되니까. 여기서는 누구도 내 표정을 보고 비웃지 않으니까. 칼을 쥔 손이 파를 다듬는 동안, 채팅창은 계속 흘렀다. 결님 오늘 목소리 좀 잠긴 거 같은데 감기 아니세요, 라는 문장에 나는 웃으며 아니에요, 그냥 어제 좀 늦게 잤어요, 하고 답했다. 사소한 안부를 주고받는 그 짧은 순간마다, 나는 낮 동안 잃어버렸던 온기를 조금씩 되찾는 기분이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내 얼굴을 모르지만, 그 누구보다 내 하루를 궁금해했다. 칼끝이 파를 써는 소리, 기름이 팬 위에서 지글거리는 소리, 그 사이사이 채팅창에서 튀어 오르는 응원의 문장들. 이 조합이 나를 살게 했다. 낮의 나는 강의실 뒷줄에서 존재를 지우고, 밤의 나는 이 작은 화면 안에서 존재를 증명한다. 그 두 세계가 절대 겹치지 않아야 한다는 것, 그것이 내가 이 방송을 지속할 수 있는 유일한 조건이었다. 계란을 깨서 볼에 담고, 젓가락으로 휘저으며 거품을 만드는 동안에도 나는 습관처럼 채팅창을 흘깃거렸다. 결님 손 진짜 예뻐요, 라는 문장 하나에 괜히 손가락을 좀 더 천천히 움직여보는 나 자신이 우스웠지만, 그런 작은 반응들이 쌓여서 오늘의 내가 완성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팬 위에 기름을 두르고, 계란물을 붓는 순간의 그 지글거림 — 그 소리마저도 오늘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그런데 오늘, 채팅창에 낯선 문장 하나가 올라왔다. 『목소리…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 순간 도마 위의 칼질이 반박자 늦어졌다. 그럴 리가. 익명의 시청자 중 한 명이 흘린 말일 뿐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손끝에 이상하게 힘이 들어가는 걸 막을 수 없었다. 애써 시선을 화면 위쪽으로 옮겨 다른 댓글들을 읽는 척했지만, 방금 그 문장이 화면 어딘가에 여전히 박혀 있는 것처럼 눈앞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목소리를 어디서 들어본 것 같다는 말은, 살면서 몇 번쯤이야 들어봤을 흔한 문장일 수도 있었다. 그런데 왜 하필 오늘, 이 타이밍에, 이렇게 심장이 내려앉는 걸까. 나는 애써 웃음소리를 섞어 화면을 넘겼다. "에이, 저 목소리 흔한 편이라— 다들 그런 말씀 많이 하시더라고요." 말끝을 가볍게 늘이며 웃었지만, 그 웃음이 평소보다 딱딱하게 굳어 있다는 걸 스스로도 느낄 수 있었다. 채팅창은 이내 다른 이야기로 넘어갔고, 계란말이가 완성되어가는 과정에 다시 응원의 문장들이 쌓였지만, 나는 그 뒤로 좀처럼 마음을 놓지 못했다. 손이 재료를 써는 속도가 눈에 띄게 빨라졌고, 평소보다 말이 조금 줄었다. 그날 방송은 평소보다 조금 더 서둘러 끝을 맺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할게요. 다들 맛있게 챙겨 드시고, 내일 또 봐요." 인사를 마치고 방송 종료 버튼을 누르는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화면을 끄고 나서야 나는 깨달았다. 방금 그 댓글의 닉네임이, 어딘가 낯설지 않았다는 것을. 빈 화면을 멍하니 바라보며 나는 그 닉네임을 다시 떠올려보려 애썼다. 어디서 봤더라. 강의실이었나, 아니면 어느 조별 과제 채팅방이었나. 분명 어디선가 스쳐 지나간 이름이었는데, 정확히 어디였는지는 도무지 잡히지 않았다. 손톱으로 책상 모서리를 긁적이며 기억을 더듬어보았지만, 오히려 생각할수록 그 이름의 잔상이 점점 흐릿해지기만 했다. 하지만 그게 누구인지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없다고 믿고 싶었다. 방 안의 조명을 끄고 침대에 누워서도, 나는 한동안 천장만 바라보았다. 낮의 세계와 밤의 세계, 그 두 개의 선이 절대 만나서는 안 된다고 몇 년째 스스로에게 되뇌어왔는데, 오늘 그 선 어딘가에 아주 가느다란 균열이 생긴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럴 리 없다. 그럴 리가 없어야 한다. 그렇게 되뇌며 눈을 감았지만, 어둠 속에서도 그 짧은 문장 하나가 계속 눈앞에서 깜빡이는 것 같았다. 목소리…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 그 말을 남긴 사람이 누구인지, 나는 아직 알지 못했다. 그리고 그걸 알게 되는 순간, 내가 지금까지 지켜온 두 세계의 경계가 어떻게 흔들릴지도, 그때는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첫 화입니다 목록 다음화 ›
♡ 좋아요 0 · 로그인 후 좋아요/별점/댓글 참여 가능

댓글 0

  •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