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최하은이 골목 안쪽으로 사라진 뒤에도 나는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요즘 좀 이상하다는 말이 귓가에 눌어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박민준은 그런 하은을 붙잡으러 뛰어가며 나에게 손을 흔들어 보였고, 그 웃음이 무심할수록 나는 더 초조해졌다. 저 웃음 뒤에 뭐가 숨어 있는 건지,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건지, 아니면 이미 다 알면서 모르는 척하는 건지 나는 판단이 서지 않았다.
앞서 걷던 도윤이 걸음을 멈추고 돌아봤다. 안 가세요? 나는 억지로 발을 뗐다. 홍대 밤거리는 여전히 시끄러웠다. 취객들이 지나가고, 노점상의 리어카가 도로 한쪽에 서 있고, 어디선가 버스킹 소리가 들려왔다. 기타 소리가 낮게 깔리고, 누군가는 그 앞에서 박수를 치고, 또 누군가는 무심히 지나쳤다. 나는 그 소음들 사이에서 도윤의 뒷모습만 계속 눈으로 쫓았다. 교복도 아니고 사복을 입은 그 뒷모습이 오늘은 유난히 낯설게 느껴졌다.
편의점 앞 파라솔 의자에 앉았을 때, 나는 결국 물었다. 하은이가 그러던데, 너 요즘 좀 이상하대. 도윤의 어깨가 살짝 굳는 게 보였다. 그는 캔음료를 만지작거리며 대답을 미뤘다. 캔 표면에 맺힌 물방울이 손가락을 따라 흘러내렸다. 별거 아니에요. 그냥 정신이 딴 데 가 있었나 봐요. 나는 그 말투에서 숨겨진 게 있다는 걸 알았다. 6년이나 나이가 차이 나는 나에게도 보일 정도면, 매일 얼굴을 보는 친구들에게는 오죽했을까. 하은이는 또 뭘 봤을까, 언제부터 눈치챈 걸까, 그런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꼬리를 물었다.
무슨 일 있었어. 나는 다시 물었다. 도윤은 잠시 눈을 내리깔았다. 그러다 작게 웃었다. 그 웃음이 어색했다. 그냥, 소영 씨 생각하다가 수업 시간에 선생님한테 걸렸어요. 이름 불렀는데 대답을 못 했거든요. 나는 순간 숨이 턱 막혔다. 그게 웃을 일이야. 나는 목소리를 낮췄다. 만약 그 정신 나간 표정이 매일 반복됐다면, 친구들이 눈치챈 게 당연한 거였다. 수업 시간에, 그것도 선생님 앞에서. 나는 그 장면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손끝이 저려왔다.
네가 그렇게 티 나게 다니면, 누군가는 물을 거고, 누군가는 알아챌 거야. 나는 손끝이 차가워지는 걸 느꼈다. 파라솔 위로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도윤은 캔을 내려놓고 나를 똑바로 봤다. 알아채도 괜찮아요. 나는 그 말에 말문이 막혔다. 뭐가 괜찮은데. 나는 반문했다. 너희 학교에서 이 일이 알려지면 어떻게 될지, 나는 상상만으로도 등줄기가 서늘했다. 미성년자와의 관계라는 단어가 머릿속에서 다시 튀어나왔다. 처음 그 사실을 알았을 때의 공포가 되살아났다. 그때도 나는 이렇게 손끝이 차가웠었다. 그리고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시간이 지난다고 그 공포가 무뎌지는 게 아니었다.
도윤은 내 표정을 살피더니 손을 뻗어 내 손등을 살짝 덮었다. 그 손은 여전히 가늘고 희었다. 걱정 안 시킬게요. 조심할게요. 나는 그 말에 안심이 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불안해졌다. 조심한다는 말이 이미 조심하지 않았다는 뜻이었으니까. 나는 그의 손을 밀어내지도, 마주 잡지도 못하고 그냥 그 온기만 느끼고 있었다. 편의점 형광등 불빛 아래서 도윤의 얼굴은 유독 어렸다. 그 어림이 나를 안심시키는 게 아니라 자꾸 죄책감을 키웠다.
우리는 그렇게 한동안 말없이 앉아 있었다. 도윤이 캔을 다 비우고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정확히 들어갔다. 그는 그게 뭐 대단한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살짝 웃어 보였다. 나는 그 웃음에 어쩔 수 없이 따라 웃었다. 이런 순간에는, 그냥 평범한 연인 같았다. 나이 차이도, 그의 학생증도, 아무것도 문제가 되지 않는 것처럼.
집으로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나는 창밖을 보며 생각했다. 하은이 정확히 뭘 눈치챈 걸까. 나이 차이만 안 걸까, 아니면 더 깊은 걸 짐작한 걸까. 도윤이 정말 하은에게 아무 말도 안 했을까. 만약 하은이 다 알고 있다면, 왜 그 자리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까. 나를 떠보려던 걸까, 아니면 도윤을 걱정해서였을까. 생각이 자꾸 다른 방향으로 뻗어나갔다.
정수아의 카톡이 다시 떠올랐다. 남자친구랑 이번 주말에 여행 간다고, 사진 몇 장을 보내온 게 며칠 전이었다. 바다가 보이는 숙소 창문, 나란히 놓인 슬리퍼 두 짝, 손을 맞잡은 사진 한 장. 나는 그 사진들을 보며 질투도 아니고 부러움도 아닌, 애매한 헛헛함을 느꼈던 걸 떠올렸다. 남들은 저렇게 아무 걱정 없이 연애를 하는데, 나는 왜 매번 숨기고 조심하고 불안해해야 하는 걸까. 그 헛헛함이 결국 나를 홍대 밤거리로, 도윤에게로 이끈 거였다.
택시가 신호에 걸려 멈췄다. 창밖으로 늦은 밤인데도 사람들이 삼삼오오 몰려다니는 게 보였다. 커플처럼 보이는 이들이 팔짱을 끼고 웃으며 지나갔다. 나는 그들을 눈으로 좇으며, 나와 도윤은 저렇게 거리를 걸을 수 없다는 걸 다시 한번 확인했다. 손을 잡는 것도, 팔짱을 끼는 것도, 우리에겐 늘 골목 안쪽이나 어두운 곳에서만 가능한 일이었다.
집에 도착해서 현관문을 열었다. 올빼미 모양 벽지 얼룩이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이사 온 지 삼 년이 다 되어가는데도 저 얼룩은 지워지지 않았다. 나는 신발을 벗으며 휴대폰을 확인했다. 도윤에게서 메시지가 와 있었다. 오늘 즐거웠어요. 다음에 또 봐요. 나는 답장을 하려다 멈췄다. 즐거웠다는 말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이게 즐거운 일이 맞는 걸까. 나는 휴대폰 화면을 몇 번이나 켰다가 껐다. 결국 아무 말도 쓰지 못하고 휴대폰을 침대 위에 던지고 이불을 뒤집어썼다.
이불 속에서 나는 눈을 감았다. 도윤의 웃음, 하은의 표정, 정수아의 사진들이 뒤섞여 떠올랐다 사라졌다. 잠이 오지 않았다. 몇 번이나 몸을 뒤척이다가, 결국 새벽이 다 되어서야 겨우 눈을 감았다.
다음 날 아침, 네일샵으로 출근하는 길에 문자 하나가 왔다. 도윤이 아니라 낯선 번호였다. 소영 씨 맞으시죠. 하은이에요. 나는 걸음을 멈추고 그 문자를 다시 읽었다.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어떻게 내 번호를 알았을까, 도윤이 알려준 걸까, 아니면 다른 방법으로 알아낸 걸까. 그다음 문장을 확인하기도 전에, 나는 이미 손이 떨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