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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그 애가 누나, 라고 부르는 순간 나는 어제 있었던 일을 처음부터 다시 되짚어야 한다는 걸 알았다. 도대체 어떻게 여기까지 온 건지. 심장이 먼저 반응했다. 쿵, 하고 내려앉는 느낌. 손끝이 차가워졌다. 나는 손에 쥐고 있던 노트를 다시 내려다보았다. 2학년 3반. 그 글자가 눈앞에서 흔들렸다. 아니야, 잘못 봤을 거야. 다시 봐도 같았다. *** 어제 낮, 나는 수아에게 카톡을 받았다. 정수아. 고등학교 때부터 붙어 다닌 친구였다. 사진 한 장이 먼저 왔다. 남자 손이 그녀의 손을 잡고 있는 사진이었다. 나 남자친구 생겼어. 세 달 됐는데 이제 소개할게. 텍스트가 뒤이어 도착했다. 나는 손가락으로 화면을 스크롤하다가 잠깐 멈췄다. 수아 밑으로 줄줄이 달린 사진들. 놀이공원, 야경, 커플링. 남자가 수아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있는 사진, 카페에서 케이크에 초를 꽂고 웃고 있는 사진. 나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한숨을 쉬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딱히 부럽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자꾸 속이 쓰렸다. 나만 혼자였다. 스물넷이 되도록 연애도, 뭐 하나 제대로 풀린 것도 없었다. 축하한다고 답장을 보내놓고도 손이 떨렸다. 왜 이렇게 서러운 걸까. 나도 잘 살고 있는데. 네일샵 일도 나쁘지 않고, 월세도 밀린 적 없고. 그런데 왜 자꾸 밑바닥이 텅 빈 기분이 드는지, 나는 그날따라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네일샵 마감을 끝내고 나는 그대로 홍대로 향했다. 혼자 소주 한 병을 시켰다. 안주는 계란말이였다. 한 병이 두 병이 되고, 두 병이 세 병이 되었다. 사장님이 슬쩍 눈치를 주기 시작할 즈음, 나는 이미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로 취해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빈 소주병이 나란히 세 개, 계란말이는 반쯤 남아 식어 있었다. 가게를 나와서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른 채 걸었다. 발이 자꾸 엉켰다. 간판들이 흐릿하게 번져 보였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한강 어딘가였다. 밤바람이 얼굴을 스쳤고, 저 멀리 다리 위로 조명이 흘렀다. 나는 벤치에 주저앉아 멍하니 물을 바라봤다. 강물은 검고 조용했고, 그 위로 불빛들이 흔들리며 떠 있었다. 나는 그 흔들림이 꼭 내 마음 같다고 생각했다. 스물넷인데, 뭐 하나 제대로 된 게 없다고. 취기 때문인지 눈물이 조금 났다가, 곧 웃음이 났다가 했다. 그때 카메라 셔터 소리가 들렸다. 옆을 보니 남자애가 삼각대를 세워놓고 야경을 찍고 있었다. 훤칠한 키에, 후드티를 입고 있었다. 얼굴에는 아직 앳된 기가 남아 있었는데, 취해 있던 나는 그걸 눈치채지 못했다. 나는 별 생각 없이 물었다. 사진 잘 나와요? 그가 돌아보며 웃었다. 아직 잘 모르겠어요, 이제 배우는 중이라서. 그 목소리가 유난히 맑았다. 나는 취기 때문인지 자꾸 웃음이 났다. 이름이 뭐예요. 도윤이요. 이도윤. 나는 소영이에요. 우리는 벤치에 나란히 앉아서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눴다. 사진 찍는 거 언제부터 좋아했냐고 물었더니, 그냥 얼마 안 됐어요, 하고 얼버무리듯 웃었다. 나는 그게 이상하다고 느낄 만한 정신이 없었다. 나는 취해서 반쯤 넘어질 뻔했고, 그는 나를 붙잡아 세워줬다. 손이 따뜻했다. 그 온기가 유난히 오래 남았던 것 같다. 집에 가야 하는데 다리가 안 움직인다고 하니, 그가 대신 택시를 잡아줬다. 도로 가에 서서 손을 흔들며 택시를 세우던 그 뒷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런데 내가 그의 팔을 붙잡고 놓지 않았다. 같이 가요, 라는 말이 내 입에서 튀어나왔다. 지금 생각하면 그게 시작이었다. 택시 안에서도 나는 계속 그에게 뭔가를 물었던 것 같다. 몇 살이냐고 물었는지, 학교는 어디냐고 물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취기가 모든 걸 뭉개버렸다. 그저 그의 어깨에 기대어 창밖으로 흐르는 불빛들을 보다가 스르르 눈이 감겼던 것만 기억난다. 집에 도착해서도 나는 계속 웃고 있었다. 그가 물을 한 잔 떠다 줬고, 나는 그걸 반쯤 마시다가 흘렸다. 옷깃이 젖는 걸 느끼면서도 나는 그게 웃겼다. 그가 휴지를 가져다주려고 몸을 숙였을 때, 내가 먼저 그의 얼굴을 붙잡았다. 그 다음은, 기억이 뜨겁고 흐릿하게 이어졌다. 방 안의 불빛이 노랗게 번지던 것, 그가 잠깐 멈칫하던 것, 그리고 그 이후로는 아무것도 선명하지 않다. *** 지금 눈앞에서 나를 보며 웃고 있는 저 얼굴이, 어젯밤 그 얼굴이었다. 아침 햇살이 커튼 사이로 비쳐 들어와 그의 얼굴 반쪽을 밝히고 있었다. 후드티는 벗어 침대 밑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었고, 그 옆으로 그가 어제 메고 왔던 백팩이 보였다. 그리고 그 백팩 지퍼 사이로 비죽 튀어나온 노트 한 권. 별 생각 없이 손을 뻗어 그것을 꺼냈다. 표지에 적힌 이름과 반이 눈에 들어온 순간, 나는 손끝이 굳는 걸 느꼈다. 2학년 3반, 이도윤. 그 글자가 눈앞에서 흔들렸다. 나는 몇 번이나 눈을 깜빡이며 다시 읽었다. 혹시 잘못 본 건 아닐까, 혹시 동명이인의 노트가 섞여 들어온 건 아닐까. 그러나 아무리 다시 봐도 글자는 변하지 않았다. 누나, 왜 그래요. 도윤이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 그 목소리에는 아무런 의심도, 불안도 섞여 있지 않았다. 나는 애써 침착하게 목소리를 냈다. 너, 몇 살이야. 그가 눈을 몇 번 깜빡였다. 열여덟인데요. 왜요. 너무도 담담한 대답이었다. 마치 그게 문제가 될 거라는 생각조차 해본 적 없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나는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열여덜. 아니, 열여덟이라니. 나는 스물넷이었다. 여섯 살 차이. 여섯 살 차이가 문제가 아니었다. 저 애는 아직 고등학생이었다. 나는 방금 고등학생과 잔 거였다.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어제 벤치에서 웃고 있던 그 얼굴, 손을 잡아주던 그 온기, 방 안에 번지던 그 노란 불빛까지 전부 다시 떠올랐다. 그때는 그저 다정한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그 얼굴에 남아 있는 건 앳됨이 아니라, 명백한 미성년의 흔적이었다. 어떻게 그걸 몰랐을까. 취해서 그랬을까, 아니면 보고 싶은 대로만 봤던 걸까. 노트를 쥔 손이 떨렸다. 도윤이 침대에서 일어나 나에게 다가오려는 게 보였다. 나는 그 앞에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아니 무슨 말이라도 할 수 있을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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