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손끝에서 번진 소유욕

2화

교문 앞에 서 있는 사람을 본 순간, 나는 걸음을 멈췄다. 아침 공기가 아직 차가웠다. 가방끈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다른 학생들은 다들 그 앞을 피해 옆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강태희는 벽에 기대서서 팔짱을 낀 채, 등교하는 아이들을 하나씩 훑어보고 있었다. 은발머리가 아침 햇살을 받아 유난히 하얗게 빛났다. 그 앞을 지나가는 아이들이 저마다 슬쩍 고개를 숙이고 발걸음을 서둘렀다. 누구도 정면으로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나를 발견한 순간, 그 시선이 정확히 멈췄다. "왔네."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이상한 인사였다. 목소리가 낮게 깔려서, 주변 소음이 갑자기 멀어지는 것 같았다. "···안녕하세요." "인사는 됐고." 강태희가 몸을 일으켜 세우며 내 쪽으로 걸어왔다. 구두 밑창이 아스팔트를 스치는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다. 주변 아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우리에게 쏠렸다. 누군가 낮게 속닥이는 소리가 들렸다. "저 신입생 진짜 강태희 선배랑 뭐 있나 봐." "근데 신입생 표정 봐. 완전 당황했는데." 나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땅을 뚫고 들어가고 싶은 기분이었다. "저기, 선배. 이렇게 매일 서 있으면 저 진짜 이상한 애 되는데요." "이상한 애?" "소문 나잖아요." 강태희는 아무렇지 않게 어깨를 으쓱했다. 그 여유가 얄미울 정도였다. "소문이야 어차피 났어." 너무 당당해서 반박할 말을 찾을 수 없었다. "뭐가 났는데요···." "네가 내 거라는 거." 그 말이 너무 태연하게 나와서, 나는 순간 숫자를 세는 것도 잊었다. 주변에서 몇몇이 대놓고 헉 소리를 냈다. 누군가는 아예 걸음을 멈추고 우리를 쳐다봤다. "저, 저기요. 그런 말을 이렇게 대놓고···." "왜, 틀렸어?" "당연히 틀렸죠! 저는 선배 거 아닌데요." 강태희는 그 반응을 재밌어하듯 웃었다.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는 게 보였다. "거짓말은 못 하네." "거짓말 아닌데요···." 말끝이 흐려졌다. 반박은 하고 싶은데, 정작 뭐가 거짓말이고 뭐가 진짜인지 나조차 헷갈렸다. 결국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교문 안으로 도망치듯 들어갔다. 등 뒤에서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 그날 이후로 강태희는 매일 아침 교문 앞에 있었다. 비가 오는 날에도, 유난히 추운 날에도 자리를 비우지 않았다. 쉬는 시간마다 우리 반 창문 밖으로 그 은발머리가 나타났다. 처음엔 반 아이들이 그저 놀라워했지만, 며칠이 지나자 그게 당연한 풍경처럼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심지어 몇몇은 강태희가 안 보이는 날에 오히려 의아해하기도 했다. "어? 오늘은 안 왔네. 무슨 일 있나." "이도윤, 오늘도 강태희 선배 왔던데." 짝꿍이 웃으며 말했다. "나도 몰라, 저 사람 왜 저러는지." "부럽다야. 나도 강태희 선배 관심 좀 받고 싶은데." "부러울 게 뭐가 있어···." 나는 진심으로 이해가 안 됐다. 관심을 받는다는 건 편한 일이 아니었다. 복도를 걸을 때마다 시선이 따라오는 느낌, 급식실에서 밥을 먹을 때도 누군가 지켜보는 듬 느낌. 그건 생각보다 훨씬 피곤한 일이었다. 체육 시간에 다른 반 애들이랑 맞붙는 축구 경기에서 살짝 밀려 넘어졌을 때도, 어느새 강태희가 운동장 구석에 서서 그 장면을 보고 있었다는 걸 알고 소름이 돋았다. 무릎에 흙이 묻은 채로 일어나면서, 나는 반사적으로 그쪽을 쳐다봤다. 강태희는 팔짱을 낀 채 미묘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괜찮아?" 경기가 끝나고, 강태희가 다가와 물었다. "네, 그냥 넘어진 건데요." "밀친 새끼 누구야." 목소리가 순식간에 낮아졌다. "그냥 실수였어요, 진짜로." "이름." "말 안 할 건데요." 강태희는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바라봤다. 그 눈빛이 순간 너무 진지해서, 나는 저절로 뒷걸음질을 쳤다. "숨기지 마." "진짜 별일 아니었어요···." "별일 아니어도 말해." 주변에 있던 다른 반 애들이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자리를 피했다. 누군가는 벌써 내가 밀친 애를 눈으로 가리키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결국 나는 이름을 말하지 않고 자리를 피했다. 가방을 챙겨 교실로 돌아가는 길에도 등 뒤가 따끔거렸다. 다음 날, 그 남학생이 갑자기 나에게 사과를 하러 왔다는 걸 알게 됐을 때, 나는 뭔가 이 관계가 생각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 애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미안하다, 진짜 몰라서 그런 거였다"는 말만 반복했다.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 점심시간, 급식실에서 줄을 서 있는데 뒤에서 누군가 내 어깨를 톡톡 쳤다. 돌아보니 처음 보는 여자애였다. 단정하게 묶은 머리, 부드러운 미소, 어딘가 눈에 익은 얼굴이었다. "저기, 1학년 3반 이도윤 맞지?" "어···, 네." "나 문서현이야. 같은 학년인데 다른 반." 그 이름은 나도 이미 들어본 적이 있었다. 입학하고 며칠 만에 학년 전체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얼굴이었다. 예쁘고, 친절하고, 성적도 좋다는 문서현. 거기다 성격도 둥글둥글해서 적이 없다는 말까지 들었다. "무슨 일로···?" "그냥, 친해지고 싶어서." 문서현이 웃으며 말했다. 눈이 초승달처럼 접히는 게 인상적이었다. "강태희 선배랑 친하다는 얘기 듣고 신기해서." "아, 그거···, 친한 건 아니고요." "그래도 대단하다. 선배가 그렇게 관심 갖는 애는 처음 본대." 그 말투가 너무 자연스러워서, 나는 그냥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밥 같이 먹을래?" 예상 못 한 제안이었다. 나는 잠깐 머뭇거렸다가, 딱히 거절할 이유도 없어서 고개를 끄덕였다. 식판을 들고 자리에 앉는 동안, 나는 문서현이 다른 애들과 어떻게 다른지 조금씩 느꼈다. 말투가 부드럽고, 눈을 마주치면서 이야기하고, 사소한 것 하나에도 웃어주는 식이었다. "이거 맛있는데 좀 먹어봐." 문서현이 자기 반찬을 슬쩍 내 식판 쪽으로 밀어줬다. "아, 괜찮은데요···." "괜찮아, 먹어봐. 나 이거 두 개 받아왔어." 오랜만에 누군가와 편하게 대화를 나눈다는 느낌이 들었다. 강태희랑 있을 때처럼 긴장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자연스럽게 웃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근데 진짜 안 무섭냐, 강태희 선배." "가끔은요···. 근데 나쁜 사람 같지는 않아요." "그래? 다행이다. 나는 좀 무서웠는데." 그런데 문득 창가 쪽에서 시선이 느껴졌다. 목덜미가 서늘해지는 느낌이었다. 고개를 돌리니 급식실 입구에 강태희가 서 있었다. 표정은 여느 때처럼 무표정했지만, 시선은 정확히 나와 문서현 사이를 오가고 있었다. 그 눈빛이 이상하게 서늘했다. 주변 애들도 하나둘 그쪽을 눈치채고 조용히 숨을 죽였다. 식사가 끝날 때쯤, 문서현이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또 밥 같이 먹자." "네, 그래요." 그 애가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강태희가 다가왔다. 발걸음이 평소보다 빨랐다. "저 애랑 뭐야." "그냥 같이 밥 먹은 건데요···." "왜 웃어." "밥 먹으면서 웃는 게 이상한 건가요···?" 강태희는 잠시 말이 없다가, 낮게 중얼거렸다. "별로 안 좋아." "뭐가요?" "저 애 눈빛." 나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한 채, 강태희의 뒷모습만 바라봤다. 멀어지는 등이 유난히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그리고 며칠 뒤, 나는 그 말이 무슨 뜻이었는지 뼈저리게 깨닫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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