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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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인이 던진 그 한마디, "저 애 좀 잘생겼다"는 말이 며칠이 지나도록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아무리 지우려 해도 지워지지 않는 얼룩처럼, 그 말은 밤마다 이불 속에서 되살아나 나를 괴롭혔다. 별생각 없이 던진 말이었을 텐데, 나는 왜 그 한마디를 이렇게까지 곱씹고 있는 걸까.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었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다.
전학생의 이름은 유재현이었고, 그 애는 특유의 밝은 성격 덕에 반에 빠르게 스며들었다. 처음 전학 온 날부터 재현은 낯가림이라는 단어 자체를 모르는 사람처럼 아무에게나 먼저 다가가 말을 걸었고, 그 넉살에 반 아이들은 금세 마음을 열었다. 체육 시간에는 축구공을 몰고 운동장을 가로지르며 눈에 띄게 활약했고, 그때마다 여자아이들 사이에서 작게 터지는 웃음소리와 감탄사가 들려왔다. 쉬는 시간이면 재현은 어김없이 다인의 자리 근처로 걸어와 웃으며 말을 걸었고, 나는 그 짧은 순간마다 창밖을 보거나 책을 펼치는 척하며 애써 시선을 돌렸다.
"강다인, 이거 다음 시간 준비물 맞지?" 재현이 다인의 책상 앞에 서서 자연스럽게 물었다. 그 목소리엔 망설임이랄 게 조금도 없었다.
"응, 맞아. 고마워, 알려줘서." 다인이 웃으며 대답하는 모습을, 나는 내 자리에서 애써 시선을 돌리며 지켜보았다. 다인의 웃음이 저렇게 쉽게, 저렇게 환하게 다른 사람에게도 향한다는 사실이 낯설게 느껴졌다. 나한테만 특별한 게 아니었구나, 당연한 걸 이제야 깨닫는 기분이었다.
왜 저렇게까지 신경이 쓰이는 걸까, 나는 알면서도 모르는 척했다. 재현이 다인에게 다가가는 순간마다 가슴 한쪽이 뻐근하게 조여드는 이유를, 나는 애써 부정하고 있었다. 그건 질투였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 단어 말고는 이 감정을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점심시간, 급식실로 향하는 길에 재현이 자연스럽게 다인 옆에 붙어 걸었다. 복도를 걷는 재현의 발걸음은 가벼웠고, 목소리는 마치 오래전부터 알던 사람처럼 편안했다.
"강다인, 방과 후에 뭐 해? 나 이 동네 잘 몰라서, 좀 안내해줄 사람 필요한데." 재현이 웃으며 물었다.
다인은 잠시 생각하더니 나를 돌아보았다. 그 짧은 눈빛 하나에 나는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걸 느꼈다.
"서연이랑 같이 다니는데, 괜찮으면 같이 갈래?" 다인이 그렇게 말했을 때, 나는 순간적으로 안도감과 불안감이 동시에 밀려오는 걸 느꼈다. 다인이 나를 잊지 않고 챙겨준 것에 대한 안도감, 그리고 셋이 다닌다는 사실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다는 불안감. 재현이라는 존재가 우리 둘 사이에 끼어드는 상상만으로도 손끝이 차갑게 식었다.
"어, 좋지." 재현이 흔쾌히 대답했고, 나는 애매한 미소만 지어 보였다. 급식판 위에 놓인 반찬들이 유난히 흐릿하게 보였다. 밥을 뜨는 숟가락질이 몇 번인지도 모르게 기계적으로 오갔다.
방과 후, 셋이서 학교 앞 거리를 걷는 동안 재현은 계속 다인에게 말을 걸었다. 이 가게가 뭐가 맛있는지, 저 골목이 어디로 이어지는지, 다인은 하나하나 성실하게 대답해주었고, 나는 그 옆에서 반쯤 걸음 뒤로 물러난 채 걷고 있었다. 두 사람의 대화가 이어질수록 나는 점점 뒤로 밀려나는 기분이었다. 마치 원래 내 자리였던 곳에 누군가 슬쩍 끼어들어 앉아버린 것처럼.
"저기 저 분식집, 떡볶이 맛있어?" 재현이 손끝으로 어느 가게를 가리키며 물었다.
"어, 거기 완전 맛있어. 서연이랑 자주 가는 곳이야." 다인이 대답하며 나를 돌아보았고,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다인의 입에서 나온 "서연이랑"이라는 말이 묘하게 반가우면서도, 그 반가움이 얼마나 얄궂은 감정인지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서연이는 말이 별로 없네." 재현이 문득 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그 눈빛에는 별다른 뜻이 없어 보였지만, 나는 순간 몸이 굳는 걸 느꼈다.
"어, 그냥... 원래 이래." 나는 짧게 대답했다. 목소리가 생각보다 더 딱딱하게 나온 것 같아서 속으로 조금 당황했다.
"서연이는 원래 조용해. 근데 나랑 있을 땐 잘 웃어." 다인이 대신 그렇게 대답해주었는데, 그 말이 이상하게 나를 안심시키면서도 동시에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다인이 나를 저렇게 특별하게 여겨주는 게 고마우면서도, 그게 결코 내가 바라는 방향의 특별함은 아니라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아팠다. 친구로서의 특별함과 내가 바라는 특별함 사이의 거리가, 오늘따라 유난히 멀게 느껴졌다.
골목을 지나 다인의 집 근처에 다다랐을 때, 재현이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다인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가로등 불빛이 재현의 얼굴 위로 옅게 떨어졌고, 그 표정에는 아까까지의 장난스러움이 조금 가라앉아 있었다.
"강다인, 혹시 번호 좀 줄 수 있어? 궁금한 거 있을 때 물어보고 싶어서." 재현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조금 낮아진 것 같았다.
다인은 별생각 없이 휴대폰을 꺼내 번호를 교환했다. 그 짧은 순간, 나는 두 사람의 화면이 서로의 번호로 채워지는 걸 지켜보며 손마디가 하얗게 도드라지는 걸 느꼈다. 별거 아닌 일이라고, 그냥 동네를 안내해준 것에 대한 답례일 뿐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가슴 한쪽이 저릿하게 아려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고마워. 그럼 다음에 또 봐." 재현이 웃으며 손을 흔들고 반대편 골목으로 사라졌다. 그 뒷모습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나는 눈을 떼지 못했다.
다인과 나 둘만 남았을 때, 나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걸음을 옮겼지만 속으로는 이미 여러 가지 감정이 어지럽게 얽히고 있었다. 재현이 다인에게 보이는 관심이 단순한 호기심인지, 아니면 다른 의미를 가진 것인지 나는 알 수 없었고, 그걸 알아내려는 나 자신의 태도가 얼마나 우스운 것인지도 알고 있었다.
난 그 애를 좋아할 자격조차 없는데, 이런 감정으로 재현을 경계한다는 게 얼마나 웃긴 일인가, 나는 스스로를 향해 그렇게 되뇌었다. 다인의 마음이 어디로도 향하지 않기를 바라는 건, 내 욕심일 뿐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 욕심을 쉽게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서연아, 무슨 생각해?" 다인이 문득 내 얼굴을 살피며 물었다. 걱정스러운 듯한 눈빛이 잠시 내 얼굴 위에 머물렀다.
"아니, 그냥." 나는 얼른 표정을 정리하며 대답했다. 목소리가 흔들리지 않았기를 바랄 뿐이었다.
다인은 더 묻지 않고 웃으며 다시 걸음을 옮겼는데, 나는 그 뒷모습을 보며 며칠 전 다인이 했던 말을 다시 떠올렸다. [너 요즘 좀 이상해. 뭔가 나한테 숨기는 거 있는 거 같아.] 그때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웃어넘겼지만, 사실은 숨기는 게 너무 많았다. 매일 다인의 곁에서 웃으면서도, 그 웃음 뒤에 얼마나 많은 말들을 삼키고 있는지, 다인은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
그 말이 지금, 재현이라는 이름과 함께 다시 내 안에서 불안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다인 앞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집으로 가는 길이 유난히 멀게 느껴졌다. 가로수 사이로 스며드는 저녁 빛이 어느새 옅어지고 있었고, 그 서늘한 공기가 옷깃 사이로 스며들어 몸을 움츠리게 만들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휴대폰이 울렸다. 다인이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걸음을 멈추고 화면을 확인했다.
[서연아, 재현이가 나한테 방금 문자 보냈어. 근데 좀 이상한 얘기를 하는데.]
그 문자를 확인하는 순간, 나는 심장이 다시 한번 덜컥 내려앉는 걸 느꼈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재현이 다인에게 대체 무슨 말을 보낸 걸까, 그리고 그게 왜 지금 이 순간 내 가슴을 이렇게까지 조여오는 걸까. 나는 떨리는 손으로 답장을 쓰려다 멈추고, 다시 화면을 들여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