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네게만은 안 들키기로 했다

3화

나는, 다인의 방에 이불 두 채가 나란히 깔린 걸 보면서도, 그 거리가 겨우 팔 하나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애써 모른 척하고 있었다. 창밖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고, 방 안의 스탠드 조명이 다인의 얼굴에 오렌지빛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는데, 그 빛깔이 유난히 따뜻해서 나는 자꾸만 시선을 빼앗겼다. 다인은 씻고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머리끝이 아직 물기를 머금고 있었고, 그 물기가 스탠드 불빛을 받아 잔잔하게 반짝였다. 나는 그 반짝임을 눈으로 좇다가, 다인이 나를 바라볼까 봐 황급히 시선을 돌렸다. "뭐 봐?" 다인이 웃으며 물었다. "아니, 그냥." 나는 대충 대답하며 이불깃을 만지작거렸다. 손끝에 닿는 이불의 감촉이 유난히 낯설게 느껴졌다. "불 끌까?" 다인이 스탠드로 손을 뻗으며 물었다. "응." 나는 짧게 대답했지만, 사실은 불을 끄고 싶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다인과 나란히 눕는다는 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나는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애매한 오렌지빛 아래서는 적어도 서로의 얼굴을, 표정을 확인할 수 있었으니까. 어둠은 그 확인의 여지마저 지워버릴 테고, 남는 건 오직 서로의 숨소리와 온기뿐일 거였다. 불이 꺼지고 방 안이 어둠에 잠기자, 나는 눈을 뜬 채로 천장을 응시했다. 눈이 어둠에 익어가면서 천장의 미세한 얼룩 같은 것들이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했지만, 나는 그것을 보고 있는 게 아니었다. 옆에서 다인의 숨소리가 들려왔다. 규칙적이고 낮은, 이미 잠에 가까워진 사람의 숨소리였다. 나는 그 숨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잠들 수 없었다. 숨소리 하나에 이렇게까지 신경이 곤두선다는 게, 스스로도 어이가 없었다. "서연아." 갑자기 다인이 나를 불렀다. 잠에 취한 목소리였다. "응?" 나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걸 느끼며 대답했다. 목소리가 갈라지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오늘 재밌었어." 다인은 그렇게 말하더니 몸을 뒤척이며 내 쪽으로 조금 더 다가왔다. 그 애의 팔이 내 이불 위로 슬쩍 넘어왔고, 손끝이 내 팔뚝에 가볍게 닿았다. 숨이 멈췄다. 이대로 있어도 되는 걸까, 아니면 몸을 빼야 하는 걸까, 그 짧은 순간에 온갖 생각이 스쳤지만 나는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다인의 손이 내 팔뚝에 그대로 얹힌 채, 그 애의 숨소리는 점점 더 깊어졌다. 손끝이 닿은 자리가 화상을 입은 것처럼 뜨거웠는데, 그 열기가 팔뚝을 타고 어깨까지, 목덜미까지 번지는 것 같아서 나는 이불을 턱밑까지 끌어올렸다. 이불로 얼굴의 절반을 가려도 심장이 뛰는 소리는 가려지지 않았다. 어리석었다, 이 손을 치우지 못하고 그저 어둠 속에서 심장 소리가 다인에게 들릴까 봐 조바심 내는 내가.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나는 잠들지 못한 채로 다인의 숨소리를 세고 있었다. 하나, 둘, 셋. 숫자를 세는 동안만큼은 다른 생각이 끼어들지 않아서, 나는 그 무의미한 셈에 매달렸다. 백을 넘기고 이백을 넘길 즈음, 다인이 갑자기 잠꼬대처럼 내 이름을 중얼거렸다. "서연아... 가지 마..." 그 말이 무엇을 향한 것인지, 어떤 꿈속의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인지 나는 알 수 없었지만, 그 세 마디가 내 가슴 한복판에 깊이 박혀버렸다. 가지 말라는 그 말이, 혹시 나를 향한 것이라면, 아니 나를 향한 것이 아니라 그저 잠결에 아무 의미 없이 튀어나온 말이라면. 다인의 꿈속에서 나는 어디로 가려던 걸까, 어떤 장면 속에서 다인이 나를 붙잡으려던 걸까, 아무리 상상해봐도 알 수 없는 것투성이였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나는 스스로를 비웃었다. 뭘 기대하는 거야, 잠꼬대 한마디에. 잠에서 흘러나온 말 한 조각을 붙잡고 이렇게까지 마음이 요동친다는 게,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그럼에도 심장은 내 비웃음 따위 상관없다는 듯 계속해서 빠르게 뛰었고, 그 박동이 팔뚝에 얹힌 다인의 손끝으로 그대로 전해질까 봐 나는 숨조차 조심스럽게 내쉬었다. 그런데도 나는 다인의 손을 치우지 않았다. 오히려 그 손 위에 내 손을 슬쩍 겹쳐놓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그 마음을 실행하려는 순간 다인이 몸을 뒤척이며 손을 거둬갔다. 그 손이 사라진 자리가 이상하게 서늘했다. 손끝이 남기고 간 온기가 채 식지도 않았는데, 그 자리를 채우던 것이 사라졌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허전함을 느꼈다. 이런 허전함을 느낄 자격이 나한테 있기는 한 걸까, 그런 물음이 뒤늦게 따라붙었지만 답을 낼 수 없었다. 어둠 속에서 나는 다인의 등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규칙적인 숨소리가 다시 이어지고 있었고, 나는 그 애의 등을 바라보며 이 거리가, 팔 하나였던 그 거리가 지금 이 순간만큼은 아무 의미도 없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물리적인 거리와 마음의 거리는 전혀 다른 것이었으니까. 그 사실을 알면서도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그저 다인의 등을 바라보며 밤을 견뎌내야 했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떴을 때 다인은 이미 일어나 창문을 열고 있었다.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이 그 애의 옆얼굴을 비추고 있었는데, 나는 그 모습을 잠결인 척 눈을 반쯤 감고 지켜보았다. 다인의 머리카락이 아침 햇살을 받아 갈색빛으로 물들어 있었고, 목덜미에 남은 잠기운 어린 나른함이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나는 그 모습을 조금 더 오래 보고 싶어서, 눈을 뜬 것을 들키지 않으려 애썼다. "일어났어?" 다인이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응, 조금 됐어." 나는 몸을 일으키며 어젯밤의 잠꼬대에 대해 물어볼지 말지를 고민했다. 물어본다면 뭐라고 물어야 할까, 아무렇지 않게 [너 어제 내 이름 부르면서 가지 말라고 했어] 라고 말할 수 있을까, 상상만으로도 얼굴이 뜨거워졌다. "어제 내가 뭐라고 했어? 이상한 소리 안 했어?" 다인이 먼저 물었다. 그 질문에 나는 심장이 쿵 내려앉는 걸 느꼈다. 다인의 눈빛에는 별다른 의심이 없었다. 그저 잠버릇을 걱정하는 사람의, 가벼운 물음이었다. 그런데 왜 나는 그 눈을 마주 보지 못했을까. "아니, 아무 말도 안 했어." 나는 결국 거짓말을 했다. 왜 거짓말을 한 걸까,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지만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그 잠꼬대의 의미를 다인에게 확인받는 순간, 지금 이 애매한 거리감이 완전히 무너질까 봐 두려웠던 거였다. 다인이 [내가 그랬어? 진짜?] 하며 웃어넘길 수도 있었고, 아니면 아무 의미 없다는 듯 무심히 넘길 수도 있었다. 어느 쪽이든 나는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차라리 모르는 채로, 이 마음속에 그 세 마디를 혼자 간직하는 쪽이 나았다. 다인은 별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창밖을 바라보았고, 나는 그 뒷모습을 보며 방금 내가 지킨 게 이 관계인지 아니면 그저 내 겁쟁이 마음인지를 구분할 수 없었다. 창밖에서 불어오는 아침 바람이 다인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흩뜨렸고, 그 애는 눈을 가늘게 뜨며 바람을 맞고 있었다. 그 옆얼굴이 너무 평온해서, 나는 어젯밤 내가 느꼈던 그 모든 동요가 나 혼자만의 것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이 버석거렸다. "오늘은 뭐 하고 싶어?" 다인이 물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한, 지극히 평범한 목소리였다. "글쎄." 나는 대답을 얼버무리며 이불을 정리하는 척 시선을 피했다. 그 순간, 다인이 무심히 웃으며 다가와 내 이불 한쪽을 함께 접어주었다. 손끝이 다시 스쳤다. 어젯밤의 그 온기와는 다른, 아무 의미도 담기지 않은 우연한 접촉이었는데도 나는 또다시 숨을 삼켰다. 이런 식으로 매번 흔들리다가는, 언젠가 이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들켜버릴 것 같다는 불안이 목덜미를 타고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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