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나는,
교문 앞에서 강다인을 기다릴 때마다 심장이 먼저 뛰기 시작한다는 걸, 그 애는 아마 죽을 때까지 모를 것이다. 아침 여덟 시 십오 분, 늘 그맘때쯤 골목 끝에서 나타나는 큰 키의 실루엣을 확인하는 순간부터 손끝이 이상하게 저릿해지는데, 나는 그걸 티내지 않으려고 괜히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척하거나 신발끈을 다시 묶는 시늉을 하며 시간을 흘려보냈다. 이 년째 반복하고 있는 이 습관을, 나는 스스로도 우스울 만큼 정교하게 다듬어왔다. 휴대폰 화면을 켜는 각도, 신발끈을 잡는 손의 위치, 심지어 고개를 숙이는 정도까지도 계산해서 만들어낸 것들이었으니까.
골목 끝에서 다인의 실루엣이 완전히 드러나기 전, 발소리만으로 그 애인지 아닌지를 구별할 수 있게 된 건 언제부터였을까. 운동화 밑창이 아스팔트에 닿는 소리, 걸음의 리듬, 가방끈이 어깨에서 흔들리며 나는 미세한 마찰음까지도 나는 이미 다인의 것으로 저장해두고 있었다. 그런 시시콜콜한 것들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이, 문득 소름 끼치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서연아." 다인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리면 나는 일부러 한 박자 늦게 고개를 돌렸고, 그 애는 매번 아무 의심 없이 내 옆에 나란히 서서 팔을 슬쩍 걸어왔다.
그 팔 하나가, 그저 습관처럼 툭 얹히는 그 무게가, 나에게는 매번 새로운 충격이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그래왔다고 해서 익숙해질 감각이 아니었다. 오히려 해가 지날수록 더 선명해졌다. 다인의 팔이 내 팔에 닿는 순간, 나는 숨을 반쯤 참았다가 아무렇지 않은 척 다시 걸음을 옮겼는데, 그 짧은 순간에 느끼는 감정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 나는 아직도 정확한 이름을 찾지 못했다. 다인의 체온이 셔츠 소매를 뚫고 전해질 때마다, 나는 그 온도를 잊지 않으려고 무의식중에 팔에 힘을 주었다가 이내 스스로가 한심해서 힘을 풀었다.
좋아한다는 말로는 부족했고, 사랑한다는 말은 너무 무거워서 입 밖으로 낼 수조차 없었다. 그 사이 어딘가에 존재하는 이름 없는 감정을, 나는 그저 매일 아침 삼켜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이 감정이 다인에게 닿을 확률은 얼마나 될까, 나는 종종 그런 계산을 해보곤 했는데 매번 답은 거의 0에 가까웠다. 강다인은 여자를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정확히는 강다인이 누군가를 좋아하는 모습을 나는 본 적이 없어서, 그 애의 취향이라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미지의 영역이었다. 다만 확실한 건 우리는 소꿉친구였고, 그 관계 안에서 내가 다인을 향해 품은 감정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되는 종류의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한심했다, 매일 아침 같은 계산을 반복하면서도 결론은 바뀌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 또 계산하는 내가. 확률이 0에 가깝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매일 새로운 변수를 찾으려 애썼다. 오늘 다인이 나를 보고 웃은 방식이 어제와 조금 달랐던 것 같다든가, 팔을 걸어오는 속도가 미세하게 빨라졌다든가 하는, 남들은 눈치채지도 못할 사소한 것들을 붙잡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다가도 결국엔 같은 자리로 돌아왔다. 강다인에게 나는 그저 오래된 친구였고, 그 이상의 자리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결론으로.
교실로 들어가는 길, 다인이 내 손목을 잡아끌며 "이거 봐, 매점에서 새로 나온 거"라고 했을 때 나는 그 애 손의 온도가 내 팔목으로 스며드는 걸 느끼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손이라는 게 이렇게까지 예민한 감각기관이었나 싶을 정도로, 다인이 닿는 부위마다 열이 오르는 것 같았다. 손목 안쪽, 맥이 뛰는 자리를 정확히 감싸쥔 그 손가락의 압력을 나는 몇 초간 그대로 견뎌야 했는데, 그 몇 초가 나에게는 지나치게 길게 느껴졌다. 나는 그 온기를 들키지 않으려고 재빨리 손을 빼내며 웃었다.
"뭔데, 빨리 보여줘." 나는 애써 태연하게 대꾸했지만, 속으로는 방금 그 손목의 감각을 잊지 못한 채 자꾸 되새기고 있었다. 손을 뺀 자리에 남은 온도가 서서히 식어가는 걸 느끼면서, 나는 그 온도가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다시 그 손을 잡아끌고 싶다는 충동을 억눌러야 했다.
다인은 가방에서 작은 젤리 봉지를 꺼내 흔들며 눈을 반짝반짝 빛냈다. 그 표정을 볼 때마다 나는 이 애를 좋아하지 않을 방법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다시 확인했다. 눈꼬리가 살짝 휘어지는 방식, 입술 끝이 올라가는 각도, 그런 것들 하나하나가 나에게는 익숙하면서도 매번 새롭게 다가왔다. 다인은 자기가 그런 표정을 짓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것 같았고, 나는 그 무지함이 오히려 더 견디기 힘들었다.
[서연아, 이거 네가 만든 거 진짜 못생겼는데 나 이거 계속 낄 거야.] 작년 겨울, 내가 어설프게 뜬 손가락 장갑을 건넸을 때 다인이 했던 말이 문득 떠올랐다. 손가락 다섯 개 중 두 개는 구멍이 잘못 나서 엄지랑 검지가 한 칸에 같이 들어가야 하는, 누가 봐도 실패작인 장갑이었는데 다인은 그걸 겨울 내내 끼고 다녔다. 눈이 오는 날에도, 손이 빨갛게 얼어붙을 만큼 추운 날에도 다인은 그 못생긴 장갑을 벗지 않았고, 나는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뭔가가 가슴 안쪽에서 뭉근하게 데워지는 걸 느꼈다. 지금도 그 애의 책상 서랍 어딘가에 그 장갑이 곱게 접혀 있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계절이 지나 필요가 없어졌는데도 버리지 않고 넣어둔 그 마음을, 나는 여전히 다 이해하지 못했다.
왜 그렇게까지 아껴주는 걸까, 나는 그 이유를 알고 싶으면서도 알게 되는 순간이 두려웠다. 만약 그 이유가 내가 바라는 것과 다르다면, 그러니까 그저 오래된 정, 습관이 되어버린 우정 같은 것이라면, 나는 그 순간부터 이 짝사랑을 어떤 얼굴로 이어가야 할지 알 수 없을 것 같았다.
1교시가 시작되기 전, 담임선생님이 교탁 앞에 서서 종이 한 장을 흔들며 말했다.
"다음 주부터 시작할 조별 과제, 조 편성표 붙여놨으니까 다들 확인해."
교실 뒤편 게시판으로 아이들이 몰려가는 소리가 들렸고, 나는 별생각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의자 다리가 바닥에 긁히는 소리와 아이들이 저마다 이름을 외치는 소음이 뒤섞여 교실 안은 잠시 어수선해졌다. 다인이 먼저 뛰어가더니 손가락으로 명단을 짚으며 뭔가를 확인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 뒷모습을 보면서 나는 어느 조에 배정됐을지 별 기대 없이 걸음을 옮겼다.
"서연아!" 다인이 갑자기 큰 소리로 나를 불렀다. 그 목소리에 묻은 흥분이 무엇을 뜻하는지 나는 그 순간에는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뒤돌아서 나를 보는 다인의 눈이 평소보다 조금 더 크게 벌어져 있었고, 입가에는 억누르지 못한 웃음이 번지고 있었다. 나는 그 표정의 이유를 알기 위해 서둘러 게시판 앞으로 다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