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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윤소이 시점] 결심을 하는 데 열흘이 걸렸다. 열흘. 손가락으로 꼽아보면 별거 아닌 숫자였다. 그런데 그 열흘이 내게는 십 년처럼 느껴졌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휴대폰을 확인하는 거였는데, 화면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십 년 넘게 매일 아침 여섯 시 반이면 도착해 있던 문자, "일어났어?" 그 짧은 세 글자가 사라진 자리는 생각보다 컸다. 알람을 세 번 눌러도 아무도 나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학교 앞 버스 정류장에 서 있어도, 늘 그 자리에 있던 사람이 없었다. 나는 혼자 버스를 탔고, 혼자 손잡이를 잡았고, 혼자 창밖을 봤다. 시험 범위는 늘 대충 넘겼다가 낮은 점수로 돌아왔다. 원래는 도훈이 시험 전날 밤이면 항상 문자로 범위를 정리해서 보내줬다. "국사 3단원 안 나옴. 대신 5단원 꼼꼼히 봐." 그런 문자가 없어지자, 나는 시험지 앞에서 처음으로 낯선 문제와 마주했다. 손이 떨렸다. 아는 게 없어서가 아니라, 늘 있던 안전망이 사라진 데서 오는 불안이었다. 지우개를 잃어버리면 낯선 아이에게 빌려야 했다. 준비물을 놓고 오면 수업 시간 내내 눈치를 봐야 했다. 사소한 것들이었다. 정말로 사소한 것들이었는데, 그 사소함이 쌓여서 하나의 커다란 구멍이 되었다. 나는 그 구멍의 크기를 매일 조금씩 실감했다. 그리고 그 실감 속에서, 나는 처음으로 도훈이 나에게 얼마나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그는 내 일상의 배경음악 같은 존재였다. 있을 때는 몰랐다. 사라지고 나서야 그 정적이 얼마나 시끄러운지 알았다. 동시에, 나는 다른 것도 깨달았다. 그 서투름이 나쁘지 않다는 것. 지우개를 빌리려고 옆 반 아이에게 말을 걸었을 때, 어색했지만 그 아이와 짧은 대화를 나눴다. "너 필기 진짜 예쁘게 하네." 그 애가 무심하게 던진 말에, 나는 왜인지 얼굴이 조금 뜨거워졌다. 처음으로 도훈이 아닌 다른 사람과 뭔가를 주고받은 순간이었다. 그게 이상하게도, 조금 후련했다. 마치 오랫동안 한 방향으로만 자란 나무가 처음으로 다른 방향으로 가지를 뻗어보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그 후련함과 별개로, 도훈의 무표정한 얼굴을 볼 때마다 가슴 한쪽이 저릿했다. 복도에서 스쳐 지나갈 때, 급식실에서 멀리 앉아 있는 그의 뒷모습을 볼 때, 나는 매번 걸음을 멈추고 싶었다. 그리고 매번 그러지 못했다. 나는 도훈을 잃고 싶지 않았다. 십 년 넘게 함께해온 그 사람을, 겨우 한마디 말실수로 완전히 잃어버리고 싶지 않았다. 그 말실수. "과보호야, 그만해." 반 애들이 웃던 그 순간, 나는 내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는 걸 느꼈고, 그 부끄러움을 감추려고 방어적으로 튀어나온 말이었다. 그 순간에는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열흘이 지난 지금, 나는 그 말이 도훈의 어디를 얼마나 깊게 찔렀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도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화도 내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거리를 뒀다. 그 침묵이 오히려 더 무서웠다. 열흘째 되는 날, 나는 결심했다. 더는 이 애매한 거리를 견딜 수 없다고. 사과를 해야 한다고. 점심시간, 나는 도훈이 혼자 매점 뒤편 벤치에 앉아 있는 걸 발견했다. 그 벤치는 우리가 예전부터 종종 앉던 자리였다. 초등학교 때부터 알고 지낸 사이라, 그 학교 저 학교를 거치면서도 늘 이런 식으로 비슷한 벤치를 찾아내곤 했다. 그는 창밖을 보며 뭔가를 생각하는 표정이었다. 볕이 그의 옆얼굴에 부드럽게 떨어지고 있었는데, 그 평온한 풍경과 어울리지 않게 그의 표정은 어딘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 그쪽으로 걸어갔다. 심장이 갈비뼈를 두드리듯 뛰었다. 손끝은 이미 차가웠다. 발걸음을 옮기는 동안 머릿속으로 몇 번이나 할 말을 되뇌었다. 미안하다고, 진심이 아니었다고, 다시 예전처럼 지내자고. 그런데 그의 옆에 다가갈수록 그 말들이 하나씩 흩어지는 기분이었다. "도훈아." 나는 그의 옆에 앉으며 말을 걸었다. 도훈이 나를 쳐다보았다. 여전히 무표정했지만, 뭔가 다른 기색이 있었던 것 같기도 했다. 확신할 수는 없었다. 그의 눈동자는 늘 그렇듯 깊고 조용했는데, 그 안에 무언가가 소리 없이 일고 있는 것 같았다. "나, 그날 일 계속 생각했어." 나는 손을 무릎 위에 놓고 말을 이어갔다. 손가락이 떨리는 걸 감추려고 손을 꽉 쥐었다. "과보호야, 그만해. 그 말, 진짜 생각 없이 나온 말이었어. 반 애들이 웃으니까, 나도 모르게 방어적으로 튀어나온 거야." 도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몇 초 이어졌는지 모른다. 나에게는 몇 분처럼 느껴졌다. "네가 지금까지 해준 거, 나 사실 다 당연하게 여겼어. 도시락도, 시험 범위도, 준비물도." 나는 말을 이으며 그동안 그가 해준 것들을 하나씩 떠올렸다. 비 오는 날 우산을 씌워주던 손, 시험 전날 문자로 정리해 보내주던 요약, 내가 좋아하는 반찬을 기억해서 담아오던 도시락 통. 그 모든 것들이 사소하게 반복되어 왔기에, 나는 그것을 당연한 공기처럼 여겼다. "근데 그게 없어지고 나서야 알았어. 그게 얼마나 큰 거였는지." 나는 목소리가 떨리는 걸 느꼈다. "미안해. 진짜로." 도훈은 여전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시선 속에서 나는 뭔가를 읽으려 애썼다. 화, 서운함, 혹은 안도. 그러나 그 어떤 것도 확신할 수 없었다. 그의 얼굴은 마치 잠긴 문 같았다. 문 뒤에서 무슨 소리가 나는 것 같긴 한데, 정확히 무엇인지는 알 수 없는. "그리고," 나는 말을 이어가려 했다. "우리 다시 예전처럼..." 도훈이 손을 들어 내 말을 막았다. 그 손짓은 크지 않았지만, 나를 멈추게 하는 데는 충분했다. 그리고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소이야." 그의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다. 감정이 실려 있지 않은 것처럼 들렸지만, 나는 그 밑에 뭔가가 억눌려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오래 눌러놓았던 것을 조심스럽게 풀어놓는 듯한 어조였다. "사과는 받았어. 그리고 화 안 났어, 처음부터 그렇게 화가 났던 건 아니야." 그가 말했다. "그냥, 나 스스로 생각할 시간이 좀 필요했어. 그리고 지금도 그래." "그게 무슨 말이야?" 나는 물었다. 목소리가 떨렸다. 내가 예상했던 대답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이었다. 나는 사과를 하면, 그가 그동안의 침묵을 풀고 다시 예전처럼 웃어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의 말은 오히려 나를 더 낯선 곳으로 데려가고 있었다. "나는 그동안 내가 널 위해서 그러는 거라고 생각했어. 도시락도, 시험 범위도, 다." 도훈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의 시선이 다시 창밖으로 향했다. 마치 그 답을 나에게서 찾는 게 아니라, 스스로에게 던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요즘 생각해보니까, 그게 정말 널 위한 건지, 아니면 내가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 그런 건지, 확신이 안 서."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말이 내 가슴 어딘가에 조용히 박혔다.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 그건 내가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말이었다. 나에게 도훈은 늘 당연히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이었고, 나는 그가 왜 그렇게 나를 챙기는지에 대해 단 한 번도 의심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가 스스로 그 이유를 의심하고 있다는 사실이, 나를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도훈이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이었다. 그의 어깨가 아주 작게 움츠러드는 게 보였다. "이제 익숙해질 시간을 좀 가지려고." 그 한마디가 내 귀에 닿는 순간, 세상이 빙글빙글 도는 것 같았다. 익숙해질 시간. 그건 무엇에 익숙해지겠다는 말일까. 나 없이 사는 것에? 아니면 나와 거리를 두는 관계에? 그것도 아니면, 이대로 끝내는 것에? 머릿속으로 몇 가지 가능성이 동시에 스쳐 지나갔다. 어쩌면 그는 정말로 시간이 필요한 것뿐일 수도 있었다. 어쩌면 이건 화해로 가는 우회로일 수도 있었다. 그런데 또 어쩌면, 이건 이별의 완곡한 표현일 수도 있었다. 나는 그 세 가지 가능성 사이에서 어느 것도 붙잡지 못한 채 흔들렸다. "그게... 우리 그만하자는 뜻이야?" 내가 겨우 물었다. 목소리가 나오는 것조차 힘들었다. 마치 목구멍이 사포처럼 껄끄러웠다. 도훈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자리에서 일어나 벤치에서 몇 걸음 걸어갔다. 그의 등이 나에게서 점점 멀어지는 걸 보면서, 나는 다리에 힘이 빠지는 걸 느꼈다. 그리고 뒤돌아보지 않은 채 말했다. "모르겠어. 나도 아직 모르겠어." 그 말은 짧았지만, 그 안에 담긴 무게는 결코 짧지 않았다. 그는 그렇게 걸어갔다. 발걸음이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았다. 그저 일정한 속도로, 마치 이미 정해진 방향으로 걸어가는 사람처럼. 나는 벤치에 앉아 그의 뒷모습이 점점 작아지는 걸 바라보았다. 손끝이 차가웠다. 심장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벤치 옆에 세워진 나무의 그림자가 내 발끝까지 길게 늘어져 있었는데, 그 그림자가 마치 나를 짓누르는 것 같았다. 익숙해질 시간. 그 말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것은 화해의 말도, 이별의 말도 아니었다. 그저 애매하게 열려 있는 문 같았다. 그 문이 어느 방향으로 닫힐지, 나는 알 수 없었다. 문 앞에 서서 안을 들여다볼 수도, 문을 닫아버릴 수도 없는, 그저 열린 채로 방치된 문. 나는 그 문 앞에서 얼마나 오래 서 있어야 하는 걸까. 교실로 돌아가는 길, 나는 반 아이들의 시선을 다시 느꼈다. 나라연이 멀리서 나를 쳐다보다가 시선을 피했다. 그 눈빛에는 동정과 호기심이 섞여 있었다. 한소율은 보리차 병을 손에 쥐고 뭔가 말하려다 그만두었다. 그녀의 입술이 살짝 벌어졌다가 다시 다물어지는 걸 나는 보았다. 무슨 말을 하려고 했을까. 위로였을까, 아니면 다른 소문에 대한 질문이었을까. 한준은 아예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그는 늘 이런 상황에서 가장 먼저 시선을 피하는 아이였다. 나는 그 회피가 오히려 더 크게 느껴졌다. 나는 자리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았다. 하늘은 맑았지만, 나는 그 맑음이 조금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지나치게 맑은 하늘이, 내 안의 흐린 마음과 대조되어 더 낯설게 느껴졌다. 수업 시간 내내 선생님의 목소리는 멀리서 들려오는 소음처럼 흐릿했다. 나는 필기를 하는 척했지만, 노트에는 아무 의미 없는 낙서만 늘어갔다. 그날 밤, 나는 도훈에게 문자를 보내려다 몇 번이나 지웠다. "오늘 미안해." "생각해봤는데," "우리 얘기 좀 더 하면 안 될까." 문장을 썼다가 지우고, 다시 썼다가 지우는 걸 반복했다. 화면 위의 커서가 깜빡이는 걸 한참 바라보다가, 결국 아무것도 보내지 못한 채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익숙해질 시간이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는 아직 그 답을 찾지 못했다. 다만 하나는 분명했다. 우리 사이에 놓인 그 시간이, 나를 향해서도, 도훈을 향해서도, 결코 쉽게 흘러가지 않을 거라는 것. 창밖의 가로등 불빛이 방 안으로 희미하게 비쳐 들었다. 나는 이불을 끌어당기고 눈을 감았지만, 잠은 쉽게 오지 않았다. 그의 뒷모습이, 그 일정한 걸음걸이가, 자꾸만 눈앞에 떠올랐다. 그리고 그 걸음이 끝내 어디로 향하는지, 나는 그날 밤 내내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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