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윤소이 시점]
일주일이 지났다.
도훈은 여전히 도시락을 싸지 않았다. 시험 범위 쪽지도 없었다. 매일 아침, 나는 도훈의 옆자리에 앉아 텅 빈 책상을 확인했다. 처음 며칠은 어색했지만 곧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좀 지나면, 원래대로 돌아갈 거라고.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그게 얼마나 큰 착각이었는지 깨달았다.
월요일, 나는 도훈의 책상 위에 놓인 텅 빈 자리를 보며 아무렇지 않은 척 필통을 꺼냈다. 화요일에도 마찬가지였다. 수요일이 되자 나는 아침마다 도훈의 책상을 확인하는 게 습관이 되어버렸다는 걸 깨달았다. 십 년 넘게 당연했던 게, 없어지고 나서야 얼마나 크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는지 알게 되는 거였다.
수학 시험을 보는 날이었다. 나는 도훈이 알려주던 시험 범위 없이, 담임이 나눠준 프린트만 보고 대충 훑어봤다. 그런데 그 프린트를 어디에 뒀는지, 시험 전날 밤이 되어서야 찾지 못했다는 걸 알았다. 책상을 다 뒤집고, 가방 속을 세 번이나 확인하고, 결국 서랍 구석에서 구겨진 프린트를 찾아냈을 때는 이미 새벽 한 시가 넘어 있었다. 눈이 뻑뻑했다. 글자가 두 줄로 겹쳐 보였다. 결국 대충 예전 기억으로 문제를 풀었고, 시험 결과는 예상대로 나왔다. 78점. 평소보다 15점이 낮았다.
시험지를 받았을 때, 나는 숨을 들이켰다. 붉은 숫자가 유독 크게 보였다. 78. 손끝이 차가워졌다.
"소이야, 이번에 왜 이렇게 점수가 떨어졌어?" 담임이 시험지를 나눠주며 물었다. 목소리에 걱정이 섞여 있었다.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도훈이 챙겨주던 시험 범위가 없어서, 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건 너무 궁색한 변명이었고, 무엇보다도 부끄러웠다. 십 년 넘게 남의 손을 빌려 성적을 유지해왔다는 걸, 이렇게 확인받는 기분이었다.
"그냥, 실수했어요." 나는 겨우 그렇게 말했다.
담임은 더 묻지 않고 다음 자리로 넘어갔다. 나는 시험지를 접어 가방에 쑤셔 넣었다. 종이가 구겨지는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다.
쉬는 시간, 나는 도훈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는 창밖을 보며 뭔가를 읽고 있었다. 무표정한 옆얼굴. 나는 그 얼굴을 며칠째 보고 있었다. 처음엔 화가 났었다. 겨우 그런 말 한마디에 이렇게까지 화를 내다니, 하고.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그게 그렇게 가벼운 일이 아니었다는 걸 서서히 이해하기 시작했다.
도훈이 읽고 있는 건 시험 범위와는 상관없는, 그냥 소설책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나한테 먼저 시험 범위를 정리해서 건네줬을 시간에, 그는 자기 시간을 자기 것으로 쓰고 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게 왜 이렇게 낯설게 느껴지는지, 나는 알 수 없었다.
"소이야, 요즘 강도훈이랑 왜 그래?" 나라연이 다가와 물었다. 손에는 휴대폰이 들려 있었다. 방금 찍은 사진을 나에게 보여주며 물었다.
사진 속에는 도훈이 매점 앞에서 혼자 삼각김밥을 먹고 있는 모습이 찍혀 있었다. 표정 없는 얼굴로, 혼자.
"그냥, 좀." 나는 말을 흐렸다.
"둘이 냉전 중이라는 소문 다 났어." 나라연이 사진을 넘기며 무심하게 말했다. "이번 주 내내 도시락도 안 싸고, 말도 거의 안 하고. 완전 이상해."
한소율이 보리차를 마시며 옆에서 끼어들었다. "한준이 오빠가 그날 장난친 거 때문에 그런 거 아니야? 나도 들었어, 무슨 과보호 얘기 했다면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반은 소문으로 시끄러웠다. 도훈과 내가 싸웠다는 소문, 도훈이 나를 좋아했었는데 내가 매정하게 거절했다는 소문, 심지어 도훈이 다른 여자애를 좋아하게 됐다는 헛소문까지 돌았다. 그 모든 소문 속에서 나는 점점 고립되는 느낌을 받았다.
복도를 지나갈 때마다 힐끔거리는 시선들. 어느 반 애가 나를 보며 옆 친구에게 뭔가 소곤거리는 걸 봤다. 나는 그게 뭔지 궁금하지도 않았다. 어차피 뭔가 부풀려지고 왜곡된 이야기일 게 뻔했으니까.
한준은 그날 이후로 나와 도훈 근처에 잘 오지 않았다. 처음엔 눈치를 보는 것 같았고, 그다음엔 아예 다른 무리와 어울리는 시간이 많아졌다. 나는 그가 미안해서 그러는 건지, 아니면 그냥 귀찮은 상황을 피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어쩌면 둘 다였을 것이다.
한 번은 복도에서 한준과 마주쳤다. 그는 나를 보고 잠깐 멈춰 섰다가, 뭔가 말하려는 듯 입을 열었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냥 지나갔다. 나는 그 뒷모습을 보며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시작은 그의 장난이었지만, 지금 이 냉전을 견디고 있는 건 나와 도훈뿐이었다.
"도훈아." 나는 며칠 만에 처음으로 먼저 말을 걸었다. 점심시간이었고, 교실은 반쪼가리 소음으로 채워져 있었다.
도훈이 나를 쳐다보았다. 무표정한 얼굴. 나는 그 얼굴 앞에서 뭘 말하려 했는지 순간 잊어버렸다. 심장이 갈비뼈를 두드리듯 뛰었다. 며칠 동안 준비했던 말들이 머릿속에서 뒤섞여 사라졌다.
"뭐." 그가 짧게 대답했다.
"저기, 그날 일은..."
"괜찮아. 별거 아니야." 도훈이 내 말을 자르며 말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매점 쪽으로 걸어갔다.
나는 그 자리에서 그를 붙잡지 못했다. 별거 아니라는 말이, 오히려 더 큰 벽처럼 느껴졌다. 그건 화해의 말이 아니라, 대화를 끊어내는 말이었다. 나는 손을 뻗으려다 다시 접었다. 그가 걸어가는 뒷모습이 점점 작아졌다.
교실 안 소음이 갑자기 멀어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자리에 앉아서 도훈이 앉았던 빈자리를 한참 바라보았다.
그날 밤, 나는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도훈이 십 년 넘게 해왔던 모든 것들. 도시락, 시험 범위, 준비물, 그리고 아침마다 나를 기다려주던 그 자리. 나는 그 모든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도훈이 그걸 좋아서 하는 건지, 힘들어하며 하는 건지 한 번도 물어본 적이 없었다.
초등학교 때, 소풍날 도시락을 두 개 싸 온 도훈. 비 오는 날 우산을 안 가져온 나를 위해 자기 겉옷을 벗어준 도훈. 시험 전날 밤늦게까지 전화로 범위를 불러주던 도훈. 그 모든 순간들이 하나씩 떠올랐다. 나는 그때마다 고맙다는 말을 제대로 한 적이 있었던가? 아니, 나는 그저 당연하게 받았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날, 한준의 장난에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그 한마디. 과보호야, 그만해. 그 말이 도훈에게 어떤 의미였을지, 나는 이제야 조금씩 깨닫고 있었다. 나는 도훈의 배려를 부끄러워하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반 아이들의 시선 속에서, 나는 도훈과의 거리를 스스로 만들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자존심이 문제였다. 먼저 사과하고 싶었지만,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도훈이 별거 아니라고 말했을 때, 나는 그 벽을 넘어설 방법을 찾지 못했다. 사과라는 게 이렇게 어려운 거였나. 십 년 동안 한 번도 제대로 해본 적이 없었다는 게, 지금 이렇게 크게 느껴질 줄 몰랐다.
나는 휴대폰을 들어 도훈의 이름을 찾았다. 메시지창을 열었다가, 아무 말도 쓰지 못하고 다시 닫았다. 무슨 말을 써야 할지 몰랐다. 미안해, 라고 쓰면 될 것 같았는데, 그 세 글자가 왜 이렇게 무겁게 느껴지는지 알 수 없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평소보다 삼십 분 일찍 일어났다. 도시락을 직접 싸볼까 생각했지만, 계란을 세 번이나 태우고 결국 포기했다. 프라이팬에서 올라오는 탄내가 부엌을 가득 채웠고, 엄마가 무슨 일이냐고 물었지만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고만 대답했다. 대신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을 사서 가방에 넣었다.
편의점으로 걸어가는 길, 나는 도훈과 함께 걸었던 그 길을 떠올렸다. 초등학교 때부터 다녔던 길. 도훈은 항상 내 옆에서 걸으며 쓸데없는 이야기를 늘어놓곤 했다. 오늘 아침엔 아무도 없이 나 혼자였다.
교실에 도착했을 때, 도훈은 이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창밖을 보고 있는 그의 옆얼굴이, 며칠 전보다 더 멀리 느껴졌다.
"안녕." 나는 조심스럽게 인사했다.
도훈이 잠깐 나를 보았다. 그리고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 그게 전부였다.
나는 자리에 앉으며 삼각김밥을 꺼냈다. 포장을 뜯는 손이 떨렸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냥, 뭔가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되돌릴 수 없을 만큼 멀어지고 있다는 느낌.
삼각김밥을 씹으며, 나는 자꾸 도훈 쪽을 곁눈질했다. 그는 여전히 창밖을 보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예전에는 그의 표정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었는데, 지금은 그마저도 낯설게 느껴졌다.
수업 시간에도 나는 도훈의 뒷목만 바라보았다. 선생님의 말은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칠판에 적힌 글씨들이 흐릿하게 번져 보였다.
그날 오후, 담임이 시험 성적표를 나눠주었다. 나는 성적표를 접어 가방 깊숙이 넣었다. 부모님께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그보다 도훈에게 어떻게 말을 걸어야 할지, 나는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성적표를 받아든 반 아이들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들불처럼 번졌다. 누군가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성적표를 접었고, 누군가는 한숨을 쉬며 구겨 넣었다. 나는 그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한 채 그저 멍하게 앉아 있었다.
"소이야, 이따 학원 같이 갈래?" 나라연이 물었다.
"아, 오늘은 안 될 것 같아." 나는 대충 대답했다. 사실 학원이 있는지도 몰랐다.
창밖으로 노을이 지고 있었다. 교실 안은 점점 어두워졌지만, 아무도 불을 켜지 않았다. 하나둘 아이들이 가방을 챙겨 교실을 빠져나갔다. 나는 일부러 천천히 짐을 챙기며 도훈이 나가는 순간을 기다렸다.
도훈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방을 어깨에 메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교실 문을 향해 걸어갔다. 나는 그 뒷모습을 다시 한 번 바라보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이 냉전이 정말로 끝을 향해 가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끝을 향해 가고 있다는 건, 화해가 아니라 정말로 이대로 멀어지는 쪽의 끝일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나는 그 생각이 떠오르자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십 년을 함께했던 사람과, 이렇게 아무 말도 못 하고 흩어져버릴 수도 있다는 것.
교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유독 크게 울렸다. 나는 텅 빈 교실에 혼자 남아, 노을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