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다음 날 아침, 윤하늬는 평소보다 삼십 분이나 일찍 등교했다.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이 떠졌다.
밤새 한숨도 못 잤다는 게 더 정확했다.
휴대폰 화면 속 사진 한 장이 자꾸 눈앞에 어른거렸기 때문이다.
명성그룹 회장의 아들.
낯익은 눈매, 낯익은 콧대, 낯익은 입술.
이서준과 완전히 똑같이 생긴 얼굴이었다.
교실 문 앞에 서서 윤하늬는 몇 번이나 손톱을 물어뜯었다.
'아니야, 착각일 수도 있어.'
'닮은 사람일 수도 있잖아.'
'세상에 닮은 사람 한둘이야?'
스스로에게 그렇게 되뇌었지만 심장은 그 말을 믿지 않는 눈치였다.
쿵, 쿵, 쿵.
평소보다 두 배는 빠른 속도로 뛰고 있었다.
복도 끝에서 이서준이 걸어오는 게 보였다.
가방을 한쪽 어깨에 걸치고, 평소처럼 태평한 얼굴이었다.
그 얼굴을 보자 윤하늬의 속에서 뭔가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화난 복어처럼 볼이 빵빵하게 부풀었다.
"잠깐 얘기 좀 해."
윤하늬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이서준이 걸음을 멈췄다.
표정이 어제와는 완전히 달랐다.
장난기 하나 없는,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이서준의 등줄기로 서늘한 기운이 스쳤다.
두 사람은 아무 말 없이 빈 시청각실로 들어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쿵.
그 소리에 이서준의 어깨가 흠칫 떨렸다.
윤하늬가 먼저 입을 열었다.
"명성그룹 이서준."
담담한 목소리였다.
그러나 그 담담함 뒤에 얼마나 많은 감정이 숨어 있는지, 이서준은 단번에 알아챘다.
그의 손끝이 하얗게 질리도록 주먹을 쥐었다.
심장이 발밑으로 쿵 떨어지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검색해 봤어."
윤하늬가 휴대폰을 꺼내 화면을 보여줬다.
"회장 아들 사진, 너랑 똑같이 생겼더라. 이름도 성도, 뭐 하나 빠지는 게 없어."
이서준의 눈동자가 파르르 흔들렸다.
도망칠 곳이 없었다.
숨을 곳도 없었다.
그저 사실대로 말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그거 형이야."
"뭐?"
"쌍둥이 형. 이서율."
윤하늬가 눈을 크게 떴다.
놀란 토끼 같은 눈이었다.
"쌍둥이가 있었어? 너, 그런 얘기 한 번도 안 했잖아."
"응. 형은 유학 가 있다가 최근에 들어왔어. 나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서준은 시선을 피했다.
창밖 어딘가로 눈을 돌렸다.
말을 잇기가 어려운 듯, 목소리가 잠시 멈췄다.
"나는 그냥 형 그늘에서 사는 사람이야."
짧은 정적이 흘렀다.
윤하늬는 그 말의 무게를 가늠하려는 듯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근데 왜 신분을 숨겨? 굳이 그럴 필요가 있어?"
"숨기고 싶은 게 아니라……"
이서준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평소의 여유 있는 말투와는 확연히 다른, 조심스러운 톤이었다.
"평범하게 살고 싶어서. 재벌 집 아들이라는 타이틀 붙는 순간, 사람들이 나를 안 보고 그 타이틀만 봐. 나는 그냥, 좀 더 나답게 있고 싶었을 뿐이야."
그 말에 윤하늬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창밖에서 새소리가 들렸다.
짹, 짹.
평화롭기 그지없는 소리가 지금 이 순간의 무거운 분위기와 묘하게 어긋났다.
윤하늬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 자식, 생각보다 사정이 복잡하네.'
'그런데 왜 나한테 다 말해주는 거지.'
'믿는 건가, 나를.'
"알겠어."
윤하늬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
"조건이 있어."
"뭔데."
"내 비밀도 지켜줘."
이서준이 그 손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손목 얘기야?"
윤하늬의 눈동자가 잠깐 흔들렸다.
망설이는 기색이 역력했다.
"……알바 얘기도."
순간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서로 숨기고 있는 게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는 눈빛이었다.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이상하게 단단한 눈빛이었다.
"그럼 이제부터 서로 비밀 지켜주는 거다."
이서준이 손을 맞잡았다.
손바닥이 뜨거웠다.
그 온도에 윤하늬는 순간적으로 손을 빼려다 참았다.
윤하늬는 그 손을 잠깐 바라보다가 픽 웃었다.
"진짜 재벌 아들 손잡아 보니 별거 없네. 그냥 사람 손이네."
"뭐래. 뭘 기대한 거야, 손에서 금가루라도 떨어질 줄 알았어?"
"그럴 리가."
두 사람 사이에 처음으로 편안한 웃음이 흘렀다.
어색함이 조금씩 녹아내리는 순간이었다.
그 순간, 시청각실 문이 벌컥 열렸다.
쾅.
"여기서 뭐 하는 거지."
낮고 서늘한 목소리였다.
문 앞에 서 있는 사람은 교복이 아니라 정장을 입은 남자였다.
짙은 눈썹, 날카로운 턱선, 이서준과 똑같은 얼굴.
그러나 눈빛만큼은 완전히 달랐다.
이서준의 눈빛에는 늘 장난기가 서려 있었지만, 이 남자의 눈빛에는 얼음장 같은 차가움만이 감돌았다.
이서율이었다.
윤하늬가 놀라 손을 뺐다.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형이 여긴 왜."
이서준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학교 근처 볼일이 있었다."
이서율의 시선이 두 사람 사이를 오갔다.
느릿하게, 관찰하듯.
마치 실험 결과를 분석하는 사람처럼, 감정 하나 섞이지 않은 시선이었다.
윤하늬를 위아래로 훑어보는 그 눈빛에 서늘한 기운이 감돌았다.
"누구지."
"같은 반 친구야."
"친구끼리 시청각실에서 손을 잡나."
이서준의 심장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숨이 턱 막혔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과제 상의하다가."
"과제 상의를 손잡고 해?"
말투는 부드러웠지만 눈빛은 그렇지 않았다.
그 부드러움이 오히려 더 무섭게 느껴졌다.
윤하늬는 그 눈빛을 정면으로 마주 보며 미소를 지었다.
겁먹은 기색을 조금도 드러내지 않는, 대담한 미소였다.
"안녕하세요. 윤하늬라고 해요. 서준이랑 같은 반이고, 조별 과제 상의 중이었어요. 오해하실 만한 장면이었네요."
이서율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잠깐 윤하늬를 응시하다가, 대신 손목시계를 확인하며 몸을 돌렸다.
"서준이, 오늘 저녁 본가로 와라. 아버지가 찾으신다."
"알았어."
이서준의 대답이 평소보다 한 톤 낮았다.
이서율은 뒤를 돌아보지 않고 걸어 나갔다.
구두 소리가 또각또각 복도를 울렸다.
문이 닫히기 직전, 그의 시선이 다시 한번 윤하늬를 향했다.
짧았지만 분명한 시선이었다.
무언가를 기억해 두려는 사람의 눈빛이었다.
문이 완전히 닫히고서야 윤하늬는 참았던 숨을 길게 내뱉었다.
후우.
"저 사람, 뭔가 무서운데."
"형이 좀 그래."
이서준의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평소의 장난스러움은 완전히 사라진 채였다.
"우리 얘기, 눈치챈 거 아니야?"
"모르겠어."
창밖으로 이서율이 탄 검은 세단이 학교 정문을 빠져나가는 게 보였다.
매끈하고 조용한 그 세단은 마치 주인의 성격을 그대로 닮은 듯했다.
이서준은 그 차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눈을 떼지 못했다.
'저 눈빛, 예전에도 본 적 있어.'
초등학교 때, 자신이 시험에서 90점을 받아 온 날.
이서율은 100점을 받아 오고도 그 점수를 자랑하지 않았다.
그저 이서준의 점수표를 물끄러미 보고는 아무 말 없이 방으로 들어갔었다.
그날 저녁, 부모님은 두 형제를 나란히 앉혀 놓고 이서율의 성적표만 칭찬했다.
이서준은 그 자리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형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알 수 없는 무게가 가슴을 짓누르는 걸 느꼈을 뿐이었다.
그날 이후로 이서준은 그 무표정한 시선이 무섭다는 걸 알았다.
칭찬도 질책도 없는, 그저 관찰하는 듯한 그 시선이.
지금 그 시선이 윤하늬를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서준은 그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형이 관심을 가지면……'
거기까지 생각하다 이서준은 스스로 고개를 저었다.
설마, 아닐 거라고 애써 생각을 접었다.
하지만 시청각실 창밖으로 사라지는 검은 세단을 보는 그의 눈동자에는, 좀처럼 가시지 않는 불안이 짙게 배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