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다음 날 아침, 교실 문을 열자마자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다.
공기가 다르다고 해야 할까.
평소라면 왁자지껄한 소리로 가득 차 있어야 할 교실이 묘하게 조용했다. 몇몇 애들이 나를 힐끔거리다가 얼른 시선을 돌렸다. 그 시선의 방향이 하나같이 다혜 쪽을 향해 있었다는 것도, 나중에야 알았다.
다혜는 자리에 앉아 있었다.
책상 위에 팔을 얹고, 턱을 괸 채로.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웃지도 않고, 화를 내지도 않는, 그 중간 어딘가의 얼굴. 나는 그 얼굴을 너무 잘 알았다. 뭔가 터지기 직전의 얼굴이라는 걸.
가방을 내려놓기도 전에 다혜가 고개를 들었다.
"준호야, 잠깐 나와봐."
목소리는 낮았지만 거부할 수 없는 톤이었다. 몇 년을 함께 지낸 사이라면 알 수 있는, 이건 부탁이 아니라 통보라는 걸.
복도로 나가자 다혜가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아침 햇살이 다혜의 얼굴 반쪽을 비추고 있었는데, 그게 오히려 표정을 더 서늘하게 만들었다.
"너 요즘 이상해졌어."
"뭐가."
일단 되물었다. 이게 어디로 흘러갈지 짐작이 가면서도, 짐작이 가지 않는 척을 해야 했다.
"청소 바꿔주는 거 거부하려고 했다며. 하윤이한테 들었어."
소문이 벌써 퍼져 있었다. 하윤이 그 입 가벼운 걸 알면서도 매번 당하는 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아니,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니지.
"그냥 이번 주는 좀 바빴어서."
"그 여자애 때문이지."
다혜가 정확하게 짚었다.
심장이 한 번 쿵, 내려앉았다.
"윤서연이라는 애. 걔가 뭐라고 했어?"
"아무 말도 안 했어. 그냥..."
말이 이어지지 않았다. 서연이 뭐라고 한 게 아니었다. 그냥 서연을 보고 있으면, 내가 왜 이렇게 살아왔는지 스스로 묻게 되는 것뿐이었다. 그런데 그걸 다혜한테 어떻게 설명해.
"그냥 뭐. 준호야, 넌 원래 이런 애 아니었잖아."
원래 이런 애.
그 말에 뭔가 울컥했다. 목 안쪽이 뜨거워지는 느낌이었다.
"원래 어떤 앤데."
"부탁하면 다 들어주는 애. 그게 너잖아."
다혜의 목소리에 짜증이 섞여 있었다. 팔짱을 낀 손끝이 신경질적으로 팔뚝을 톡톡 두드리고 있었다. 저 버릇, 저것도 알고 있었다. 다혜가 저 짜증을 낼 때는 뒤로 물러서지 않는다는 것도.
"그게 왜 나야. 그냥 내가 거절을 못 했던 거지."
말이 나온 순간, 나 스스로도 놀랐다.
이렇게 말해본 게 처음이었다.
머릿속에서 뭔가 딸깍, 하고 켜지는 느낌. 지금까지 한 번도 입 밖으로 꺼내본 적 없는 말이었다. 나조차도 몰랐던 말. 그런데 이상하게도 입 밖으로 나오자 오히려 명확해졌다.
다혜의 표정이 굳었다.
"뭐?"
되묻는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그 떨림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나 이제 좀... 생각해보려고."
"생각? 갑자기 뭘 생각해?"
다혜의 목소리가 커졌다.
지나가던 애들 몇이 이쪽을 쳐다봤다. 누군가는 걸음을 늦추고, 누군가는 아예 멈춰 서서 구경했다. 복도 저 끝에서 담임이 다가오는 게 보였는데, 다혜는 신경도 안 쓰는 눈치였다.
"너 어릴 때부터 내가 얼마나 챙겨줬는지 알아? 나 아니었으면 넌 학교에서 친구도 없었어."
그 말에 손끝이 차가워졌다.
오래된 상처가 건드려지는 느낌이었다. 손가락 끝을 무의식적으로 꾹 눌렀다. 이렇게 하면 진정이 되는 것도 아닌데, 습관처럼 그러고 있었다.
- "준호야, 나 없으면 넌 아무도 없잖아."
초등학교 시절 다혜가 했던 말이 다시 떠올랐다.
그때는 그게 사실이라고 믿었다. 다혜가 없으면 정말로 나는 아무도 없을 것 같았다. 급식 시간에 혼자 밥을 먹던 그 짧은 며칠, 다혜가 옆에 와서 앉아준 그 순간부터, 나는 다혜한테 뭔가를 빚진 사람처럼 살아왔다.
지금은 그게 다혜의 말이지, 사실이 아니라는 걸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서연을 만나고부터였을까. 아니면 그전부터 이미 알고는 있었는데, 인정할 용기가 없었던 걸까.
"...그게 사실이라고 해도, 지금 이건 아니야."
"뭐가 아닌데?"
"매번 이렇게 시키는 거. 이젠 좀 못 하겠어."
말이 떨렸지만, 끝까지 밀어붙였다. 목소리가 갈라지려는 걸 억지로 눌러 담았다. 이 말을 하는 동안에도 속으로는 계속 물었다. 이게 맞나.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그런데 동시에 또 다른 목소리가 반박했다. 아니야, 이건 해야 하는 말이야.
다혜의 눈빛이 순간 흔들렸다.
놀란 건지, 상처받은 건지 알 수 없었다. 어쩌면 둘 다였을지도.
"...너 진짜 변했네."
다혜가 낮게 중얼거리고 돌아섰다.
걸음이 평소보다 빨랐다. 뒷모습에서 뭔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는데, 그건 아마 내 착각이었을 거다.
나는 그 뒷모습을 보며 서 있었다.
속이 시원한 게 아니라, 오히려 더 무거웠다. 가슴 한복판에 돌덩이 하나가 얹힌 느낌.
이게 맞는 걸까.
확신이 없었다.
교실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유난히 무겁게 느껴졌다. 복도 창문으로 비치는 내 얼굴을 힐끔 봤는데, 낯설었다. 평소의 나 같지 않은, 뭔가 다른 사람의 얼굴이었다.
***
그날 오후, 다혜의 자리가 비어 있었다.
조퇴를 했다고 했다.
교실 안 분위기가 이상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평소라면 다혜 자리에서 시작된 웃음소리가 뒤쪽까지 퍼졌을 텐데, 오늘은 그 자리 근처만 유난히 조용했다.
몇몇 애들이 나를 힐끔거렸다. 시선이 스칠 때마다 등줄기가 뻣뻣해졌다.
쉬는 시간, 누군가 내 뒤로 지나가면서 들으라는 듯 중얼거렸다.
"뭔 일 있었대?"
"몰라, 다혜가 갑자기 조퇴했다는데."
"준호랑 뭐 싸웠다며."
들으라고 하는 말인지, 그냥 흘리는 말인지 구분이 안 갔다. 어느 쪽이든 상처가 되는 건 똑같았다.
하윤이 슬쩍 다가와 옆자리에 앉았다.
"야, 진짜 뭔 일 있었어?"
"그냥... 얘기 좀 했어."
"얘기? 다혜가 조퇴할 정도로?"
하윤의 눈이 반짝였다. 이런 상황에서도 흥미로워하는 저 눈빛이 얄미웠다.
"별거 아니야."
말은 그렇게 했지만, 별거 아니라는 걸 나조차 믿지 않았다.
수업이 끝날 때쯤, 뒷자리에서 누군가가 물었다.
"준호야, 다혜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누군가의 물음이 등 뒤에서 날아왔다. 목소리에 비난이 섞여 있었다.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뭔가 시작됐다는 느낌이 들었다.
돌이킬 수 없는 무언가가.
창밖으로 해가 기울고 있었다. 다혜의 빈자리 위로 그 빛이 비스듬히 떨어졌는데, 나는 그걸 보면서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오늘 복도에서 했던 말들이 계속 머릿속에서 재생됐다. 너 진짜 변했네. 그 말이 비난인지, 슬픔인지, 아니면 다른 무엇인지, 나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이제 예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