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결혼은 대학을 졸업하고 삼 년 뒤에 했다.
그 삼 년 동안 나는 무너지고 있었다.
서지수는 국제 콩쿠르에서 입상하며 이름을 알렸다.
포스터에, 신문에, 라디오 인터뷰에 그 애의 얼굴과 이름이 실렸다.
나는 오디션마다 낙방했다.
한 번은 서류에서 떨어졌다.
한 번은 예선에서 떨어졌다.
한 번은 본선까지 올라갔다가, 마지막 순간 다른 사람의 이름이 불렸다.
떨어질 때마다 이유를 찾으려 했다.
활 잡는 손이 문제인가.
호흡이 문제인가.
아니면 그냥, 재능이 없는 건가.
마지막 오디션에서 떨어진 날, 나는 연습실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바이올린 케이스를 끌어안은 채였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서지수였다.
그 애는 아무 말 없이 다가와 나를 안아주며 말했다.
"괜찮아. 네가 못해서가 아니야."
그 말이 위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더 초라해졌다.
네가 못해서가 아니라면, 그럼 뭔데.
운인가.
타이밍인가.
아니면 그냥, 너와 나 사이에 원래부터 있었던 간격인가.
나는 묻지 못했다.
묻는다고 답이 달라질 것 같지 않았다.
그해, 나는 조용히 바이올린을 내려놓았다.
케이스를 옷장 맨 위칸에 올려두고, 다시는 꺼내지 않았다.
대신 서지수의 매니지먼트를 맡기로 했다.
연습 스케줄 관리, 악기 정비, 언론 대응까지 전부.
처음엔 그것도 음악의 일부라고 생각했다.
연주는 못해도, 연주를 만드는 일을 할 수 있다고.
악보를 넘기고, 조율사를 부르고, 인터뷰 질문지를 미리 검토하는 일들이 쌓여갔다.
서지수는 그런 나를 필요로 했다.
나는 그 필요가 사랑이라고 믿었다.
믿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결혼식 날, 하객들 중에 강현우가 있었다.
서지수의 대학 선배로, 축하 연주를 부탁받았다고 했다.
나는 그 이름을 그날 처음 들었다.
서지수가 청첩장 명단을 정리하며 지나가듯 말했었다.
"현우 선배도 초대했어. 축하 연주 해주기로 했고."
나는 별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피아노 앞에 앉은 강현우가 연주를 시작하자 하객석이 조용해졌다.
쇼팽의 녹턴이었다.
느리고, 낮고, 그러면서도 어딘가 절박한 곡.
왜 결혼식에 저런 곡을 고른 걸까, 그런 생각이 스쳤지만 곧 지나갔다.
서지수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감동해서였는지, 다른 이유였는지 나는 끝내 확신하지 못했다.
드레스 자락을 쥔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는 것만, 그것만 기억에 남았다.
***
결혼 후 몇 해가 지나 서윤이가 태어났다.
분만실 밖에서 세 시간을 기다렸다.
간호사가 나와 아기를 안겨줬을 때, 손이 저릿할 정도로 작았다.
이 작은 것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온몸을 채웠다.
서지수는 산후 반년 만에 무대로 복귀했다.
주변에서는 다들 놀라워했다.
"벌써 복귀하신다고요? 몸은 괜찮으세요?"
서지수는 웃으며 답했다.
"괜찮아요. 무대가 저를 기다리니까요."
나는 육아와 매니지먼트를 동시에 맡았다.
밤새 서윤이를 재우고 새벽에 서지수의 연습 스케줄을 짰다.
수유 시간표와 리허설 시간표가 같은 다이어리에 나란히 적혔다.
새벽 세 시에 서윤이를 안고 흔들면서, 다른 손으로는 악보를 넘겼다.
그 생활에 불만은 없었다.
적어도 그때는 그렇게 믿었다.
피곤해서 눈이 감길 때마다, 이건 내가 선택한 삶이라고 되뇌었다.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다.
나는 그냥,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었을 뿐이다.
서윤이는 자라면서 피아노에 재능을 보였다.
다섯 살에 처음 건반을 두드리던 손가락이 열두 살에는 리스트를 연주할 정도가 됐다.
피아노 선생님이 놀란 얼굴로 말했다.
"이 정도면, 정말 재능이 있는 거예요. 부모님 두 분 다 음악 하셨죠?"
나는 웃으며 답했다.
"아내가 바이올리니스트예요."
내 이름은 그 문장 안에 없었다.
서지수를 닮은 재능이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이상한 감정을 느꼈다.
뿌듯함과 소외감이 동시에 밀려왔다.
서윤이가 건반을 두드릴 때마다, 나는 옷장 맨 위칸에 넣어둔 바이올린 케이스를 떠올렸다.
먼지가 얼마나 쌓였을지 궁금했지만, 확인하지는 않았다.
서지수는 마흔 즈음 서울시립교향악단 콘서트마스터가 됐다.
악단 내에서도, 언론에서도 그 애의 이름은 빛났다.
인터뷰 기사에는 항상 같은 문장이 붙었다.
"국내 클래식계를 대표하는 바이올리니스트."
나는 그 뒤에서 스케줄러이자 매니저, 남편이라는 세 가지 이름으로 존재했다.
음악가로서의 내 이름은 어디서도 불리지 않았다.
가끔 옛 동문들을 만나면 이렇게 소개됐다.
"서지수 씨 남편이세요."
그 소개가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들을 때마다 가슴 한쪽이 서늘해졌다.
그 무렵, 강현우가 다시 우리 삶에 끼어들었다.
서울시향과 협연이 잡힌 것이다.
협연자 강현우.
공연 프로그램 표지에 그 이름이 인쇄된 걸 처음 봤을 때, 나는 그저 우연이라고 생각했다.
십오 년 전 결혼식에서 피아노를 쳤던 그 선배가, 지금은 세계적인 피아니스트가 되어 돌아온 것뿐이라고.
리허설 첫날, 나는 대기실 문 앞에서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를 들었다.
문이 완전히 닫히지 않아, 틈으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오랜만이네요."
강현우의 목소리는 여전히 여유로웠다.
낮고, 느긋하고, 어딘가 확신에 차 있었다.
"…네. 오랜만이에요, 선배님."
서지수의 목소리가 미묘하게 떨렸다.
십오 년 만에 듣는 목소리 앞에서, 그 애의 말투는 마치 대학 시절로 돌아간 듯했다.
"결혼 축하해요, 늦었지만."
"감사합니다."
대화는 짧고 사무적이었다.
문장으로만 보면 아무 문제도 없었다.
하지만 나는 문틈으로 서지수의 옆모습을 봤다.
볼이 붉어져 있었다.
십오 년이 지났는데도 그 홍조는 여전했다.
나는 조용히 문에서 물러났다.
발소리를 죽이며 복도를 걸어 나왔다.
가슴 어딘가가 뻐근하게 조여왔지만, 그 감정에 이름을 붙이고 싶지 않았다.
리허설이 끝난 후 서지수는 유난히 말이 없었다.
차 안에서도, 집에 돌아와서도 저녁 식사 내내 창밖만 보고 있었다.
서윤이가 학원 이야기를 꺼내도 짧게만 대답했다.
평소라면 하나하나 캐물었을 아이인데도, 오늘은 그냥 넘어갔다.
"무슨 일 있어?"
내가 물었다.
숟가락이 그릇에 부딪히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탁.
"아니, 그냥 리허설이 힘들어서."
대답이 너무 빨랐다.
너무 빨라서, 오히려 준비된 대답처럼 들렸다.
나는 그 이상 묻지 않았다.
묻는 순간 무너질 것 같은 무언가가 우리 사이에 있었다.
그날 밤, 서지수는 평소보다 일찍 침실로 들어갔다.
나는 서윤이를 재우고 거실에 앉아 협연 프로그램북을 넘겨봤다.
강현우의 프로필 사진이 실려 있었다.
십오 년 전보다 얼굴선이 조금 날카로워졌을 뿐, 눈빛은 그대로였다.
나는 책자를 덮었다.
***
협연 공연 날, 나는 무대 옆 컨트롤 부스에서 두 사람의 연주를 지켜봤다.
조명이 무대 중앙으로 모이고, 객석의 잡음이 잦아들었다.
강현우가 피아노 앞에 앉았다.
서지수가 바이올린을 들어 어깨에 얹었다.
첫 음이 시작됐다.
강현우의 피아노와 서지수의 바이올린이 얽히며 만들어내는 소리는 숨이 막힐 정도로 아름다웠다.
두 사람은 서로를 거의 보지 않으면서도, 마치 한 사람이 연주하는 것처럼 호흡이 맞았다.
십오 년의 공백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부스 안에서 헤드셋을 낀 채, 두 사람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음악이 절정으로 치달을 때, 서지수의 표정이 카메라 모니터에 클로즈업됐다.
눈을 감고, 미소를 지은 채 연주하고 있었다.
그 미소를 나는 십오 년 동안 몇 번이나 봤던가.
손끝으로 셀 수 있을 정도였다.
연주가 끝나자 관객석에서 기립박수가 터졌다.
나는 손끝이 차가워지는 걸 느끼며 그 박수 소리를 들었다.
헤드셋 너머로도 그 진동이 전해질 만큼 큰 박수였다.
누군가 옆에서 중얼거렸다.
"이게 진짜 명연주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공연이 끝나고 뒤풀이 자리에서, 강현우가 웃으며 서지수에게 말했다.
"우리, 또 이렇게 만날 인연인가 봐요."
서지수는 웃었다.
그 웃음이 유난히 환했다.
결혼 후 오랫동안 보지 못한 웃음이었다.
주변 사람들이 두 사람을 둘러싸고 축하 인사를 건넸다.
나는 그 원 바깥에 서 있었다.
누군가 나에게 술잔을 건네며 물었다.
"매니저님, 오늘 정말 대단했죠?"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대답 말고 다른 말은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그 웃음을 보며, 처음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내가 지난 십오 년간 채워온 자리는, 그저 저 남자가 없던 자리를 대신했던 것뿐일지도 모른다는.
그 생각이 한번 떠오르자, 지워지지 않았다.
연습 스케줄을 짤 때마다, 악기를 조율할 때마다, 언론 대응을 준비할 때마다 내가 채워온 그 모든 자리가.
어쩌면 처음부터 내 것이 아니었던 게 아닐까.
집에 돌아오는 차 안, 서지수는 창밖을 보며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가로등 불빛이 창문을 스칠 때마다 그 애의 옆얼굴이 잠깐씩 밝아졌다가 다시 어두워졌다.
나는 운전대를 잡은 손에 힘을 줬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묻고 싶은 말이 목까지 차올랐다.
아까 그 웃음은 뭐였어.
십오 년 전에도 그렇게 웃었어.
지금도 그 사람 앞에서 그렇게 웃어.
하지만 끝내 삼켰다.
빨간불에 차가 멈췄다.
와이퍼가 유리창을 한 번 훑고 지나갔다.
그 소리만이 차 안을 채웠다.
나는 다시 액셀을 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