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현관문을 열었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신발장이었다.
서지수의 구두가 없었다.
서윤이의 운동화도 없었다.
나는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문을 닫는 것도 잊은 채였다.
등 뒤로 복도의 센서등이 꺼졌다가 다시 켜졌다.
내가 너무 오래 서 있었던 모양이었다.
집 안은 조용했다.
너무 조용했다.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거실 한가운데 놓여 있던 서지수의 바이올린 케이스가 사라진 자리에는 먼지 자국만 사각형으로 남아 있었다.
그 자국이 이상하리만큼 크게 보였다.
나는 신발도 벗지 않고 거실로 걸어 들어갔다.
카펫 위에 남은 발자국.
내 발자국인지, 아니면 이 집을 떠나기 전 서지수가 마지막으로 남긴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소파 위에는 쿠션 세 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늘 네 개였는데.
서윤이가 좋아하던 노란색 쿠션이 없었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목 안쪽이 뜨거워졌다.
식탁 위에는 메모 한 장만 놓여 있었다.
편지 한 통은 없었다.
그게 오히려 더 아팠다.
적어도 미안하다는 말을 직접 들을 수 있기를 기대했었나 보다.
나는 헛웃음이 났다.
식탁 의자를 하나씩 짚어가며 걸었다.
서지수가 앉던 자리, 서윤이가 앉던 자리, 그리고 내가 앉던 자리.
세 개의 의자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가족이라는 형태만 남고 그 안의 사람들은 다 빠져나간 것처럼.
나는 내 자리에 잠시 앉았다.
의자가 차가웠다.
이 집에서 가장 따뜻했던 순간들이 전부 이 식탁 위에서 있었는데.
서윤이 방문을 열었다.
책상 위 스탠드 조명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피아노 위에는 악보 몇 장이 흩어져 있었다.
쇼팽의 녹턴이었다.
딸이 마지막으로 연습했던 곡.
손끝이 차갑게 식었다.
나는 그 악보를 집어 들었다.
곳곳에 서윤이의 필체로 된 메모가 남아 있었다.
'여기 세게', '숨 쉬고', '아빠가 좋아하는 부분'.
마지막 문장에서 눈이 멈췄다.
아빠가 좋아하는 부분.
나는 그 글자를 손끝으로 몇 번이나 문질렀다.
지워지지 않았다.
당연했다.
지워질 리가 없었다.
책장 한쪽에는 서윤이가 다섯 살 때 그린 그림이 액자에 넣어져 걸려 있었다.
셋이서 손을 잡고 있는 그림이었다.
크레파스로 삐뚤빼뚤 그려진 우리 세 사람.
그 그림만은 두고 갔구나.
나는 그 이유를 생각하다가 그만두었다.
이유를 찾는 게 더 아플 것 같았다.
이혼 서류는 벌써 두 달 전에 정리됐다.
변호사 사무실에서 서지수는 담담하게 사인을 했다.
나는 그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손이 떨려서 펜을 놓쳤을 뿐이었다.
변호사가 서류를 다시 정리해서 내 앞으로 밀어줄 때, 서지수는 창밖을 보고 있었다.
한 번도 나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그날 이후로 우리는 몇 번의 문자만 주고받았을 뿐이었다.
짐을 언제 정리할지, 서윤이의 전학 문제는 어떻게 할지.
건조한 문장들.
한때 밤새 통화를 하던 사이였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텅 빈 침실로 들어갔다.
협탁 위에 놓인 결혼사진 액자가 그대로였다.
서지수가 챙겨가지 않은 유일한 물건이었다.
나는 그 사진을 오래 들여다봤다.
스물한 살의 서지수와 나.
웃고 있었다.
그때는 정말로 행복하다고 믿었다.
옷장 문을 열어보았다.
서지수의 옷들이 걸려 있던 자리가 텅 비어 있었다.
옷걸이 몇 개만 덩그러니 걸려 있었다.
빈 옷걸이가 서로 부딪히며 작게 흔들렸다.
챙-.
그 소리가 방 안을 울렸다.
나는 옷장 문을 다시 닫았다.
닫는 손이 떨렸다.
마흔한 살.
피아니스트도 아니고 바이올리니스트도 아닌, 그냥 이도현.
스무 해 넘게 아내의 매니저이자 조력자였고, 딸의 아버지였던 사람.
이제는 그 무엇도 아니었다.
거울 속의 나를 봤다.
넥타이는 아직 매어져 있었다.
오늘 아침에 매고 나간 그대로였다.
출근을 하고, 회사에서 하루를 보내고, 퇴근을 하고, 집에 돌아왔을 뿐인데.
그 짧은 하루 사이에 내 인생이 통째로 비어버렸다는 게 이상했다.
창밖으로 해가 저물고 있었다.
노을이 방 안을 붉게 채웠다.
그 붉음이 이상하게 서글펐다.
나는 침대에 앉아 눈을 감았다.
그러자 기억이, 아주 오래된 기억이 밀려들었다.
---
열네 살이었다.
예술중학교 현악부 오디션장.
나는 바이올린 케이스를 꼭 쥐고 복도에 서 있었다.
긴장해서 손바닥에 땀이 찼다.
복도 창문 너머로 봄바람이 불어왔다.
벚꽃잎이 몇 장 날아들어 바닥에 떨어졌다.
나는 그 꽃잎을 밟지 않으려고 발끝으로 조심스럽게 섰다.
그때 문이 열리고 한 여자아이가 걸어 나왔다.
교복 치마 밑으로 무릎이 까져 있었다.
표정은 태연했다.
방금 오디션을 마친 사람치고는 지나치게 여유로웠다.
그 애는 걸어오다가 내 앞에서 잠깐 멈춰 섰다.
내가 들고 있던 바이올린 케이스를 힐끗 보더니 씩 웃었다.
"너도 바이올린이야?"
그 애가 물었다.
나는 고개만 끄덕였다.
말이 나오지 않았다.
목구멍이 꽉 막힌 것 같았다.
"긴장하지 마. 심사위원들 다 졸려 보이던데."
그 애가 웃었다.
웃는 얼굴이 눈부셨다.
서지수였다.
그 이름을 안 건 며칠 뒤, 합격자 명단이 붙었을 때였다.
1등 서지수.
2등 이도현.
명단 앞에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나는 내 이름을 찾다가 2등이라는 숫자 옆에 적힌 이름을 확인하고서야 안도했다.
그리고 그 위, 1등 자리에 적힌 이름을 다시 봤다.
서지수.
복도에서 만났던 그 여자애였다.
그날부터였다.
1등과 2등.
같은 반, 같은 오케스트라, 같은 무대.
항상 그 애가 앞에 서고 나는 그 뒤에 섰다.
이상한 건, 그게 싫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 애의 연주를 뒤에서 지켜보는 순간이 좋았다.
서지수의 활이 현을 긋는 순간, 공기가 다르게 울렸다.
나는 그 소리에 매번 숨을 죽였다.
연습이 끝나고 나면 나는 항상 마지막까지 연습실에 남았다.
서지수도 그랬다.
둘이 나란히 앉아 각자의 악기를 손질하던 시간이 있었다.
말은 많지 않았다.
그래도 그 침묵이 불편하지 않았다.
그때는 몰랐다.
그 감정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오래, 어떻게 나를 갈아먹을지.
연습실 창문으로 노을이 들어오던 어느 날이었다.
서지수가 활을 내리며 나를 돌아봤다.
"넌 왜 자꾸 나만 봐?"
나는 얼굴이 붉어졌다.
"그냥, 잘 켜서."
서지수는 피식 웃었다.
"거짓말."
그 한마디가 오래 남았다.
거짓말이라니.
그럼 진짜는 뭐였을까.
그때는 나조차도 알지 못했다.
그날 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는 몇 번이나 그 말을 되풀이했다.
거짓말이라니.
내가 뭘 숨기고 있었던 걸까.
열네 살의 나는 그 답을 찾지 못한 채 그 감정을 그냥 가슴 속에 눌러 담았다.
그리고 그 감정은 스무 해가 넘도록 형태를 바꾸며 나를 따라다녔다.
처음엔 동경이었다가, 나중엔 사랑이었다가, 지금은 무엇인지도 모를 그 무언가로.
---
다시 눈을 떴을 때, 방 안은 완전히 어두워져 있었다.
창밖에서 자동차 경적 소리가 짧게 울렸다.
나는 액자를 협탁에 다시 내려놓았다.
탁.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나는 그대로 앉아 어둠 속을 바라보았다.
핸드폰 화면이 잠깐 밝아졌다가 꺼졌다.
부재중 전화도, 문자도 없었다.
서지수에게서도, 서윤이에게서도.
당연한 일인데 그 당연함이 나를 더 무너뜨렸다.
나는 핸드폰을 침대 위에 던져놓고 다시 눈을 감았다.
이 방에서, 이 집에서 앞으로 며칠을, 아니 몇 달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아무런 계획이 없었다.
그 소리가 마치 무언가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 같았다.
나는 알고 있었다.
오늘 밤, 나는 이 텅 빈 집에서 20년치 기억을 전부 되짚게 될 거라는 걸.
그리고 그 기억의 끝에서, 내가 애써 외면해온 진실 하나가 기다리고 있다는 걸.
그 진실이 무엇인지, 나는 아직 마주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어둠 속에서 나는 이미 그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멈출 수 없다는 걸, 나는 그때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