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그 고백, 방송사고였다

2화

다음 날 아침, 교실 문을 열자마자 시선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삼십여 개의 눈동자가 동시에 나를 향해 돌아가는 그 순간, 나는 문고리를 잡은 손에 힘이 빠지는 걸 느꼈다.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그대로 자리에 앉았다. 책상 위에 누군가 종이비행기를 접어 올려놓았다. 펴보니 커플이라는 글자가 큼지막하게 적혀 있었다. 글자 아래에는 삐뚤빼뚤한 하트도 몇 개 그려져 있었다. 나는 그걸 조용히 구겨 서랍에 넣었다. 구겨진 종이가 서랍 속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마저 크게 들렸다. 한빛방송의 청춘 응원 기획은 그날 저녁 지역 방송에 짧게 나갔다. 나는 보지 않았다. 볼 필요도 없었다. 어차피 몇 초짜리 화면일 텐데, 그 몇 초가 만들어낼 파장은 상상 이상이었다. 그날 밤부터 반 단체 채팅방은 폭발적으로 울렸다. 알림음이 십 초 간격으로 울리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그냥 진동으로 바뀌었다. 도윤이 대박이다, 서연이 왜 받아준 거야, 둘이 사귀는 거 맞냐. 질문들이 쏟아졌지만 나는 답을 하지 않았다. 답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화면 위로 스크롤되는 말풍선들을 보다가, 결국 채팅방 알림을 꺼버렸다. 박태현은 그 와중에도 신이 나 있었다. 야, 너 완전 유명해졌어. 학교 홈페이지에도 올라왔대. 그는 내 어깨를 툭툭 치며 웃었다. 그의 목소리엔 죄책감이 전혀 없었다. 나는 그게 이상했다. 이 모든 일을 시작한 게 그였는데, 그는 마치 남의 일처럼 즐기고 있었다. 심지어 자기 휴대폰으로 지역 방송 클립을 다시 돌려보며 여기 나온 표정 봐, 완전 웃겨, 하고 낄낄거리기까지 했다. 나는 그 애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할 말이 목까지 차올랐지만, 뱉는 순간 더 큰 소란이 될 것 같아 삼켰다. 삼킨 말들이 명치 어딘가에 쌓여 묵직하게 눌러앉는 기분이었다. 쉬는 시간마다 아이들이 몰려왔다. 진짜 사귀는 거야? 언제부터 좋아했어? 첫 데이트는 어디서 할 거야? 질문들은 하나같이 나를 향해 있었지만, 정작 나에 대한 관심은 없었다. 그들이 궁금한 건 이야기였다. 나는 그저 그 이야기의 소재였을 뿐이었다. 누군가는 휴대폰을 들이대며 사진 한 장만, 하고 졸랐고, 나는 손으로 카메라를 가리며 자리를 피했다. 화장실 앞에서도, 매점 앞에서도 시선은 계속 따라붙었다. 나는 점점 사람이 많은 곳을 피해 다니는 습관이 생겼다. 유서연은 그날 나와 눈을 한 번도 마주치지 않았다. 복도에서 스쳐 지나갈 때도, 급식실 배식대 앞에서 마주쳤을 때도 그 애는 시선을 바닥에 고정한 채 지나갔다. 나는 그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게, 지금 상황에서 가장 안전한 방법일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궁금했다. 그 애는 지금 나만큼 숨이 막힐까, 아니면 이 소란을 아무렇지 않게 견디고 있을까. 그날 밤, 나는 침대에 누워 천장을 보며 생각했다. 왜 그 애는 거절하지 않았을까. 나는 그 애가 나를 몰래 좋아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애초에 접점이 없었다. 같은 반이 된 지도 얼마 되지 않았고, 대화를 나눈 기억도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렇다면 남는 답은 하나였다. 이 상황을 즐기고 싶었거나,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었거나. 나는 후자일 가능성을 애써 배제했다.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더 복잡해질 것 같았다. 나는 몇 번이나 몸을 뒤척이다가, 결국 새벽이 다 되어서야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상황은 더 나빠졌다. 누군가 내 신발장에 편지를 넣어놨다.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유서연이 아깝다는 말이 적혀 있었다. 필체는 낯설었지만 내용은 낯설지 않았다. 다들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나는 그 편지를 읽고 신발장 문을 세게 닫았다. 손마디가 하얗게 변할 정도로 힘이 들어갔다. 문이 쾅, 소리를 내며 닫혔고 지나가던 몇몇이 흠칫 놀라 나를 돌아봤다. 나는 그 시선들을 무시한 채 교실로 향했다. 점심시간, 급식실에서 누군가 나를 향해 소리쳤다. 야, 강도윤! 대신 고백해줘, 나도! 웃음소리가 뒤따랐다. 나는 그 소리를 못 들은 척 식판을 들고 자리를 옮겼다. 자리를 옮길수록 시선은 더 따라붙었다. 젓가락을 들었지만 밥알이 목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국물을 몇 번 떠먹다가 그것도 그만두었다. 나는 결국 식판을 반도 못 비운 채 급식실을 나왔다. 식판을 반납대에 올려놓을 때, 잔반통에 밥과 반찬이 그대로 쏟아지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교실로 돌아가는 길, 복도 창문에 내 얼굴이 비쳤다. 걸음을 멈추고 그 얼굴을 다시 들여다봤다. 표정이 낯설었다. 원래도 말이 없는 편이었지만, 지금은 아예 표정이 사라진 것 같았다. 눈 밑에는 그늘이 앉아 있었고, 입가는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나는 그 얼굴을 보고 잠깐 멈춰 섰다. 이게 정말 나인가. 이렇게 지쳐 보이는 얼굴이, 정말 나인가. 유리창 속의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날 오후, 나는 처음으로 학교를 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정확히는, 다음 날 아침에 학교에 오지 않는 방법을 생각했다. 아프다고 할까. 아니면 그냥 안 나갈까. 부모님께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생각하다가, 결국 아무 결론도 내리지 못한 채 하루가 끝났다. 수업 시간에는 칠판 글씨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선생님이 이름을 불러도 한 박자 늦게 반응했다. 집에 돌아와서도 휴대폰을 열지 못했다. 알림이 계속 쌓이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확인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화면 위쪽에 뜬 숫자만 봐도 가슴이 답답해졌다. 나는 침대에 누워 이불을 머리끝까지 끌어올렸다. 어둠 속에서 나는 처음으로 소리 없이 숨을 몰아쉬었다. 내가 잘못한 게 없는데, 왜 이렇게 숨이 막히는 걸까. 이불 안은 덥고 답답했지만, 그 답답함이 오히려 안전하게 느껴졌다. 다음 날 아침, 알람이 울렸지만 나는 이불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알람 소리가 몇 번이나 반복되다가 저절로 꺼졌다. 엄마가 방문을 두드리며 늦었다고 소리쳤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문 너머로 엄마가 한숨을 쉬는 소리가 들렸다. 처음으로, 학교에 가지 않겠다는 생각이 실제 행동으로 이어지려는 순간이었다. 이불 속에서 나는 눈을 감은 채 오늘 하루만, 딱 하루만 아무도 마주치지 않고 싶다는 생각을 되뇌었다.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였다. 나는 반사적으로 화면을 확인했다. 문자였다. 짧은 한 문장. 나 유서연이야. 잠깐 얘기하고 싶은데, 지금 학교 앞 편의점으로 나올 수 있어. 나는 그 문자를 몇 번이나 다시 읽었다. 글자 하나하나를 눈으로 짚어가며 읽었는데도, 처음 읽었을 때와 마지막에 읽었을 때의 의미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심장이 이상하게 뛰기 시작했다. 이불을 걷어내고 몸을 일으키는 손끝이 차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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