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우리 사귄다고 해버렸다

3화

딸랑. 교실 문에 달린 종이 울릴 때마다 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서아가 들어오나 싶어서. 하지만 그날 이후로 서아는 한 번도 내 쪽을 먼저 쳐다본 적이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나뿐만 아니라 태오까지도 최대한 거리를 두려는 것처럼 보였다. 급식실에서도 다른 자리에 앉았고, 쉬는 시간마다 화장실이나 도서관으로 사라졌다. 예전 같았으면 종 치기 전부터 우리 자리로 슬금슬금 다가와 태오의 필통을 뒤적이며 장난을 걸었을 텐데, 이제는 복도에서 마주쳐도 시선을 아래로 내리고 걸음을 빨리했다. 태오는 그런 서아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쟤 왜 저래? 우리한테 화났나?"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목이 메는 느낌이 들었지만, 그걸 입 밖으로 꺼낼 수는 없었다. 대신 괜히 책상 위에 놓인 지우개를 손끝으로 굴리며 시선을 피했다. "야, 근데 진짜야?" 태오가 어느 날 점심시간에 슬쩍 물었다. 급식판을 든 채로, 목소리를 낮추고서. 사귀는 거 진짜냐는 질문에, 나는 순간 숨이 턱 막히는 걸 느끼며 대답을 고르지 못했다. 아니라고 말해야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서아가 태오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말해버리는 것도, 그 거짓말을 정정하는 것도, 어느 쪽이든 서아에게 더 큰 상처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 발목을 붙잡았다. 숟가락을 든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국물이 식어가는 게 느껴질 정도로 오래. "그냥…… 뭐, 그렇지." 나는 결국 애매하게 대답을 흐렸다. 태오는 그 이상 캐묻지 않았지만, 어딘가 미묘하게 굳어진 표정으로 잠시 나를 쳐다봤다. 눈썹 사이가 살짝 좁아지고, 입꼬리가 아래로 처지는 그 표정. 화가 난 건지, 서운한 건지, 그도 아니면 다른 무언가인지 구분할 수 없는 얼굴이었다. 그 시선이 오래도록 마음에 걸렸다. 그날 오후 수업 시간에도, 야간자율학습 시간에도, 태오의 그 표정만 계속 떠올랐다. 며칠 뒤, 방과 후 복도에서 우연히 서아와 마주쳤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시간이라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이 주황빛으로 물들어 있었고, 복도에는 우리 둘뿐이었다. 서아는 나를 보자마자 걸음을 멈추더니, 잠시 망설이다가 다가왔다. 신발주머니를 손에 쥔 손가락이 하얗게 될 정도로 힘이 들어가 있었다. "저기, 도현아. 그날 왜 그런 말을 한 거야?"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나는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몰라 그냥 침묵을 지켰다. 창밖에서 운동장을 뛰는 아이들의 함성 소리가 아득하게 들려왔다. "나 태오한테 진심이었는데. 그렇게 말하면 나는 이제…… 어떻게 다가가야 해." 서아의 눈가가 붉어지는 걸 보면서, 나는 속으로 뭔가가 뜨겁게 치밀어 오르는 걸 느꼈다. 그게 죄책감인지, 다른 무엇인지 나조차 알 수 없었다. 심장이 갈 곳을 잃은 것처럼 이상하게 뛰었다. "그런 거…… 어차피 언젠가는 끝나는 거잖아." 나도 모르게 그런 말이 튀어나왔다. 입에서 말이 흘러나가는 순간에도, 나는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 "연애는 길어야 몇 년이지만, 우정은 훨씬 오래 가. 태오랑 나는 벌써 몇 년째 친구고, 앞으로도 계속 친구일 거야. 근데 너랑 태오가 사귄다고 해서 그게 얼마나 갈 것 같아." 말을 뱉으면서도, 그게 얼마나 잔인한 말인지 인지하지 못했다. 서아의 얼굴이 순간 얼어붙었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옴짝달싹 못한 채 나를 바라보는 그 눈동자에서, 나는 처음으로 진짜 상처받은 사람의 표정을 봤다. 눈동자가 사시나무처럼 흔들리다가, 이내 물기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 대신 거짓말을 한 거야? 내가 상처받을까 봐?" 서아가 겨우 뱉어낸 말에, 나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목이 메어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그저 서아가 등을 돌려 복도 끝으로 사라지는 뒷모습만 바라볼 뿐이었다. 신발주머니를 꽉 쥔 어깨가 작게 떨리고 있었다. 그날 이후로 서아는 더욱 말이 없어졌다. 태오와도, 나와도 거리를 두었고, 반 아이들과의 대화에서도 예전의 그 밝은 웃음이 점점 사라져갔다. 급식실에서 밥을 먹을 때도 혼자였고, 체육 시간에 조를 짤 때도 항상 마지막까지 남아 있었다. 그 변화를 지켜보면서, 나는 뭔가 잘못됐다는 걸 알면서도 정정할 타이밍을 계속 놓치고 있었다. 며칠 동안 나는 서아에게 다가가려 몇 번이나 시도했다. 복도에서 마주치면 이름을 부르려다가 삼켰고, 쉬는 시간에 문자를 보내려다가 지웠다. "미안해, 사실은"으로 시작하는 문장을 몇 번이나 썼다가 지웠는지 모른다. 그 문장을 완성하지 못한 채로, 시간만 흘러갔다. 한편 태오는 이상하게도 서아에게 더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쟤 요즘 이상하지 않아? 무슨 일 있나." 점심시간마다 서아 쪽을 흘깃거리는 태오의 시선을 보면서, 나는 뭔가 위험한 흐름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걸 직감했다. 태오는 급식판을 내려놓으면서도 서아가 앉은 자리를 확인했고, 체육 시간이 끝나고 반으로 돌아올 때도 서아가 혼자 걸어가는 걸 보면 잠시 걸음을 늦췄다. 그럴 때마다 내 속에서는 뭔가 서늘한 게 스쳐 지나갔다. 태오가 서아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걸까, 아니면 그냥 친구로서의 걱정일까. 구분이 되지 않았다. 구분하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 답이 어느 쪽이든, 나는 그걸 마주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야, 이도현." 어느 날 방과 후, 태오가 갑자기 정색한 얼굴로 나를 불렀다. 교실에는 우리 둘밖에 남아 있지 않았고, 창밖으로는 어느새 저녁 하늘이 짙어지고 있었다. 태오는 가방을 어깨에 걸친 채로 나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진짜 서아랑 사귀는 거 맞아? 아니면 뭔데." 눈이 마주치는 순간, 나는 그 안에 담긴 감정이 단순한 의구심이 아니라는 걸 느꼈다. 태오의 눈빛은 평소처럼 장난스럽지 않았다. 뭔가를 확인하려는 듯, 혹은 확인하고 싶지 않은 걸 억지로 캐묻는 듯한 얼굴이었다. 교실 안의 공기가 순식간에 무거워졌고, 창밖에서 들려오던 아이들의 웃음소리마저 멀어지는 것 같았다. 뭔가 대답해야 하는데, 입이 열리지 않았다. 심장이 갓 잡은 활어처럼 펄떡였다. 태오는 대답을 기다리며 나를 계속 쳐다보고 있었고, 나는 그 시선을 피하지도, 마주하지도 못한 채로 그저 굳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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