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쉬는 시간마다 셋이 함께 몰려다니는 일이 반복되면서, 어느새 그게 당연한 흐름처럼 자리를 잡았다. 종이 울리기 전부터 태오는 이미 내 자리 옆에 와서 어깨를 툭툭 치고 있었고, 서아는 그런 태오를 발견하면 읽던 책을 덮으며 자리에서 일어나곤 했다. 태오는 반 아이들 대부분과 벌써 이름을 트고 지냈지만, 정작 붙어 다니는 건 나와 서아뿐이었다. 반 아이들이 태오를 부를 때마다 손을 흔들어주는 그 여유로운 모습을, 나는 옆에서 지켜보며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삼 년 내내 같은 반 아이들 얼굴도 다 못 외웠는데, 태오는 전학 온 지 한 달도 안 돼서 학년 전체를 꿰고 있는 것 같았다.
서아는 유난히 태오 곁에서 말이 많아졌다. 평소라면 조용히 웃고 마는 성격인데, 태오가 뭐라고 한마디 하면 눈을 반짝이며 몸을 앞으로 기울이곤 했다. 손끝으로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는 버릇도 그때부터 생긴 것 같았다.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는 게 나쁘지 않았다. 오랜 친구와 새로운 인연이 자연스럽게 섞이는 느낌이 좋았달까. 셋이 나란히 걸을 때면 항상 서아가 태오 옆에, 내가 그 옆에 서는 순서가 자연스럽게 정해졌다.
점심시간, 급식실로 향하는 복도에서 태오가 슬쩍 옆구리를 찔렀다.
"야, 서아 되게 밝아졌더라. 원래 저런 성격이야?"
그 물음에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중학교 때는 안 그랬어. 조용했지. 급식실에서도 혼자 밥 먹는 애였는데."
"그럼 왜 바뀐 건데?"
태오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을 때, 나는 별생각 없이 대답했다.
"몰라. 고등학교 오면서 사람이 좀 바뀌었나 보지."
태오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곧 별 뜻 없다는 듯 웃어넘겼고, 나는 그 표정을 보면서도 뭔가 짚이는 게 있었지만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급식실 자리에 앉아 셋이 마주보고 밥을 먹는 동안, 서아는 유난히 태오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웃음을 터뜨렸다. 태오가 젓가락으로 반찬을 집다가 떨어뜨린 것 같은, 별것도 아닌 일에도 서아는 배를 잡고 웃었다. 그 웃음소리가 예전 학원에서 봤던 그 무표정한 얼굴과 겹쳐지며, 나는 속으로 뭔가 어색한 기시감을 느꼈다. 사람이 이렇게까지 달라질 수 있나. 그때의 서아는 늘 문제집만 들여다보며 누구와도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했던 애였는데.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나는 문득 서아의 시선이 태오에게만 고정되어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눈치챘다. 나와 이야기할 때는 눈이 식판이나 창밖을 향해 있다가도, 태오가 입을 열면 곧바로 그쪽으로 돌아갔다. 그 미묘한 시선의 방향을 알아챈 순간, 나는 괜히 물컵을 만지작거리며 딴청을 피웠다.
방과 후, 태오가 축구부 견학을 다녀오겠다며 먼저 자리를 떴다. 운동장으로 뛰어가는 태오의 뒷모습이 창밖으로 작아질 때까지, 서아는 창가에 서서 그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와 서아만 남은 교실에서, 서아가 책상에 턱을 괴며 물었다.
"태오, 원래 저런 성격이야? 되게…… 사람 편하게 해주는 것 같아."
말투에 묻어난 미묘한 떨림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손가락으로 책상 모서리를 톡톡 두드리는 서아의 손끝이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조용히 서아를 바라보다가, 나는 문득 별생각 없이 던졌다.
"관심 있어?"
서아의 얼굴이 순간 홧홧하게 붉어졌다.
"그런 거 아니거든."
말끝을 흐리며 시선을 피하는 그 모습이, 예전 학원 자리에서 문제집만 들여다보던 얼굴과 다시 겹쳐졌다. 저 표정, 뭔가 감추고 있을 때 나오는 표정인데. 나는 안경을 슬쩍 밀어 올리며 그 얼굴을 관찰했다. 목덜미까지 발갛게 달아오른 걸 보니, 그런 거 아니라는 말이 얼마나 힘없는 부정인지 알 수 있었다. 나는 굳이 더 캐묻지 않고 그냥 웃어넘겼다.
다음 날, 태오가 축구부 유니폼을 받아왔다며 자랑스럽게 보여줬고, 서아는 그 모습을 보며 또 한참을 웃었다. 태오가 어색하게 유니폼을 걸치고 교실 앞에서 한 바퀴 도는 모습에, 반 아이들도 다들 웃음을 터뜨렸지만 서아의 웃음소리는 유난히 크고 길게 이어졌다. 그 웃음소리가 교실을 채울 때마다, 나는 이상하게 마음 한구석이 간질거렸다. 뭐지, 이 느낌은.
며칠 동안 나는 그 감정의 정체를 알아내려 애썼지만, 딱히 이름을 붙일 수 없었다. 서아가 웃을 때마다 속이 살짝 뒤틀리는 것 같은, 설명하기 어려운 불편함이었다. 서아를 위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왜 자꾸 목 안쪽이 답답해지는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며칠 뒤, 반 대표로 뽑힌 태오가 학급 임원 선거 준비로 정신없이 바쁜 사이, 서아가 나를 급식실 밖 복도로 불러냈다. 점심시간이 끝날 무렵이라 복도에는 아이들 몇몇만 지나다니고 있었다. 서아는 벽 쪽으로 나를 데려가더니, 한참을 말없이 손가락만 꼬았다.
"저기, 도현아. 나 태오한테…… 좋아한다고 말하면 안 될까?"
그 말을 꺼내는 서아의 목소리가 사시나무처럼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두 손을 꼭 맞잡고 있는 모습이, 마치 거미줄에 걸린 나비 같았다. 나는 잠시 그 손을 내려다보았다.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될 정도로 세게 맞잡고 있는 그 손이, 서아가 지금 얼마나 큰 결심을 하고 있는지 말해주는 듯했다.
"그렇게 물어보는 거면, 이미 마음 정한 거 아니야?"
내가 되묻자, 서아는 고개를 숙이며 작게 끄덕였다.
"응. 그런데 무서워서. 만약에 태오가 이상하게 생각하면 어떡하지. 지금처럼 셋이 편하게 지내는 것도 다 깨지면 어떡해."
그 걱정이 진심으로 느껴져서,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잠시 침묵했다. 서아의 눈에 눈물이 살짝 고이는 게 보였다. 나는 이럴 때 뭐라고 위로해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그때, 복도 저편에서 태오가 이쪽을 향해 걸어오는 게 보였다. 손을 흔들며 다가오는 그 얼굴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입에서 이상한 말이 튀어나왔다.
"야, 태오. 서아랑 나, 사귀는 사이야."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지금도 모르겠다. 그냥 순간적으로, 서아의 감정을 대신 감춰줘야 할 것 같다는 이상한 책임감 같은 게 들었던 것 같다. 아니면, 태오와 서아가 가까워지는 모습을 더 이상 지켜보고 싶지 않았던 건지도. 그 순간에는 어떤 이유였는지조차 명확하지 않았다.
태오는 걸음을 멈추고 눈을 크게 뜨더니, 곧 어색하게 웃으며 물었다.
"어? 진짜?"
그런데 서아의 얼굴에서, 순식간에 핏기가 사라졌다.
하얗게 질린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서아의 눈동자가, 마치 물 밖으로 던져진 물고기처럼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입술이 뻐끔뻐끔 움직였지만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뭐?"
서아가 겨우 목소리를 뱉어냈을 때, 나는 그제야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았다. 손끝이 차갑게 식어가는 게 느껴졌다. 아니라고, 지금 한 말은 취소한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목이 꽉 막혀서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이미 태오는 축하한다는 듯 내 등을 두드리고 있었고, 서아는 그 자리에 얼어붙은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둘이 사귀는지 몰랐네. 언제부터야?"
태오가 아무 의심 없이 묻는 그 목소리가, 이상하게 멀리서 들려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다물었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서아의 얼굴만 바라보았다.
서아의 눈동자에는 배신감인지 당혹감인지 알 수 없는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 나를 향한 그 눈빛이 마치 처음 보는 사람을 보는 것 같아서, 나는 순간 소름이 돋았다. 복도의 공기가 순식간에 무거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