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버림받은 영애의 약초밭

1화

마차 두 대가 저택 앞뜰에 나란히 서 있었다. 하나는 오빠 강태민을 위한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동생 강하은을 위한 것이었다. 두 마차 모두 금박으로 가문의 문장을 새긴 최고급 사륜마차였다. 바퀴살까지 은으로 마감한 것을 보면 아버지가 이 순간을 위해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나를 위한 마차는 없었다. 앞뜰 한쪽에 세워둔 낡은 짐수레 하나가 내 몫이라면 몫이었을 뿐이다. "서윤아, 이제 짐을 정리해야겠구나." 아버지 강준혁 남작의 목소리는 언제나처럼 서늘했다. 날씨는 맑았지만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공기가 더 차가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그 말이 어떤 의미인지 이미 알고 있었다. '왕도로 가는 짐이 아니다.' 아버지는 오빠와 동생을 번갈아 바라보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밝은 금발의 태민 오빠는 늘 그렇듯 표정 없이 서 있었고, 화려한 빨간 머리의 하은은 벌써부터 왕도 이야기에 눈을 빛내고 있었다. 하은은 벌써 마차 창문에 매달려 손잡이를 만지며 신이 나 있었다. "오빠, 왕도에 가면 진짜 큰 분수 있는 광장 있대요! 저 거기 꼭 가볼 거예요!" 태민 오빠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그저 고개를 살짝 끄덕였을 뿐이다. 둘 다 나와는 다른 얼굴빛을 가지고 있었다. 금발과 빨간 머리, 그리고 밤색 머리. 같은 부모에게서 나왔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나는 이 저택 안에서 늘 이질적인 존재였다. "저는……" 내가 입을 열자 어머니 이수아 남작부인이 먼저 말을 잘랐다. "너는 청하에 남을 것이다." 담담한 어조였지만 그 안에는 결코 되돌릴 수 없는 결정이 담겨 있었다. 어머니는 내 얼굴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고 손에 든 장부를 넘기고 있었다. 그 무심함이 오히려 더 명확한 대답이었다. 나는 그 말에서 아무런 여지도 찾을 수 없었다. "왕립학원은 가문의 얼굴을 세우는 자리다." 아버지가 덧붙였다. "네가 갈 자리는 아니지."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는 정확히 이해했다. 밤색 머리와 진한 남색 눈, 특별한 것 하나 없는 평범한 얼굴. 부모의 기준에서 나는 애초에 자격이 없었던 것이다. 가슴 한쪽이 서서히 얼어붙는 느낌이 들었다. 분노보다 먼저 온 것은 이상하게도 차분함이었다. '이미 예상했던 일이다.' 사실 이런 순간이 올 것이라는 걸 나는 몇 년 전부터 알고 있었다. 가족 식사 자리에서 은근슬쩍 나를 빼놓는 대화, 생일마다 유독 소홀했던 선물, 그리고 무엇보다 아버지가 나를 부를 때 한 번도 이름 앞에 '사랑하는'이라는 수식어를 붙이지 않았다는 사실. 그 모든 것들이 쌓여 오늘 이 결과를 만들어낸 것뿐이다. 나는 오랫동안 이 순간을 준비해온 것처럼 담담하게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짧은 대답이었다. 그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없었다. 하은이 나를 힐끗 바라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언니는 원래 여기 어울려요." 귀엽고 앙큼한 목소리였지만 그 안에는 명백한 비웃음이 섞여 있었다. 하은의 저 미소는 늘 저랬다. 겉으로는 순진해 보이지만 그 속에는 날카로운 가시가 숨어 있었다. 나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대꾸할 가치조차 없었다. 태민 오빠는 그저 시선을 피할 뿐이었다. 오빠는 언제나 그런 식이었다. 무언가에 반대하지도, 동조하지도 않고 그저 흘러가는 대로 있는 사람. 한 번이라도 나를 위해 목소리를 내준 적이 있었던가. 기억을 더듬어봐도 그런 순간은 없었다. 마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먼지가 뭉글하게 피어올랐다. 바퀴가 자갈길을 밟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나는 그 자리에 서서 마차가 멀어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마차가 저택 정문을 완전히 빠져나갈 때까지, 나는 단 한 번도 눈을 돌리지 않았다. '저 문 뒤에 내가 있을 자리는 없다.' 그 생각이 들자 신기하게도 눈물이 나지 않았다. 오히려 등줄기가 차갑게 식어가는 감각만이 선명했다. 바람이 불어와 옷자락을 흔들었지만, 그 서늘함조차 낯설지 않았다. 집사 오봉수가 조용히 다가와 내 옆에 섰다. 온화한 눈빛의 노년의 남자였다. 수십 년째 이 저택을 지켜온 사람답게, 그의 발걸음은 소리도 없이 조심스러웠다. "아가씨, 안으로 드시지요." 그 목소리에는 미세한 조심스러움이 배어 있었다. 나는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 내일부터 평민학당에 다니게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그가 조심스레 덧붙였다. 순간 발밑이 살짝 흔들리는 것 같았다. 평민학당이라니. 귀족가의 자제가 평민들과 같은 교실에 앉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는 잘 알고 있었다. 귀족 신분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버림받은 존재. 딱 그 정도의 취급이라는 뜻이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이 결정에 대해 나에게 단 한마디도 미리 언급하지 않았다. 집사의 입을 통해 전해 듣는 것조차 이상하지 않을 만큼, 나는 이 집안에서 정보의 우선순위에서도 밀려나 있었던 것이다. "오봉수 아저씨는… 언제부터 알고 계셨어요?" 내가 묻자 오봉수는 잠시 눈을 내리깔았다. "열흘 전쯤부터 남작님께서 지시하신 걸로 압니다." 열흘. 열흘이나 지나서야 나에게 전해진 소식이었다. 그 시간 동안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평소와 같이 웃고, 밥을 먹고, 잠을 잤다. 그 사실이 우습기도 하고, 서글프기도 했다. '그래도 상관없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려 애썼다. 적어도 이곳에서는 아무도 나를 비웃지 않을 것이다. 아니, 그것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 평민학당의 아이들이 귀족 출신인 나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나는 전혀 알 수 없었다. 경계할지, 시기할지, 아니면 아예 무시할지. 어느 쪽이든 유쾌한 결말은 아닐 것 같았다. 오봉수는 내 표정을 살피다가 나지막이 덧붙였다. "아가씨, 필요한 것이 있으시면 언제든 말씀해 주십시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돕겠습니다." 그 말이 진심인지 형식적인 배려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위로가 되었다. "감사합니다." 나는 짧게 답하고 저택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복도를 지나는 동안 벽에 걸린 가족 초상화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버지, 어머니, 태민 오빠, 하은. 그리고 그 옆에는 언제나 조금 어색한 자세로 서 있는 내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 화가가 일부러 그런 것인지, 아니면 내가 정말 그렇게 서 있었던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그림 속의 나는 늘 가족들과 조금 떨어진 자리에 그려져 있었다. 그날 밤 나는 방 안에서 짐을 꾸리며 오래도록 창밖을 바라보았다. 달빛이 유난히 서늘하게 느껴졌다. 옷장을 열어 옷가지를 정리하는데, 화려한 드레스들 사이에서 유독 낡고 헐렁한 평민용 옷 몇 벌이 눈에 띄었다. 누군가가 미리 준비해둔 것이 분명했다. 그 옷을 손에 쥐는 순간, 나는 내 처지를 다시 한번 명확하게 깨달았다. 이제 나는 더 이상 귀족 영애로서의 삶을 이어갈 수 없다는 것을. 창밖으로 보이는 정원의 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렸다. 그 흔들림이 마치 내 마음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내일부터의 삶은 완전히 다른 것이 될 것이다. 그 사실만은 분명했다. 그리고 그 낯선 삶 속에서 내가 무엇을 마주하게 될지, 나는 아직 아무것도 짐작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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