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다음 며칠은 이상하게 조용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창문을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 골목엔 아무것도 없었다. 어제도, 그 전날도.
서윤도 유나도 복도에서 마주치지 않았다. 신발장 앞에도 아무도 없었다. 급식실도 평소처럼 조용했다. 식판을 든 아이들의 웅성거림, 숟가락 부딪히는 소리, 창밖으로 쏟아지는 오후 햇살까지 모든 게 평범했다.
너무 평범해서 이상했다.
안심하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조금씩 긴장이 풀렸다. 어깨에 들어가 있던 힘이 빠지고, 걸음걸이도 자연스러워졌다. 사흘째 되던 날엔 이대로 아무 일도 없이 지나갈지도 모른다는 헛된 기대까지 품었다.
구윤재만이 가끔 이상한 얘기를 들려줬다.
"야, 너 요즘 그 자매 안 보이지?"
점심시간, 급식실 구석 자리였다. 창가라 볕이 잘 들어서 윤재는 늘 이 자리를 고집했다. 오늘은 카레였다. 노란 소스가 식판 위에서 흔들렸다.
"그런 것 같은데."
"안 보이는 게 아니라 뭘 준비하고 있대."
숟가락을 멈췄다.
"무슨 소리야."
"애들 얘기 들어보니까, 서윤이 요즘 우리 반 정보 계속 캐고 다닌다더라. 네 동선, 친한 애들, 취미 뭐 그런 거."
손끝이 차가워졌다.
"동선을 왜 캐."
"몰라, 나도. 근데 어떤 애는 서윤이 학원 데스크에 있는 애한테도 물어봤다던데. 너 그 근처 학원 다니냐?"
다니지 않는다. 다행이었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조사하고 있다는 사실이 등골을 서늘하게 했다. 카레 냄새가 갑자기 역겹게 느껴졌다.
"확실한 거야, 그 얘기?"
"내가 직접 들은 건 아니고. 2반 애가 3반 애한테 들었대. 근데 3반이 걔네 반 부반장이랑 친하잖아. 그러니까 완전 헛소리는 아닐걸."
건너 건너 건너 들은 얘기. 그런데도 이상하게 신빙성 있게 느껴졌다.
"유나는."
"유나는 좀 다른 식이야. 걘 그냥 대놓고 물어봐. '한도영이 뭘 좋아해요' 이런 식으로. 근데 이상하게 애들이 다 대답해줘. 걘 왜인지 미워할 수가 없대."
윤재는 카레를 한 숟갈 뜨며 덧붙였다.
"솔직히 나도 좀 그래. 걘 웃는 게 이상하게 예뻐서 물어보면 그냥 대답하게 돼."
숨이 답답했다.
"넌 뭘 대답했는데."
"별거 없어. 너 매점에서 뭐 사 먹는지, 뭐 그런 정도."
작은 정보 하나하나가 모여서 무언가를 이루고 있었다. 그게 뭔지 알 수 없다는 게 더 무서웠다.
"그리고."
구윤재가 목소리를 낮췄다. 주변을 한 번 둘러보고 나서였다.
"이건 좀 다른 얘긴데. 너 그 자매 아버지가 뭐 하시는 분인지 알아?"
"모르지."
"소문에는 무슨 그룹 회장이라던데. 확실친 않아. 근데 걔들 집에 기사가 딸린 차 온다는 얘기도 있고."
순간 어제 밤에 봤던 검은 세단이 떠올랐다. 매끈한 차체, 조용히 골목을 훑고 지나가는 헤드라이트.
"검은 세단?"
"어, 맞아. 너 봤어?"
"아니, 그냥."
거짓말이었다. 그건 골목 근처였다. 자매의 집 방향과는 상관없는 위치였다. 아니, 상관이 있는지 없는지 나는 확신할 수 없었다. 애초에 그 자매가 어디 사는지도 몰랐으니까.
"뭐 신경 쓰지 마. 그냥 애들 사이 소문이니까."
구윤재는 아무렇지 않게 화제를 돌리며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어제 본 예능이었나, 뭐였나. 나는 대답을 하는 척했지만 무슨 얘기인지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밥을 먹는 척했지만, 머릿속은 다른 곳에 가 있었다.
***
그날 밤, 방에 불을 끄고 눕기 전에 나는 창문 앞에 서 있었다.
방 안은 어두웠다. 스탠드 하나만 켜져 있었고, 그 빛이 벽에 길게 늘어져 있었다.
커튼을 살짝 젖혔다.
골목은 조용했다. 세단은 보이지 않았다.
안심해야 하는데, 이상하게 더 불안했다.
소리가 없다는 게 더 이상했다. 원래 그 골목은 늦은 시간에도 가끔 지나가는 사람이 있었다. 오늘은 그 흔한 발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커튼을 다시 닫고 침대에 누웠다. 눈을 감아도 잠이 오지 않았다. 천장을 바라보다가 다시 일어나 커튼을 젖혔다. 여전히 아무것도 없었다.
그날 며칠 동안 밤마다 창밖을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냥 확인하지 않으면 잠들 수 없었다. 어떤 날은 세 번, 어떤 날은 다섯 번씩 일어나 커튼을 젖혔다. 매번 아무것도 없었지만, 그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 오히려 불안을 키웠다.
***
일주일쯤 지난 어느 날, 담임이 조회 시간에 갑자기 물었다.
"한도영, 요즘 무슨 일 있니?"
반 전체 시선이 나에게 쏠렸다. 교실 앞문으로 들어오는 아침 햇살이 담임 뒤로 쏟아졌고, 그 역광 때문에 담임의 표정이 잘 보이지 않았다.
"아니요."
"1학년 담당 선생님한테서 연락이 왔어. 학생 두 명이 네 얘기를 물었다고."
웅성거림이 커졌다. 누군가 낮게 웃었다. 뒷자리에서 누군가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는 소리도 들렸다.
"그냥 오해예요."
"그래, 알겠다. 뭐 문제 생기면 얘기해."
담임은 더 묻지 않고 넘어갔다. 하지만 반 아이들의 시선은 쉬는 시간까지 계속 따라붙었다. 등 뒤에서 시선이 느껴질 때마다 목덜미가 뻣뻣해졌다.
"야, 진짜 뭔데?"
"장서윤이 너 좋아한다는 게 진짜야?"
"골목에서 뭘 했다는 거야, 그게?"
질문들이 쏟아졌다. 어디서 시작된 소문인지 모르겠지만 이미 살이 붙어서 원래 있었던 일보다 훨씬 크게 부풀어 있었다. 나는 대답 없이 자리를 피했다.
책상에 앉아 있던 다른 반 아이 하나가 지나가며 툭 던졌다.
"부럽다, 그런 소문 도는 거."
부럽다는 말이 낯설었다. 나는 하나도 부럽지 않았다.
복도로 나가는데, 계단 쪽에서 익숙한 은발이 스쳐 지나갔다.
유나였다.
교복 치마 아래로 드러난 다리, 가볍게 흔들리는 은색 머리카락. 걸음걸이마저 가벼워서 마치 춤을 추는 것처럼 보였다.
마주치지 않으려 급히 다른 계단으로 방향을 틀었다. 하지만 유나가 먼저 나를 발견했다.
"도영아."
처음으로 이름을 부르며 다가왔다. 존댓말이 아니었다.
심장이 한 박자 늦게 뛰었다.
"뭐, 뭐야."
말이 절로 더듬어졌다. 유나는 그런 나를 보며 살짝 고개를 기울였다. 재밌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언니가 곧 정리 다 됐대."
"무슨 정리."
"너에 대한 거. 이제 거의 다 알아냈어."
등골이 서늘해졌다. 손끝부터 시작된 냉기가 팔뚝을 지나 어깨까지 올라오는 느낌이었다.
"뭘 알아냈다는 거야."
유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살짝 웃었다. 처음 보는 표정이었다. 그 웃음엔 장난기와 확신이 반쯤씩 섞여 있었다. 마치 이미 결과를 알고 있는 사람의 여유 같았다.
"곧 알게 될 거야."
"뭘 알게 되는데. 제대로 말해."
"성격 급하네."
유나가 짧게 웃었다. 그 웃음소리가 계단 벽에 부딪혀 이상하게 크게 울렸다.
"언니가 직접 말해주고 싶어할 거야. 나는 스포하면 안 돼."
"스포? 이게 무슨 게임이야?"
"게임보다 재밌지."
그 말을 남기고 유나는 반대편으로 걸어갔다. 뒷모습이 계단을 돌아 사라질 때까지, 나는 그 자리에 서서 한참을 움직이지 못했다.
교실 창문으로 새어 들어오는 소음, 아이들의 웃음소리, 종이 울리는 소리마저 아득하게 멀어졌다.
정리가 다 됐다는 말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무엇을 알아냈다는 걸까. 그리고 그게 나에게 어떤 의미인 걸까.
그날 오후 내내 나는 아무것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부르는 소리도 두 번이나 놓쳤고, 필기는 반쯤에서 멈춰 있었다.
집에 돌아오는 길, 골목 어귀에 다다랐을 때 나는 나도 모르게 걸음을 멈췄다.
거기, 낯익은 검은 세단이 세워져 있었다.
이번에는 지나가는 게 아니었다. 완전히 정차한 채,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