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숨었더니 자매가 쫓아온다

4화

다음 날부터 나는 최선을 다해 사람들 눈을 피했다. 등교 시간을 삼십 분 앞당겼다. 아직 아무도 오지 않은 교실에 혼자 앉아 창밖만 바라봤다. 복도는 사람이 없는 뒤쪽 계단으로 돌았다. 급식실도 가장 늦게 들어갔다. 줄이 다 빠지고 배식대 앞이 텅 빌 때쯤 슬그머니 들어가 아무도 없는 구석 자리에 앉았다. 그렇게 하면 될 줄 알았다. 숨어 지내면, 시간이 지나면, 다들 잊을 줄 알았다. 하지만 노력은 오래가지 못했다. 2교시 쉬는 시간, 화장실에서 나오는데 복도 끝에 은발 두 개가 서 있었다. 멀리서도 눈에 띄었다. 같은 색의 머리카락, 비슷한 키, 나란히 서 있는 실루엣. 장서윤과 장유나였다. 둘은 나를 발견하자마자 곧바로 다가오지 않았다. 서윤이 유나에게 뭔가 조용히 말했고, 유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유나의 시선이 잠깐 이쪽으로 향했다가 다시 서윤에게로 돌아갔다. 마치 전략을 짜는 것 같았다. 심장이 빨라졌다. 손끝이 저절로 차가워졌다. 나는 반대편으로 방향을 틀었다. 걸음을 빨리했다. 등 뒤에서 서윤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늘도 도망가시네요." 조롱은 아니었다. 그냥 사실 확인 같았다. 그 담담한 어조가 오히려 더 무서웠다. 나는 걸음을 서둘렀다.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발소리가 따라오지 않는다는 걸 확인하고서야 조금 숨을 내쉬었다. 교실로 돌아오는 내내 심장이 가라앉지 않았다. *** 점심시간, 구윤재가 트레이를 들고 와 맞은편에 앉았다. 표정이 묘했다. 뭔가 말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거리는 얼굴이었다. "야, 너 이거 알아?" "뭐." "장서윤이 우리 반 애들한테 네 시간표 물어봤대." 숟가락을 쥔 손이 멈췄다. "뭐라고." "몇 반인지, 몇 시에 뭐 듣는지. 애들이 다 말해줬을걸. 걔한테 밉보이기 싫어서." 숨이 턱 막혔다. "...그걸 왜 말해줘." "장서윤이 물어보는데 안 말해줄 사람이 어디 있냐. 너도 알잖아, 걔가 얼마나 유명한지." 구윤재가 젓가락으로 반찬을 집으며 덧붙였다. "우리 학교에서 걔 눈 밖에 나면 끝이야. 걔 아빠가 무슨 대기업 이사라나 뭐라나. 담임도 걔한테 함부로 못한다니까." 그 말이 이상하게 무겁게 들렸다. 대기업. 이사. 그런 단어들이 서윤의 마지막 말과 겹쳐졌다. "근데 이상한 게, 유나 쪽은 좀 다르대." "뭐가 다른데." "유나가 너한테 대놓고 좋아한다고 말했다는 소문도 있어." 손끝이 다시 차가워졌다. "헛소문이야." "네가 아니라고 해도 이미 애들 입에 다 돌았어. 신발장에서 무슨 일 있었냐고 다들 물어보던데." 대답할 말이 없었다. 그냥 밥을 씹었다.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입 안에서 밥알이 모래처럼 굴러다녔다. 구윤재는 눈치도 없이 계속 떠들었다. "솔직히 말해봐. 뭐 있었어? 장유나가 너한테 관심 있는 거 맞지?" "없어. 아무것도." "에이, 아니라고 하는 게 더 수상해." "그런 거 아니라니까." 목소리가 조금 커졌다. 구윤재가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봤다. "어어, 화내지 마. 그냥 물어본 거지." 나는 숨을 한 번 고르고 다시 젓가락을 들었다. "근데 궁금한 게 있는데." 구윤재가 목소리를 낮췄다. 장난기는 사라져 있었다. "너 원래 그렇게 싸움 잘했냐? 5명 상대로 그랬다는 소리도 있던데." 순간 몸이 굳었다. 어디까지 퍼진 건지 감이 오지 않았다. 그날 골목의 일이 이렇게 학교 전체에 퍼져 있을 줄은 몰랐다. "그런 거 아니야." "아니, 근데 유나가 그렇게 말했다던데. 손목 비틀고 담벼락에 밀어붙이고 뭐 그런 거." 숨이 가팔라졌다. 그 순간의 기억이 스쳐 갔다. 손목을 꺾을 때의 감촉. 발끝으로 다리를 걷어 올릴 때의 반발. 담벼락에 등을 밀어붙이던 무게감. 상대의 숨이 턱 막히던 소리. 그건 배운 적 없는 몸의 움직임이었다. 생각해본 적 없었다. 그저 몸이 먼저 반응했을 뿐이었다. 마치 누군가에게서 배운 것처럼, 아주 오래전부터 몸에 새겨져 있던 것처럼. 그게 더 무서웠다. "소문이 이상하게 부풀었네." 짧게 잘랐다. 구윤재는 어깨를 으쓱했다. "뭐 어때. 덕분에 너 완전 유명해졌어. 안 좋은 쪽으로든 좋은 쪽으로든." 그 말이 무겁게 가슴에 얹혔다. 밥을 반도 못 먹고 트레이를 반납했다. 구윤재가 뒤에서 뭐라고 더 말했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 수업이 끝나고 교문을 나서는 내내 주변을 살폈다. 은발이 보이지 않는 걸 확인하고서야 조금 마음을 놓았다. 하교 후 골목으로 들어서는데, 담벼락 아래 누군가 서 있었다. 걸음을 멈췄다. 가로등 불빛 아래 서 있는 실루엣. 은발이 유난히 하얗게 빛났다. 장서윤이었다. 혼자였다. 유나는 없었다. 교복 재킷을 벗어 팔에 걸치고, 벽에 어깨를 기댄 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표정에는 여유가 있었다. 마치 내가 이 길로 올 걸 알고 있었던 것처럼. "여기서 뭐해." "기다렸어요." 서윤은 벽에서 몸을 떼고 다가왔다. 발소리가 또각또각 골목에 울렸다. "동생이 자꾸 도영 씨 얘기를 해요." 순간 이름이 낯설게 들렸다. 학교에서 불리는 이름이었지만, 이 애의 입에서 나오니 다르게 들렸다. 마치 오래 알던 사람의 이름을 부르듯 자연스러웠다. "제 이름 어떻게 알았어." "학교 명단이요. 시간표 찾다가 알았어요." 담담한 대답이었다. 숨기려는 기색도 없었다. "제 동생이 진심인지 아닌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근데 확실한 건, 걔가 그렇게 누군가한테 관심 보인 게 처음이라는 거예요."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 "모르겠어요. 근데 저도 궁금해졌어요." 서윤의 눈빛이 조금 흔들렸다. 처음 보는 표정이었다. 그동안 봐온 무심하고 차가운 얼굴이 아니었다. "왜 그렇게 강했는지. 왜 선글라스를 쓰는지. 왜 이름을 감추려 하는지." 한 마디 한 마디가 정확하게 나를 겨눴다. 마치 오래전부터 준비해둔 질문지를 읽는 것 같았다. 숨이 막혔다. 가로등 불빛 아래에서 서윤의 눈동자가 나를 똑바로 응시했다. 피할 곳이 없었다. "관심 끄는 게 좋을 거야." 짧게 자르고 걸음을 옮겼다. 서윤은 붙잡지 않았다. 다만 등 뒤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저희 아빠가 사람 찾는 거 잘해요." 걸음이 멈췄다.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돌아보지 않았다. 하지만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것 같았다. 등 뒤에서 서윤의 발소리가 다시 멀어져 갔다. 골목은 조용했다. 가로등 불빛만 흔들렸다. 손끝이 차갑게 식어갔다. 이 애들은, 정말로 나를 끝까지 찾아낼 생각이었다. 집으로 가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그날 밤, 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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