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숨었더니 자매가 쫓아온다

2화

교실 앞문이 열리기도 전에 웅성거림이 먼저 들어왔다. 나는 자리에 앉아 이어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어제 일은 없었던 걸로 치기로 했다. 골목도, 담벼락도, 그 애의 시선도. 창밖으로 아침 햇살이 비스듬히 들어와 책상 위에 얇은 줄무늬를 그렸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아침이었다. 적어도 그렇게 믿고 싶었다. "야, 한도영." 구윤재였다. 갈색 단발이 아침 햇살에 반들거렸다. 그는 내 책상에 팔을 걸치고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복도 안 나가봤냐?" "왜." "지금 1학년 복도에 사람 몰려있어. 장서윤이랑 장유나가 뭘 찾는다는데." 손끝이 순간 차가워졌다. 나는 이어폰 줄을 감던 손을 멈췄다. "누구." "장서윤, 장유나. 몰라? 너 진짜 학교 관심 하나도 없구나." 구윤재가 웃었다. 나쁜 뜻은 없었다. 그냥 신기하다는 표정이었다. "은발 자매. 1학년인데 이 학교에서 걔들 모르면 사람이 아니지. 서윤이는 전교 1등, 얼굴도 유명하고. 유나는 좀 조용한데 그림자처럼 붙어 다녀서 세트로 유명해." "그래서." "근데 오늘 아침부터 누굴 찾는다고 복도를 돌아다녀. 뭐 은인이라나. 어제 골목에서 자기들 구해준 사람 찾는대." 숨이 잠깐 막혔다. 구윤재는 내 표정을 읽지 못했다. 그는 여전히 흥미로운 얘깃거리를 즐기는 얼굴이었다. 손가락으로 책상을 톡톡 두드리며 신이 난 듯 말을 이었다. "근데 웃긴 게, 서윤이가 직접 나서서 찾는다는 거야. 걔가 누구한테 관심 갖는 거 자체가 사건이거든. 원래 남한테 별로 말도 안 거는 애인데." "그래서 뭐." "신기하지 않냐. 그 학교 유명인들이 아침부터 남자 찾으러 다니는 거. 소문 금방 퍼질 텐데." 나는 대답 대신 이어폰을 다시 감기 시작했다.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숨기면 된다. 선글라스를 고쳐 쓰고 고개를 숙였다.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있으면 지나갈 일이었다. 교실 뒤편에서 누군가 큰 소리로 떠드는 게 들렸다. 서윤이 진짜 예쁘긴 하더라, 하는 말과 함께 웃음이 터졌다. 나는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지만 상관없었다. 그냥 세상과 나 사이에 벽 하나를 세우고 싶었을 뿐이다. 1교시 종이 울릴 때까지 나는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 2교시가 끝난 쉬는 시간이었다. 복도로 나가려던 순간, 문 앞에 서 있는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은발 포니테일이 창문에서 들어오는 빛을 받아 하얗게 빛났다. 장서윤이었다. 어제와 달리 교복이 단정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흙먼지도, 찢어진 옷깃도 없었다. 하지만 얼굴은 분명 기억하고 있었다. "찾았네요." 낮고 정중한 목소리였다. 웃음기는 없었지만 적대감도 없었다. 그저 확신에 찬 어조였다. 주변 학생들의 시선이 순식간에 몰렸다. 누군가 낮게 속삭였다. 저 사람이 그 사람이야? 라는 말이 파도처럼 번져나갔다. 나는 뒷걸음질 치듯 문틀에 어깨를 붙였다. "사람 잘못 봤어." "어제 그 담벼락 옆 골목이요. 저와 제 동생을 도와주셨죠." 서윤의 눈빛은 흔들림이 없었다. 마치 처음부터 답을 알고 온 사람 같았다. "이름을 알고 싶어요." "모른다니까." "어제도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순간 목이 탔다. 어제도 이랬다. 좁은 골목에서, 흙먼지 속에서, 이 애는 똑같은 질문을 던졌었다. 대답하지 않을 거야. 스스로 다짐하듯 되뇌었다. 이름을 밝히는 순간 모든 게 무너질 것 같았다. 주변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점점 커졌다. 누군가 휴대폰을 슬쩍 들어 올리는 게 보였다. 손바닥에 땀이 배어 나왔다. "관심 없어." 짧게 자르고 몸을 돌렸다. 등 뒤로 서윤의 목소리가 따라왔다. "괜찮아요. 시간은 많으니까요." 그 말이 이상하게 크게 들렸다. 목소리에는 협박도, 애원도 없었다. 다만 물러서지 않겠다는 확신만이 실려 있었다. 그게 더 무섭게 느껴졌다. 걸음을 서둘러 복도를 빠져나가는데, 벽 모서리에 붙어 있던 또 다른 은발이 눈에 들어왔다. 장유나였다. 동생은 언니처럼 말을 걸지 않았다. 그냥 서서, 고개를 살짝 기울인 채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관찰하는 눈빛이었다. 마치 표본을 들여다보는 것 같은. 나는 그 시선을 피해 계단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계단을 두 칸씩 뛰어 내려가는데, 뒤에서 유나의 목소리가 아주 낮게 들렸다. "또 봐요." 인사가 아니었다. 예고였다. 계단 아래로 내려서자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것 같았다. 손잡이를 붙잡고 잠시 숨을 골랐다. 심장이 이상하게 빠르게 뛰고 있었다. 두려움인지, 다른 무엇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화장실로 들어가 세면대 앞에 섰다. 거울 속의 내 얼굴은 평소보다 조금 창백했다. 선글라스를 벗고 찬물로 손을 씻었다. 물이 손끝을 스치는 감각이 그제야 현실감을 되돌려주었다. 숨기면 된다. 계속 그렇게 되뇌었다. *** 점심시간, 급식실 구석에 자리를 잡고 밥을 먹었다. 식판에 담긴 반찬을 뒤적이며 아무 맛도 느끼지 못했다. 구윤재가 맞은편에 앉으며 눈을 크게 떴다. "야, 너 진짜 그 사람이었어?" "뭔 소리야." "복도에서 장서윤이 너한테 말 걸었다며. 애들이 다 봤대." 숨이 턱 막혔다. 소문이 벌써 여기까지 왔다. "오해야." "장서윤이 오해로 그런 말을 하냐? 걔 아무한테나 안 말 걸어. 완전 벽 쌓고 사는 애로 유명한데." 숟가락을 든 손에 힘이 들어갔다. 옆 테이블에서도 힐끗거리는 시선이 느껴졌다. 누군가 작게 내 이름을 언급하는 소리도 들린 것 같았다. 착각일 수도 있었지만, 그 가능성만으로도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근데 진짜 궁금한 게," 구윤재가 몸을 더 기울였다. "너 어제 뭐 했는데? 걔네들 진짜로 무슨 일 있었던 거야?"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것도 아닌데 장서윤이 아침부터 복도를 다 뒤지고, 유나까지 나서서 너 찾아다녀? 야, 이거 뭔가 있는 거잖아."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식판 위 국물이 조금씩 식어가는 걸 내려다보며 숨을 골랐다. 조용히 넘어가려던 하루가, 겨우 반나절 만에 흔들리고 있었다. 선글라스 안쪽으로, 눈을 감았다. 창밖으로 스쳐 가는 은발 두 개가, 시야 끝에 걸렸다. 멀리서도 알 수 있었다. 저 둘은,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는 걸. 식판을 반쯤 남긴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등 뒤에서 구윤재가 뭐라고 더 말했지만 들리지 않았다. 급식실 문을 나서는 순간까지도, 등줄기에 들러붙은 시선은 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 시선의 끝에, 은발 두 개가 나란히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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