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죽는 엔딩은 바꾸기로 했다

5화

청백색 빛이 마골의 목구멍 안쪽에서 소용돌이치듯 응축되고 있었다. 그 빛은 처음엔 손톱만큼 작았다. 하지만 순식간에 커졌다. 목구멍 깊은 곳에서부터 서릿발 같은 냉기가 뿜어져 나왔고, 주변 공기가 뒤틀리듯 일렁였다. 냄새가 먼저 왔다. 젖은 흙냄새. 풀이 짓눌리며 나는 비린내. 그런데 그 위로, 지금까지 맡아본 적 없는 냄새가 겹쳐졌다. 얼음이 타는 냄새였다. 상식적으로는 성립할 수 없는 조합이었지만, 지훈의 코끝은 분명히 그렇게 느꼈다. 서예린이 지훈을 밀쳤다. "엎드려요!" 목소리에는 여유가 없었다. 지훈은 몸을 던지듯 바닥에 몸을 낮췄다. 뺨이 흙바닥에 닿는 순간, 마골의 입에서 청백색 브레스가 뿜어져 나왔다. 웅— 공기가 얼어붙는 소리가 났다. 그것은 소리라기보다 진동이었다. 고막이 아니라 뼈로 듣는 소리 같았다. 브레스가 지나간 자리의 나무들이 순식간에 하얗게 굳었다. 나뭇잎이 유리처럼 부서져 흩어졌다. 그 부서지는 소리가 마치 유리 그릇을 한꺼번에 쏟아붓는 소리처럼 들렸다. 서예린은 그 궤도를 피해 옆으로 몸을 굴렸다. 어깨가 흙바닥에 닿고, 다시 튕겨 일어나는 그 동작이 물 흐르듯 이어졌다. 브레스의 끝자락이 그녀의 옷깃을 스쳤다. 옷자락 끝이 순식간에 결빙되어 바스라졌다. 하얗게 굳은 천 조각이 눈처럼 흩날렸다. 지훈은 바닥에 엎드린 채 숨을 몰아쉬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손끝이 차가웠다. 흙에 짓눌린 손가락 마디마디가 감각을 잃어가는 것 같았다. 겁이 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하지만 온몸이 그 사실을 부정하고 있었다. 무릎이 저절로 떨렸다. 숨을 쉬는데도 폐 안쪽까지 공기가 들어가지 않는 느낌이었다. 눈앞이 새하얗게 얼어붙은 나무들로 가득했다. 저 나무가 곧 자신의 몸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스쳤다. 서예린이 몸을 일으키며 검을 고쳐 잡았다. 손잡이를 쥔 손가락이 하나씩 자리를 잡는 것이, 마치 오래된 습관처럼 자연스러웠다. "지훈, 뒤로 물러나요. 최대한 멀리." 지훈은 그 말을 들으면서도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다리는 명령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마골의 거대한 몸이 다시 방향을 틀고 있었다. 곰의 앞발이 땅을 짚을 때마다 진동이 발밑까지 전해졌다. 흙 알갱이가 튀어 올라 지훈의 뺨에 부딕혔다. 서예린이 앞으로 달려나갔다. 발끝이 땅을 박차는 소리, 옷자락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 그 모든 소리가 하나로 겹쳐 순식간에 지나갔다. 검이 은빛 궤적을 그리며 마골의 앞발을 향해 파고들었다. 금속이 뭔가에 부딫는 소리가 났다. 하지만 그 소리는 살을 베는 소리가 아니었다. 튕겨나가는 소리였다. 날카로운 쇳소리가 숲 전체를 훑고 지나갔다. 서예린의 몸이 뒤로 밀려났다. 그녀는 재빨리 균형을 잡고 다시 자세를 취했다. 발바닥으로 흙을 다시 붙잡는 그 짧은 순간, 팔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이 지훈의 눈에 보였다. "비늘이..." 그녀의 목소리에 처음으로 당혹감이 섞였다. 지훈은 그 말을 들으며 원작 지식을 떠올렸다. 마골의 등과 목 부위는 용의 비늘로 덮여 있어 물리 공격에 강한 저항력을 가진다는 설정이었다. 게임에서였다면, 화면 상단에 붉은 글씨로 '물리 저항 90퍼센트'라는 표기가 떴을 것이다. 약점은 배 부분과, 브레스를 쏘기 직전의 목구멍이었다. 딱 그 두 곳뿐이었다. 머릿속에서 공략 게시판의 문구들이 스쳐 지나갔다. 배 부분을 노려라. 정면 승부는 자살행위다. 브레스 직전 목구멍이 붉게 빛날 때 그 순간을 노리면 크리티컬이 뜬다. 활자로만 읽었던 그 정보들이, 지금 이 순간 살아 있는 위협이 되어 두 사람을 짓누르고 있었다. "선생님! 배 부분이요!" 지훈이 소리쳤다. 서예린이 순간 그를 돌아보았다. 눈동자에 놀라움과 의심이 동시에 스쳤다. 그 짧은 틈에 마골의 앞발이 그녀를 향해 떨어졌다. 서예린은 몸을 굴려 피했다. 앞발이 땅을 내려찍는 순간, 흙과 돌이 사방으로 튀었다. 돌 하나가 지훈의 팔뚝을 스치고 지나갔다. 살갗이 살짝 벗겨지며 따끔한 감각이 번졌다. "어떻게 알아요!" 그녀가 소리쳤다. 지훈은 대답할 겨를이 없었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도 몰랐다. 원작을 읽었다고, 이 세계가 자신이 알던 소설 속 세계라고, 지금 이 순간 그 말을 하는 것 자체가 사치였다. "믿어주세요! 배 부분이 약점이에요!" 서예린은 잠시 그를 응시했다. 그 시선이 아주 짧았지만, 지훈에게는 영원처럼 길게 느껴졌다. 무언가를 재는 듯한 눈빛이었다. 믿을 수 없는 말을 믿을 것인가, 아니면 무시할 것인가. 그리고 다시 마골을 향해 몸을 돌렸다. 이번에는 검의 방향이 달라졌다. 그녀는 마골의 다리 사이로 몸을 낮게 파고들며 검을 위로 찔러 넣었다. 검끝이 부드러운 살을 파고드는 감촉이, 멀리서도 지훈의 눈에 보이는 듯했다. 비늘로 덮인 곳과는 전혀 다른 저항감이었다. 마골의 몸이 크게 흔들렸다. 낮은 포효가 숲을 뒤흔들었다. 둥— 울음소리가 아니라 진동이었다. 나뭇잎이 모조리 떨어져 내렸다. 마치 계절이 한꺼번에 겨울로 뒤집힌 것 같았다. 새들이 놀라 날아오르는 날갯짓 소리가 사방에서 터졌다. 서예린이 재빨리 뒤로 물러나며 지훈을 향해 소리쳤다. "지금이에요! 도망쳐요!" 지훈은 몸을 일으켰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발목이 접힐 듯 휘청였다. 하지만 그는 도망치지 않았다. 원작 지식이 그의 머릿속에서 빠르게 회전하고 있었다. 마골은 상처를 입으면 잠시 흥분 상태에 빠져 브레스를 연속으로 사용한다. 그것은 공략 게시판에서도 유저들이 가장 많이 실수하는 지점이었다. 첫 브레스를 피하고 나면 안심하고 접근하다가, 두 번째 브레스에 즉사하는 경우가 절반이 넘었다. 지금 상태가 바로 그 흥분 상태였다. 목구멍 안쪽이 다시 붉게 물들고 있었다. "선생님, 다음 브레스가 옵니다!" 지훈이 소리쳤다. 서예린이 그 말을 듣자마자 자세를 낮췄다. 반신반의하던 표정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그 자리에 즉각적인 대응만이 남았다. 마골의 입이 다시 열렸다. 청백색 빛이 아까보다 더 크게 응축되었다. 그 빛이 얼마나 강렬한지, 주변의 그늘진 나무들 사이사이까지 새하얗게 비쳤다. 웅— 웅— 두 번째 브레스가 뿜어져 나왔다. 첫 번째보다 훨씬 굵고, 훨씬 빨랐다. 서예린은 몸을 옆으로 던지듯 굴렸지만, 이번 브레스의 범위는 아까보다 넓었다. 지훈의 눈에 그 궤적이 보였다. 마치 시간이 아주 느리게 흐르는 것 같았다. 서예린의 회피 경로가 그 범위 안에 걸려 있었다. 그녀는 아직 그것을 모르고 있었다. "선생님, 안 돼요!" 지훈은 몸을 던졌다. 생각보다 몸이 먼저 움직이고 있었다. 발이 땅을 박차는 감각조차 뒤늦게 느껴졌다. 그는 서예린을 향해 달려가며 그녀의 어깨를 밀쳤다. 두 사람의 몸이 함께 바닥으로 굴렀다. 흙과 낙엽이 사방으로 튀었고, 두 사람의 몸이 뒤엉킨 채 몇 바퀴를 굴렀다. 브레스의 끝자락이 지훈의 등을 스쳤다. 차가움이 아니라, 타는 듯한 통증이었다. 옷이 순식간에 얼어붙으며 갈라졌다. 등판을 따라 예리한 통증이 번개처럼 내달렸다. 살갗이 찢기는 것 같기도 하고, 동시에 타는 것 같기도 한, 설명할 수 없는 이중의 감각이었다. 지훈은 이를 악물었다. 신음소리조차 내지 않으려 했다. 눈앞이 하얗게 번쩍였다. 턱이 딱딱 부딫힐 정도로 이가 떨렸다. 하지만 등에서 느껴지는 감각은 상상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숨을 쉴 때마다 등판 전체가 함께 울렸다. 웅— 시야 앞에 낯익은 울림이 퍼졌다. 특성 '견디기'가 발동합니다. 그 문구가 시야 한켠에 떠오르는 순간, 지훈의 몸에서 뭔가 뜨거운 것이 퍼져 나갔다. 마치 몸속 깊은 곳에서 작은 불씨가 켜지는 느낌이었다. 통증이 조금씩 무뎌졌다.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견딜 수 있는 정도로 가라앉았다. 대신 팔다리에 힘이 돌아왔다. 서예린이 바닥에서 몸을 일으키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에 놀라움이 스쳤다. 방금 전까지 얼어붙어 있던 지훈의 등을 확인하려는 듯 시선이 빠르게 움직였다. "지금 그건..." "괜찮아요." 지훈은 몸을 일으켰다. 등의 상처는 여전히 아렸지만, 움직일 수는 있었다. 옷자락 사이로 얼어붙은 살갗이 드러나 있었다. 하얗게 서리가 낀 것처럼 보였지만, 그 아래로는 이미 붉은 피가 배어 나오고 있었다. 마골이 다시 그들을 향해 몸을 돌렸다. 노란 눈동자가 이글거렸다. 방금 입은 상처 때문인지 눈빛이 더욱 사나워져 있었다. 앞발이 땅을 짚고 그대로 달려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 "물러나야 해요." 서예린이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처음으로 다급함이 섞여 있었다. 지훈이 지금까지 봐온 그녀의 모습 중 가장 흔들리는 목소리였다. "이대로는 승산이 없어요." 지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알고 있었다. 원작에서도 이 구간은 저레벨 파티가 절대 도전해서는 안 되는 구간이라고 몇 번이나 경고 문구가 붙어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런 정보는 아무런 위로도 되지 않았다. 몸을 돌리는 순간, 발밑의 흙이 무너지듯 흔들렸다. 마골이 앞발을 크게 들어올리고 있었다. 거대한 그림자가 순식간에 확장되며 두 사람의 머리 위를 뒤덮었다. 발톱 끝에 아직도 서리가 엉겨 있는 것이 지훈의 눈에 들어왔다. 그 그림자가 두 사람의 머리 위로 덮쳐오고 있었다. 피할 시간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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