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정체를 숨긴 채 사람을 관찰하는 일에는 규칙이 있다.
먼저, 필요 이상으로 다가가지 않는다. 둘째, 상대가 나를 먼저 궁금해하게 만든다. 셋째, 절대로 먼저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넷째도 있었다. 상대의 습관, 말투, 표정의 미세한 변화까지 기록해두고, 필요할 때 꺼내 쓴다. 다섯째, 정 붙이지 않는다.
나는 그 규칙들을 스스로 정해두고 있었다. 오랜 세월 몸에 새긴 것들이라, 웬만해서는 무너지지 않는다고 믿었다.
그런데 서연을 지켜보는 동안, 그 규칙 중 하나가 조금씩 흔들리고 있다는 걸 인정해야 했다.
정확히는 다섯째였다.
"오늘은 방 안 뒤졌어?"
서연이 창턱에 걸터앉아 나를 향해 물었다. 청소가 끝난 방을 둘러보며 그녀는 어딘가 심심한 얼굴이었다. 발끝으로 창틀을 톡톡 두드리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방 안을 울렸다.
"뒤진 적 없습니다."
"거짓말. 저번에 술병 상자로 옮겨놨잖아."
"치웠을 뿐입니다. 버리지는 않았고요."
서연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 표정에는 의심과 흥미가 반쯤씩 섞여 있었다.
"왜 안 버렸어?"
"아가씨 물건이니까요."
"…그거 되게 이상한 논리인데."
"논리보다는 원칙입니다."
"원칙이 더 이상하잖아."
나는 대답하지 않고 책상 위 서류를 정리했다. 서연의 시선이 내 손끝을 따라오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손가락 하나 움직일 때마다 눈동자가 같이 움직였다. 마치 뭔가 트집 잡을 구석을 찾는 사람처럼.
그 시선에서 나는 익숙한 냄새를 감지했다. 조금 전의 두려움과는 다른, 더 얕고 가벼운 감정. 호기심이었다.
'재미있어하는군.'
나쁘지 않은 신호였다. 관찰 대상이 관찰자를 흥미로워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굳이 다가가지 않아도 상대가 다가온다. 세 번째 규칙을 지키기가 오히려 쉬워지는 구간이다.
나는 그 사실을 이용하기로 했다.
"제안이 있습니다."
"뭔데."
"오늘 방을 스스로 정리하시면, 저녁에 원하시는 걸 하나 들어드리겠습니다."
서연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봤다. 눈썹이 한쪽만 슬쩍 올라갔다.
"내가 왜 그래야 되는데."
"안 하셔도 됩니다. 그럼 저녁에 아무것도 안 하는 거고요."
"…뭘 들어줄 건데."
"말씀하시는 걸 들어보고 정하겠습니다."
"그럼 내가 손해잖아. 뭘 들어줄지도 안 정해놓고."
"손해가 아니라 협상입니다."
"…그게 그 소리 아니야?"
서연은 한참 나를 노려보다가, 결국 침대에서 일어나 바닥에 널브러진 옷가지들을 주워 담기 시작했다. 서투르고 느렸지만, 분명히 스스로 움직이고 있었다.
옷을 개는 방식은 형편없었다. 소매가 삐뚤어지게 접히고, 색깔 순서도 없이 아무렇게나 쌓였다. 그런데도 그 손짓 하나하나가 낯설게 느껴졌다. 누군가 시켜서, 억지로 하는 게 아니라, 순전히 저 스스로 하고 있다는 사실이.
'됐다.'
작은 성공이었다. 하지만 이 작은 성공이 앞으로 어떤 형태로 자라날지, 나는 이미 대략의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벌과 보상. 사람을 다루는 가장 오래되고 가장 확실한 방법.
물론 서연이 그 방법의 대상이라는 사실이, 처음 계획을 세울 때와는 조금 다른 무게로 다가온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저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저녁, 서연은 정리를 끝냈다.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스스로 한 것치고는 충분했다. 옷장 문이 반쯤 열려 있었고, 서랍 하나는 아예 닫히지도 않았지만, 방바닥에 발 디딜 틈이 생긴 것만으로도 충분한 진전이었다.
"뭐 들어줄 건데."
서연이 팔짱을 끼고 물었다. 방금까지 청소한 사람치고는 지나치게 당당한 태도였다.
"뭘 원하십니까."
"음… 뭐든 되는 거야?"
"뭐든이라고 하면 곤란합니다. 상식 안에서요."
"그럼 처음부터 상식 안에서라고 말했어야지."
서연이 잠시 망설이다가 작게 말했다.
"…아무도 없을 때, 얘기 좀 들어줘."
목소리가 아까보다 한참 작아져 있었다. 방금까지의 당당함은 사라지고, 창턱 끝을 만지작거리는 손끝만 남았다.
그 말에는 아까의 냄새와는 또 다른 것이 섞여 있었다. 외로움. 채린에게서 느꼈던 것과 결이 비슷했다. 모전여전이라는 말이 이렇게 냄새로도 확인될 줄은 몰랐다.
"고작 그거요?"
"고작이라고 하지 마. 어려운 거란 말이야."
"들어드리겠습니다."
서연이 안심한 듯 창턱에 다시 걸터앉았다. 그러고는 별다른 이야기랄 것도 없는, 학교 친구 이야기며 정원사 흉이며 하는 시시콜콜한 말들을 늘어놓았다.
"있잖아, 정원사 할아버지가 요즘 장미밭에만 매달려서 다른 데는 신경도 안 써. 그래서 뒤뜰에 잡초가 이만큼 자랐다니까."
"이만큼이 어느 정도입니까."
"내 무릎 정도?"
"과장이시군요."
"과장 아니야! 진짜라니까!"
나는 그 말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들었다. 정원사의 태만, 학교 친구들 사이의 서열 관계, 서연이 유독 싫어하는 수업 시간까지. 정보는 언제, 어디서든 쓸모가 있는 법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시간이 예상보다 길어질수록 내 안에서 뭔가가 이상하게 뒤틀린다는 사실이었다.
'이게 뭐야.'
서연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나는 그 아이의 표정 변화 하나하나에 신경이 쓰였다. 눈썹이 올라가는 순간, 입꼬리가 살짝 비틀리는 순간, 손끝이 창틀을 두드리는 속도가 빨라지는 순간. 목적을 위한 관찰이라고 하기에는, 그 신경 씀이 지나치게 세밀했다.
'착각이겠지.'
나는 그렇게 결론을 내리려 했다. 정보 수집을 위한 관찰과, 그저 보고 싶어서 보는 것 사이에는 분명한 선이 있어야 했다. 나는 늘 그 선을 지켜왔다고 믿었다.
하지만 결론을 내리는 순간에도, 서연이 웃는 얼굴을 보며 내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고 있다는 걸 스스로 느꼈다. 그건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이건 좀 곤란한데.'
혼란스러웠다. 이런 반응은 규칙 밖의 것이었고, 규칙 밖의 것은 곧 위험이었다. 하지만 그 위험을 지금 당장 걷어치울 방법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다는 게, 나를 더 곤란하게 만들었다.
서연은 그런 내 속을 알 리 없이, 여전히 신나게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있잖아, 어제는 채린 언니가—"
말을 하다 말고, 서연이 갑자기 멈췄다.
나도 덩달아 숨을 멈췄다.
채린의 이름이 나온 순간, 방 안의 공기가 미묘하게 달라졌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