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저택에서 사흘을 보내고 나서야, 나는 내 안의 감각이 완전히 열렸다는 걸 깨달았다.
향각. 남들에게는 그저 좋은 코라고 불릴 만한 그것이, 내게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작동했다. 냄새로 감정을 읽는 것. 두려움은 시큼했고, 분노는 탔다. 슬픔은 눅눅했고, 거짓말은 묘하게 씁쓸했다.
처음엔 그저 흐릿한 인상 정도였다. 복도를 지나다가 문득 스치는 냄새, 누군가 지나간 자리에 남는 옅은 감정의 흔적. 그 정도였다.
'이것도 재능이라면 재능인가.'
처음엔 그렇게 가볍게 생각했다. 사흘째 되던 날, 서연의 방을 청소하다가 나는 그 생각을 완전히 접었다.
방문을 열자마자 코끝이 저릿할 정도로 짙은 냄새가 밀려들었다. 서연이 없는 방이었는데도, 방 안 전체에 시큼한 냄새가 깊게 배어 있었다. 두려움. 오래 묵은 두려움.
침대 시트를 걷어내는데도 그 냄새는 사라지지 않았다. 옷장 안쪽, 책상 서랍 틈새, 심지어 창틀에까지 스며 있었다. 창문 밖으로 새어 나오는 술 냄새와 뒤섞여, 그 방은 마치 감정의 창고 같았다.
나는 걸레를 든 손을 잠시 멈추고 방 한가운데 서 있었다.
'이 아이, 겁내고 있구나.'
무엇을 두려워하는지는 아직 몰랐다. 하지만 방 전체에 스며든 그 냄새의 농도만으로도, 그게 하루 이틀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이 정도로 깊이 배려면 최소 몇 달, 아니 몇 년은 걸렸을 것이다.
'열일곱, 열여덟짜리가 몇 년을 겁내며 산다는 게 대체 어떤 삶일까.'
그 물음에 답을 찾기도 전에, 나는 다시 걸레질을 시작했다. 궁금해한다고 답이 나오는 건 아니었으니까.
방을 정리하고 나오는 길, 복도를 지나 안주인의 방 앞을 지날 때는 다른 냄새가 났다. 눅눅하고, 발효된 듯한 냄새. 슬픔에 알코올이 섞인 냄새였다.
나는 문 앞에서 잠시 멈춰 섰다. 걸음을 늦춘 것도 아니었는데, 몸이 저절로 그 자리에서 굳었다. 안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대화도, 발소리도, 술병 부딪히는 소리조차 없었다.
하지만 그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감정의 냄새만으로도 나는 백채린이라는 여자가 지금 이 순간 무엇을 견디고 있는지 대략 짐작할 수 있었다.
'낮부터 마시는 건가.'
시간을 가늠해보니 아직 정오도 되지 않은 시각이었다. 이런 시간에 이 정도 냄새가 난다는 건, 밤새 마셨거나 아침부터 다시 시작했다는 뜻이었다.
'이 집, 겉만 번지르르하네.'
무역으로 돈을 벌고, 사람을 사는 집안. 겉에서 보면 그저 부유한 귀족가일 뿐이었다. 하인들의 제복은 깔끔했고, 저택의 정원은 정성스레 손질되어 있었고, 식탁에 오르는 음식들도 부족함이 없었다.
하지만 안쪽으로 들어와 보니, 이 저택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무너져가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었다.
딸은 두려움에 절어 있고, 어미는 슬픔에 절어 있었다. 아버지인 백도현은 아직 얼굴도 보지 못했지만, 이 집 어딘가에서 세 번째 냄새를 풍기고 있을 게 분명했다.
'분명 좋은 냄새는 아닐 거야.'
이런 집에서 유일하게 멀찍이 떨어져 아무 냄새도 풍기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오히려 이상한 거였다.
그날 오후, 나는 처음으로 백채린과 마주쳤다.
복도 끝에서 걸어오던 그녀는 얇은 실내복 차림이었고, 걸음이 살짝 흔들렸다. 나이는 마흔 중반쯤, 마른 체형에 얼굴선이 예리했다. 한때는 상당한 미인이었을 얼굴이었지만, 지금은 그 위에 피로가 겹겹이 쌓여 본래의 윤곽을 흐트러뜨리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그녀가 옅게 웃었다. 그 웃음에도 어김없이 알코올의 발효된 냄새가 실려왔다.
"새로 온 메이드로군요."
"문아리입니다."
나는 짧게 고개를 숙이며 이름을 밝혔다. 채린이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살짝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서연이 아직 안 쫓아냈다니 놀랍네요."
그녀의 목소리에는 냉소가 아니라 진짜 놀라움이 담겨 있었다. 마치 내가 살아 있는 것 자체가 신기한 일이라는 듯한 말투였다.
나는 잠시 대답을 고르다가 짧게 말했다.
"방을 잘 정리했습니다."
"그게 다예요?"
채린이 되물었다. 뭔가 더 대단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기대하는 눈치였다.
"필요한 일이었으니까요."
"…필요한 일."
그녀가 내 말을 되뇌듯 중얼거렸다. 그러고는 잠깐 나를 바라봤다. 그 시선 속에 스며든 냄새가 다시 짙어졌다. 외로움과 의심이 섞인 것. 사람을 믿고 싶지만 믿을 방법을 잊어버린 사람의 냄새였다.
"당신, 다른 사람들이랑은 좀 다르네요."
"어떤 점이 다른지 여쭤도 될까요."
솔직히 궁금했다. 이 집안에서 내가 남들과 다르다는 평가를 받는다면, 그게 어느 쪽으로 유리하게 작용할지 미리 알아두는 게 좋았다.
"모르겠어요. 그냥… 느낌이."
그녀는 말을 끝맺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걸음걸이가 조금 전보다 더 흐트러져 있었다. 벽을 짚으며 걷는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나는 그 뒷모습을 눈으로 좇으며 생각했다.
'이 여자, 조만간 무너질 거야.'
그 무너짐이 언제, 어떤 방식으로 올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술을 더 마시다 쓰러지는 식일지, 아니면 어느 순간 폭발하듯 무너져 내리는 식일지.
하지만 향각이 알려주는 냄새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그 짙은 슬픔의 냄새가 어느 순간 한계에 다다르면, 반드시 어떤 형태로든 터져 나올 것이다.
나는 그 사실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이 집안에 들어온 목적의 절반은 이미 이룬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사람의 감정을 읽는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이 저택에서 살아남을 무기 하나는 손에 넣은 셈이었으니까.
문제는 서연 쪽이었다.
그 아이의 두려움이 정확히 어디서 오는지, 나는 아직 알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안주인의 슬픔은 이해하기 쉬웠다. 남편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여자, 술로 견디는 여자. 그런 사람은 어디에나 있었다.
하지만 서연의 방에 겹겹이 쌓인 그 두려움은 성격이 달랐다. 단순히 부모의 무관심 때문이라거나, 또래와의 갈등 때문이라고 하기엔 냄새의 농도가 지나치게 짙었다.
'저 방 안에 뭔가 있어.'
방 안 어딘가에 그 두려움의 근원이 되는 무언가가 숨겨져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연이 없는 방에서도 그렇게 짙은 냄새가 났다는 건, 그 아이 본인이 아니라 방 자체에, 혹은 방 안의 어떤 물건에 그 감정이 스며 있다는 뜻일 수도 있었다.
나는 다음번엔 좀 더 꼼꼼히 살펴봐야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그리고 그날 밤, 나는 그 다짐을 지킬 기회를 예상보다 훨씬 빨리 얻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