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자선경매가 열리는 청강그룹 본사 로비는 샹들리에 불빛으로 눈이 부실 만큼 화려했고, 나는 그 화려함 속에서도 봉투 위에 적힌 이름이 계속 눈앞에서 어른거리는 것을 떨쳐낼 수 없었다. 초대장을 받았을 때부터 이상하게 마음이 무거웠던 것은, 청강그룹이라는 이름 자체가 낯설지 않았기 때문이었는데, 그 낯설지 않음의 근원이 어디에서 오는지를 애써 외면하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문 실장님, 이쪽으로." 마케팅 팀장이 안내하는 대로 걸음을 옮기면서도, 나는 강진하라는 이름을 마주치지 않기를, 어리석게도 그렇게 바라고 있었다. 초대장 명단에 그 이름이 적혀 있는 것을 본 순간부터 심장 한구석이 뻐근하게 조여왔지만, 나는 그것이 단순한 동명이인일 거라고,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며 오늘 하루를 버텨왔다.
로비 중앙의 전시장에는 이번 경매에 출품될 로제타의 하이엔드 컬렉션이 조명 아래 늘어서 있었고, 그중 하나는 내가 지난 여섯 달을 매달려 완성한 목걸이였다. 은실을 세공하듯 얇게 늘여 만든 체인 사이사이로 작은 다이아몬드가 별처럼 박혀 있는 그 디자인은, 내가 가장 절박했던 시기에 그려낸 스케치였고, 그 절박함이 오히려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사람들의 시선이 그 목걸이에 머무는 것을 보면서도, 나는 어쩐지 온전히 기뻐할 수 없었다.
"이 디자인, 실장님이 직접 하신 거예요?" 누군가 물었을 때, 나는 반사적으로 웃으며 대답했지만, 시야 끝에서 낯익은 실루엣이 들어오는 순간 그 웃음이 그대로 얼어붙었다. 대답을 마무리하지 못한 문장이 입안에서 흩어졌고, 나는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게 하려고 애써 잔을 들어 목을 축였다.
키가 큰 남자가, 짙은 정장을 입은 채로 코 끝에 작은 은색 피어싱을 반짝이며 전시장 안으로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나는 그 얼굴을 알아보는 데 채 이 초도 걸리지 않았다. 어린 시절의 둥근 얼굴선은 사라지고 없었지만, 그 눈매만은 그대로였다, 승준을 닮은, 조금 더 날카롭게 벼려진 눈매. 그 눈매를 알아보는 순간, 나는 손에 쥔 잔을 놓칠 뻔했고, 다행히 아무도 그 순간의 흔들림을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오랜만입니다, 문소영 씨." 그가 내 앞에 멈춰 서며 낮게 말했고, 그 목소리에는 존댓말임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위압적인 서늘함이 섞여 있었다. 목소리의 낮은 음역이 마치 내 귓가에 오래 남을 것처럼 울렸다.
나는 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그저 그의 이름을 되뇌었다. "강진하 씨."
"기억하시네요. 다행이네, 나만 혼자 기억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그가 입꼬리를 슬쩍 올리며 말했고, 그 미소에는 반가움과 냉소가 동시에 섞여 있어서, 나는 그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반가움이라면 무엇을 향한 반가움이고, 냉소라면 무엇을 향한 냉소인지, 나는 그 두 갈래의 감정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했다.
"오래전 일인데, 아직도 기억해 주시다니." 나는 최대한 사무적으로 대답하려 애썼지만, 손끝이 이미 차갑게 식어가는 것이 스스로도 느껴졌다. 사무적인 어조를 유지하려 할수록 목소리 끝이 미세하게 떨렸고, 그것을 감추려고 나는 손을 등 뒤로 슬쩍 숨겼다.
"오래전 일이요." 그가 그 말을 되풀이하며 나를 응시했는데, 그 눈빛에서는 아무것도 읽어낼 수가 없어서 오히려 더 불안했다. "우리 형이 그 오래전 일 때문에 얼마나 오래 앓았는지, 그건 알고 계시나요."
심장이 덜컥, 이라는 표현으로도 부족할 정도로 무언가가 쿵 떨어지는 감각이 명치 아래를 훑고 지나갔다. 승준의 이름이 그의 입에서 직접 나오지 않았음에도, 나는 그 문장 하나로 그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아챌 수 있었다. 나는 애써 침착한 척 되물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됐습니다." 그는 말을 자르듯 손을 저으며 화제를 돌렸다. "오늘은 그냥, 얼마나 잘 사시는지 구경이나 하러 온 거니까." 그 말투는 가벼웠지만, 그 가벼움 속에 숨겨진 날카로운 가시가 느껴져서, 나는 순간 숨을 삼켰다.
그가 그렇게 말하며 목걸이가 전시된 진열대 쪽으로 시선을 돌렸을 때, 나는 그 옆얼굴에서 승준의 흔적을 다시 발견했고, 그것이 이십 년 만에 처음으로 그 이름을 떠올리게 만든 낯빛이었다는 사실이 스스로도 한심했다. 이십 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음에도 그 이름 하나에 이렇게 속절없이 흔들리는 내가, 스스로도 낯설게 느껴졌다.
"이 목걸이, 실장님 작품이라던데." 그가 진열대를 향해 턱짓하며 물었다.
"네, 이번 컬렉션 메인 피스입니다." 나는 애써 담담하게 답했다.
"마음에 드네요. 이 정도 감각이면, 개인 디자이너로 두기엔 아깝겠어요." 그의 말투는 가벼웠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가 무거웠다는 것을, 나는 그날 밤이 지나기 전까지는 알아채지 못했다. 나는 그 말을 그저 사교적인 예의로 받아들였고, 웃음으로 얼버무리며 화제를 돌렸다. 그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고 시선을 다른 진열대로 옮겼을 때, 나는 안도했지만 그 안도가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는 미처 알지 못했다.
경매가 진행되는 동안 나는 계속 그의 시선이 등 뒤에 머무는 것을 느꼈고, 낙찰가가 발표될 때마다 사람들의 환호 속에서도 그 시선만이 유독 서늘하게 나를 짚어왔다. 사회자가 목걸이의 시작 가격을 부를 때, 나는 애써 관객석 쪽을 바라보며 그의 위치를 확인하지 않으려 했지만, 눈은 저절로 그가 서 있는 방향으로 돌아갔다. 자리를 옮길 때마다 그의 위치를 확인하게 되는 것이, 스스로도 어리석다는 것을 알면서도 멈출 수 없었다. 낙찰가가 예상을 뛰어넘는 숫자에 도달했을 때, 주변에서 박수와 함성이 터져 나왔지만, 나는 그 순간에도 그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가 더 신경 쓰였다.
행사가 끝나갈 무렵, 사람들이 하나둘 자리를 뜨고 로비의 조명이 조금씩 잦아들 무렵, 그가 다시 내 옆으로 다가와 명함을 내밀었다. 종이의 질감이 유난히 두껍고 차가웠다. "곧 다시 뵙게 될 겁니다." 그 말이 예언인지 통보인지 구분할 수 없어서, 나는 명함을 받아 든 채로 한참을 서 있었다. 그가 등을 돌려 걸어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면서도, 나는 아무 말도 붙이지 못했고, 그것이 옳은 선택이었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
그날 밤, 나는 그 명함을 서랍 깊숙이 넣으며, 이 재회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어렴풋이 예감했지만, 명함에 적힌 직함을 다시 한번 들여다보면서도 그 예감을 애써 축소시키려 했다. 강진하, 청강그룹 전략기획실. 그 직함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짐작조차 하지 못한 채, 나는 서랍을 닫고 불을 껐다. 그 예감이 얼마나 정확했는지는 사흘 뒤 회사 대표이사의 호출을 받고서야 완전히 깨달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