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그 주 주말, 나는 태희에게서 연락을 받았다. 짧은 문자 하나였다.
'이번 주에 시간 되세요? 사업 얘기 좀 하고 싶어서요.'
나는 그것을 읽고 또 읽었다. 손가락은 화면 위를 몇 번이나 오갔지만 어떤 답도 누르지 못했다. 사업 얘기라는 명분이 얼마나 얇은 껍데기인지는 굳이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그 문장 아래에 깔린 다른 의도가 훤히 보였다. 십일 년 전에도 태희는 늘 그런 식이었다. 필요한 말을 다 하고 나서야 진짜 하고 싶은 말을 슬쩍 얹는 사람.
거절할까.
아니면 만나서 확실히 선을 그을까.
그것도 아니면, 그냥 이대로 못 본 척 지나갈까.
세 가지 선택지가 머릿속에서 빙빙 돌았지만 어느 하나도 손끝으로 옮겨지지 않았다. 결국 나는 휴대폰을 뒤집어 놓고 거실로 나갔다.
주말 오후의 거실은 조용했다. 창밖으로 겨울 햇살이 얇게 들어와 마룻바닥 위에 긴 그림자를 만들고 있었다. 은채는 소파에 앉아 태블릿으로 무언가를 보고 있었다. 화면에서 흘러나오는 빛이 그녀의 옆얼굴을 은은하게 비췄다. 나는 그 옆에 앉으며 별일 없다는 듯 웃었다.
하지만 그 웃음이 얼마나 서툴렀는지, 그녀는 곧바로 알아챘다.
"요즘 좀 이상해." 은채가 태블릿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뭔가 숨기는 사람처럼 보여."
"아니야." 나는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지나치게 빠른 대답이었다는 걸 나조차 느꼈다.
말이 입 밖으로 나가자마자 후회가 뒤따라왔다. 저렇게 즉각적으로 부정하는 것 자체가 이미 뭔가를 감추고 있다는 증거였다. 은채는 그런 부분을 절대 놓치는 사람이 아니었다.
은채는 아무 말 없이 나를 응시했다. 그 침묵이 길어질수록 내 심장은 조여왔다. 그녀가 그렇게 조용히 나를 볼 때는, 대부분 이미 뭔가를 알고 있을 때였다. 나는 그녀와 함께한 시간 동안 그 눈빛의 패턴을 여러 번 배웠다. 처음에는 그저 조용해지고, 다음에는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리고, 마지막에는 결정적인 질문이 날아온다.
지금은 두 번째 단계였다.
"휴대폰 좀 줘봐." 그녀가 손을 내밀었다.
"뭐?"
"그냥 줘봐. 별거 없으면 괜찮잖아."
나는 순간적으로 망설였고, 그 망설임이 은채의 눈빛을 더 날카롭게 만들었다는 걸 알았다. 별거 없으면 괜찮다는 그 말이, 오히려 별게 있다는 걸 증명하는 함정처럼 느껴졌다. 거절하면 의심을 확신으로 만드는 것이고, 건네주면 진실이 밝혀지는 것이었다. 어느 쪽도 안전하지 않았다.
결국 나는 휴대폰을 건넸다. 그녀는 그것을 받아 잠금을 풀었고 — 우리는 서로의 비밀번호를 공유하는 사이였다, 그것이 우리 관계의 신뢰를 증명하는 방식이라고 믿어왔던 시절이 있었다 — 메시지 창을 열었다.
강태희.
이름이 뜬 순간, 은채의 표정이 미묘하게 굳었다. 미간에 잔물결이 스치고, 손끝이 화면 위에서 잠시 멈췄다. 그 짧은 정지가 나에게는 영원처럼 길게 느껴졌다.
"강태희?" 그녀가 이름을 소리 내어 읽었다. 그 말투에 뭔가 이상한 떨림이 섞여 있었다. "이 이름, 낯이 익은데."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렀다. 거실은 여전히 조용했고, 창밖의 겨울바람이 유리창을 낮게 두드리는 소리만 들렸다.
은채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마치 오래된 서랍을 뒤지듯 말을 이었다.
"고등학교 때... 나 괴롭혔던 애 이름이 강태희였어."
그 순간, 방 안의 공기가 완전히 얼어붙었다.
나는 은채의 과거를 알고 있었다. 그녀가 고등학교 시절 심하게 괴롭힘을 당했고, 그 상처가 지금의 강한 성격을 만드는 데 일부 작용했다는 것도. 그녀는 언젠가 술에 취한 밤, 나에게 그 시절 이야기를 조각조각 풀어놓은 적이 있었다. 누가 자신을 어떻게 몰아세웠는지, 얼마나 오랫동안 혼자 견뎌야 했는지. 하지만 가해자의 이름까지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그 이름만은 끝까지 입에 담지 않았다. 마치 그 이름을 부르는 것 자체가 다시 그 시절로 끌려 들어가는 일인 것처럼.
설마.
설마 그럴 리가.
이 좁은 우연이 정말로 가능한 일일까.
"...정말?" 나는 겨우 그 말을 뱉었다. 목소리가 완전히 갈라졌다.
"응." 은채는 휴대폰 화면을 다시 들여다보며 대답했다. 그 눈빛이 이상하게 형형해지고 있었다. "그 이름, 그 시절 이후로 한 번도 잊은 적 없거든."
나는 그녀에게 모든 걸 말해야 하는 순간이 왔다는 걸 알았다. 로비에서의 재회, 며칠 전 저녁 자리, 그리고 그보다 훨씬 오래된 십일 년 전의 관계까지. 그날 로비에서 태희를 처음 다시 만났을 때, 나는 그녀가 여전히 예전과 같은 얼굴로 웃고 있다는 사실에 소름이 돋았었다. 며칠 전 저녁 자리에서는 애써 사무적인 태도를 유지하려 했지만, 태희의 시선이 자꾸만 옛날 그때처럼 나를 붙잡으려는 것 같아 불편했었다. 그리고 그보다 훨씬 더 오래된, 십일 년 전 그 관계는 — 지금 이 순간 은채 앞에서 도저히 꺼낼 수 없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말을 하려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조차 가늠할 수 없었다. 로비에서부터 시작할까, 아니면 십일 년 전부터? 어느 쪽이든 은채의 얼굴에 새겨질 표정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은채는 휴대폰을 내게 돌려주며, 이상하게도 화를 내지 않았다. 대신 그녀의 입가에 아주 얕은 웃음이 걸렸다. 그 웃음의 결을 나는 도무지 읽어낼 수 없었다. 화가 났다면 오히려 나았을지도 모른다. 화는 익숙한 감정이었고, 어떻게 사과하고 어떻게 풀어야 할지 아는 영역이었다. 하지만 이 웃음은 처음 보는 종류였다.
"이 사람, 어떻게 알게 된 사이야?" 그녀가 물었다.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안에 눌려 있는 어떤 감정은 명백히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분노가 아니었다.
그것이 훨씬 더 위험한 무언가라는 걸, 나는 그녀의 눈빛을 보며 직감했다. 마치 오래 기다려온 것을 드디어 손에 넣은 사람의 눈빛. 마치 십일 년의 시간을 건너 마침내 문이 열린 것을 확인한 사람의 눈빛.
나는 그 눈빛 앞에서, 지금까지 감춰왔던 모든 것이 더 이상 감춰지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