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튀김 한 입에 낚였습니다

5화

수아의 손가락이 화면 위에 멈췄다. 서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시간이 그대로 멈춘 것 같았다. 심장이 목구멍까지 튀어 올라와 콱 막혔다. "화면이 왜 이래." "뭐, 뭐가." "까맣게 꺼졌어." 수아의 눈썹이 살짝 찌푸려졌다. 서준은 그 표정 하나에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렀다. '제발, 제발.' 속으로 빌었다. 누구에게 비는지도 몰랐다. 그냥 아무나 붙잡고 빌고 싶었다. 서준은 휴대폰을 다시 낚아채듯 가져왔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화면은 정말로 꺼져 있었다. 배터리가 나간 것이었다. '살았다.' 안도의 숨이 몰래 흘러나왔다. 숨을 너무 크게 내쉰 것 같아서 서준은 얼른 입술을 다물었다. 수아가 이상하게 볼까 봐 신경이 곤두섰다. "충전해서 줄게." "됐어, 나중에 알려줄게." 수아는 대수롭지 않게 말하며 방을 나섰다. 발소리가 계단을 타고 멀어지는 걸 확인한 후에야 서준은 그대로 쓰러졌다. 침대 위로 몸이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심장이 아직도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마치 백 미터 달리기를 하고 온 사람처럼 숨이 가빴다. 천장을 바라보며 서준은 생각했다. '하마터면 다 들킬 뻔했잖아.' 등에서 식은땀이 마르지 않고 계속 배어 나왔다. 이 정도면 심장이 남아나질 않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다음 날, 학교가 끝난 뒤 예상치 못한 방문객이 서준을 기다리고 있었다. 셋째 누나, 이미래였다. 분홍빛이 도는 금발 머리를 늘어뜨린 채 교문 앞에 서 있었다. 저 멀리서부터 그 화려한 머리색이 눈에 확 띄었다. 지나가던 학생들이 하나둘 그녀를 향해 시선을 던졌다. "서준아!" 미래가 두 팔을 벌리며 달려와 서준을 껴안았다. 지나가는 학생들의 시선이 일제히 쏠렸다. 서준은 순식간에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누나, 사람들 보는데." "보라고 하지, 뭐." 미래는 태연하게 웃으며 서준의 팔을 놓지 않았다. 서준은 얼른 주변을 살피며 미래를 떼어내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뭐야, 왜 왔어." "부탁이 있어서." 미래의 눈빛이 유난히 반짝였다. 서준은 그 눈빛이 뭔가 불길하다는 걸 직감했다. 저 눈빛은 늘 사고를 몰고 왔다. 지난번에도 저런 눈으로 다가와서 강아지를 세 마리나 떠맡기고 갔었다. "무슨 부탁." "오늘 저녁에 웨딩파티 있어. 회사 동료 결혼식."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 "같이 가줘. 가짜 남친으로." 서준의 표정이 그대로 굳었다. 관자놀이가 벌써부터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싫어." "제발." "싫다니까." "딱 세 시간이면 돼." "싫어." "세 시간도 안 돼. 두 시간!" "싫다고 몇 번을 말해." 미래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순식간에 강아지 같은 눈빛으로 변한 그녀를 보며 서준은 관자놀이가 지끈거렸다. 저 표정 변화 속도는 정말이지 반칙이었다. "동료들이 자꾸 남자친구 있냐고 물어봐서 있다고 해버렸어." "왜 그런 거짓말을 해." "어쩔 수 없었어…… 다들 나만 없다고 놀리니까, 나도 모르게……" "그래서 내가 대신 그 자리를 채워야 한다는 거야?" "응. 딱 한 번만." 서준은 팔짱을 끼고 미래를 노려봤다. 하지만 미래는 그 시선을 그대로 받아치며 눈물을 한 방울 더 짜냈다. '저거 진짜야, 가짜야.' 서준은 도무지 구분이 안 됐다. 이 누나는 연기력이 지나치게 좋았다. "나중에 용돈 줄게." "필요 없어." "저녁도 사줄게. 네가 좋아하는 거." "됐어." "제발, 서준아. 나 살려줘." 서준은 결국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미래는 곧바로 활짝 웃으며 서준의 팔을 붙잡고 끌었다. 울먹이던 얼굴이 언제 그랬냐는 듯 환하게 밝아졌다. 서준은 그 표정 변화를 보며 낚였다는 걸 확신했다. "옷 갈아입어야 해. 우리 집으로 가자." "집에 정장 있어?" "내가 사 왔어. 딱 네 사이즈로." 이미 다 준비해 놓았다는 뜻이었다. 서준은 이 상황이 애초에 거절할 수 없게 설계되어 있었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관자놀이가 다시 한번 욱신거렸다. 웨딩파티장은 화려했다. 샹들리에 아래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고, 음악이 은은하게 흐르고 있었다. 서준은 정장 재킷을 입은 채 어색하게 서 있었다. 넥타이가 목을 조르는 것 같았다. 평소 입던 옷이 아니라 온몸이 뻣뻣했다. "표정 좀 풀어." "이게 편한 표정이야." "누가 봐도 인질처럼 보이거든." 미래가 작게 속삭이며 서준의 팔을 다시 붙잡았다. 그 순간 동료 무리가 다가왔다. "이쪽이 내 동생이에요." "동생이 아니라 남친이라며?" 미래가 당황하며 말을 정정했다. "아, 맞아요. 남친이에요." 서준은 억지 웃음을 지었다. 관자놀이의 지끈거림이 점점 심해졌다. 이 거짓말이 얼마나 더 이어질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동료 몇 명이 다가와 이것저것 물었다. 나이, 직업, 만난 지 얼마나 됐는지. 서준은 즉석에서 지어내는 대답으로 겨우 넘겼다. "나이는 스물하나예요." "직업은요?" "학생이요." "학생이요? 아, 대학생이시구나." "...네." 거짓말 위에 거짓말을 쌓아 올리는 기분이었다. 말할 때마다 목소리가 미세하게 갈라졌다. 미래는 그 옆에서 자연스럽게 팔짱을 끼며 화제를 돌려주었다. '저 능력은 대체 어디서 나온 거야.' 서준은 감탄과 짜증이 뒤섞인 얼굴로 미래를 슬쩍 쳐다봤다. 그러던 중, 한 하객이 서준을 유심히 바라보며 말했다. "어디서 본 것 같은데." "글쎄요." "우리 딸 학교 학생 아니에요?" 서준의 등줄기로 서늘한 기운이 스쳤다. 심장이 쿵 내려앉는 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했다. "그, 그럴 리가요." 하객이 미심쩍은 눈으로 그를 다시 보았다. 눈빛이 위아래로 훑는 듯해서 서준은 자기도 모르게 시선을 피했다. 미래가 재빨리 서준의 팔을 끌어당겼다. "저희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억지로 웃으며 자리를 벗어나는 두 사람의 발걸음이 점점 빨라졌다. 타타닥, 구두 소리가 대리석 바닥 위로 울렸다. 복도로 빠져나온 서준은 그대로 벽에 등을 기대며 숨을 몰아쉬었다. 심장이 다시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어제 배터리 사건 이후로 이 심장은 하루도 쉬지 못하고 있었다. "누나, 이거 진짜 위험한 짓이야." "알아, 아는데……" "들키면 어쩌려고 그래." "안 들키면 되잖아." "방금 들킬 뻔했잖아!" 미래는 입술을 삐죽 내밀며 시선을 피했다. 할 말이 없는 눈치였다. 그때 복도 저편에서 한 여자가 걸어오고 있었다. 검은 긴 머리, 우아한 걸음걸이. 걸음마다 드레스 자락이 부드럽게 흔들렸다. 서준의 심장이 그대로 얼어붙었다. 한서은이었다. 그녀는 파티에 초대받은 하객 중 한 명인 듯,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목선을 따라 흐르는 잔잔한 조명이 그녀의 얼굴을 더 선명하게 비췄다. 서준을 발견한 그녀의 눈이 순간 커졌다. "어? 이서준?" 미래가 놀란 표정으로 서준과 서은을 번갈아 보았다. "둘이 아는 사이야?" 서준의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지금 이 상황에서 뭐라고 답해야 할지,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왜 여기 있는 거야. 왜 지금, 왜 하필.' 머릿속에서 같은 질문만 반복해서 맴돌았다. 서은은 그런 서준을 향해 천천히, 아주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그녀의 시선이 서준에게서 미래의 팔짱을 낀 손으로 옮겨갔다. 입가에 어딘가 묘한 미소가 걸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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