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집으로 돌아가는 길, 서준의 발걸음은 평소보다 무거웠다.
하늘은 이미 주황빛으로 물들어 있었고, 골목 어귀의 가로수 그림자가 길게 늘어져 있었다.
가방 안에는 아무도 모르게 챙겨둔 초콜릿 하나가 있었다.
박현우 선생님이 몰래 건네준 것이었다.
교무실 뒷문에서였다.
아이들이 다 빠져나간 복도, 선생님은 서준을 불러세우더니 주머니에서 초콜릿을 꺼내 손에 쥐여주었다.
'서준아, 힘내라.'
그 말과 함께 초콜릿을 쥐여주던 담임의 눈빛이 유난히 짙었다.
뭔가 알고 있다는 눈치였다.
단순히 시험을 잘 보라는 응원이 아니었다.
마치 서준이 지금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지, 그 속을 다 들여다보고 있다는 듯한 눈빛이었다.
서준은 애써 그 생각을 지웠다.
'설마, 알 리가 없잖아.'
발걸음을 재촉했지만 마음은 자꾸 뒤로 처졌다.
가방끈을 고쳐 쥔 손끝이 괜히 저릴 정도로 힘이 들어갔다.
집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진홍색 머리카락이 시야에 들어왔다.
이수아, 맏누나였다.
트레이닝복을 입고 팔짱을 낀 채 현관 앞에 서 있었다.
그 자세만으로도 서준은 오늘 하루가 순탄하게 넘어가지 않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수아의 팔짱은 늘 그랬다.
풀려 있으면 안심, 단단히 감겨 있으면 경계.
지금은 후자였다.
"늦었네."
"태오 병문안 갔다 왔어."
"또 다쳤어?"
"또."
수아의 눈이 가늘어졌다.
의심이 아니라 확인의 시선이었다.
서준은 그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피하면 더 의심받는다는 걸 오랜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수아와 눈싸움을 하듯 몇 초간 시선을 맞추고 있으니, 등 뒤로 식은땀이 한 줄기 흘렀다.
"밥 먹고 사백 개 해."
"오늘도?"
"매일이야, 잊었어?"
서준의 복근이 이미 저항 없이 익숙해진 통증을 예감하며 미세하게 조여왔다.
그는 아무 말 없이 신발을 벗었다.
운동화 끈을 풀며 힐끗 올려다보니, 수아는 벌써 몸을 돌려 거실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넓은 등, 곧게 뻗은 어깨.
집안의 모든 규율이 저 등에서 나온다는 걸 서준은 잘 알고 있었다.
저녁 식사는 닭가슴살과 채소, 현미밥 한 공기였다.
식탁에는 이미 셋째 미래와 둘째 리안이 앉아 있었다.
미래는 늘어지는 파마머리를 하나로 묶은 채 젓가락을 쥐고 있었고, 리안은 앞머리를 핀으로 고정하고 서준을 흘겨보듯 쳐다보고 있었다.
"왔어?"
미래가 반갑게 웃으며 물었다.
"어."
서준은 짧게 대답하며 자리에 앉았다.
미래가 그 옆에서 서준의 접시에 조금 더 얹어주려다 수아의 눈치를 받고 손을 멈췄다.
숟가락 끝에 걸린 현미밥이 허공에서 그대로 멈춰버린 모양이 우스웠지만, 아무도 웃지 않았다.
"조금만 더 줘도 되잖아."
"안 돼. 정량이야."
"불쌍하잖아……"
"불쌍한 게 아니라 관리야."
수아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토를 다는 순간 자신에게도 불똥이 튈 걸 아는지, 미래는 입을 삐죽이며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리안이 젓가락으로 서준의 머리카락을 슥 들추며 끼어들었다.
"머리 좀 다듬어야겠다. 앞머리 너무 길어."
"밥 먹을 때 하지 마."
"지금 아니면 언제 해."
"밥 먹고."
"밥 먹고 하면 또 딴짓하잖아. 오빠 방에 들어가면 문 잠그면서."
리안의 말에 서준의 숟가락질이 순간 멈췄다.
'딴짓이라니, 그냥 하는 말이겠지.'
그는 애써 태연한 얼굴로 다시 밥을 떴다.
수아는 그 짧은 정지를 놓치지 않고 곁눈질로 흘려보았지만,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세 누나의 관심이 동시에 자신에게 꽂히는 이 순간이, 서준은 여전히 익숙하면서도 매번 숨이 막혔다.
닭가슴살을 씹는 입안이 퍼석했다.
물을 한 컵 들이켜고서야 겨우 목구멍이 뚫리는 기분이었다.
식사가 끝나갈 무렵, 미래가 문득 물었다.
"오빠 요즘 학교에서 무슨 일 있어? 표정이 좀 그래."
"없어."
"진짜? 왜 자꾸 방에 틀어박혀 있어."
"공부하려고."
"거짓말."
리안이 낄낄대며 말을 받았다.
"서준이가 공부한다는 소리를 다 듣네."
"야."
"장난이야, 장난."
서준은 애써 웃어 보였지만, 입꼬리가 뻣뻣하게 굳는 느낌이었다.
밤이 되어 방으로 들어온 서준은 문을 잠그고 휴대폰을 꺼냈다.
침대에 걸터앉아 화면을 켜자마자 눈에 들어온 건 태오에게서 온 메시지였다.
[내일 점심시간에 서은이 옥상에서 혼자 있대. 지금이 기회야.]
서준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벌써?'
생각할 시간도 없이 일이 굴러가는 느낌이었다.
머릿속으로 지난 며칠간의 일들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태오가 처음 그 이야기를 꺼냈을 때만 해도, 서준은 그저 흘려들었다.
'설마 진짜로 그렇게까지 하겠어.'
그렇게 생각했던 게 불과 며칠 전이었다.
그런데 지금, 화면 위에 떠 있는 저 문장 하나가 모든 걸 현실로 만들어버렸다.
그는 답장을 보내려다 멈췄다.
방문 밖에서 발소리가 들렸기 때문이었다.
타박, 타박.
느리지만 분명한 발소리.
수아였다.
서준은 재빨리 휴대폰을 이불 속에 밀어넣었다.
심장이 거칠게 뛰기 시작했다.
두근, 두근.
관자놀이까지 그 박동이 전해지는 것 같았다.
문이 살짝 열렸다.
수아의 얼굴이 문틈으로 보였다.
젖은 머리카락 끝에서 물방울이 아직도 떨어지고 있었다.
샤워를 마치고 온 모양이었다.
"뭐 해."
"자려고."
"불 켜져 있잖아."
"끄려던 참이야."
수아의 시선이 이불 속 어딘가로 향하는 것 같았다.
서준은 숨을 죽였다.
겁먹은 토끼처럼 눈만 굴리며 그녀의 다음 행동을 기다렸다.
'제발, 제발 그냥 나가.'
"핸드폰 어디 있어."
"저기, 책상 위에."
서준은 재빨리 손을 뻗어 책상 위에 있던 다른 물건, 이어폰 케이스를 슬쩍 밀어 눈에 띄게 만들었다.
달그락, 작은 소리가 방 안의 정적을 깼다.
수아의 시선이 그쪽으로 잠시 옮겨갔다.
찰나였지만, 서준에겐 그 몇 초가 영원처럼 느껴졌다.
"내일 아침 훈련 여섯 시야."
"알아."
"늦으면 백 개 추가야."
"알아, 안다고."
수아는 문을 다시 닫으려다 멈췄다.
뭔가 생각난 듯 다시 서준을 바라보았다.
그 시선이 방 안을 한 바퀴 훑고 지나갔다.
책상, 옷장, 그리고 다시 이불 쪽으로.
"요즘 좀 이상해."
"뭐가."
"모르겠는데, 좀 이상해."
그녀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마치 화난 복어처럼 온몸의 감각을 곤두세운 표정이었다.
서준은 등줄기로 식은땀이 흐르는 걸 느꼈다.
셔츠 안쪽이 축축해지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아무것도 아니야."
"진짜?"
"진짜."
수아는 잠시 그를 응시하다가 결국 문을 닫았다.
발소리가 멀어졌다.
타박, 타박, 그 소리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서준은 숨을 참고 있었다.
서준은 그 자리에 주저앉듯 앉아 긴 숨을 내쉬었다.
'살았다.'
가슴을 짓누르던 무언가가 그제야 조금 걷히는 느낌이었다.
이불 속에서 휴대폰을 다시 꺼냈다.
화면에는 태오의 메시지가 여전히 떠 있었다.
[답장 왜 안 해?]
서준은 잠시 화면을 응시했다.
'서은이한테 진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머릿속에서 그런 생각이 스쳐 지나갔지만, 곧 고개를 저어 지워버렸다.
서준이 답장을 쓰기 시작하는 순간, 방문 밖에서 다시 수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서준아."
그 부름에 서준의 손가락이 그대로 멈췄다.
방금 닫혔던 문이, 다시 열릴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숨소리조차 내지 못한 채, 서준은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