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딸랑, 현관 벨 소리에 눈을 떴을 때 옆자리는 이미 비어 있었다. 이불을 걷고 일어나 앉으니 새벽 공기가 차갑게 어깨를 스쳤고, 나는 습관처럼 그의 자리를 손끝으로 더듬어보았다. 온기가 남아 있지 않았다. 결혼하고 1년 반이 지났는데도 나는 여전히 그가 언제 나가고 언제 들어오는지 알지 못했다.
강태오는 새벽 다섯 시면 어김없이 서재에서 나와 넥타이를 매며 거울 앞에 섰고, 나는 그 모습을 침실 문틈으로 몰래 지켜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눈매가 날카롭고 콧대가 곧게 뻗은 얼굴, 그리고 겨울바람처럼 시리면서도 묵직한 머스크 향이 방 안 가득 퍼질 때마다 나는 심장이 갓 잡은 활어처럼 팔딱거리는 걸 느꼈다. 넥타이를 매는 손끝이 정교했고, 셔츠 소매를 접어 올릴 때 드러나는 팔의 힘줄이 유난히 도드라져 보였다. 나는 그 사소한 동작 하나까지도 눈에 담으려 애썼다. 그가 나를 사랑해서 결혼했다고 나는 정말로 믿었다. 적어도 처음 몇 주는 그랬다.
식탁에 앉아 그를 기다리며 나는 손수 내린 커피 두 잔을 준비했다. 원두를 갈 때 나는 고소한 향, 물이 끓어오르며 내는 보글거리는 소리, 잔을 미리 데워두는 그 짧은 시간까지도 나는 정성을 다했다. 필터에 물을 붓는 각도, 커피가 우러나는 색을 지켜보는 순서까지 매일 똑같이 되풀이하면서도 나는 그것이 지루하다고 느낀 적이 없었다. 그런데도 그는 식탁을 지나칠 뿐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오늘은 늦어." 그가 던진 말은 그것뿐이었고, 나는 대답할 틈도 없이 등만 남기고 사라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잔을 붙든 손끝이 시리도록 차가워지는 걸 느꼈다. 김이 오르던 커피는 어느새 식어버렸고, 나는 그걸 버리지도 못한 채 한참을 붙들고 있었다.
결혼 초, 그는 적어도 겉으로는 다정했다. 내 손을 잡아 차 문을 열어주었고, 식사 자리에서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미리 주문해두었으며, 처음 이 집에 들어왔을 때는 내 방 벽지 색깔까지 물어봐 주었다. 연한 아이보리색이 좋겠다고 말했을 때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메모를 했었다. 그래서 나는 이 결혼이 아버지의 뜻이었다는 걸 알면서도, 그 안에 내가 원하던 사랑이 조금이라도 섞여 있을 거라고 믿었다. 순진했다. 지금 생각하면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로.
"유리씨." 언젠가부터 그는 나를 그렇게 불렀다. 존댓말과 반말 사이 어딘가에 걸쳐진 애매한 거리감이었다. 처음엔 존중이라고 생각했는데, 갈수록 그것이 벽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는 나를 아내로 대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나를 어떤 대상으로도 온전히 대하지 않았다. 함께 밥을 먹어도 그의 시선은 늘 나를 스쳐 지나가는 것 같았고, 같은 침대에서 잠을 자도 그는 등을 돌린 채 미동조차 없었다.
***
변화는 어느 날 저녁,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퇴근한 그가 서류가방을 소파에 던지듯 내려놓았을 때, 나는 저녁상을 차리다 손을 멈추고 그를 바라보았다. 평소와 다른 낯빛이었다. 눈빛이 얼어붙은 겨울 호수처럼 딱딱했고, 입매는 한 줄로 굳어 있었다. 넥타이는 반쪼가리 풀린 채 목에 걸려 있었고, 셔츠 깃은 살짝 흐트러져 있었다. 평소라면 절대 그런 채로 집에 들어오지 않을 사람이었다. "무슨 일 있어요?" 조심스럽게 물었을 때, 그가 나를 향해 던진 시선은 처음 보는 종류의 차가움이었다.
"밥." 그가 짧게 말했다. "먹었어."
그뿐이었다. 나는 밥상을 치우며 목이 메는 느낌을 삼켰다. 국그릇에서 올라오던 김이 점점 사그라들었고, 정성껏 무친 나물들은 손도 대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아 있었다.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는 채 위축된 어깨를 웅크렸고, 식탁 위 반찬들이 차갑게 식어가는 걸 지켜보았다. 젓가락 한 짝을 든 채로 나는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날 밤 그는 서재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고, 나는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심장이 옥죄어오는 감각을 느꼈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비슷했다. 그는 점점 더 말을 아꼈고, 나를 쳐다보는 눈빛에는 이상하게도 경멸에 가까운 무언가가 섞여 있었다. 아침 인사를 건네도 대답 대신 짧은 헛기침만 돌아왔고, 저녁이면 서재 문이 닫히는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다. 나는 그 문 앞을 몇 번이고 서성이다가도 결국 노크할 용기를 내지 못하고 돌아섰다.
"당신, 나한테 뭐 숨기는 거 있어요?" 참다못해 물었던 밤, 그는 잔을 내려놓으며 나를 응시했다. 잔 속의 술이 조금 흔들리며 잔벽을 타고 흘렀다. 고개가 꺾일 정도로 올려다봐야 하는 그 높이에서, 그가 말했다.
"숨길 게 있다면 당신이겠지."
무슨 뜻인지 되물을 새도 없이 그는 자리를 떴다. 나는 그 자리에 그대로 서서, 금붕어처럼 뻐끔거리는 입술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등줄기로 소름이 훑고 지나갔다. 이 사람이 지금 나를 의심하고 있는 건가. 아니면 다른 무언가를 나에게 숨기고 있는 건가. 손끝이 차갑게 굳어가는 걸 느끼며 나는 빈 잔을 치웠다. 그의 손이 닿았던 자리마저 낯설게 느껴졌다.
나는 그 밤, 잠들지 못한 채 창밖 불빛을 바라보며 아버지의 얼굴을 떠올렸다. 노석준. 언제나 냉정하고 계산적인, 딸을 자산 목록의 하나쯤으로 취급하던 얼굴. 결혼을 통보받았던 그날, 아버지는 딱 한 마디만 했다. "너한테 나쁠 거 없어." 나쁠 게 없다던 그 말이 지금은 비웃음처럼 되돌아오는 것 같았다. 이 결혼이 처음부터 그 계산 안에서 이루어진 거라면, 강태오의 저 차가움도 결국 어떤 목적의 일부일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스멀스멀 기어올랐다.
괜찮을까.
나는 이불을 끌어당겨 목까지 덮으며 눈을 감았다. 하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옆방에서 들려오는 그의 발소리가 마치 짐승의 그것처럼 무겁게 마루를 울렸고, 나는 숨조차 쉬지 못한 채 그 소리가 멀어지기만을 기다렸다. 발소리는 서재 앞에서 멈췄다가, 다시 거실 쪽으로 향했다가, 결국 현관 쪽으로 사라졌다. 이 밤중에 어디를 가는 걸까. 나는 몸을 일으켜 창문으로 다가갔다.
커튼 사이로 내려다본 마당에는 그의 차가 이미 시동을 걸고 있었다. 헤드라이트 불빛이 어둠을 가로지르며 대문 밖으로 빠져나가는 걸 보면서, 나는 손끝으로 유리창을 짚었다. 차가운 감촉이 손바닥을 타고 올라왔다.
이 시간에, 도대체 어디로.
전화기를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몇 번이나 그 동작을 반복하다가 결국 나는 침대로 돌아와 이불을 뒤집어썼다. 하지만 눈은 감기지 않았고, 귓가에는 그가 내려놓았던 잔의 흔들림이 아직도 맴돌고 있었다. 숨길 게 있다면 당신이겠지, 라는 그 말이 자꾸만 머릿속에서 되풀이되었다.
나는 정말 아무것도 숨긴 게 없는데.
그런데 왜 그의 눈빛은 나를 마치 죄인처럼 바라보았을까. 그 밤, 나는 끝내 답을 찾지 못한 채 뒤척이다가 새벽이 밝아오는 걸 보았다. 그리고 그때, 현관문이 다시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