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일요일만 당신 겁니다

1화

한소민은 아침 여섯 시 반이면 어김없이 눈을 떴다. 알람을 맞춰둔 적이 없는데도 몸이 스스로 시간을 기억하는 것처럼, 창틀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이 이불 위로 얇게 번지는 순간이면 정확히 잠에서 깨어났고, 그 규칙적인 감각이 소민에게는 하루를 지탱하는 최소한의 질서처럼 느껴졌다. 옆자리에서 몸을 뒤척이던 이민호가 잠에 취한 목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는데, 그 목소리에는 어떤 의심이나 채근도 섞여 있지 않아서 소민은 늘 그 담담함이 고맙게 느껴졌다. "오늘도 일찍 나가?" 이민호가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로 물었고, 소민은 그의 이마에 짧게 입을 맞추며 고개를 끄덕였다. "현석 씨네 사무실에 잠깐 들렀다가, 저녁에 스케줄이 하나 있어요." 그녀가 대답하는 사이, 이민호는 다시 이불 속으로 파고들며 낮게 웅얼거렸다. "몸 축나지 않게 조심하고."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민호는 다시 얕은 숨소리를 내며 잠에 빠져들었고, 소민은 그런 그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조용히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결혼 삼 년째, 소민과 이민호 사이에는 질투라는 감정이 좀처럼 끼어들지 않았다. 그것은 두 사람이 연애를 시작할 무렵부터 서로를 소유물로 여기지 않기로 합의했기 때문이었고, 그 합의는 결혼이라는 제도 안으로 들어온 이후에도 흐트러지지 않은 채로 유지되었다. 그 위에서 소민이 오현석을 만나고, 오현석이 아내 윤서라와 그녀의 연인 김태오와 얽힌 삶을 유지하는 동안에도, 이민호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소민을 지지해 왔다. 다만 소민이 전문 동반자로 일한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된 날, 이민호가 아무 말 없이 그녀의 손을 오래 붙잡고 있던 기억만은 여전히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그날은 늦가을이었고, 카페 창밖으로 낙엽이 흩날리던 걸 기억한다. 소민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어 자신이 하는 일을 설명하는 동안, 이민호는 커피잔의 손잡이를 만지작거리며 시선을 테이블 위에 고정한 채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소민은 그 침묵이 길어질수록 자신이 무언가 잘못된 선택을 한 건 아닐까 하는 불안에 손끝이 차가워졌는데, 그때 이민호가 천천히 손을 뻗어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그날 이민호는 화를 내지도, 슬퍼하지도 않았지만, 그저 그녀의 손끝을 붙잡은 채로 한참을 침묵했고, 그 침묵이 오히려 소민의 마음을 더 무겁게 눌렀다. "괜찮아." 한참 뒤에야 이민호가 뱉은 말은 그것뿐이었고, 소민은 그 짧은 말 속에 담긴 것이 이해인지 체념인지, 지금까지도 완전히 확신하지 못한 채로 살아가고 있었다. 소민이 하는 일은 단순했다. 외로운 사람들의 곁을 채우고, 그들의 저녁을 함께하고, 그 시간의 값을 정직하게 받는 것이었다. 식사 자리에서 상대의 말에 귀 기울이고, 때로는 술잔을 나누며 하루의 피로를 덜어주고, 어떤 날은 그저 옆에 앉아 침묵을 함께 견뎌주는 것이 그녀가 하는 일의 전부였다. 하지만 그 단순함 속에는 늘 타인의 시선이라는 무게가 얹혀 있었고, 예전에 짧게 다니던 사무직에서 겪었던 은근한 눈초리들이 그녀로 하여금 이 일을 오히려 더 담백하게 받아들이도록 만든 계기가 되었다. 그 사무실에서 소민은 늘 자신의 사생활에 대한 질문을 피해야 했고, 결혼했느냐는 물음 뒤에 따라붙는 미묘한 시선들, 아이는 언제 가질 거냐는 무례한 궁금증들에 지쳐 있었다. 적어도 이 일에서는, 서로가 무엇을 원하는지 숨기지 않아도 되었으니까. 샤워를 마치고 나온 소민은 물기를 닦아내며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을 잠깐 들여다보았다. 스물다섯 살의 얼굴에는 아직 큰 흔적이 남아 있지 않았지만, 그녀는 늘 이 얼굴이 앞으로 얼마나 더 담담할 수 있을지를 가늠해보는 습관이 있었다. 수건으로 머리를 감싸고 화장대 앞에 앉는 사이, 휴대폰 화면에 뜬 오현석의 메시지를 확인했다. [오늘 오전에 피닉스게임즈 사무실로 좀 와줄 수 있어? 도윤 씨가 소민 씨 얘기 듣고 궁금하다고 하더라고. 너무 걱정 말고, 그냥 커피 한 잔 하는 자리야.] 오현석은 피닉스게임즈에서 아트 디렉터로 일하고 있었고, 그 회사의 대표는 강도윤이라는 이십대 초반의 청년이라고 했다. 소민은 그 이름을 몇 번인가 오현석의 입을 통해 들은 적이 있었다. 젊은 나이에 회사를 세워 크게 키워낸 인물이라는 것, 업계에서는 이미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는 것, 성격이 다소 까다롭다는 이야기까지도 스치듯 전해 들었지만, 소민에게는 그저 오현석의 상사 정도로만 기억되어 있을 뿐이었다. 소민은 잠시 화면을 들여다보다가, 짧게 답장을 보냈다. [갈게요, 열한 시쯤.] 메시지를 보내고 나서야 소민은 어제 미리 다려둔 재킷을 옷장에서 꺼내 들었다. 특별히 격식을 차릴 자리는 아니었지만, 그녀는 늘 처음 만나는 사람 앞에서는 최소한의 단정함을 지키는 편이었다. 판교로 향하는 지하철 안에서 소민은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빌딩들을 무심히 바라보았다. 유리로 뒤덮인 건물들이 아침 햇살을 받아 날카롭게 반짝였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 자신의 삶과는 얼마나 다른 궤도를 돌고 있을지, 소민은 잠깐 상상해보다가 이내 관심을 접었다. 같은 서울 하늘 아래 있으면서도 완전히 다른 세계에 속한 사람들이 있다는 걸, 소민은 이 일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체득했다. 오현석 역시 그런 세계의 한쪽 끝에 발을 걸치고 있는 사람이었지만, 그와의 관계에서는 늘 어떤 균형이 유지되어 왔기에 소민은 크게 위축되지 않았다. 어차피 그런 세계와는 부딪힐 일이 없을 거라고, 그녀는 그렇게 믿고 있었다. 지하철에서 내려 판교역 출구를 빠져나오자, 초가을의 서늘한 바람이 얇은 재킷 사이로 스며들었고, 소민은 옷깃을 살짝 여미며 피닉스게임즈 건물이 있는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거리에는 회사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아침 커피를 손에 든 채 걸어가고 있었고, 그들의 발걸음에는 이 동네 특유의 속도감이 배어 있었다. 소민은 그 흐름 속에 자연스럽게 섞여 들어가며, 잠시 낯선 이질감을 느꼈지만 이내 걸음을 재촉했다. 건물 앞에는 커다란 불사조 로고가 유리벽에 새겨져 있었는데, 그 로고를 올려다보는 소민의 눈빛에는 특별한 감흥도, 경계심도 없었다. 날개를 활짝 펼친 불사조의 형상이 아침 햇살을 받아 은빛으로 번쩍였고, 그 아래를 지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바쁜 얼굴로 건물 안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그저 오늘 하루의 일정 중 하나일 뿐이었다. 로비로 들어선 소민은 안내 데스크에서 방문 목적을 밝히고 임시 출입증을 받아 목에 걸었다. 데스크 직원은 오현석의 이름을 확인하자 별다른 의심 없이 절차를 진행해주었고, 소민은 그 사소한 절차에서도 이 회사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었다. 엘리베이터에 올라탄 소민은 유리벽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잠깐 들여다보았다. 단정하게 묶은 머리, 크지 않은 귀걸이, 편안하지만 흐트러짐 없는 옷차림. 엘리베이터가 층을 오르는 동안 숫자판의 불빛이 하나씩 바뀌었고, 그 사이로 비친 자신의 얼굴에서 소민은 아주 잠깐 낯선 표정을 발견했다. 평소보다 조금 더 굳어 있는, 스스로도 예상하지 못한 긴장의 흔적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어떤 자리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준비가 되어 있다고, 그렇게 스스로를 다잡았다. 지금까지 만나온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도 그래왔듯, 오늘의 만남 역시 그저 잠시 스쳐 지나갈 인연 중 하나일 뿐이라고, 소민은 몇 번이나 자신에게 되풀이해서 일렀다. 하지만 그 순간의 담담함이 몇 시간 뒤 얼마나 무참하게 흔들릴지, 소민은 조금도 예상하지 못한 채로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들었다. 문이 양쪽으로 갈라지며 드러난 사무실 내부에는 정갈하게 정돈된 책상들과 그 사이를 오가는 사람들의 낮은 목소리가 뒤섞여 있었고, 그 풍경 너머 어딘가에서 소민을 향해 걸어오는 낯선 발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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