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문을 열자마자 마주친 건 예상보다 훨씬 큰 소란이었다.
대기실 전체가 뒤집혀 있었다.
의자가 넘어져 있고, 접수대 위에 놓인 서류가 우수수 떨어져 있었다.
누가 봐도 방금까지 여기서 무슨 난리가 났다는 게 보였다.
"복실아, 복실아 정신 차려봐!"
덩치가 크고 얼굴이 낯익은 남자가 강아지 한 마리를 품에 안고 소리치고 있었다.
낯익다고 생각한 순간, 아, 저 얼굴 어디서 봤더라 싶었다.
음원 차트 상위권에서 봤던 것 같기도 하고, 광고판에서 본 것 같기도 했다.
연예인이구나.
그것도 되게 유명한 연예인.
근데 지금 저 사람 얼굴에서 연예인 아우라 같은 건 전혀 안 느껴졌다.
그냥 반려동물이 죽어가는 걸 보고 미쳐버릴 것 같은 사람 하나가 있었을 뿐이었다.
"원장님! 빨리 좀 봐주세요!"
강태현이라는 사람이었다.
그 이름이 머릿속에 자동으로 떠올랐다는 게 좀 소름 돋았다.
나는 저 사람 이름 들어본 적도 없는데.
이하준은 알고 있었나 보다.
안고 있는 강아지는 흰 털에 갈색 무늬가 섞인 소형견이었다.
숨소리가 얕고 다리가 힘없이 늘어져 있었다.
배가 축구공처럼 부풀어 올라 있는 게 한눈에 봐도 정상이 아니었다.
몸이 먼저 움직였다.
내가 결정한 게 아니라 몸이, 정확히는 손이 먼저 강아지 배를 짚었다.
[수의학 지식 접근 중...]
[진단 보조: 급성 위장 팽만 및 탈수 의심]
뭐야 이거, 무슨 자동완성 기능이야.
머릿속에 갑자기 전문 지식이 자막처럼 지나갔다.
넷플릭스 자막도 이렇게 빨리 안 뜨는데.
"복실이 오늘 뭐 먹었나요."
내 입에서 나온 목소리가 놀랍도록 담담했다.
ㅡ이하준의 평소 말투인 것 같았다.
나였으면 지금 "헐, 어떡해요, 어떡해요" 하고 발만 동동 굴렀을 텐데.
"모, 모르겠어요! 갑자기 배가 빵빵해지면서 헐떡거리고!"
강태현의 목소리가 떨렸다.
덩치는 큰데 눈빛은 완전히 무너져 있었다.
유명인이라는 후광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그냥 반려동물 잃을까 봐 벌벌 떠는 사람 하나가 서 있었다.
"평소보다 사료 급하게 먹었을 수도 있고, 물을 많이 마셨을 수도 있고, 산책 직후에 뭘 먹였을 수도 있고요."
내 입이 알아서 질문을 쏟아냈다.
아니 나는 지금 옆에서 듀얼모니터로 보고 있는 기분인데, 정작 입은 지 혼자 프로 흉내를 내고 있었다.
"그, 그게, 오늘 산책 다녀와서 바로 사료를 줬는데, 걔가 원래 되게 급하게 먹거든요."
"급하게 먹고 바로 눕혔나요."
"네, 네!"
"위 확장의 전형적인 패턴입니다."
와, 나 이런 말도 할 줄 알았나.
이하준 씨, 당신 뭐 하는 사람이었어요.
"진료실로."
짧게 말하고 앞장서서 걸었다.
몸이 아는 길이라 편했다.
복도 몇 개 지나고 문 하나 여는 것까지 자연스러웠다.
뒤에서 강태현이 부리나케 따라왔다.
발소리가 쿵쿵쿵쿵 울렸다.
저 덩치로 저렇게 급하게 뛰어오면 좀 무서운데.
진료대 위에 강아지를 올리고 청진기를 목에 걸었다.
손에 익은 도구였다.
청진기 줄을 잡는 손 모양까지 완벽했다.
나였으면 이거 어디에 대야 하는지도 몰랐을 텐데.
[알림: 위 팽만 확인. 즉시 감압 필요]
머릿속 자막이 계속 떠올랐다.
이거 완전 게임 튜토리얼 자막이잖아.
근데 이 튜토리얼, 목숨 걸린 사람 앞에서 나오니까 하나도 안 웃기네.
"위 확장 꼬임 가능성이 있습니다. 엑스레이 찍겠습니다."
내 입에서 전문 용어가 술술 나왔다.
와, 나 이런 말 할 줄 알았나.
아니, 알 리가 없지, 나는 대학생이었다고.
근데 지금 이 순간엔 이상하게 확신이 있었다.
스탯 87의 힘인가.
강태현이 옆에서 손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꼬, 꼬임이라니, 그거 위험한 거 아니에요?"
"완전히 꼬인 거면 응급수술 들어가야 하는데, 지금은 그 단계인지 확인부터 해야 합니다."
"원장님 제발, 복실이 좀 살려주세요, 걔 저 데뷔하기 전부터 키운 애예요."
목소리가 갈라졌다.
저 큰 남자가 눈물을 참으려고 입술을 꾹 깨무는 게 보였다.
연예인이니 뭐니 다 필요 없고 그냥 반려동물 걱정하는 보호자였다.
엑스레이를 찍는 동안 조수로 보이는 남자가 슬그머니 다가왔다.
명찰에 '조민석'이라고 적혀 있었다.
"원장님, 제가 도와드릴게요."
웃는 얼굴인데 눈은 안 웃고 있었다.
뭔가 사람 표정 근육 쓰는 게 어색한 스타일이었다.
미소가 아니라 미소 이모티콘을 억지로 붙여놓은 느낌이었다.
"됐어요."
내 입에서 딱 잘라 나온 대답에 조민석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뭐야, 방금 나 뭐라고 한 거야.
원래 이하준이 이렇게 냉정한 사람이었나.
"저, 그래도 촬영 자세는 제가 봐드리는 게……"
"이 각도로 찍으면 됩니다. 신경 안 쓰셔도 돼요."
몸이 알아서 방향을 지시했다.
조민석은 뭐라고 더 말하려다가 그냥 입을 다물고 물러났다.
저 사람 표정이 뭔가 계속 신경에 걸렸다.
호의를 거부당한 사람의 얼굴이 아니라, 계획이 어긋난 사람의 얼굴이었다.
엑스레이 결과가 나왔다.
위가 확실히 부풀어 있었지만 완전히 꼬인 건 아니었다.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완전히 꼬이진 않았어요. 위 확장 단계입니다."
"그, 그럼 살 수 있는 거예요?"
"지금 처치하면 됩니다."
강태현이 그 자리에 무너지듯 주저앉을 뻔했다.
옆에 있던 의자를 붙잡고서야 겨우 버텼다.
"수액 놓고 감압관 삽입할게요."
손이 능숙하게 움직였다.
바늘을 잡는 각도, 혈관을 찾는 손끝의 감각, 하나부터 열까지 다 자연스러웠다.
조민석이 옆에서 약품을 준비하는 척하며 곁눈질로 나를 계속 살폈다.
저 시선, 뭔가 관찰당하는 느낌이 좀 불편했다.
[욥기 41:11, 누가 먼저 나를 대접하였관대 내가 갚겠느냐]
갑자기 왜 성경 구절이 떠오르는 거지.
아, 맞다, 나 교양 수업으로 성서와 문학 들었었지.
근데 지금 이 상황에 왜 이게 생각나냐.
대접은 개뿔, 지금 나는 갑자기 남의 몸에 들어와서 강아지 목숨 구하는 중인데.
욥이 이 상황을 보면 뭐라고 했을까.
아마 "야, 너 대체 무슨 계약을 한 거냐" 하고 물었을 것 같다.
감압관 넣는 손이 살짝 떨리는 걸 느꼈다.
아, 이건 이하준의 떨림이 아니라 내 떨림인 것 같았다.
아무리 시스템이 지식을 넣어줘도, 진짜 생명이 걸린 손끝의 무게는 안 가벼워지는구나.
촤륵.
관이 들어가면서 안에서 뭔가 빠져나가는 소리가 났다.
복실이의 배가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했다.
"됐다."
나도 모르게 안심의 한숨이 나왔다.
진짜로 심장이 쿵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이거 남의 강아지인데 왜 내가 이렇게 안심하는 거야.
감압관을 삽입하자 복실이의 상태가 눈에 띄게 편안해졌다.
숨소리가 고르게 돌아왔다.
헐떡거리던 게 멈추고 편한 호흡으로 바뀌었다.
눈도 스르르 감기는 게, 이제 좀 살겠다 싶은 표정이었다.
강태현이 눈물을 글썽이며 다가왔다.
"감사합니다, 원장님. 정말 감사합니다."
그러더니 갑자기 무릎을 꿇으려고 했다.
아니, 잠깐만요, 그건 좀 오버인데.
"안 하셔도 돼요, 일어나세요."
"아니에요, 진짜, 저 복실이 없으면 안 되는데, 원장님이 살려주신 거예요."
그 얼굴이 너무 절박해서 뭔가 코끝이 찡해졌다.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연예인이 이렇게 무너지는 걸 실시간으로 보다니, 이거 SNS에 올리면 화제 될 텐데.
아니, 뭘 벌써 밈 생각을 하고 있어.
근데 조민석의 표정은 정반대였다.
입은 웃고 있는데 눈은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었다.
저 눈빛, 딱 봐도 뭔가 계산 들어가는 눈빛이었다.
"강태현 씨가 원장님 진짜 대단하다고 SNS에 올릴 것 같은데요."
조민석이 슬쩍 흘리듯 말했다.
그 말투에 왜 이렇게 가시가 느껴지지.
축하해주는 말인데 왜 축하 안 해주는 것처럼 들리지.
"그럼 좋죠, 병원 홍보되고."
내 입에서 태연하게 나온 대답에 조민석의 미소가 아주 잠깐 흔들렸다.
0.5초쯤 정도였는데,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알림: 조력자 후보 인식 - 조민석. 우호도 낮음]
시스템이 굳이 알려줄 필요 없는 정보까지 알려줬다.
고맙다, 근데 이미 알고 있었어.
저 눈빛에서 우호도 낮다는 건 삼척동자도 알겠다.
시스템아, 너 지금 나 무시하는 거지.
강태현은 복실이 옆에 딱 붙어서 손을 못 놓고 있었다.
조민석은 그런 강태현을 힐끗 보고는 다시 약품 서랍 쪽으로 갔다.
일단 오늘 위기는 넘긴 것 같았다.
근데 뭔가 찜찜한 기분이 가시지 않았다.
조민석이 약품 서랍을 정리하며 유독 오래 머무는 게 신경 쓰였다.
뭘 저렇게 오래 뒤적거리는 거야.
서랍 한 칸 정리하는 데 5분씩 걸릴 일인가.
게다가 저 사람, 아까부터 나랑 눈이 마주칠 때마다 시선을 슬쩍 피하는 것 같았다.
뭐 숨기는 거 있는 사람의 전형적인 패턴 아닌가.
강태현이 복실이 상태를 몇 번이나 확인하고서야 겨우 안심한 얼굴로 물었다.
"원장님, 그럼 오늘 여기 입원시켜도 될까요?"
"네, 오늘 하루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말로요."
강태현이 몇 번이나 고개를 숙이고 진료실을 나갔다.
그 뒷모습을 보면서 나는 잠깐 안도했다가, 곧바로 조민석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저 사람은 아직도 서랍 앞에 서 있었다.
손은 약품 정리를 하고 있는데, 얼굴은 완전히 딴생각을 하는 표정이었다.
뭐지, 저 표정.
꼭 뭔가 계획이 어그러진 사람 얼굴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