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그림자들은 조용히 움직였다.
발소리 하나 내지 않았다.
숨소리마저 죽인 채, 마치 처음부터 그곳에 없었던 것처럼.
하지만 나는 이미 눈을 뜨고 있었다.
지붕 위로 스며드는 인기척은, 잠결에도 놓칠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살기를 억누른 자들 특유의, 그 팽팽한 긴장감.
"...생각보다 빨리 왔군."
나는 몸을 일으켰다.
이불을 걷어내고 방바닥에 발을 디디자, 차가운 냉기가 발바닥을 타고 올라왔다.
창밖에서 세 개의 인영이 지붕을 타고 내려오는 게 보였다.
달빛에 비친 그림자는 길고 가늘었다.
복면을 쓴 자들이었다.
움직임이 절제되어 있었다.
발끝으로만 지붕 기와를 딛고, 무게중심을 흐트러뜨리지 않은 채 미끄러지듯 내려앉는 몸놀림.
흑랑채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되는 수준이었다.
허리춤의 패는 흑랑채보다 훨씬 정교한 문양이었다.
늑대 머리 위에 초승달이 얹힌 형상.
처음 보는 문양이었다.
[제대로 걸렸구나.]
청묘의 목소리에 웃음기가 묻어났다.
[저건 사수문의 표식이다. 흑랑채 따위가 상대할 급이 아니지.]
"사수문이라."
귀동냥으로만 들어본 이름이었다.
차가와 오랜 세월 척을 진, 사파 계열의 문파.
그 이름을 들어본 게 언제였더라.
주막에서 술 취한 표국 사람들이 지나가는 말로 흘렸던 것 같기도 하고.
[방심하지 마라.]
청묘가 목소리를 낮췄다.
[사수문의 살수들은 흑랑채와는 격이 다르다.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할 게다.]
지도 하나에 이 정도 급이 움직였다는 건, 그 안에 담긴 게 생각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뜻이었다.
나는 창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밤바람이 살갗에 닿았다.
서늘했다.
세 명의 그림자가 나를 발견하고 멈춰 섰다.
셋 다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애송이가 여기 왜 나와 있나."
가운데 선 자가 낮게 물었다.
목소리에 짜증이 섞여 있었다.
계획이 틀어졌다는 걸 눈치챈 모양이었다.
"주인이니까요."
나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그 지도, 마음에 드셨습니까."
"..."
셋 다 말이 없었다.
예상 못 한 반응에 당황한 눈치였다.
기와 위에 선 채로, 서로 눈빛을 주고받는 게 어렴풋이 보였다.
애송이 하나쯤이야, 하고 얕봤을 텐데.
그 애송이가 이렇게 태연하게 나와서 말을 건네니 당황스러운 모양이었다.
"돌려드릴 순 없습니다."
나는 목봉을 고쳐 쥐었다.
손바닥에 닿는 목봉의 질감이 익숙했다.
수백 번 도끼질로 다져진 손아귀 힘이 자연스럽게 목봉을 감쌌다.
"대신, 그 지도가 왜 중요한지는 말씀해 주셔야겠소."
가운데 선 자가 짧게 웃었다.
"애송이 하나 죽이고 가져가면 될 일을, 왜 설명까지 해야 하나."
"그럼 어쩔 수 없지."
나는 자세를 낮췄다.
무릎을 살짝 굽히고, 목봉 끝을 앞으로 내밀었다.
지붕 위 달빛 아래, 세 그림자가 동시에 검을 뽑았다.
스르릉.
서늘한 쇳소리가 밤공기를 갈랐다.
검신에 반사된 달빛이 눈을 찔렀다.
나는 숨을 골랐다.
들이쉬고, 내쉬고.
몸속 깊은 곳에서부터 무언가 차분히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연기 오중의 몸.
가진 것이라곤 이 왜소한 육체 하나뿐.
하지만 그 안에 담긴 감각은, 오천 년 전 봉심 경지의 것이었다.
도끼로 장작을 패던 그 무수한 반복 속에서 다져진 감각.
정직하게, 위에서 아래로.
그 단순한 궤적이 지금 이 순간에도 고스란히 살아있었다.
첫 번째 그림자가 달려들었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나는 목봉을 위에서 아래로 내리쳤다.
퍽!
목봉과 검이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가 밤공기를 갈랐다.
[제대로 보여줘라. 이 몸을 담은 그릇이 어디까지 버티는지.]
청묘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울렸다.
달빛 아래, 세 개의 검이 동시에 나를 향해 짓쳐 들어오고 있었다.
두 번째, 세 번째 그림자가 좌우에서 협공해 왔다.
숨 돌릴 틈조차 주지 않으려는 움직임이었다.
이것이 사수문의 실력인가.
나는 이를 악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