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푸른 고양이가 깨운 검

1화

장로전 앞에 무릎을 꿇은 채로, 나는 통보문을 들었다. 종이는 얇았다. 하지만 그 위에 적힌 몇 글자가, 이 몸뚱이의 목숨줄을 쥐고 있었다. "연기 사중." 장로의 목소리는 감정이 없었다. 돌덩이를 두드리는 소리 같았다. "입문 삼 년 차에 사중이라니. 차가의 이름에 먹칠하는 수준이다." 나는 고개를 숙였다. 무릎 아래 돌바닥이 차가웠다. 속으로는 웃음이 나왔다. 오천 년 전, 이 몸으로 다시 눈을 뜬 순간부터 이런 취급은 익숙했다. 경맥이 파괴된 몸이었다. 한때 봉심 경지, 인간을 초월한 지존급 수행자였던 나의 영혼이, 하필이면 이렇게 망가진 그릇에 담겼다. 기맥은 좁고 뒤틀려 있었고, 내공은 새는 항아리처럼 흩어졌다. 수백 년을 벼려온 내공심법도 이 몸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웃긴 일이었다. 영혼은 하늘을 걷던 자인데, 몸은 걸음마조차 버거운 아이였다. 한 걸음 내딛는 데도 뼈마디가 삐걱거렸다. "두 달 뒤 성인식이다." 장로가 말을 이었다. 수염을 쓸어내리는 손끝이 딱딱했다. "그때까지 연기 육중에 이르지 못하면." "제명이겠지요." 내가 먼저 말을 끊었다. 장로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래. 알고 있었나." "짐작은 했습니다." 나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경맥이 이 모양인데, 두 달 안에 두 단계를 뛰어넘으라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요구였다. 장로도 알고, 나도 알았다. 그저 형식적인 절차일 뿐이었다. "그럼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저녁 끼니 시간이 다 되어서요." 장로의 얼굴이 순간 굳었다. 제명 위기를 통보받은 놈이 밥 걱정이라니. 전각 안의 다른 장로들도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사실이었다. 이 몸은 하루 세 끼를 챙기지 않으면 수련은커녕 걷기도 힘들었다. 봉심의 경지에서는 열흘을 굶어도 태연했건만, 지금 이 그릇은 한 끼만 걸러도 손이 떨렸다. "...가보아라." 장로가 손을 내저었다. 목소리에 짜증이 섞여 있었다. 나는 예를 갖춰 절하고 몸을 일으켰다. 무릎이 시큰거렸다. 전당을 나서자 정남이 기둥에 기대선 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같은 고향 출신, 같은 외제자였지만 그는 이미 연기 칠중이었다. 체격도 나보다 한 뼘은 더 컸다. "들었나. 방출 얘기." 정남이 팔짱을 낀 채 웃었다. 입가에 걸린 웃음이 조롱기로 가득했다. "..."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경맥 파괴된 놈이 무슨 재주로 두 달 만에 육중을 찍겠나." 그의 웃음소리가 복도에 울렸다. 지나가던 다른 제자들도 힐끔거렸다. 몇몇은 아예 대놓고 손가락질하며 수군댔다. 나는 그를 지나쳐 걸었다. 뒤통수가 따가웠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 내게 중요한 건 정남의 조롱이 아니었다. 무너진 기맥을 어떻게든 다시 뚫어야 한다는 것. 그것뿐이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 저녁 어스름이 짙게 깔렸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봉심 경지의 위엄이고 뭐고,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저 밥 한 술이 간절했다. 뒷산 초입을 지날 때였다. 이상한 기척이 느껴졌다. 짐승의 것도, 사람의 것도 아닌. 오천 년을 넘게 살아온 내 감각조차 낯선, 처음 겪는 파장이었다. 살갗에 소름이 돋았다. 숨을 죽이자 그 파장이 더욱 선명해졌다. 나는 걸음을 멈췄다. 숲 속에서 무언가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어둠 속, 나무 그림자 사이로 눈동자 같은 것이 번뜩였다. 한 번도 아니었다. 여러 개였다.
첫 화입니다 목록 다음화 ›
♡ 좋아요 0 · 로그인 후 좋아요/별점/댓글 참여 가능

댓글 0

  •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