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소환됐는데 축복이 없다니

3화

감옥방에서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알 수 없었다. 창문이 없어서 밤인지 낮인지도 몰랐다. 벽은 축축했고, 돌 틈새로 스며 나온 물기가 발끝을 적셔서 발가락 사이가 계속 시렸다. 곰팡이 냄새인지 흙냄새인지 구분이 안 되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배에서 소리가 났다. 꼬르륵. 이런 상황에도 배는 고팠다. ···인간이란 참 한심하다. 사형선고를 기다리는 와중에도 위장은 삼겹살에 소주 한 잔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와, 나 진짜 대단하다. 바닥에 등을 대고 누워 천장을 올려다봤다. 돌로 쌓아 올린 천장에는 이끼가 슬어 있었고, 어디선가 물 떨어지는 소리가 똑, 똑, 일정한 간격으로 울렸다. 시계도 없는데 그 소리가 유일한 시간 감각이었다. 몇 번이나 세다가 포기했다. 백 번쯤 세고 나니 세는 것 자체가 의미 없다는 걸 깨달았다. 문이 열린 건 그로부터 한참 뒤였다. 철컹, 하는 무거운 소리가 먼저 들렸다. 키가 작은 여자가 들어왔다. 푸른 긴 드레스를 입고 있었고, 손에 나무 쟁반을 들고 있었다. 쟁반 위에는 딱딱한 빵과 물병이 있었다. 빵은 한눈에 봐도 딱딱해 보였다. 돌멩이랑 구분이 잘 안 될 정도로. 그런데도 그 냄새가 향긋하게 느껴졌다. 사람이 이렇게 간사하다. "드세요." [식사입니다. 상처도 봐드릴게요.] 나긋한 존댓말이었다. 어제 광장에서 소리치다가 팔을 벽에 긁혔는데, 그걸 어떻게 알았는지 붕대를 들고 있었다. 누가 봐도 관리인 같은 태도였는데, 어딘가 낯설지 않은 친절함이 묻어 있었다. 빵을 한 입 베어 물었다. 딱딱하다는 표현이 부족했다. 이건 그냥 벽돌이었다. 그런데도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났다. 배가 고프면 뭐든 맛있어지는 법이니까. 물을 마시자 목구멍이 아릴 정도로 시원했다. "저는 오소민이라고 합니다." 여자가 자기소개를 했다. "당분간 두 분 관리를 맡게 됐습니다." "두 분이라면… 서아도요?" "윤서아 소환자도 맞습니다." 조금 안심이 됐다. 적어도 누가 서아를 챙겨주고 있다는 뜻이니까. 낯선 세계에 던져진 것도 서러운데, 서아까지 어떻게 됐는지 모르는 채로 있었다면 정말 미쳐버렸을 거다. "서아는 괜찮아요? 다친 데는 없어요?" "윤서아 소환자는 건강합니다. 밥도 잘 드셨습니다." "다행이네요." 진심으로 다행이었다. 이 와중에 서아 밥투정이나 걱정하는 내가 좀 웃기긴 했지만. 오소민이 내 팔에 붕대를 감으며 낮게 설명을 시작했다. 손길이 조심스러웠다. 마치 다치는 게 무슨 죄라도 되는 것처럼. "여기는 벨루아라는 세계입니다. 지금 남쪽에서 마신군이라는 존재들과 전쟁 중이고요." "마신군이요?" 게임에서 많이 보던 이름이었다. 근데 이건 게임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게 문제였다. "인간을 잡아먹는 존재들입니다. 빛의 교단이 그들을 막고 있는데, 전력이 부족해서 정기적으로 다른 세계에서 소환자를 불러옵니다." "그럼 우리도 그 전쟁에 쓰이려고 끌려온 거예요?" 목소리가 떨렸다. 화가 나야 하는데 무서움이 먼저 올라왔다. "용사로서, 축복을 받아 힘을 얻고 마신군과 싸우게 됩니다. 그게 정상적인 경우입니다." "정상적이지 않은 경우가 저희고요." 내 말에 오소민이 잠시 손을 멈췄다. 붕대를 감던 손가락이 미세하게 굳었다. "···축복은 신께서 소환자 각각에게 내리시는 표식입니다. 지금까지 소환된 자들 중 축복을 받지 못한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거의 없었다는 건, 있긴 있었단 소리네요." "몇 차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전부 마신군의 첩자로 판명됐습니다." 심장이 철렁했다. 등줄기를 타고 서늘한 게 내려갔다. "저흰 첩자가 아니에요."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싶습니다." 오소민의 목소리는 여전히 담담했다. 그 담담함이 오히려 더 무섭게 느껴졌다. 확신이 아니라 그냥 습관 같아서. "그럼 앞으로 저희는 어떻게 되나요." "닷새 뒤에 대심문회가 열립니다. 대주교님들께서 직접 심문하시고, 그 결과로 처형 여부가 결정됩니다." 처형. 그 단어를 듣는 순간 목이 바짝 말랐다. 방금 마신 물이 아무 소용도 없었던 것처럼. "처형이라니, 저희가 뭘 했다고요." "입증하시면 됩니다. 축복이 없어도 첩자가 아니라는 걸." "어떻게 입증하는데요." "그건, 저도 정확히는 모릅니다." 오소민이 처음으로 눈을 피했다. 뭔가 숨기고 있는 눈치였다. 저 눈빛, 뭔가 알면서 말 안 해주는 눈빛이잖아. 답답해서 미칠 것 같았지만 더 캐물어도 나올 게 없어 보였다. "닷새면… 그동안 저희는 여기 계속 있는 거예요?" "그렇습니다. 식사는 하루 두 번 가져다드리겠습니다." "하루 두 번이요? 그럼 저 이제 삼시세끼는 물 건너간 거네요." "···죄송합니다. 규정상 그렇습니다." 오소민이 진짜로 죄송한 표정을 지었다. 이 상황에 밥 투정이라니, 나도 참 어지간하다 싶었지만 배는 배대로 고팠다. 오소민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불편한 게 있으시면 문을 두드려주세요. 최대한 살펴봐 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인사치레였는데도 오소민은 짧게 고개를 숙이고 나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철컹, 다시 울렸다. 혼자 남으니 다시 정적이었다. 빵을 다 먹고 나서도 배는 여전히 허전했다.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서 눈을 감았다. 닷새. 닷새 안에 뭘 어떻게 해야 첩자가 아니라는 걸 증명할 수 있다는 건지,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밤이 되자 옆방 벽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똑, 똑, 똑. 심장이 쿵 뛰었다. "서아야?" 작게 불러봤다. 벽 너머로 목소리가 들렸다. "준서야, 괜찮아?" 목소리를 듣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살아있다는 확인만으로 이렇게 안심될 줄은 몰랐다. "괜찮아. 너는?" "나도. 오소민 언니가 밥 줬어." "나도 받았어. 빵 진짜 딱딱하더라." "그치? 나는 물에 좀 불려서 먹었어." 짧은 웃음이 났다. 이 상황에 빵 이야기를 하고 있다니. "닷새 뒤에 대심문회 한대. 처형될 수도 있대." 잠시 침묵이 흘렀다. 벽 너머로 서아가 숨을 고르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우리 둘 다 잘못한 거 없잖아." 서아의 목소리가 단단했다.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우리 같이 살아서 돌아갈 거야." "어떻게 그렇게 확신해." "확신 안 하면 어떡해. 여기서 내가 무너지면 너까지 무너질 거잖아." 말이 안 나왔다. "···그래. 같이 돌아가자." 그 말이 벽 하나를 사이에 둔 방 안에서 유일한 위안이었다. 한참 동안 벽을 두드리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학교 이야기, 좋아하던 음식 이야기, 심지어 다음에 뭘 먹고 싶은지까지. "돌아가면 진짜 치킨부터 먹을 거야." "난 떡볶이." "그래, 그것도 좋다." 이런 대화가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는데도, 그 순간만큼은 감옥이라는 것도 잊을 수 있었다. 대화는 오소민이 순찰 도는 발소리가 들리면서 끊겼다. "자자, 준서야. 내일 봐." "어, 그래. 잘 자." 벽 너머 인기척이 사라지고 나서야 다시 혼자라는 걸 실감했다. 바닥에 누워 눈을 감았지만 잠은 쉽게 오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방문이 벌컥 열렸다. 쾅. 그 소리에 놀라서 몸이 반사적으로 벽 쪽으로 붙었다. 오소민이 아니었다. 강목현이었다. 어깨에 걸린 망치가 눈에 들어왔다. 망치 머리 부분에 말라붙은 뭔가가 있었는데, 그게 뭔지 굳이 알고 싶지 않았다. "대주교님이 부르신다." 낮고 짧은 명령이었다. 예상보다 빨랐다. 닷새라고 했는데 벌써 부른다고?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오소민은 분명 닷새 뒤라고 했는데, 하루도 안 지나서 이게 무슨 소리야. "저기, 닷새 뒤라고 들었는데요." "명령이 바뀌었다." 강목현은 그 이상 설명하지 않았다. 표정에서도 아무런 정보를 얻을 수 없었다. 원래 저런 얼굴인지, 일부러 저러는 건지 구분이 안 됐다. "준비해라. 지금 간다." 강목현의 손이 내 어깨를 강하게 붙잡았다. 손아귀 힘이 어마어마했다. 뼈가 으스러질 것 같은 느낌이었다. "잠깐, 잠깐만요. 뭐가 어떻게 되는 건지 설명이라도—" "지금 간다고 했다." 방문 밖으로 끌려 나가는 동안, 옆방에서 서아가 끌려 나가는 소리도 들렸다. "서아야!" "준서야!" 서로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복도에서 부딪혔다. 누군가 서아를 붙잡고 있는 발소리, 저항하는 둔한 소리. 뭔가 잘못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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