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아침 7시 20분, 이서윤의 방.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을 뜬 이서윤은 천장을 잠시 바라보다가 습관처럼 협탁 위의 휴대폰을 집어 들었는데, 화면을 켜는 손끝이 이미 정해진 순서를 아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밤사이 쌓인 알림들이 잠금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고, 그 사이로 어젯밤 올린 피드 사진의 좋아요 수가 눈에 들어왔다.
삼천 개를 훌쩍 넘긴 숫자를 확인하는 순간, 서윤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저절로 걸렸는데, 그 미소는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순전히 자기 자신을 향한 확인 같은 것이었다.
댓글창을 몇 개 훑어보던 서윤은 익숙한 계정들 사이에서 낯선 아이디 하나를 발견했지만, 별다른 의미 없는 팬 계정이라 생각하며 스크롤을 넘겼다.
청담고등학교 안에서 이서윤이라는 이름은 곧 하나의 브랜드였다.
팔로워 12만 명, 매일 올리는 피드마다 댓글창이 넘쳐나고, 학교 축제 시즌이면 어느 반이든 그녀의 코디를 따라 하려는 후배들이 줄을 섰으며, 교문을 넘는 순간부터 그녀는 이미 먹이사슬의 정점에 선 존재처럼 시선을 끌어모으는 아이였다.
침대에서 일어난 서윤은 커튼을 걷었고, 아침 햇살이 방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면서 어제 입었던 옷가지들이 걸린 의자와 화장대 위에 정갈하게 늘어선 화장품들을 차례로 비췄다.
거울 앞에 서서 셔츠 깃을 매만지던 서윤은, 완벽하게 다듬어진 눈썹과 살짝 웨이브가 들어간 머리칼을 확인하며 오늘 하루도 흠 하나 없이 흘러가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잡았다.
손끝으로 눈썹 라인을 다시 한번 정리하고, 립밤을 톡톡 두드려 바르는 그 모든 동작이 이미 몸에 익어 자동적으로 이루어졌지만, 서윤은 그 과정 하나하나에 소홀함이 없도록 신경을 곤두세웠다.
교복 재킷의 단추를 채우다가 문득 거울 속 자신의 눈을 오래 들여다보게 되었는데, 그 눈빛 속에서 무언가 설명할 수 없는 불안이 스쳐 지나가는 것을 서윤은 못 본 척 넘겼다.
식탁에는 이미 아침상이 차려져 있었고, 엄마는 국그릇을 내려놓으며 지나가듯 한마디를 던졌다.
"서윤아, 너 그렇게 예쁜데 왜 남자친구를 안 만드니. 좋아하는 애 없어?"
그 말에 서윤은 순간 숨을 삼켰는데, 대수롭지 않은 척 시리얼을 씹으며 "눈이 높아서 그래"라고 대답했지만, 속으로는 뭔가 뜨거운 것이 목구멍에 걸린 듯한 기분이 오래도록 가시지 않았다.
숟가락을 든 손이 잠시 멈췄다가 다시 움직였고, 엄마는 별생각 없이 텔레비전 뉴스로 시선을 옮겼지만 서윤은 그 짧은 정지를 스스로도 이상하게 여겼다.
'남자친구라니.'
그 단어를 곱씹는 순간 떠오른 얼굴이 남학생이 아니라는 사실이, 서윤에게는 낯설다기보다 차라리 익숙해서 더 불편했다.
그 감정이 어디서 오는 건지, 서윤은 굳이 들여다보지 않기로 했다.
가방을 챙겨 현관을 나서는 서윤의 뒤로 엄마의 잔소리가 따라붙었지만, 서윤은 못 들은 척 신발을 신고 문을 닫았다.
아침 공기는 아직 차가웠고, 교문까지 걸어가는 십오 분 남짓한 길 위에서 서윤은 몇 번이나 휴대폰을 열어 새로 올라온 댓글들을 확인했다.
교문에 들어서자마자 익숙한 목소리가 그녀를 불러 세웠다.
"서윤아!"
김하은이 손을 흔들며 뛰어오고 있었는데, 자연스럽게 흘러내리는 단발머리와 화장기 없는 맨얼굴에도 유독 따뜻한 빛이 도는 얼굴이 아침 햇살 아래서 유난히 선명했다.
하은은 서윤의 절친이었고, 애니메이션 굿즈로 가득한 파우치를 늘 들고 다니는 아이였으며, 남자친구 박도현과 사귀는 사이였지만 서윤 앞에서는 여전히 아이처럼 애교가 많은 편이었다.
숨을 몰아쉬며 다가온 하은의 이마에 옅게 땀이 배어 있었고, 그 모습을 보며 서윤은 아침부터 뛰어온 거냐고 물으려다가 그만두었다.
"오늘 사진 봤어, 완전 대박이던데." 하은이 서윤의 팔을 자연스럽게 감싸 안으며 걸음을 맞추자, 서윤은 그 익숙한 온기에 별생각 없이 웃어 보였다.
"당연하지, 누가 찍었는데."
"내가 찍었잖아, 나 좀 재능 있는 것 같아."
하은이 장난스럽게 어깨를 부딪히며 웃는 순간, 그녀의 머리카락이 서윤의 목덜미를 살짝 스쳤는데, 그 순간 서윤은 이유를 알 수 없이 심장이 한 번 크게 뛰는 걸 느꼈다.
'왜 이러지.'
서윤은 그 감각을 애써 무시한 채 걸음을 옮겼지만, 하은이 팔짱을 낀 채로 웃으며 이야기를 이어가는 동안에도 그 이상한 두근거림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교정을 가로지르는 동안 몇몇 아이들이 서윤을 향해 손을 흔들거나 눈짓으로 인사를 건넸고, 서윤은 그 모든 시선을 자연스럽게 받아내며 걸었지만, 정작 신경이 쓰이는 것은 옆에서 팔짱을 낀 하은의 손끝이었다.
체육관 앞을 지날 때쯤, 하은이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서윤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너 오늘 좀 피곤해 보인다? 잠 못 잤어?"
"아니, 그냥."
서윤은 말끝을 흐리며 시선을 피했는데, 하은은 더 캐묻지 않고 다시 팔짱을 고쳐 끼며 걸음을 옮겼고, 그 배려가 오히려 서윤의 마음을 더 복잡하게 만들었다.
교실에 들어서자, 정수아가 책상에 걸터앉아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다가 고개를 들었다.
"야, 한서린 팔로워 늘었더라. 축제 퀸 투표 시작하기도 전부터 벌써 난리야."
수아는 독설로 유명한 아이였는데, 남에게 상냥한 법이 없었지만 서윤과 하은에게만은 묘하게 솔직했고, 그 솔직함 뒤에는 술을 끊지 못하는 어머니 이야기가 숨어 있다는 걸 서윤은 알고 있었다.
책상 위에 가방을 내려놓던 서윤은 수아의 말에 반응하지 않으려 했지만, 이미 귀는 그 이름에 붙들려 있었다.
"한서린이 뭘 어쨌는데." 서윤이 무심한 척 물었지만, 그 이름을 듣는 순간 배 속 깊은 곳에서 낯선 열기가 슬며시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수아가 휴대폰 화면을 들이밀며 한서린의 최신 게시물을 보여주자, 완벽한 각도로 찍힌 학생회장의 사진 속에서 서늘한 눈매가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단정하게 넘긴 앞머리와 흐트러짐 없는 셔츠 깃, 그 사이로 드러난 목선이 사진 한 장 안에서도 어떤 거리감을 만들어내고 있었는데, 그 거리감이야말로 한서린이라는 아이를 설명하는 가장 정확한 단어일지도 몰랐다.
그 시선이 마치 화면을 뚫고 자신을 향한 것처럼 느껴져, 서윤은 저도 모르게 눈을 피했다.
"경쟁 붙었네, 이번엔." 수아가 킬킬거리며 말하자, 서윤은 대답 대신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경쟁이라니, 무슨."
"몰라서 물어? 축제 퀸 투표, 너랑 한서린이랑 표 갈릴 게 뻔하잖아. 걔 팬덤도 은근 세."
수아의 말에 서윤은 별일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했지만, 속으로는 한서린의 사진 속 눈매가 자꾸만 눈앞에 어른거려 신경이 쓰였다.
하은이 옆에서 서윤의 어깨에 턱을 살짝 얹으며 물었다.
"긴장돼?"
그 순간 하은의 숨결이 목덜미에 닿는 감촉에, 서윤의 심장이 다시 한번 요란하게 흔들렸다.
서윤은 애써 태연한 얼굴로 웃었지만, 그 웃음 뒤에서 자신이 방금 느낀 감각이 단순한 우정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스스로도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었다.
'이건 그냥, 친해서 그런 거야.'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에도, 하은의 온기가 남은 어깨 부근이 이상하게 뜨거웠다.
수아는 그런 두 사람을 번갈아 보다가 별다른 말없이 다시 휴대폰으로 시선을 돌렸고, 교실 안은 곧 등교한 아이들의 웅성거림으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창밖으로 아침 햇살이 조금씩 더 짙어지고 있었고, 그 빛 속에서 서윤은 조회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를 들으며 자리에 앉았지만, 방금까지 느꼈던 뜨거움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은 채 가슴 한켠에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복도 저편에서 누군가의 구두 소리가 또각또각 가까워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