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채찍이 허공을 갈랐다.
쉭-
민재는 팔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반사적인 움직임이었다. 몸이 먼저 반응했다.
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어깨가 찢어졌다. 삼베옷이 붉게 물들었다. 통증은 늦게 왔다. 먼저 충격이, 그 다음에야 뜨거운 감각이 뒤따라 들어왔다.
"이 정도로 끝날 거라 생각했나." 곽리가 웃었다.
그의 웃음엔 즐거움이 섞여 있었다. 이곳에서 매질은 벌이자 동시에 오락이었다. 곽리는 채찍을 늘어뜨린 채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마치 사냥감을 감상하는 자의 걸음이었다.
"삼조 놈들이 채굴량을 못 채웠다지. 누군가는 대가를 치러야 하지 않겠나."
민재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힘도 없었고, 대답할 필요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곳에서 노예의 말은 소음일 뿐이었다.
소하가 몸부림치며 앞으로 나섰다.
"그만해요! 몫은 제가 갚겠다고 했잖아요!" 그녀가 소리쳤다.
감독이 소하를 붙잡았다. 억센 손아귀가 그녀의 팔을 그대로 짓눌렀다.
"가만있어. 지금 나서면 너도 죽어." 감독이 낮게 말했다.
"하지만-"
"닥치고 있으라니까." 감독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네가 나선다고 저 놈이 덜 맞는 게 아니야. 오히려 둘이 맞겠지."
소하는 입술을 깨물었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 정도로 주먹을 쥐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이, 매를 맞는 것보다 더 아팠다.
곽리의 채찍이 다시 날았다.
쉭-
퍽!
두 번째 매가 민재의 등을 찢었다. 이번엔 첫 번째보다 깊었다. 곽리는 손목을 비틀며 채찍 끝에 힘을 더 실었다.
민재는 무릎을 꿇었다. 그러나 쓰러지지 않았다.
'아직 서 있을 수 있다.' 그는 그렇게 믿었다.
무릎이 흙바닥에 닿는 순간에도, 그는 두 손으로 땅을 짚었다. 쓰러지면 다시 일어나기 어렵다는 걸 알았다. 갱도에서 며칠을 보내며 배운 것 중 하나였다. 한 번 쓰러진 자는 더 쉽게 짓밟혔다.
"버티는 게 재밌구나." 곽리가 고개를 기울였다.
"보통 세 번이면 기절하던데."
그의 목소리엔 진심으로 흥미로워하는 기색이 있었다. 마치 신기한 짐승을 관찰하는 듯한 눈빛이었다.
곽리는 원래 그런 자였다. 노예의 고통을 놀이로 여기는 자. 마족 밑에서 감시자 자리를 얻기 위해 스스로 동족을 팔아넘긴 전력이 있다는 소문도 있었다. 그 소문이 사실이든 아니든, 지금 그의 눈빛만 봐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인간이었다.
"이름이 뭐였지?" 곽리가 물었다. 답을 기대하는 질문이 아니었다.
"민재…" 누군가 뒤에서 작게 중얼거렸다.
"민재라. 좋은 이름이군. 오래 기억해두지." 곽리가 낄낄거렸다.
세 번째 채찍이 날았다.
쉭-
퍽!
이번엔 목덜미였다. 민재의 시야가 하얗게 흐려졌다. 귓속에서 이명이 울렸다.
그 순간, 낯선 기억 한 조각이 뇌리를 스쳤다.
네모난 방, 밝은 화면, 누군가의 목소리.
'민준아, 포기하지 마.'
누구의 목소리인지 알 수 없었다. 다만 그것이 자신을 부르는 소리라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민준. 그 이름이 낯설면서도 낯설지 않았다. 마치 오래전에 잃어버린 껍데기 같은 이름이었다.
네 번째 채찍이 날아왔다.
민재는 이번엔 피하지 못했다.
퍽!
의식이 완전히 무너졌다.
"민재야!" 소하의 외침이 갱도 벽에 부딩혔다.
감독의 손을 뿌리치고 그녀가 달려갔다. 몸이 먼저 움직였다. 생각은 나중이었다.
곽리는 채찍을 거두지 않았다.
"아직 안 끝났다." 그가 말했다.
다섯 번째, 여섯 번째. 채찍은 규칙적으로 허공을 갈랐다.
쉭- 퍽! 쉭- 퍽!
민재는 더 이상 소리를 내지 않았다. 몸이 채찍에 맞아 튀어 오를 때마다, 그저 인형처럼 흔들릴 뿐이었다.
소하가 그의 앞으로 몸을 던졌을 때, 그는 이미 미동이 없었다. 그녀의 무릎이 흙바닥에 부딪히는 소리조차, 그 순간에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만! 죽었어요, 죽었다고요!" 소하가 비명을 질렀다.
곽리가 채찍을 내렸다.
숨소리 하나 없이 늘어진 몸을 잠시 내려다보더니, 그는 심드렁하게 어깨를 폈다.
"죽었으면 어쩔 수 없지." 곽리가 말했다.
"오늘 할당량은 다른 조에서 메꿔."
그는 채찍을 허리춤에 감고, 별일 아니라는 듯 몸을 돌렸다. 날개를 펴고 갱도 위로 날아올랐다. 그 날갯짓 한 번에 먼지가 흩날렸다.
다른 노예들은 곡괭이질을 계속했다. 아무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 누군가 죽는 것은, 이곳에서 새로운 소식이 아니었다.
+++
소하는 민재의 몸을 끌어안았다.
삼베옷은 이미 흠뻑 젖어 있었다. 붉은 얼룩이 옷 전체로 번져 있었고, 손에 닿는 피부는 이미 차가워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눈 좀 떠봐. 제발." 그녀가 속삭였다.
대답은 없었다.
"민재야. 민재야, 제발…"
그녀의 목소리는 점점 더 작아졌다. 마치 소리를 낼수록 대답이 더 멀어지는 것 같았다.
미정이 다가와 그의 손목을 짚었다. 작은 손가락이 서투르게 맥박을 찾았다.
"...안 뛰어요." 미정이 말했다.
짧은 말이었으나, 그 안에는 아이가 낼 수 있는 가장 정확한 슬픔이 담겨 있었다. 나이보다 어리게만 말하는 그녀가, 죽음을 저렇게 담담하게 말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이 갱도의 잔혹함을 증명하고 있었다.
주변 노예들 중 누구도 다가오지 않았다.
"쉬는 시간 아까우니 그냥 파." 누군가 낮게 중얼거렸다.
"저러다 우리까지 매 맞으면 어쩌라고." 다른 누군가가 대꾸했다.
곡괭이 소리가 다시 규칙적으로 울렸다. 챙- 챙- 챙-.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한 소리였다.
죽음은 이 갱도에서 낯설지 않았다. 낯설지 않아서, 슬퍼할 이유도 없었다. 매달 몇 명씩 죽어나갔고, 그 시신은 늘 같은 방식으로 처리되었다. 노예 하나가 죽는다고 채굴 일정이 늦춰지는 법은 없었다.
감독조차 시신을 손수 옮기라 지시할 뿐,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저쪽 구덩이에 놓아둬. 밤에 정리반이 와서 처리할 거다." 감독이 말했다.
소하는 그 말을 듣고 몸을 떨었다.
'구덩이라니.'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며 민재의 몸을 더 세게 끌어안았다.
"안 돼요. 이렇게는 못 보내요." 소하가 말했다.
"규칙이야. 시체는 여기 오래 못 둬." 감독이 무심하게 대답했다. "냄새나고, 다른 놈들 사기도 떨어지고. 여기 그런 거 신경 쓸 여유 없어."
"그래도-"
"그래도는 없어." 감독의 목소리가 조금 더 단단해졌다. "너도 저렇게 되고 싶지 않으면 손 놓아."
소하의 눈물이 흘렀다.
처음엔 흐느낌이었으나, 시간이 지나며 소리 없는 눈물로 바뀌었다. 눈물이 점차 말라서 더는 흐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녀는 그의 손을 놓지 않았다.
민재의 손은 여전히 따뜻했다. 아니, 따뜻하다고 믿고 싶었다. 그녀는 그 손을 자신의 두 손으로 감쌌다. 손가락 하나하나를 만지며, 마치 그 온기를 붙잡아두려는 듯이.
'같이 갈게.' 소하는 속으로 그렇게 되뇌었다.
노예에게 자유란 죽음뿐이라는 걸,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다. 이곳에 끌려온 순간부터, 살아서 나갈 수 있다는 희망은 접었다. 그런데 민재가 죽었다. 자신이 대신 갚겠다고 했던 몫 때문에, 그가 매를 맞다가 죽었다. 그 사실이 그녀를 더 견딜 수 없게 만들었다.
손에 닿는 곡괭이 하나를 조용히 끌어당겼다. 손잡이는 거칠고 무거웠다. 그 무게가 이상하게도 위안이 되었다.
아무도 그녀를 말리지 않았다. 말릴 만큼 관심 있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노예들은 각자의 곡괭이질에 몰두했고, 감독은 이미 다른 조로 걸음을 옮긴 뒤였다. 소하와 민재의 몸, 그리고 그 곁의 미정만이 이 작은 공간에 남아 있었다.
미정만이 그녀 곁에 남아 있었다.
"언니, 왜 그래요." 미정이 물었다. 아이의 눈에는 두려움이 섞여 있었다.
소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곡괭이 끝을 자신의 목덜미로 가져갔다. 손이 떨렸지만, 마음은 이상하게도 차분했다. 이제 더 잃을 것도 없다는 생각이 그녀를 오히려 편안하게 만들었다.
'미안해. 하지만 혼자 두고 갈 수는 없어.'
그 순간이었다.
민재의 손끝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소하는 그것을 보지 못했다. 눈을 감고, 곡괭이 끝의 냉기만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정은 보았다. 아이의 눈이 그 작은 움직임을 놓치지 않았다.
"...언니, 손이 움직였어요." 미정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