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노예 주제에 시스템 떴다

1화

흑철광산의 새벽은 종소리로 시작되었다. 쇠종이 세 번 울리면 노예들은 일어나야 했다. 일어나지 않으면 매를 맞았고, 매를 맞고도 일어나지 않으면 그날은 밥이 없었다. 그런 규칙이 삼 년째 이어지고 있었다. 누구도 어기지 않았다. 어긴 자는 이미 이곳에 없었다. 민재는 종이 두 번 울릴 때 이미 눈을 떴다. 습관이었다. 이 지하 갱도에 끌려온 지 삼 년, 몸이 먼저 시간을 아는 것이다. 천장 어딘가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똑, 똑, 똑. 그 소리마저 익숙했다. 이 갱도의 습기는 계절이 없었다. 늘 같은 온도, 같은 냄새, 같은 어둠이었다. 민재는 눈을 뜬 채로 잠시 누워 있었다. 몸을 일으키는 것도 힘을 아껴야 하는 일이었다. 옆자리에서 소하가 몸을 뒤척였다. 화란국 왕족의 핏줄이라던 그녀는, 지금은 다른 노예들과 똑같은 삼베옷을 입고 짚더미 위에서 잠을 잤다. 왕족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이제 이 갱도 안에 몇 남지 않았다. 그마저도 입에 담지 않았다. 그런 말을 꺼내는 순간 곽리의 채찍이 날아온다는 걸 다들 알았다. "일어났어?" 소하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조금 전에." 민재가 대답했다. "오늘도 삼백 근이래. 어제보다 오십 근이 늘었어." 소하의 목소리엔 걱정이 묻어 있었다. 민재는 대답 대신 짚더미를 정리했다. '늘어난 건 채굴량이 아니라 저들의 욕심이다.' 그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말해봐야 달라질 것은 없었다. 이 갱도에서 말은 힘이 없었다. 곡괭이와 채찍만이 유일한 언어였다. 소하와는 정혼한 사이였다. 노예에게 정혼이란 우스운 말이지만, 두 사람을 이 갱도에 함께 던져 넣은 마족 상인이 붙인 이름표에는 그렇게 적혀 있었다. 서류상 부부가 될 짝이라는 뜻이었다. 실제로는 서로 등을 맞대고 잘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밤이 되면 두 사람은 등을 맞대고 누웠다. 그 온기만이 하루의 유일한 위로였다. "오늘도 하늘을 못 보겠지." 소하가 나지막이 말했다. 갱도 안에는 하늘이 없었다. 대신 천장에 박힌 마정석 몇 개가 푸르스름한 빛을 뿌릴 뿐이었다. 그 빛은 낮과 밤을 구분해주지 않았다. 노예들은 종소리로만 시간을 가늠했다. "언젠가는 볼 거예요." 민재가 말했다. "언젠가." 소하가 웃었다. 그 웃음엔 기대보다 습관이 더 많이 담겨 있었다. 삼 년 동안 몇 번이나 했던 대화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럼에도 매번 같은 말을 주고받았다. 그것도 습관이었다. 미정이 다가온 건 그때였다. 미정은 소하보다 어리지도 않았지만 말이 짧고 판단이 느렸다. 다른 노예들은 그녀를 '모자란 아이'라 불렀다. 소하만이 그녀를 데리고 다녔다. 이유를 묻는 사람은 없었다. "소하 언니, 배급이 줄었대요." 미정이 말했다. "알아. 곽리가 새로 온 뒤로 계속 줄었어." 소하가 미정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미정은 그 손길에 잠시 눈을 감았다. 이 갱도에서 그것은 드문 사치였다. 곽리라는 이름이 나오자 갱도 안 공기가 미묘하게 가라앉았다. 이 흑철광산의 감시대장, 마혈종 곽리. 반쪽짜리 마족의 피를 물려받아 등에 검은 날개가 돋았고, 그 날개로 갱도 안팎을 자유롭게 날아다녔다. 원래는 저급 수인 노예였다는 소문도 있었다. 확인된 적은 없었다. 확인된 건 하나뿐이었다. 그의 채찍에 맞아 죽은 노예가 이미 열 명이 넘는다는 것. 그 열 명 중 셋은 이 조에서 나왔다. 민재는 그들의 이름을 아직 기억했다. 이름을 잊는 순간 그들이 완전히 죽는 것 같았다. 종이 세 번 울렸다. 노예들이 일어나 줄을 섰다. 민재도 소하의 손을 잠깐 잡았다가 놓았다. 그것이 이 갱도에서 허락된 유일한 인사였다. 줄은 길었다. 백 명이 넘는 노예들이 각자의 조에 맞춰 정렬했다. 누구도 서두르지 않았지만 누구도 늦지 않았다. 늦는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두 알았다. +++ 갱도 안은 늘 습했다. 곡괭이 소리가 규칙적으로 벽을 때렸고, 그 사이사이 흙먼지가 등불 아래 뿌옇게 떠올랐다. 민재는 곡괭이를 내려찍었다. 퍽- 돌 부스러기가 튀었다. 팔이 아렸지만 멈추지 않았다. 땀이 눈으로 흘러들었다. 손등으로 닦을 새도 없었다. 손을 멈추는 순간 곡괭이 소리가 끊기고, 곡괭이 소리가 끊기면 감독의 눈이 이쪽을 향했다. '아버지는 늘 말했다.' 민재는 곡괭이를 다시 들며 그런 생각을 했다. '약한 놈이 잘못한 게 아니라, 강한 놈이 봐주지 않는 게 잘못이다.' 어디서 들은 말인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았다. 다만 이 말만은 몸속 어딘가에 새겨진 듯 선명했다. 그가 원래 어디서 왔는지, 왜 이 몸에 갇혀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이따금 낯선 풍경이 꿈처럼 스쳤다. 네모난 건물들, 밝은 불빛, 종이로 된 책들. 꿈이라 여기고 넘겼다. 지금 이 순간, 이 갱도 안에서는 그런 것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곡괭이를 내려찍을 때마다 그 꿈의 조각들은 흙먼지와 함께 흩어졌다. "이쪽 조, 오늘 할당량이 삼백 근이다." 늙은 감독 노예가 소리쳤다. "어제도 못 채웠는데 어떻게 채우라는 거요." 누군가 낮게 중얼거렸다. "닥치고 파. 곽리 님 순찰 시간이야." 감독의 목소리에 두려움이 섞였다. 감독도 노예였다. 다만 조금 더 오래 살아남았을 뿐이었다. 그 목소리에서 두려움을 읽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 이름이 나오자 곡괭이질 소리가 더 빨라졌다. 누구는 손끝이 갈라져 피가 났고, 누구는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그래도 손을 멈추지 않았다. 쉭- 어둠 속에서 검은 날개가 접히는 소리가 들렸다. 곽리였다. 키가 크고 어깨가 넓었으며, 등에 접힌 날개는 갱도 등불 아래서도 유난히 검었다. 손에는 언제나처럼 채찍을 들고 있었다. 그의 발소리는 이상하게 조용했다. 그 조용함이 오히려 더 불길했다. 소리가 없으면 예측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할당량." 곽리가 짧게 물었다. "아직... 이백 근입니다." 감독이 고개를 숙였다. "이백." 곽리가 되뇌며 웃었다. 그 웃음이 누구에게도 좋은 신호가 아니라는 걸, 이곳 노예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곽리의 시선이 줄을 따라 움직였다. 느릿하게, 마치 사냥감을 고르는 짐승처럼. 소하와 미정이 서 있는 쪽에서 멈췄다. "저 계집." 곽리가 미정을 가리켰다. "오늘 손이 제일 느렸다며. 감독." "그... 그렇습니다." 감독의 목소리가 떨렸다. 미정이 몸을 움츠렸다. 그녀의 손에는 아직 마르지 않은 진흙이 묻어 있었다. 곡괭이를 놓친 흔적이었다. 소하가 그녀 앞을 반쯋 가로막았다. "쟤가 아니라 제가 대신 채굴할게요. 몫을 채워드리겠습니다." 소하가 말했다. "네 몫도 못 채우는데 남의 몫까지?" 곽리가 채찍을 들었다. 민재가 앞으로 나섰다. "제가 대신 벌을 받겠습니다." 그가 말했다. 존댓말이었으나 흔들림 없었다. 곽리의 눈이 민재를 향했다. '이자가 나를 시험하는군.' 곽리는 그런 표정으로 민재를 훑었다. "네가?" 곽리가 되물었다. "저 둘은 오늘 몫을 채웠습니다. 부족한 건 제 조입니다." 민재가 말했다. 거짓말이었다. 정확히는 아직 채우지 못한 몫이었다. 하지만 그 말이 사실인지 확인할 사람은 이 자리에 없었다. 감독조차 감히 나서서 반박하지 않았다. 곽리가 천천히 다가왔다. 걸음마다 날개 끝이 스치며 스산한 소리를 냈다. 스릉- "재밌구나." 곽리가 낮게 웃었다. "노예 놈이 감히 저 여자를 감싸는 걸 보니, 정혼자란 게 진짜였나 보군." 민재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소하와 미정을 눈짓으로 뒤로 물렸다. 그의 눈은 곽리를 향해 있었지만, 그 시선 안쪽으로는 다른 계산이 돌아가고 있었다. 채찍의 사거리, 곽리의 발 위치, 뒤로 물러설 수 있는 공간까지. 곽리가 채찍을 고쳐 잡았다. 손목을 한 바퀴 돌리자 채찍 끝이 바닥을 스치며 낮은 소리를 냈다. 스르릉- "그렇다면, 오늘 매는 네가 다 맞아야겠구나." 민재는 이를 악물었다. '맞는 건 두렵지 않다.' 그는 그렇게 되뇌었다. 삼 년 동안 이미 몇 번이나 맞았는지 셀 수 없었다. 등에 남은 흉터가 그 숫자를 대신 기억했다. 하지만 곽리의 눈빛이 평소와 달랐다. 오늘은, 웬일인지, 그저 매질로 끝낼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 눈은 마치 오랜만에 흥미로운 장난감을 발견한 아이의 눈과 비슷했다. 그리고 그런 눈을 한 곽리가 무슨 짓을 할지, 이 갱도 안의 누구도 예측할 수 없었다. 곽리가 한 걸음 더 다가섰다. 채찍을 어깨 뒤로 넘기며, 그 눈에 처음으로 살기가 어렸다. 주변의 곡괭이 소리가 하나둘 멈춰갔다. 누구도 감히 계속 일하지 못했다. 이 자리에서 무언가가 벌어지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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