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저녁 식사는 조용히 흘러갔다. 강소연이 차려준 음식들이 식탁 위에 가득 놓여 있었다. 잡곡밥, 된장국, 조기구이, 나물무침 몇 가지. 하나같이 내가 어릴 때 좋아하던 것들이었다. 누나는 그걸 다 기억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8년이나 지났는데도.
나는 반쯤 넘긴 밥그릇을 앞에 두고 젓가락을 만지작거리기만 했다. 밥알이 입안에서 겉돌았다. 삼켜도 넘어가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누나는 그런 나를 눈치채지 못한 듯, 평소처럼 밝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사업 초반의 고생담, 처음 계약을 따냈을 때의 기쁨, 낯선 나라에서 겪은 크고 작은 에피소드들. 말을 하다가 웃음이 터지면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었다. 그 웃는 얼굴이 예전이랑 똑같아서, 나는 순간 목이 메었다.
그러고 보니 누나가 저렇게 웃을 때마다 나는 늘 옆에 붙어 앉아 있었다. 초등학교 다닐 때, 누나가 고등학생이었던 시절. 방과 후에 집에 오면 누나는 항상 부엌에서 뭘 만들고 있었고, 나는 식탁에 앉아 그날 있었던 일을 하나도 빠짐없이 다 말해주곤 했다. 누나는 그런 나를 귀찮아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말해보라고, 그래서 어떻게 됐냐고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그때는 그게 당연했다. 누나가 옆에 있는 게, 누나 손이 내 머리를 쓰다듬는 게, 자기 전에 뺨에 입을 맞춰주는 게.
지금은 아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듣는 척했지만, 머릿속은 온통 아까의 그 장면으로 가득했다. 굳어버린 누나의 표정, 허공에 떠 있던 팔. 나를 안으려다가 멈춘 그 손끝. 그 잠깐의 정적이 이상하게도 계속 머릿속에서 재생됐다. 왜 그렇게 놀란 표정을 지었을까. 내가 뭔가 이상한 반응을 보인 걸까. 아니면 원래 내가 그렇게 몸을 사린 게 누나 눈에도 낯설게 보였던 걸까.
식사가 끝나고 누나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릇을 정리하려는 듯 손을 뻗다가, 다시 멈추고 나를 바라봤다.
오늘 고생했다, 우리 지우. 누나가 다가오며 말했다.
목소리가 부드러웠다. 예전과 다를 게 없는 목소리였다.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살짝 뒤로 물렸지만, 누나는 이번엔 팔을 벌리지 않았다. 대신 얼굴을 가까이 가져왔다. 뺨에 입을 맞추려는 게 분명했다.
어릴 때 늘 그랬던 것처럼. 잘 자라는 인사로, 뺨에 가볍게 입을 맞추던 그 습관 그대로. 몇 번을 그랬는지 셀 수도 없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매일 밤 그게 마지막 인사였다. 누나 없이는 잠도 안 온다고 떼를 쓰던 나였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누나의 얼굴이 코앞까지 다가오자 나는 참을 수 없었다. 심장이 갑자기 빨라지고 목덜미가 뻣뻣하게 굳었다. 몸이 먼저 반응했다. 머리로 생각할 틈도 없이.
나는 고개를 확 돌리며 몸을 뒤로 뺐다. 의자가 바닥에 끌리며 거친 소리를 냈다. 그 소리가 유난히 크게 부엌 안에 울렸다.
지우야? 누나의 목소리에 당혹감이 섞여 있었다.
나는 심장이 미친 듯이 뛰는 걸 느끼며, 겨우 입을 열었다. 미안, 나 이제 그런 거, 좀. 불편해서.
불편해? 누나의 눈빛이 흔들렸다. 목소리 톤이 순식간에 낮아졌다. 뭐가 불편한데. 우리 사이에.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저 몸이 먼저 반응해버린 거라고, 스물두 살이 된 지금은 예전 같을 수 없다고, 그렇게 말해야 했는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목구멍이 꽉 막힌 것 같았다.
예전엔 안 그랬잖아. 누나가 낮게 말했다. 목소리에 상처받은 기색이 역력했다. 어릴 때는 안기는 것도, 뽀뽀하는 것도 아무렇지 않아 했으면서. 왜 이제 와서.
그때랑 지금이랑 다르잖아. 나는 겨우 그렇게 말했다. 목소리가 떨렸다. 나도 이제 스물두 살이고.
그래서? 나이 먹었다고 누나한테 이러는 거야? 누나의 눈에 물기가 어렸다. 8년 만에 돌아왔는데, 동생이 나를 이렇게 대할 줄은 몰랐어.
누나. 나는 그렇게만 부르고 더 말을 잇지 못했다. 가슴 한쪽이 쓰리게 아팠다. 내가 뭘 잘못한 걸까. 아니면 그냥 몸이 이상하게 반응하는 걸까. 그러니까 왜, 도대체 왜 나는 누나의 손길을 이렇게까지 견디기 힘든 걸까.
누나가 8년 동안 얼마나 힘들게 지냈는지 나는 알고 있었다. 낯선 나라에서 말도 제대로 안 통하는 채로 사업을 시작했다는 것도, 몇 번이나 실패하고 다시 일어섰다는 것도 다 들었다. 그런 누나가 그리워한 건 예전의 나였을 것이다. 자기 무릎에 앉아 응석 부리던, 아무 거리낌 없이 안기던 어린 동생.
그런데 지금 눈앞에 있는 나는, 그 무릎에 앉기는커녕 손끝이 닿는 것조차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누나는 잠시 나를 바라보다가, 아무 말 없이 몸을 돌려 계단을 올라갔다. 발걸음이 무거워 보였다. 발소리가 점점 멀어지더니, 위층 어딘가에서 문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가 유독 크게, 오래도록 귓가에 남았다.
나는 식탁에 홀로 남아 텅 빈 의자를 바라보았다. 손끝이 차갑게 식어 있었다. 죄책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상처 준 게 분명한데도, 나는 왜 다시 그 순간이 온다면 똑같이 피할 것 같다는 걸 알고 있었을까.
식탁 위에는 아직 치우지 않은 그릇들이 그대로였다. 누나가 정성 들여 차린 음식들. 국은 이미 다 식어 있었다. 나는 그걸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 혼자 그릇들을 치우기 시작했다. 물소리가 부엌 안을 채웠다. 설거지를 하는 손이 자꾸 미끄러졌다.
창밖으로 어둠이 짙게 깔려 있었다. 이사 온 지 얼마 안 된 이 낯선 집은, 아직 익숙해지지 않은 냄새와 낯선 그림자들로 가득했다. 나는 그 어둠 속에서, 새로 이사 온 이 낯선 집에서, 처음으로 누나와 완전히 멀어진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위층은 조용했다. 누나의 방문은 여전히 닫혀 있었다. 나는 계단 아래에 서서 한참 동안 그 문을 올려다봤다. 올라가서 노크를 해야 하나. 뭐라고 말을 해야 하나. 미안하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이해해달라고 해야 하나.
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결국 나는 발걸음을 돌려 내 방으로 향했다. 계단을 오르는 발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내 방문 앞에서, 나는 다시 한번 누나의 방문 쪽을 돌아봤다. 문틈 사이로 희미한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누나는 아직 자지 않고 있었다.
나는 그 불빛을 한참 바라보다가, 조용히 내 방문을 닫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