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누나의 새 집은 3층짜리 단독주택이었다. 대문을 지나 정원을 가로지르는 동안, 나는 새로 심은 듯한 어린 나무들과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한 잔디를 눈에 담았다. 나무들은 지지대에 묶인 채 겨우 몸을 지탱하고 있었고, 잔디는 듬성듬성 흙이 드러난 채였다. 모든 게 새것이었다. 마치 누나가 8년 만에 새로 시작하는 삶을 상징하는 것처럼.
문득 옛날 생각이 났다. 우리가 어릴 때 살던 집에도 작은 마당이 있었다. 시멘트 바닥에 금이 가고 잡초가 삐죽삐죽 올라오던 그런 마당이었다. 누나는 거기서 나를 목말 태우고 뛰어다녔었다. 넘어질 것 같으면 내가 목을 조르듯 누나 머리를 꽉 붙잡았고, 누나는 아프다면서도 깔깔 웃으며 멈추지 않았다. 그때의 마당과 지금 이 정원은 너무 달라서, 나는 그 사이에 놓인 8년이라는 시간이 새삼 아득하게 느껴졌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넓은 거실이 눈에 들어왔다. 통유리 창 너머로 오후 햇살이 쏟아져 들어왔고, 빛을 받은 대리석 바닥이 은은하게 반짝였다. 가구들은 하나같이 손을 탄 흔적이 없었다. 강소연은 캐리어들을 현관 옆에 가지런히 세워두고는 조용히 자리를 비켰다. 짐은 나중에 정리하겠습니다, 라는 말을 남긴 채였다. 그녀의 걸음걸이는 조용하면서도 절도가 있었다. 매니저라는 직함이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어때, 마음에 들어? 누나가 코트를 벗으며 물었다.
코트 안에서 드러난 누나의 몸은 내가 기억하는 것보다 훨씬 가늘었다. 어깨선이 매끄럽게 떨어지고, 목선은 길고 곧았다. 화장기 없는 얼굴인데도 피부는 도자기처럼 매끈했다. 8년 전, 유학을 앞두고 훌쩍 떠나던 그날의 누나와 지금의 누나는 같은 사람이라고 하기 힘들 만큼 달라져 있었다. 그때는 통통한 볼에 여드름 자국까지 있던 사람이었는데.
좋네. 나는 짧게 대답했다. 누나 성공한 거 실감난다.
누나가 웃으며 나를 향해 돌아섰다. 그리고 두 팔을 벌렸다. 이리 와, 이제 진짜 인사하자.
나는 순간 몸이 얼어붙었다. 아까 공항에서와는 상황이 달랐다. 강소연도 없고, 사람들 시선도 없었다. 온전히 둘뿐인 공간에서 누나가 나를 안으려 하고 있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반걸음 뒤로 물러났다.
어릴 때는 이런 게 아무렇지도 않았다. 누나 품에 얼굴을 묻고 잠들었던 적도 있었고, 누나가 나를 업고 병원에 뛰어갔던 적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벌린 두 팔 사이로 다가서는 게 왜 이렇게 어려운 걸까. 나는 그 이유를 알 것 같으면서도, 알고 싶지 않았다.
어, 미안. 가방이 아직 어깨에 있어서.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핑계를 댔다.
누나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 아주 짧은,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나는 분명히 보았다. 벌렸던 팔이 어색하게 허공에 떠 있다가 천천히 내려갔다. 눈동자가 살짝 흔들리는 것도, 입꼬리가 미세하게 처지는 것도 놓치지 않았다. 그렇구나. 누나가 낮게 말했다. 목소리에 서운함이 묻어 있었다.
나는 심장이 쿵 내려앉는 걸 느꼈다. 그러려던 게 아니었는데. 그냥, 몸이 먼저 반응해버린 거였다. 손끝이 차갑게 식었고, 나는 애써 태연한 척 가방을 내려놓으며 시선을 돌렸다. 창밖으로 시선을 피하는 척했지만, 사실은 누나의 얼굴을 마주 볼 자신이 없었다.
방 안내해줄게. 누나가 금세 표정을 바꾸며 앞장섰다. 목소리는 평소처럼 밝았지만, 나는 그 아래 깔린 서늘함을 느낄 수 있었다. 계단을 오르는 누나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괜히 헛기침을 했다.
2층 복도를 따라 걸으며 누나가 방문을 하나씩 열어 보여주었다. 여기는 서재로 쓸 거야, 여기는 손님방이고. 담담하게 설명하는 목소리 사이로 나는 복도 벽에 걸린 액자들을 훑어보았다. 대부분 누나 혼자 찍은 사진들이었다. 무대 위에서, 시상식장에서, 낯선 도시의 풍경을 배경으로. 그 어디에도 우리 가족의 사진은 없었다.
여기가 네 방이야. 누나가 마지막 문을 열며 말했다. 창밖으로 정원이 보이는 방이었다. 침대와 책상, 옷장까지 이미 다 갖춰져 있었다. 심지어 책장에는 내가 좋아할 만한 책들이 몇 권 꽂혀 있었다. 누나가 미리 준비해둔 게 분명했다. 얼마나 오래전부터 이 방을 채워왔을까, 나는 문득 궁금해졌다.
마음에 들어? 누나가 물었다.
응, 좋아. 나는 애써 웃으며 대답했다.
책상 위에는 작은 액자가 하나 놓여 있었다. 다가가서 들여다보니, 어릴 적 우리 남매의 사진이었다. 누나가 나를 목말 태우고 마당에서 웃고 있는, 바로 그 사진이었다. 나는 순간 목이 메었다. 누나는 이 사진을 지금까지 간직하고 있었구나. 8년의 시간 동안, 낯선 도시들을 떠돌면서도 이 사진만은 잃어버리지 않았구나.
방을 둘러보는 척하며 나는 속으로 스스로를 다그쳤다. 뭐가 문제야, 그냥 누나잖아. 어릴 때는 아무렇지도 않게 안겼으면서, 왜 지금은 이렇게 몸이 굳는 거야. 액자 속 어린 나는 누나 목에 팔을 두르고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저 아이는 지금의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면 뭐라고 할까.
답을 알 것 같으면서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누나의 외모가 변했다는 것, 그것 때문에 내가 이상한 감정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그건 있어서는 안 될 감정이었다. 나는 그 생각을 애써 밀어냈다. 액자를 원래 자리에 조심스레 내려놓았다.
짐 정리하고 좀 쉬어. 저녁에 같이 먹자. 누나가 방을 나서며 말했다. 문이 닫히기 직전, 누나가 나를 돌아보았다. 표정에는 여전히 미묘한 서운함이 남아 있었다. 그 눈빛이 오래도록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문이 닫히자 나는 침대에 걸터앉아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손바닥 아래로 심장 뛰는 소리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아까 누나의 굳은 표정이 자꾸 눈앞에 아른거렸다. 나는 상처를 준 걸까. 그런데도 나는, 다시 그 순간이 온다면 똑같이 몸을 피할 것 같다는 걸 알고 있었다.
창밖으로 오후 햇살이 조금씩 기울고 있었다. 정원의 어린 나무들이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리기 시작했다. 나는 캐리어를 열지도 못한 채, 그저 책상 위의 액자만 자꾸 곁눈질했다. 저 사진 속 아이와 지금의 나 사이에 무엇이 달라진 걸까. 답을 알면서도, 나는 스스로에게 자꾸만 다른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