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누나, 심장이 이상해요

2화

공항 게이트를 나서자마자 후텁지근한 습기가 훅 끼쳤다. 8년 만에 맡는 서울의 여름 공기였다. 낯설면서도 낯설지 않은 냄새. 아스팔트가 달궈진 냄새, 사람들이 스쳐 지나가며 남기고 가는 향수 냄새들. 나는 캐리어 손잡이를 꽉 쥔 채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지우야! 멀리서 누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사람들 틈에서 손을 흔드는 여자가 보였다. 검은색 슬랙스에 흰 블라우스, 어깨에 걸친 재킷. 화보에서 걸어 나온 것 같은 차림새였다. 8년 전 내가 기억하던 누나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 같았다. 그때는 대학생 특유의 편한 옷차림에 화장기 없는 얼굴이었는데, 지금은 화장도 진하고 몸에 딱 맞는 옷을 입고 있었다. 그런데도 웃는 얼굴만은 그대로였다. 누나 옆에는 처음 보는 여자가 서 있었다. 금발의 짧은 단발머리에 정장 차림. 나중에 강소연이라고 소개받은 사람이었다. 누나 회사에서 일한다고 했다. 비서인지 직원인지는 정확히 몰랐지만, 누나를 대하는 태도가 상당히 조심스러웠다. 마치 상사를 대하듯이. 캐리어는 제가 들겠습니다. 강소연이 내게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아, 괜찮아요. 제가 들게요. 무거우실 텐데요. 괜찮다니까요. 나는 손사래를 치며 캐리어 손잡이를 놓지 않았다. 강소연은 잠깐 나를 빤히 보더니,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물러섰다. 주차장까지 걸어가는 동안 누나는 계속 내 옆에 붙어서 이것저것 물었다. 기내식은 뭐가 나왔는지, 자리는 편했는지, 짐은 이게 다인지. 나는 대답을 하면서도 정신이 반쯤은 다른 데 가 있었다. 8년 만에 보는 얼굴을 눈으로 계속 확인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사이 얼마나 변했을까. 낯선 사람 같기도 하고, 여전히 내가 알던 누나 같기도 했다. 누나의 차는 검은색 세단이었다. 강소연이 운전석에 앉았고, 나는 얼떨결에 누나와 함께 뒷좌석에 앉게 되었다. 문이 닫히자 좁은 공간에 누나의 향수 냄새가 더 짙게 감돌았다. 예전에는 안 쓰던 향이었다. 묵직하고 은은한, 어른의 냄새였다. 피곤하지 않아? 누나가 물었다. 열세 시간 비행이었을 텐데. 괜찮아. 기내에서 거의 잤어. 누나는 그렇구나, 하고 웃더니 자연스럽게 내 팔을 끌어당겨 팔짱을 꼈다. 나는 순간 몸이 굳었다. 손끝에서부터 이상한 열기가 번지는 걸 느꼈다. 어릴 때는 이러고 다니는 게 당연했는데. 학교 앞에서 누나를 기다리다가 팔짱을 끼고 분식집에 가던 기억이 스쳤다. 그때가 언제더라. 중학교 2학년, 그러니까 누나가 스물두 살이던 해였다. 시험 끝나고 온 나를 데리러 누나가 학교 앞까지 왔었다. 교복 입은 나를 보며 누나는 다 큰 척은, 하고 놀렸고, 나는 툴툴대면서도 순순히 팔짱을 꼈다. 그러고는 학교 앞 분식집에서 떡볶이를 나눠 먹었다. 누나는 매운 걸 잘 못 먹으면서도 굳이 매운맛을 시켜서, 결국 반은 내가 다 먹어야 했다. 그때는 그게 그냥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누나와 동생.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 같은 자세로 팔짱을 낀 채 앉아 있는데도 느껴지는 감각이 완전히 달랐다. 팔에 닿는 누나의 체온, 옷 위로 느껴지는 부드러운 살의 감촉. 손끝이 저릿할 정도로 예민하게 느껴졌다. 나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며 애써 다른 생각을 하려 했다. 이건 그냥 오랜만에 봐서 그런 거야. 어색해서 그런 거야. 스스로에게 몇 번이고 되뇌었지만, 심장은 여전히 이상한 박자로 뛰고 있었다. 그동안 연락 잘 못해서 미안했어. 누나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사업 초반에는 정말 정신없었거든. 자리 잡고 나서는, 이상하게 연락하기가 더 어려워지더라. 나는 괜찮다고 말하려다 그만두었다. 사실 괜찮지 않았다. 처음 이 년은 매주 영상통화를 했다. 화면 너머로 누나가 새로 이사한 방을 구경시켜주고, 회사 근처 맛집을 자랑하고, 가끔은 별거 아닌 일로 낄낄대며 웃었다. 그러다 점점 뜸해지더니, 나중에는 명절에나 겨우 문자 한 통 오가는 사이가 되었다. 생일에 축하한다는 말 한마디, 새해에 복 많이 받으라는 말 한마디. 그게 다였다. 나는 그동안 누나 없이 크는 법을 익혀야 했다. 부모님은 여전히 바빴고, 나는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시험공부를 하고 혼자 진로를 고민했다. 대학 입시 원서를 쓸 때도, 처음 자취방을 구할 때도, 누나에게 물어보고 싶은 게 많았지만 참았다. 이제 와서 연락하면 이상할 것 같아서. 괜찮아. 다 지난 일이잖아. 나는 겨우 그렇게만 말했다. 누나가 내 어깨에 살짝 머리를 기댔다. 지우 냄새 그대로다. 어릴 때랑 똑같아. 나는 숨을 참았다. 심장이 이상하게 빠르게 뛰었다. 이게 뭔가 잘못됐다는 걸 알면서도, 몸을 피할 수가 없었다. 창밖으로 익숙한 풍경들이 지나갔다. 한강 다리, 낯익은 아파트 단지들. 8년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은 서울의 모습이 오히려 낯설게 느껴졌다. 강물은 여전히 그대로 흐르고 있었고, 다리 위 가로등도 그대로였다. 변한 건 나와 누나뿐인 것 같았다. 앞자리에서 강소연이 백미러로 슬쩍 뒤를 살피는 게 보였다. 눈이 마주치자 그녀는 얼른 시선을 돌렸다. 그 짧은 순간의 표정이 뭔가 이상했다. 마치 예상 밖의 그림을 보고 있다는 듯한, 그런 표정이었다. 나는 그 표정이 왜 그런지 알 수 없었다. 그저 누나와 오랜만에 만난 동생이 반가워서 팔짱을 낀 것뿐인데, 왜 저런 눈으로 보는 걸까. 아니면 내가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는 걸까. 집은 어디로 가는 거야? 나는 화제를 돌리려 물었다. 한남동에 새로 마련했어. 누나가 대답했다. 지우 너 방도 따로 만들어놨어. 이제 같이 살자, 우리. 같이? 나는 되물었다. 나 학교 근처에 자취방 있는데. 그거 정리해. 누나가 단호하게 말했다. 이제부터는 나랑 같이 살아. 8년이나 떨어져 살았잖아. 이제라도 붙어 지내야지. 나는 뭐라 반박할 말을 찾지 못했다. 누나의 말투에는 거절을 허용하지 않는 단단함이 있었다. 예전에도 그랬다. 누나가 한번 정한 건 웬만해선 바뀌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 진로를 두고 부모님과 다툴 때도, 누나가 나서서 이건 이렇게 하는 거야, 하고 정리해버리면 그걸로 끝이었다.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없었다. 방 구경은 나중에 천천히 해. 누나가 웃으며 덧붙였다. 대신 오늘 저녁은 내가 직접 차려줄게. 지우 좋아하는 거 다 준비해놨어. 뭐 준비했는데? 비밀. 누나는 장난스럽게 눈을 찡긋했다. 도착하면 알게 될 거야. 차가 한남동의 고급 주택가로 접어들었다. 담장 너머로 잘 가꾸어진 정원이 보이는 저택들이 늘어서 있었다. 커다란 벚나무가 담장 위로 가지를 늘어뜨린 집도 있었고, 대문 앞에 세워둔 조각상이 보이는 집도 있었다. 8년 전에는 상상도 못 해본 동네였다. 그때 우리 가족이 살던 집은 이런 곳과는 비교도 안 되는 평범한 아파트였는데. 누나가 그동안 무슨 사업을 해서 이렇게까지 됐는지, 나는 자세히 알지 못했다. 그저 잘된다는 말만 몇 번 들었을 뿐이었다. 나는 창밖 풍경에 시선을 고정한 채, 팔에 닿은 누나의 체온을 애써 의식하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차가 서서히 속도를 줄이더니, 육중한 철제 대문 앞에서 멈춰 섰다. 대문이 스르륵 열리고, 그 안으로 넓은 마당과 하얀 외벽의 저택이 눈에 들어왔다. 마당 한쪽에는 낯익은 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어릴 적 우리 집 마당에 있던 것과 똑같이 생긴, 그러나 훨씬 크고 잘 자란 나무였다. 저거, 그 나무 아니야? 나는 나도 모르게 물었다. 누나가 팔짱을 낀 채로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 얼굴에 떠오른 미소가, 어딘가 낯설었다. 맞아. 옮겨 심었어. 지우 네가 좋아하던 거니까. 나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그 나무는 우리가 어릴 때 살던 집을 떠나면서 베어졌다고 들었던 나무였다. 그런데 그게 여기, 이 낯선 저택 마당에 그대로 서 있었다. 누나가 대체 얼마나 오랫동안, 얼마나 세세하게 나를 생각하고 있었던 건지, 갑자기 알 수 없는 서늘함이 등줄기를 타고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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