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누나, 심장이 이상해요

1화

인천공항 입국장은 사람들로 붐볐다. 나는 기둥에 기대서서 전광판을 올려다보았다. 비행기는 이미 착륙한 지 이십 분이 넘었는데, 게이트는 열릴 기미가 없었다. 손바닥에 땀이 찼다. 나는 그 땀을 청바지에 슬쩍 문질러 닦고, 다시 전광판을 확인했다. 도착. 숫자는 이미 그렇게 떠 있었다. 그런데도 문은 열리지 않았다. 8년 전, 누나가 유학을 떠날 때만 해도 나는 겨우 열네 살이었다. 그때 나는 이 공항, 이 자리 근처 어디쯤에서 울었다. 누나 가지 마, 하고 옷자락을 붙잡았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했다. 누나는 그때도 웃으면서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지우야, 누나 금방 갔다 올게. 그 금방이 8년이 될 줄은, 그때는 몰랐다. 그리고 지금, 스물두 살이 된 나는 8년 만에 돌아오는 누나를 마중 나와 있었다. 대학교 3학년, 이제는 어엿한 성인이 된 내가. 한지아. 내 하나뿐인 누나이자, 여덟 살 터울의 보호자였던 사람. 어릴 때 부모님이 사업 때문에 해외를 오가는 동안 나를 실질적으로 키운 건 누나였다. 도시락을 싸주고, 숙제를 봐주고, 밤에 무서운 꿈을 꾸면 옆에서 재워주던 사람. 초등학교 학예회에 부모님 대신 와준 사람도, 사춘기에 처음 여드름이 났을 때 약국까지 데려가준 사람도 누나였다. 나에게 한지아라는 이름은 엄마와 아빠를 합친 것보다 더 크고 무거운 무언가였다. 그런 누나가 스물두 살에 혈혈단신으로 유학을 떠났고, 8년 만에 사업가로 성공해서 돌아오는 거였다. 처음 몇 년은 영상통화로 얼굴을 봤다. 그러다 점점 뜸해졌고, 어느 순간부터는 문자로만 안부를 주고받았다. 잘 지내니, 밥은 챙겨 먹고, 그런 짧은 말들. 나는 그게 서운하면서도 이해했다. 누나가 얼마나 치열하게 살고 있는지, 문자 너머로도 느껴졌으니까. 게이트가 열렸다. 사람들이 하나둘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목을 빼고 인파를 훑었다. 익숙한 얼굴을 찾으려고 눈에 힘을 주었다. 캐리어를 끌고 나오는 중년의 남자, 아이 손을 잡은 여자, 배낭을 멘 청년들. 그 사이 어디에도 내가 기억하는 누나는 없었다. 그리고 그 순간, 숨이 멎었다. 캐리어를 끌고 걸어 나오는 여자가 있었다. 검은 슈트에 트렌치코트를 걸치고, 굽 높은 구두를 신은 채 또각또각 걸어오는 걸음걸이. 어깨까지 내려오는 웨이브 진 머리카락이 조명 아래서 갈색빛으로 반짝였다. 세련된 화장, 곧게 뻗은 목선, 슈트 위로 드러나는 허리의 곡선. 걸음마다 자신감이 배어 있었다. 순간 나는 그게 누나라는 걸 알아보지 못했다. 그저 멋진 커리어우먼이 지나가는구나, 하고 시선만 잠깐 따라갔을 뿐이었다. 지우야.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리고 나서야, 나는 그게 한지아라는 걸 깨달았다. 심장이 이상하게 빨리 뛰었다. 8년이면 사람이 이렇게 변하나. 마지막으로 본 누나는 스물두 살, 화장기 없는 얼굴에 청바지를 즐겨 입던 대학생이었다. 머리도 질끈 묶고 다녔고, 신발도 늘 운동화였다. 그런데 지금 내 앞에 서 있는 사람은, 그 누나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을 만큼 완전히 다른 여자였다. 마치 다른 사람의 몸에 누나의 목소리만 들어가 있는 것 같은, 그런 기묘한 이질감이 들었다. 다 컸네, 우리 지우. 누나가 환하게 웃으며 다가왔다. 웃는 얼굴만은 예전 그대로였다. 눈꼬리가 살짝 휘어지는 그 모양. 그것 하나만은 8년이라는 시간도 건드리지 못한 모양이었다. 나는 그제야 안심이 되면서도, 동시에 뭔가 형언할 수 없는 낯선 감정이 가슴 밑바닥에서 올라오는 걸 느꼈다. 반갑다는 감정과, 낯설다는 감정이 동시에 밀려와서 서로 부딪히는 것 같았다. 누나가 두 팔을 벌렸다. 나는 반사적으로 몸이 굳었다. 어릴 때는 아무렇지 않게 안겼던 품이었는데, 지금은 그 팔 안으로 들어가는 게 이상하게 낯설고 어색했다. 예전 누나 품에서는 늘 섬유유연제 냄새가 났다. 그 냄새를 맡으면 안심이 됐었다. 그런데 지금 저 팔 안에서는 무슨 냄새가 날지, 나는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다행히 누나는 캐리어를 정리하느라 잠시 다른 곳을 보았고, 나는 그 틈에 어정쩡하게 팔을 뻗어 어깨만 살짝 감싸는 걸로 인사를 대신했다. 너 왜 이렇게 뻣뻣해. 누나가 웃으며 말했다. 8년 만에 보는 건데 반갑지도 않아? 반갑지, 당연히. 나는 목소리가 갈라지는 걸 애써 감추며 대답했다. 그냥, 좀 어색해서. 누나가 내 얼굴을 빤히 들여다봤다. 그 시선이 얼굴 구석구석을 훑고 지나갔다. 많이 컸다, 진짜. 목소리도 굵어지고. 마지막으로 봤을 땐 나보다 작았는데. 그때 얘기 좀 그만해. 나는 괜히 민망해서 말을 돌렸다. 짐은 이게 다야? 누나 뒤로 여자 한 명이 따라 나왔다. 금발로 염색한 짧은 머리에 검은 정장을 입은 여자였다. 캐리어 두 개를 양손에 끌고 있었다. 걸음걸이가 군더더기 없이 반듯했다. 강소연이라고 해요. 지아 씨 비서 겸, 뭐랄까, 경호 비슷한 일도 하고요. 여자가 나를 향해 짧게 목례하며 말했다. 눈빛이 잠깐 나를 훑고 지나갔다. 뭔가 예상과 다르다는 듯한, 미묘한 표정이었다. 위아래로 훑는 시선이 짧았지만 분명했다. 지아 씨한테 말씀 많이 들었어요. 남동생 얘기. 강소연이 덧붙였다.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어색하게 웃었다. 좋은 얘기였으면 좋겠네요. 강소연은 대답 대신 살짝 웃기만 했다. 그 웃음이 이상하게 신경 쓰였다. 뭔가 알고 있는 사람의 웃음 같았다. 나만 모르는 무언가를, 저 사람은 알고 있는 것 같은. 캐리어는 이게 답니까. 내가 짐을 받아 들려고 손을 뻗자 강소연이 자연스럽게 몸을 틀어 캐리어 손잡이를 넘겨주었다. 손끝이 스쳤다. 차가운 감촉이었다. 감사합니다, 하고 짧게 인사를 하는데 강소연은 별다른 대꾸 없이 앞장서 걷기 시작했다. 주차장으로 가는 길, 누나는 계속 내 옆에 바짝 붙어 걸었다. 어깨가 스칠 때마다 향수 냄새가 훅 끼쳤다. 예전에 누나에게서 나던 냄새와는 완전히 다른, 이국적이고 짙은 향이었다. 나는 그 냄새를 맡을 때마다 이상하게 정신이 아득해지는 걸 느꼈다. 마치 낯선 사람과 나란히 걷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그 낯선 사람이 자꾸 내 이름을 부르며 웃었다. 지우야, 저기 저 편의점 아직도 있네. 누나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옛날에 나 여기서 삼각김밥 사 먹었었는데. 기억나. 나는 짧게 대답했다. 그리고 그 순간, 정말로 기억이 났다. 열네 살 때, 누나가 유학 가기 전 마지막으로 나를 데리고 왔던 이 공항. 그때도 누나는 저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을 사서 나눠 먹었었다. 참치마요였나, 불고기였나. 사소한 기억인데도 가슴 한구석이 저릿했다. 한국 공기 오랜만이다. 누나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목소리에 감회가 서려 있었다. 8년 만이네, 정말. 나는 대답 대신 고개만 끄덕였다. 8년이라는 숫자가 새삼 무겁게 느껴졌다. 그 시간 동안 누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돌아왔고, 나는 그 사실을 아직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캐리어 바퀴가 바닥에 끌리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강소연은 몇 걸음 앞서 걸으며 누구에겐가 전화를 받고 있었다. 낮은 목소리로 짧게 몇 마디를 주고받더니, 전화를 끊고 다시 우리 쪽을 돌아봤다. 그 눈빛이 또 한 번 나를 스치고 지나갔다. 이번에는 아까보다 더 오래, 더 유심히. 차에 타서도 나는 계속 옆자리에 앉은 누나를 흘끔거렸다. 창밖 풍경을 바라보는 옆얼굴이 낯설었다. 콧대도, 턱 선도, 예전 기억 속 누나보다 훨씬 또렷하고 성숙했다. 이 사람이 정말 내 누나가 맞나. 8년이라는 시간이 사람을 이렇게까지 바꿔놓을 수 있는 건가. 나는 자꾸 그 질문을 속으로 되뇌면서도, 답을 찾지 못한 채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서울의 불빛만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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